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연대의 기록 <소녀와 여자>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6월 16일(목)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김효정 감독
진행: 신지혜 아나운서 (CBS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음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여성 할례에 대한 이야기라 했을 때 여러 충격적인 이미지를 예상했다. 몸이 움츠러들면서 그 공포를 마주하기 꺼려졌다. 영화를 보기 전 윤리적 재현에 관해 비판적으로 보겠다며 다짐했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했던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공포를 마주하는 대신 희망을 보고 연대의 감정을 뭉클하게 느낀다. 신지혜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지난 16일, 김효정 감독과 <소녀와 여자>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신지혜 아나운서(이하 진행): 아프리카에 있는 여성들의 삶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는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효정 감독(이하 감독):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 사막 여행을 주로 다니면서 그곳에서 자아를 찾았고, 내 자아를 찾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쯤 2010년에 개봉한 <데저트 플라워>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처음 여성 할례를 공개하는 모델의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나만을 위했다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내가 잘하는 일로 이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진행: 자아를 찾아가는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 주변을 돌아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에서 할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여자가 되고, 어른이 된다.’ 논리적인 근거를 가진 말이 아니라 주관적 감정 혹은 문화와 관습에 따라 익혀진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취재하고 촬영하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처음에는 취재 보다는 여행으로 갔었다. 제대로 된 자료를 알지 못했다. 그 후에 자료를 찾다보니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가게 된 거다. 나름 조사를 하고 갔는데, 차이가 있었다. 아프리카 북동부에 있는 케냐, 우간다, 에티오피아를 취재했다. 모두 여성 할례를 하는, 같은 지역이라 생각해서 갔는데 정작 가보니까 달랐다. 케냐와 에티오피아는 80~90%의 여성이 할례를 경험했지만, 우간다는 그 비율이 0.6%에 불과했다. 사실 부족 간 차이였다. 하는 부족과 안 하는 부족, 부족 안에서도 반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다양한 면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할례를 했다고 해서 그 분을 나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흔히 아프리카 하면 가난하고 기아에 시달리며 위생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미디어에서 그런 모습을 접하지 못했을 뿐이다. 진짜 아프리카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진행: 육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으면서까지 ‘내 딸은 할례를 시키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인터뷰를 보면서 용기를 떠올리게 됐다. 어떤 분은 친척들에게 얘기해서 그 아이들만큼은 할례를 시키지 않도록 한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전통이나 문화로 할례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건드릴 수 없는 터부가 된다. 이걸 깨려는 사람들, 특히 할례 반대 캠프에선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할례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용기를 전염시킨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 어른들이 먼저 용기를 내고나니 아이들도 용기 내서 할례 반대 캠프까지 온 거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야기를 용기 내어 하고 꿈을 펼치기 위해서 말이다.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이라 안타까운 감정도 들지만, 이후에 그녀의 삶은 찬란하기를 바란다.
진행: 할례 반대 캠프가 용기를 전염시키는 일을 하는 게 아닐까. 그 뜻에 동참하는 게 연대라는 감정인 것 같다. 감독의 마음과 시선이 영화 안에 녹아들면서 연대의 감정으로 뭉클하게 다가왔다. 이 감정을 조율하는데 음악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음악 작업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감독: 훌륭한 음악 감독님과 함께 작업했다. 처음엔 흔히들 생각하는 아프리카 음악을 해주셨고 아이들이 도망치는 장면에는 슬픈 음악을 깔아주셨다. 그런데 난 아이들을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슬프고 아픈 이야기이지만, 슬픔을 더 강조해서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음악으로 불쌍하다는 감정을 강요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음악 감독님에게 오히려 더 밝은 음악을 부탁했고 감독님께서 잘 표현해주셨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장면이 떠올라서 괜스레 기분이 좋다.
관객: 예전에 할례 관련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봤던 다큐보다 덜 충격적이다. 이런 악습을 깨우칠 충격을 주기 위해 사실적인 장면이 필요하지 않았나. (성기 절제 장면을 왜 넣지 않았나) 실제 장면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오디오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았나 싶다.
감독: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고, 친구들 모두 성기절제 장면을 찍지 않겠다고 의견을 맞춘 뒤에야 촬영을 시작했다. 일단 FGM(여성성기절제)을 유튜브나 구글에 검색하면 적나라한 영상과 사진이 넘쳐난다. 이미 해외 영화에선 숱하게 다뤄온 장면이다. 이런 영화는 충격적인 장면을 노출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한 연출 방식이 벌써 10년 전에 나왔고, 더는 식상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생생한 이야기를 증언해주는데, 그 증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절제하는 장면을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촬영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 장면 찍어도 돼?”하고 물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기 절제를 하는 적나라한 자료화면을 봤을 때 나는 꼬박 하루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청할 정도로 힘들었다. 화면일 뿐인데도 그랬다. 그런 공포를 전시하고 싶지 않았고 이 영화를 보러 오신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관객: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떠한 교훈으로 잘 다가오지 않는다. 난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운동 같은 게 혹시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최근 어느 기자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요즘에 공감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나(기자 본인)는 공감이란 말에 공감할 수 없다, 공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게 물어왔고 이런 대답을 드렸다. 2010년에 영화 <데저트 플라워>를 보고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떠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화밖에 없었고 내가 느꼈던 공감을 알려보자 해서 영화를 시작했다. 비로소 6년이 지난 후에야 <소녀와 여자>를 개봉하는 이 자리에 있게 됐다. 저 감독은 6년 만에 뭘 했네 대단해,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공감을 표현해주면 된다. 많은 분들이 웹에서 공감을 해주신다. 그 중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움직이는 분들이 생길 것이다. 여기 와 계신 분들 중에도 이 분야의 활동가를 꿈꿀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단 몇 명이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에서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나 싶다.
진행: 시간은 힘이 있다. 사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공감과 생각이 모여 세계관과 가치관을 탄탄하게 할 것이다. 꼭 이런 방향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러한 연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힘이 있다. 영화를 통해 스스로 내면을 성찰할 수 있고 외연을 넓혀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감독: 영화 제목이 <소녀와 여자>다. 여성성기절제를 하지 않아도 소녀에서 여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여성성기절제를 했다고 해서 여자가 아닌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여성성기절제에 집중했지만, 세상에는 소수자들이 많다.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등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단지 소수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로 봐주면 어떨까? 그래서 영문 제목이자 부제가 ‘Where am I?’이다. 소녀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 아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온전한 사람 그 자체로 본다면 차별에 대해 토론할 이유도 없다. 서로를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변해갈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꼭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세계관과 가치관을 탄탄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누구든 온전한 사람 그 자체로 본다면 차별에 대해 논쟁할 이유도 없다는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적어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성찰하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외연을 넓혀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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