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부는 바람> 한줄 관람평
김은혜 | 엄마 말 알아듣고 있으리라는 가장 소박한 소망
박정하 | 미지의 세계에서 불어온 따스한 바람 한 줄기
김민형 | 예지의 우주에는 바람이 분다
위정연 | 마음과 마음이 닿는, 그 따스하고 빛나던 순간들
김수영 | 소리 없이, 마음이 완성하는 소통
<달에 부는 바람> 리뷰: 예지의 우주에는 바람이 분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우주를 머리에 지니고 살아간다.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이기에 다른 이가 함부로 가늠할 수 없고, 자신 또한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우주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주며 소통한다. 여기 그 누구보다 광활한 우주를 지닌 소녀 ‘예지’가 있다. 관습화된 언어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녀의 우주를 보고 들을 수 없다. 일부분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러 방식으로 계속 말을 걸고 있다. 종종 거실에서 빙글빙글 돌며 희미한 미소를 짓곤 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승준 감독의 <달에 부는 바람>은 이 모습을 보여주며 예지의 우주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예지의 우주를 담는 것이 가능할까? 예지는 시청각 중복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무엇을 보고 들은 적이 없기에 그것을 표현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예지는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엄마와 선생님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 행동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매 순간마다 일정한 교감이 미흡하게나마 이뤄진다. 엄마 미영 씨는 예지를 안고 쓰다듬으며 궁금해 한다. 예지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을까? 어떤 우주를 머리에 이고 있을까? 감독은 언어로 매개되지 않은 교감을 보여준다. 동시에 미영 씨가 기르는 화초를 계속 비춘다. 미영 씨는 겨울이 오자 춥지 않게 화초를 집에 들이며 정성껏 배치한다. 때때로 화초를 다듬는 미영 씨를 길게 바라보게 한다. 언어로 매개되지 않은 또 다른 교감의 순간이다. 화초를 기르는 모습과 예지와 교감하는 모습을 교차하며 관객에게 생각할 지점을 던진다.
이런 교감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 순간은 효과적으로 연출된 사운드와 비주얼의 결합으로 이뤄진다.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연출을 극대화할수록 예지가 이 영화를 보고 들을 수 없다는 아이러니함 또한 부각된다. 영화 관람의 장벽을 낮추는 ‘배리어 프리’ 영화로 정교하게 재편집된다고 해도, 예지는 이 영화를 느낄 수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자기 삶을 담은 영화를 볼 수 없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영화인가. 예지를 바라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 너머로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생각해본다. 감독의 시선 자체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발화하지 못하는 이의 특별함을 쫓는 것이 영화에서 어떻게 정당화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달에 부는 바람’을 인터넷 검색창에 치면 ‘달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문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지의 우주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다. 얼굴에 바람이 스치면 희미하게 미소를 띠곤 한다. 그 우주의 달에선 바람이 분다. 엄마 미영 씨의 바람도 있다. 영화 마지막, 미영 씨가 예지에게 “너 다 알아듣지? 다 알아들으면서 모른 척하는 거지?”라고 말하며 “제발 그래라”하며 자신의 바람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 바람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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