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연상호 감독을 믿기에
'연상호 감독 특별전 : 지옥의 시네마' <사이비>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5월 20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연상호 감독
진행: 조영각 프로듀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혜 님의 글입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블록버스터 급의 실사영화를 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된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부산행>이 칸 영화제에 초청되며 더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금껏 개성 있는 연출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왔던 연상호 감독의 전작들을 만날 수 있는 ‘연상호 감독 특별전 : 지옥의 시네마’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되었다. <사이비> 상영 후 인디토크에 연상호 감독과 <사이비> 조영각 프로듀서가 참석하여 칸에 다녀온 소감부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조영각 프로듀서(이하 조): 엊그제 칸에서 돌아오셨는데요, 칸 영화제랑 여기랑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웃음) 2011년에 <돼지의 왕>이라는 독립장편애니메이션 만들었을 때도 칸에 다녀오셨죠. 그 후로 단편인 지옥 시리즈와 <창>을 만들었고 오늘 보신 <사이비>는 2013년에 개봉했습니다. 그동안 만든 영화들을 모아서 연상호 감독을 다시 보자는 의미로 준비한 기획전입니다. <부산행>으로 칸 영화제 다녀온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연상호 감독(이하 연): <돼지의 왕> 때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웃음) <돼지의 왕> 상영할 때는 관객들이 영화를 많이 싫어했거든요. 고양이 죽이는 장면에서 욕하면서 나가는 분도 계셨고요. 이번에는 분위기가 즉각적이었어요. 심야상영이라 밤 12시에 시작해서 2시에 끝났어요. 심야상영의 경우 중간에 많이 나간다고 하는데,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다음날부터 외국인들이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절 많이 찾았는데, 영어를 못해서 소위 ‘멘붕’이 왔어요.(웃음)
조: <사이비> 질문을 해볼게요. 가끔 외국 관객들이 영어 자막 상영본을 보고 엔딩에서 ‘민철’이 중얼거리는 장면은 왜 번역을 안했느냐고 물어봐요.
연: 민철이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시나리오에서는 저주인지 기도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걸로 적었어요. 민철이 가진 믿음의 표본이 저주에 기반 되어 있는지 속죄에 기반 되어 있는지 아니면 기원에 기반 된 건지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조: 당시 녹음할 때 민철 역의 양익준 배우가 종교적인 언어와 욕을 섞어가면서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옆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은 빼자고 했죠.
연: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일부 남아있어서 사운드 편집 때 제거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남겨 놓은 말들이 있는데, 아주 자세히 들어보면 ‘주십시오’로 들려요.
조: 연상호 감독은 그동안 애니메이션을 계속 해왔는데, 매번 듣는 질문이 ‘왜 실사영화를 안 찍느냐’였어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도 감독도 불쾌했어요. 제임스 카메론한테 ‘왜 애니메이션을 안 만드냐’는 질문은 하지 않으면서 연상호 감독에겐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이번에 칸에서 <부산행>을 상영했을 때, 역시 실사를 잘할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감독님은 애니메이션 연출할 때와 실사 연출할 때 마음이나 준비과정에 있어 다른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연: 저는 크게 다르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워낙 <부산행>을 편하게 찍기도 했고. 스태프들이 대부분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들이셨거든요. 처음에는 촬영감독과 조감독한테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촬영감독님이 <사이비>와 <돼지의 왕>을 이미 봤는데 다시 여러 번 보면서 연출법 등을 많이 분석하고 고민했대요. 다들 ‘이 사람을 도와야한다’라는 마음을 가졌나 봐요.(웃음) 그 덕에 전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 보통 영화 촬영장에 감독이 처음 가게 되면 스태프들의 기에 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부산행> 촬영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을 때 모두들 연상호 감독의 팬이 되어있었다고 해요. 이유인즉슨 한 달 동안 찍어놓은 걸 다 붙여보니 한 시간이 채 안되었다는 거죠. 일반적인 상업영화 현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보통 영화를 처음 찍는 감독들이라면 이 각도에서도 찍어보고 다른 각도에서도 찍어보고 하다 보니 촬영분량이 많아지는데, 그것은 스태프들이 그만큼 일을 많이 하게 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연상호 감독은 완벽한 콘티를 만들어왔고 그대로 촬영하고 끝냈다는 거죠. 네다섯시면 현장이 끝났다고 하던데요?
연: 이준익 감독 이후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들 하시더라고요.(웃음) <부산행>은 현장 촬영본이 1시간 57분이 나왔어요. 정말 조금 찍은 거죠.
