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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을 넘어선 교감으로 <달에 부는 바람>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6. 6. 7.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을 넘어선 교감으로 

 <달에 부는 바람>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6월 3일(금) 오후 8상영 후

참석: 이승준 감독 

진행: 서민원 한국독립PD협회 부회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정하 님의 글입니다.


<달팽이의 별>(2012)로 국내외 유수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이승준 감독이 <달에 부는 바람>과 함께 다시 관객들을 찾아왔다. 이번 작품 또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리의 가슴을 촉촉하게, 따뜻하게 적셔주었다. 장애인을 다룬 영화인만큼 그 여느 때보다 무겁고 진중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던 인디토크 현장을 소개한다.



서민원 한국독립PD협회 부회장(이하 서): 제가 잠깐 촬영에 참여했다가 엄청 혼났었어요. 못찍었다고.(웃음)


이승준 감독(이하 이): 제가 해외 출장 때문에 부탁을 했었거든요. 처음엔 흔쾌히 부탁을 들어줘서 너무 고마웠는데, 갔다 와 보고서는... 결국 안 썼어요.(웃음)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지라는 아이는 제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어요. 디렉팅이 힘들죠. 아예 안 되죠. 그러니까 그냥 있는 걸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어려웠는데, 그래도 익숙해지니까 그 아이의 동선이라든지 예상이 되는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한 1년 반 정도 촬영하고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서: 전작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감독이 소외된, 어려운 이들에게 집착하는 게 아닌가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 글쎄요. 제가 의도적으로 ‘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지’ 하지는 않아요. 기본적으로 잘 모르는 것, 잘 알려지지 않은 것, 숨겨진 것들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있고, 이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도 이념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시기에 어느 곳에서 접하는 여러 정보들이 저에게 올 때가 있어요. 물론 그 중에서 평소 관심이 있던 것들이 골라지겠죠. 근데 우연히 예지네 가족을 만나게 됐고, 그때 마음이 끌렸어요. 그냥... 모르겠어요. 왜 그랬는지.


서: 개인적으로 저는 오디오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고 느꼈어요.


이: <달팽이의 별> 하면서, 한국 다큐멘터리들이 그림보다 오디오에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소리가 주는 상상력, 그 상상력을 건드리는 힘이 영화에 몰입하고 공감하는 데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운드를 그림만큼이나 신경 쓰고 있습니다.


관객: 영화를 보기 전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데 가족들이랑 어떻게 소통하나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그런 생각도 하나의 선입견이었구나, 깨닫게 돼서 좋았습니다. 제목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달에는 바람이 불지 않잖아요. 근데 제목을 ‘달에 부는 바람’이라고 한 게 혹시 저희가 느끼지 못하는 예지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을 나타내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 너무도 정확하게 느끼신 것 같아요. 그런 의도였습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달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요. 하지만 예지한테는 있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달이 ‘여성성’을 상징하기도 해서 가져온 것도 있습니다.



관객: 영화 내내 바람 소리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았어요.


이: 예지가 바람을 좋아해요. 영화를 찍기 전에 어머니 인터뷰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예지가 바람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바람이 불면 예지가 웃는다고. 그럴 때면 어머니가 힘든 게 싹 사라진다고 그러셨어요. 근데 실제로 예지를 찍을 때 그런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바람’을 제목에 꼭 넣고 싶었어요.


관객: 영화를 찍고 나서 감독님에게 어떤 변화 같은 게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달팽이의 별>을 찍는 도중에 예지네 가족을 처음 알게 됐어요. <달팽이의 별>의 부부가 예지네 가족을 알고 있었고, 예지네 가족을 방문하는 걸 찍은 날이었죠. <달팽이의 별> 촬영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라 나름대로 시청각중복장애에 대해서 조금 알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시각과 청각이 완벽하게 막혀있는 상태를 상상할 수가 없었고 그 세계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어머니에게 “예지는 할 줄 아는 게 많고요, 할 줄 아는데 안 해요.”이런 말들을 처음 들었을 때는, 머리로만 ‘아 그런 게 있나보다’했는데, 촬영하다보니까 저도 그런 것들이 보이기도 했죠. 그리고 예지는 저를 몰라요. 엄마, 아빠, 언니, 선생님 정도는 만지면 알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노바디’예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제가 인사를 하려고 예지를 만지면 저를 한 번 만져보고 바로 툭 쳐요. 가라고. 예지한테 저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거죠. 근데 한 번은 추운 겨울날 촬영을 하러 갔는데, 거실에 혼자 있더라고요. 가서 인사하려고 손을 잡았죠. 딱 잡더니 뭘 찾더라고요. 그러고서 갖다 준 게 장갑이었어요. 그런 순간들마다 뭔가 조금은 느껴지는 건 있었어요.


