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프랑수아 트뤼포에 의하면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영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영화에 대한 사랑을 궁극적으로 실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평론가 정성일, 김소영(김정) 등이 트뤼포가 말한 세 번째 방법을 실천하면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사람들에게 증명해보였다.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2009)는 그 사랑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상업적 목적을 떠나 감독의 세계관이 온전히 담긴 이 영화는 여느 독립영화들과 확연히 다르다. 비평가이면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들의 영화는 과연 어떻게 다를까? 또 같은 독립영화의 범주에서 생각할 때, 이들의 영화는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필자는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를 중심으로 그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고 싶다.
<카페 느와르>는 일반 관객들에게 굉장히 낯선 방식으로 진행된다. 소설을 읽는 듯한 인물들의 대사는 구어체 대사에 익숙한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유난히 호흡이 긴 쇼트들은 빠른 리듬으로 진행되는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을 힘들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중간에 느닷없이 영화 제목과 크레딧이 다시 등장하면서 2부가 시작되고, 컬러화면과 흑백화면이 불규칙적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또 의도적으로 180도 상상선을 어기기도 하고, 사실적인 극의 흐름에서 벗어난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열거한 요소들은 영화의 전형적인 관습에서 탈피한 새로운 실험이자 시도이면서, 동시에 정성일 감독이 영화에 대해서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정성일 감독이 21세기 영화의 새로운 화법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탐구하면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있는 데 반해,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은 오히려 관습적인 영화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 즉, 여러 독립영화들에서 보기 어려운 것은 영화의 화법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다. 하지만 독립영화의 이러한 경향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매년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제작되고, 그 중에서 ‘선택된’ 작품들만이 영화제에서 상영된다. 그리고 주요 부문에서 수상을 한 극소수의 작품들만이 영화관에서 상영될 기회를 가진다. 아쉽게도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는 영화보다는 대중에게 익숙한 화법으로 전개되는 영화들이다. 영화관에 온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독립영화는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관객이 감상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재능 있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선택하는 것은 영화의 새로운 화법이나 실험보다는 이미 익숙한 화법이나 장르의 컨벤션이다.
비평가 정성일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쇼트 단위로 낱낱이 파헤친다. 그는 영화의 가장 작은 단위인 ‘쇼트’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카페 느와르>에서는 정성일 감독의 어떤 결단이 담겨있는 쇼트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 영수가 다른 인물에게 손을 내미는 동작에서 영수의 손을 갑자기 클로즈업으로 보여줄 때, 또 청계천을 따라 동대문에서 종로3가에 이르는 거리를 단 하나의 쇼트로 보여줄 때,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을 굳이 두 부분으로 쪼개지 않고 투샷으로 한 번에 찍을 때 그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영화라는 세상을 창조하는 영화감독의 결단이다. 이처럼 <카페 느와르>의 모든 쇼트들은 각자의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영화 속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정성일 감독이 서울이라는 공간을 주로 광각렌즈를 통해 널찍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영화를 구성하는 쇼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독립영화 감독들은 쇼트의 구성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때 정성일 감독은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묻는다. “이 쇼트는 왜 그렇게 찍었습니까?”, “이 쇼트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생각이나 태도는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쇼트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그 어떤 것을 취사선택하여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 바로 쇼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세심하게 보는 관객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개별적인 쇼트이다.
수많은 독립영화들은 필연적으로 배급과 상영이라는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카페 느와르> 역시 이 문제를 피할 수 없었고,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일 년에 한번 찾아오는 각종 영화제를 제외하면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만큼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은 일반적으로 독립영화를 외면한다. 기존의 독립영화들이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영화평론가들의 영화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비평만큼이나 흥미로운 영화평론가 김소영(김정)의 장편영화 데뷔작 <경>(2009),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는 안타깝게도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는 못했다. 아무리 비평이 훌륭하더라도, 또 영화를 만듦으로써 영화에 대한 사랑을 궁극적으로 실현하더라도 관객과의 성공적인 만남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인가? 이미 휘청거리는 배에 올라탄 ‘몰락한’ 비평과 ‘저예산’ 독립영화는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할까? 만약 비평과 독립영화가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가까워진다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독립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열정 가득한 글이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관심도 증가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독립영화 감독들은 비평가들의 날선 비평을 통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자신의 영화를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다. 이와 반대의 위치에서, 비평은 새로운 독립영화들의 등장으로 인해 자극을 받고 더 긴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촉각이 곤두 선 비평가들이 쓴 새로운 감각의 글은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비평의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독립영화와 비평의 진지한 만남은 한국영화계에 활기를 더할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카페 느와르>가 다양한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또 <경>이 여러 가지 담론 속에서 이야기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새로운 활로가 필요하다. 언젠가 독립영화와 비평이 상생하는 미래를 꿈꾸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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