조: <지옥> 홍보문구가 ‘국내 최초 1인 제작시스템의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 애니메이션’이었어요. 로토스코핑 기법은 실제 인물들이 연기를 한 뒤 이를 바탕으로 윤곽선을 그리는 거거든요. <사이비>의 논밭에서 낫들고 싸우는 장면이 실제로는 스태프들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작업실 건물 복도 앞에서 찍은 거죠. 그걸 기반으로 해서 애니메이션으로 작업을 한 건데, 이 방식이 실사영화를 찍을 때 도움이 많이 되었나요?
연: 아뇨, 전혀 도움이 안 되었어요.(웃음) 애니메이터들이 상상한 대로 그리면 변수가 많다보니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디렉션을 주는 방법이 로토스코핑인데, 큰 스튜디오에서도 다 사용하는 기법이에요. <사이비>는 액션이 많지 않아 힘든 점은 없었지만, <서울역>은 진짜 힘들었어요. 좀비 역을 제가 직접 했거든요. 새벽에 혼자 사무실에 나와서 카메라 놓고 찍은 적이 있는데, 촬영하다가 넘어지기도 했어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하며 멍하니 앉아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조: 참고로 <서울역>은 <부산행> 촬영 전에 <사이비> 완성 이후 바로 작업한 연상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부산행>보다 앞선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관객: 작품을 보면서 빛과 그림자를 많이 사용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인물을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독일 표현주의 같은 느낌도 받았어요. 그걸 염두에 두고 작업한 건지 궁금해요. 그리고 비극적 결말 이후에 나오는 장면이 굉장히 동화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연: 저는 80~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애니메이션에 표현주의적 기법들이 많았어요. 미국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엔 예산이 많다보니 동작의 과정이나 연기를 많이 전달하는데, 일본은 예산의 한계로 동작을 많이 그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 기법을 고안해 낸 것 중 하나가 배경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어요. 인물 표정도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 있는데, 저도 그런 부분에 영향을 많이 받아 그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결말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향이 있다고도 봐요. 다들 그의 애니메이션은 밝은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문명의 쇠락을 동시에 담아내는 감독으로 유명하거든요. <사이비>에서 중요한 건 믿음인데, 종교적으로 신과 인간과의 관계성에 주목했어요.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 원작 소설인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에선 신이 봤을 때 인간의 믿음, 고통, 환희는 우리가 벌레를 보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관점이 있어요. <사이비>에서도 인물들은 엄청난 고통과 비극을 가졌지만, 봄이 오고 꽃이 피는 대자연의 모습이 인간의 존재를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엔딩을 그런 방향으로 만들었어요.
관객: 사회적으로 비판적이고 어두운 면을 보인 작품이 많은데, 앞으로도 비슷한 노선으로 가실건지 아니면 밝은 모습도 다룰 건지 궁금합니다.
연: <부산행>을 본 국내 기자 반응들을 들어보니 많이 약해진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웃음) 반면에 외신에서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많다고 하고요. <부산행>과 <서울역>이 단순히 시간적 차이로만 연결되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울역>은 사회적인 메시지가 아주 직설적으로 들어가고 <부산행>은 이 세계관 내 각각의 인물들의 감정을 많이 따라가는 영화에요.
조: 많이들 앞으로의 행보를 궁금해 해요. 지금까지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 세 편이 연상호의 ‘어둠의 시리즈’이지 않을까 하는데요.(웃음) 앞으로 실사를 할지 애니메이션을 할지 궁금하기도 한데, 규모에 맞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관객: 감독님이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믿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연: 저는 믿음에 기대지는 않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될 것이다, 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믿음이죠. 믿음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을 땐 믿음에 기반을 해서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거든요. 믿음이라는 것이 문장 같은 걸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기독교이긴 하지만,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지 고민해요. 요즘에는 제 아이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어떤 방식으로 알려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요. 제 아이가 공감능력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을 내 기준에서 느끼지 않고 남의 관점에서 느낄 수 있는 능력이요. 약자든 권력자든 어떠한 대상이든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능력을 가지면서 살아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종교적으로도 그 능력이 대단히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동성애 같은 것도 그 본질을 허용하느냐 안하느냐의 논쟁은 종교적으로 아무 의미 없고, 어떠한 입장이든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의 시각으로 공감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 요즘에 공감능력을 전혀 못 보여주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설득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웃음)
관객: <사이비> 캐스팅을 보면 꽤 핫한 스타들이 많아요. 특별한 캐스팅 노하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양익준 배우와 오정세 배우는 단편 때부터 같이 했던 분들이고, 류혜영 배우 등 다른 분들은 알음알음 알게 된 케이스에요. <서울역>에 나오는 류승룡 배우, 심은경 배우, 이준 배우도 운이 좋았어요. 심은경 배우는 특이하게도 트위터로 캐스팅하게 되었어요.(웃음)
조: 캐스팅의 경우 연상호 감독이 아는 배우들에 대해 아이디어를 많이 주고, 독립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제가 리스트업 해서 보여주는 편이에요. 주연배우들 빼고 다른 배역들은 분량이 적다보니 한 배우를 더블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남성 3명, 여성 3명, 젊은 아이 역 3명, 나이 든 사람 3명해서 총 12명 정도를 모았어요. 즉흥적으로 녹음하는 자리에서 추가적으로 더 녹음을 하기도 했어요.
