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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메일> 리뷰: 그래요, 당신 탓만은 아니지요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정하 님의 글입니다.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불리는 5월이 썩 달갑지 않은 것이 비단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서먹하고 어색한 것도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슈퍼맨, 외로움. 가장이나 아버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으레 짝꿍처럼 앞의 두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슈퍼맨으로 기억되지만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지금의 아버지는 축 쳐진 어깨를 한 외로운 뒷모습으로 떠오른다. 가장의 외로움은 은퇴 후에 더 깊어지는 경향이 있고, 은퇴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을 때엔 그를 거의 무너트리다시피 한다. 일을 하시던 때의 아버지가 속히 ‘잘나가셨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울함이 외로움의 옆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아버지의 이메일>은 시종 외롭고 우울했던 감독 본인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녀의 아버지는 북에서 태어나, 배움을 갈망하며 월남했다. 남한에 온 지 1년도 안 돼 큰 사업을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열심이었던 그는, 친부의 부인들에 의해 모았던 돈을 잃었다. 그러다 중매를 통해 지금의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약 2년 뒤, 그에게 ‘베트남 파병’이라는 매력적인 기회가 찾아온다. 억울하게 잃었던 돈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그는 좋은 직장까지 그만둬가며 베트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한국군의 예상보다 이른 철수로 약 2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아버지는 나락으로 빠져,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의욕을 잃은 채 술로 매일을 보냈다. 어떻게든 일어서보려고 시작한 일마저 사고로 계속할 수 없게 되고, 그런 그에게 ‘사우디 건설현장’이라는 매력적인 기회가 다시 한 번 찾아왔다. 그는 또 떠났고 그곳에서 호주로 이민을 가려했지만, 빨갱이로 찍힌 처남들과 연좌제라는 국가제도 때문에 그마저도 좌절된다.
6.25전쟁이나 베트남 파병, 호주 이민 실패 등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사건들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찬 국가적 차원의 것들이었다. 전쟁은 그를 가족과 헤어지게 했고, 베트남 파병에서 돌아온 이들의 처우에 정부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고, 외국으로 나가면 그길로 북한으로 갈까 여권도 자유로이 발급해주지 않았다. 영화가 그의 일생을 되짚어가며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맞닥뜨리게 될수록, 아버지 한 개인으로서의 문제가 자연스레 사회문제로 확대된다. 남들은 한 번만 겪어도 힘들 좌절을 여러 번 겪은 그를 더욱더 힘들게 한 점은 아마 그것들이 전부 본인의 과오가 아닌 외부에 의해 생겼다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억울한 피해자라지만, 그의 억울함이 곧 가정폭력이나 가정에의 무심함과 같은 잘못들의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고, 너무 멀리 왔기에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용서를 비는 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차마 직접 하지 못해, 그는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월남이야기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총 43통의 이메일로 보내졌고, 그 이야기는 사과와 함께 마무리 지어졌다. 아버지는 용서를 구했지만, 가족들은 끝내 그를 용서하지 못했다. 다만, 아버지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의 삶을 불쌍히 여겼다.
영화가 아버지의 임종 이후 찍혀진 만큼 그에 대한 가족들의 평가와 감정이 때론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다. 나의 아버지는 그와 다른 세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이 감독의 가족과 같은 문제를 겪고 내가 그들의 의견에 공감하는 게 자못 의아스러웠다. 하지만 이것이 곧 한 가정이나 개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는 반증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도 나의 아버지가, 한 가정의 가장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측은하게 여겨졌다. 영화는 경직된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랑말랑하게 해주거나 가족의 서먹함을 해결해주는 방법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끔 해준다. 이것이 곧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그들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순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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