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사이> 한줄 관람평
김은혜 | 문틈 사이로 시선 한 번 보내주기만 해주어도 좋으련만
박정하 | 어디에나 있어야 하지만 아무데도 없는 인권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김민형 | 무모한 상상 속에서 손을 내민다
위정연 | 너와 나, 우리들의 시선 사이
김수영 | 일상적 인권과 우리 사이의 이야기
<시선 사이> 리뷰: 너와 나, 우리들의 시선 사이
*관객기자단 [인디즈] 위정연 님의 글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제작한 13번째 작품 <시선 사이>는 ‘인권’을 주제로 총 3편의 에피소드를 엮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꽤나 무거운 내용일 것 같지만, 예상 외로 유쾌하고 기발한 설정들로 시종 즐겁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편의 단편영화는 각각 최익환 감독, 신연식 감독, 이광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인권에 대한 세 감독들의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이 다채로운 작품들을 서로 비교하며 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시선 사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담아내고 풀어냈을까. 그들이 바라본 시선 속 인물과 이야기는 우리와 얼마나 가깝게(혹은 멀게) 존재하고 있을까. 지금 그 이야기를 만나러 가보자.
영화의 첫 포문을 여는 에피소드는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감독 최익환)이다.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처럼 내용 역시 귀엽고 발랄하게 흘러간다. 여고생 지수(박지수 분)는 친구들과 학교 앞 ‘떡뽀끼’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는 느닷없이 성적 향상을 목표로 교문을 폐쇄하고 학생들의 성적을 집중관리하기 시작한다. 떡볶이에 대한 욕망을 도저히 견딜 수 없던 지수는 학교에 소심한 반항을 벌이게 된다. 영화는 지수의 시선으로 내내 위트 있게 펼쳐지지만, 학교가 잘못된 방향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서슴없이 ‘좀비’라고 부르고, 규칙에 의문을 품거나 질문을 하는 학생들의 말은 일절 듣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본인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도록 강요한다. 필자의 학생 시절, 모든 말과 행동이 ‘공부’로 귀결되던 그 때가 떠올랐다. 어른들이 하라는 걸 곧이곧대로 해야만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듣던 시절. 왜인지 그 당시엔 나 역시 질문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학교 담을 넘어 기어코 떡볶이 집을 향해 달려가는 지수의 뒷모습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과대망상자(들)>(감독 신연식)이다. 우민(김동완 분)은 길거리를 지날 때도, 일을 할 때도, 심지어 집 안에서조차도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간다. 그가 계속 되뇌는 혼잣말(‘분노 금지, 젖은 낙엽처럼’)은 우민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자기만의 법칙이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어느 날부터 수상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GAP(갑)’의 통제를 벗어나고자 모인 ‘WANGTA(왕따)’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우민은 그들로부터 사회기득권자들이 그동안 사람들을 제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들은 과연 과대망상자(들)인걸까? 혹은 정말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조직인 것일까? 조직의 황당하고 엉뚱한 말을 듣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들이 주변 모든 일을 의심하고 확대해석하는 모습은 다소 과장되어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사회기득권층의 통제는 정말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일까?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너무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신연식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세상을 의심해보는 사람들이 되레 과대망상자 취급을 당하는 것을 비틀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든 발전은 한 사람의 작은 의심에서부터 시작된다. 현실에 안주하기만 하는 사람들만 있는 한 이 사회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그런 지점을 풍자로 꼬집어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을 장식한 에피소드는 <소주와 아이스크림>(감독 이광국)이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세아(박주희 분)는 누군가에게 보험 하나 팔기가 영 쉽지 않다. 마음은 심란한데 자꾸만 전화로 돈을 재촉하는 엄마 때문에 짜증만 겹겹이 쌓인다. 세아는 열리지 않는 언니네 집 앞에서 서성이다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참에 보험을 팔아보려는 마음으로 아주머니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런데 현실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아주머니의 현실을 엿보게 되고, 그 사실은 세아의 마음이 변화하는 계기가 된다. 사실 세아와 아주머니는 정 반대의 입장을 지닌다. 세아는 부모의 연락을 피하는 입장인 반면 아주머니는 가족의 연락이 절실히 필요한 입장이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기에 누가 더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따질 수는 없다. 모두 다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정작 소중한 것은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내 살길만을 좇느라 가까운 가족은 등한시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아주머니의 죽기 전 모습은 세아에게 그런 점을 일깨워준다. 아주머니는 가족이 있음에도 고독사 했다. 일주일 간 아무도 아주머니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사소한 관심, 전화 한 통만 있었더라도 그런 안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세아가 울먹이며 언니에게 건넸던 마지막 대사는 어쩌면 지금 관심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나 한번만 안아주면 안 돼?”
세 주인공들에게는 각각의 벽이 존재한다.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의 지수에겐 학교 교문이 그렇고, <과대망상자(들)>의 민우에겐 소통의 문제, 그리고 <소주와 아이스크림>의 세아에겐 언니네 대문이 그렇다. 벽을 허물기 위해선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회의 따뜻한 시선 또한 필요하다. <시선 사이>는 시선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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