서: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딱 하루, 반나절만 촬영을 했는데도 도대체 이걸 어떻게 오래 찍고 있었을까 싶었어요. 대사를 칠 줄 모르는 주인공을 찍는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이 친구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관객: 예지가 학교에서 북이나 박수를 쳐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칭찬을 해줘도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잖아요. 혹은 어머니나 선생님이 뭔가를 가르치려고 할 때 뭘 하려는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때도 있고요. 그러면 이렇게 자기가 밥을 먹을 때 손을 찍고 있다는 것, 자기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걸어가고 있는 순간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당연히 몰랐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이걸 저를 포함한 여러 관객들이 본다는 사실도 평생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도 분명 이런 사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분명 부모님의 동의하에 촬영을 하셨겠지만 본인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촬영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윤리적인 문제가 충돌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촬영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사실 어머님 아버님이 촬영을 쉽게 허락을 해주셨어요. 그분들이 허락을 해주신 첫 번째 이유는 예지 같은 아이가 또 있으면 그 부모를 만나서 교육방법에 대해서 정보를 얻고 싶다는 거였어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두 번째 이유는 예지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그러셨어요. 예지가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예지가 사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하셨어요. 예지는 모르죠. 그렇기 때문에 찍지 않는 게 맞는가, 라고 했을 때, 어떤 게 더 가치가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예지 어머님이 이 영화를 하겠다고 한 이유는 예지를 위해서, 예지에게 교육을 더 시켜주고 싶고, 예지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하겠다고 하신 건데, 예지가 모르니까 하면 안 된다고 결론 내리는 게 맞을까, 라고 했을 때,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 질문에 있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저는 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이렇게 하면 안 돼, 이건 아니야’ 이게 아니라,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예지나 예지의 가족들을 보면서 각자가 느끼는 게 다를 텐데, 감독님이 전달하고 싶으셨던 메시지 무엇이었나요?


이: 예지 어머님이 참 담담하신 분이세요. 천성적으로 선하시고. 이 분의 훌륭한 점은 뭘까 최근에서야 고민해보기 시작했는데요.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느끼고, 이런 것인데 이러려면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하잖아요. 지금 기분이 어떻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지? 요새 고민이 있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면 상대방과의 관계가 훨씬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가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살진 않잖아요. 근데 어머님은 예지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하시는 거예요. 예지 지금 기분은 어떻지? 왜 화를 내고 있지? 뭐가 문제지? 계속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세요. 머리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계속 느끼려고 하는 거거든요. 예지의 기분이나 마음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고 교감하고, 공감하고, 느끼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먼저일 텐데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잖아요. 말보다 중요한 걸 생각해보면 어떨까를 말해보고 싶었어요.


관객: 영화에서 화분에 대해서 많이 나오는데, 그 의미가 좀 궁금합니다.


이: 어머니의 유일한 취미예요. 근데 화분을 가꾸는 게 예지를 키우는 것과 비슷해요. 식물이라는 게 하루하루 관찰하면 큰 차이가 없는데, 시간을 가지고 관찰을 하면 어느 샌가 변해있거든요. 어머니도 예지에 대해서 비슷한 생각을 하세요. 얘가 매일 똑같은 것 같고 매일 속 썩이는 것 같고 그런데 어느 샌가 보면 이만큼 성장해 있고, 뭘 못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하고 있다고. 이런 비슷한 부분을 표현 하고 싶었어요.


관객: 예지도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가 있을 테고 그런 걸 어떻게 표현해낼까 궁금했었는데, 그에 대해선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예지가 여성으로서 겪는 일들은 뒤쪽에 잠깐 나와요. 생리할 때 힘들어하고 이러는 부분. 근데 그 외의 인간으로서 가지는 욕구들에 대한 것까지 다룰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여자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성욕과 같은 것들이 나오면 또 다른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승준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말보다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끔 해보고 싶었다했지만 예지와 예지의 가족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또 말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말하지 않아도 안다던 한 초코과자의 CM송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간 이 표현을 얼마나 쉽게 사용하고 있었는가. 부끄러움이 한아름 밀려오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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