관객: <부산행> 이후로 상업영화 감독으로의 행보도 걷게 될 것 같아요. 예전의 상황과 많이 달라지면서 지금의 위치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 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연: 그런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일을 안 하면 불안해하는 스타일이에요. <부산행> 작업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사이즈가 다양한 작품들을 쓰고 있어요. 크게 가야 하는 작품들은 주변 제작 투자자들과 얘기를 많이 해봐야 할 테고, 제 개인적인 작품들도 존재할 겁니다. 상황이 계속 달라지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예상했던 일이었어요. 옛날에 영화 처음 할 때 ‘전 세계적인 마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었는데요.(웃음) 이제는 큰 영화와 작은 영화 서로 왔다 갔다 하다보면 가능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조: 와중에 연상호 감독이 직접 운영하는 ‘스튜디오 다다쇼’가 있어요. 항상 스튜디오 걱정을 하고 있어요. 스튜디오를 유지하는 방향이 있는지요.
연: 아무래도 큰 영화를 하고 나니 별 관심이 없었던 투자자들도 요샌 귀기울여듣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 몇 가지 작품들을 제안하고 있는 상황인데,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다면 주변에 있는 좋은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이 산업 안으로 들어와서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해요. 그런 것들이 많이 쌓이면 재미있는 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에요.
조: 이 자리에 양익준 감독님이 깜짝 방문하셨는데, 연상호 감독과 인연이 깊은 만큼 한 말씀 해주세요.
양익준 감독: <똥파리>(2008) 준비할 때 투자를 받지를 못해 4개월간 술만 마셨어요. 그러다 작은 돈으로 근근이 촬영을 했는데, 연상호 감독이 와서 많이 도와줬어요. 예전에는 연상호 감독이 데뷔작을 못 만들어서 전전긍긍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제가 물어봐야할 상황이에요. 이 산업 내의 모든 걸 다 겪었잖아요.(웃음) SNS에서 댓글로 ‘작은 거장 연상호 파이팅’이라고 적었는데, 진짜 연상호 감독은 10년 안에 거장이 되지 않을까요? 확신해요.
조: 마무리로 앞으로의 근황을 말씀해주세요.
연: <부산행>이 7월 중순에 개봉할 듯하고, 후에 바로 <서울역>이 개봉할 것 같아요. 그리고 한주 차이로 저희 스튜디오에서 준비한 <카이 : 거울 호수의 전설>도 개봉할 듯합니다. <부산행> 후반 작업과 동시에 차기작을 정하고 쓰고 있는데, 6월에는 초고가 나올 것 같아요.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과 실사라는 영화적인 형식보다는 영화에 담고자 하는 내용에 집중하였고 자신이 갖고 있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보고, 믿고 있는 것들을 믿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를. 앞으로 자신의 길을 뚝심 있게 걸어 나갈 연상호 감독을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_기획] 영화 속 여성캐릭터 잡지 [세컨드 필름 매거진] 인터뷰 : 입체적인 여성캐릭터의 부재와 그 현상의 의미를 짚어보다 (0) | 2016.06.07 |
---|---|
[인디즈_Review] <눈이라도 내렸으면> : 에라이, 그냥 춤이나 춰뻐리자! (0) | 2016.05.31 |
[인디즈] 춤을 추며 살고 싶다 <눈이라도 내렸으면> 시사회 기록 (0) | 2016.05.23 |
[인디즈_Review] <사돈의 팔촌> : 모든 걸 잠시 잊고 다시 설레고 싶다 (0) | 2016.05.23 |
[인디즈_Choice] <아버지의 이메일> : 그래요, 당신 탓만은 아니지요 (0) | 2016.05.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