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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한국의 교실에서 자란 청소년이었다면, 누구나 공감할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인디토크(GV)

by indiespace_은 2015. 5. 19.

한국의 교실에서 자란 청소년이었다면, 누구나 공감할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5월 14일(목) 오후 8

참석: 서동일 감독, 최혜원 선생님

진행: 인디플러그 고영재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도경 님의 글입니다.


2008년에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중학교를 거치면서 많은 시험을 봐온 터라 일제고사 논란에도 둔감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대학생이 되어서 이 영화를 보니 한국의 교육 현실에 마취되어 그 아픔을 제대로 통감하지 못했음에 부끄러워졌다. 내 몇 년 아래의 후배들이 선생님과 수업하고 싶다고 우는 장면에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7년 만에 개봉한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의 인디토크에서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고영재 대표(이하 고): 오늘이 개봉 첫날인데 감독님 기분 어떠세요?


서동일 감독(이하 서): 오늘 낮에는 극장에도 못 왔어요. 별로 관객이 없을 것 같아서요. 개봉하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좋네요.


고: 최혜원 선생님은 영화 보시면서 어떠셨나요?


최혜원 선생님(이하 최): 저도 해직 당했었기 때문에 다른 해직 교사 선생님들의 싸움의 과정을 제대로 다 보지는 못했었어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본 거거든요.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 부분 때문에 울었어요.


고: 저는 처음 <우리 학교>(2006)라는 영화를 제작했었는데 볼 때마다 울었어요. 제작하면 이 정도로 우는 영화는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공교롭게도 <워낭소리>(2008)를 제작하고도 꽤 울었죠. 지난 12월에 <명령불복종 교사>를 보고 인생에서 본 영화 중에 역대 최강이다, 화장지가 가방 속에 없었으면 얼마나 창피했을까 하면서 봤는데요. 작년 4월 16일을 겪으면서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던 것 때문에 이 영화가 더욱 슬펐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건지 여쭤보고 싶어요.


서: 2008년도에 제가 육아를 담당하고 있었어요. 제 와이프는 만화를 신문에 연재하느라고 애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뉴스를 보게 됐는데 일곱 분의 선생님이 해직된다는 거였어요. 89년도 전교조 결성 당시 대량 해직 사태 이후 한꺼번에 해직되는 뉴스를 본 적이 없어서 관심이 갔죠. 더 관심이 갔던 것은 해직 사유였어요. 금품 수수도 아니고 아이를 때린 것도 아니고 시험 보는 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 파면됐다는 걸 보고 너무 어이가 없었고, 그때 불현듯 제 아이의 미래, 제 아이가 다닐 학교에 대한 불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해직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계셨거든요. 복직 과정을 함께 기록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때부터 한 3년간 촬영이 진행됐는데 사실 졸업식까지의 상황이 좀 치열했고 그 이후는 홍보, 소송 이런 과정이었기 때문에 뒷부분은 많이 뺐어요. 이것도 이명박 정부가 부활시킨 건데 이명박 정부가 또 하나 한 게 있죠, 사대강 사업. 제가 살고 있는 양평 두물머리가 사대강 사업지구에 포함이 됐어요. 두물머리는 친환경 유기농 단지거든요, 그런데 자전거 길을 조성한다고 해서 지역의 농민들이 농지를 지키는 싸움을 3년 4개월을 하게 됐어요. 제가 그 과정을 기록하게 됐고 4년 이상 그 작업에 매달리느라 이 작업을 못하고 있었어요. 이 작업을 끝내야 다음 작업을 홀가분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년에 마음을 다잡고 6개월 정도 달라붙어서 편집을 했죠. 그리고 지난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을 했고 고영재 대표님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셨죠. 이 작품에 심사위원 상을 주셨고 직접 배급까지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제 10년 다큐멘터리 제작 인생에서 첫 개봉작을 만들어주셨어요. 



고: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질문은 같은 문제를 놓고 본인이 생각했을 때 큰 일이 아닌 것 같지만 큰 일이 되어버린 일을 하셨단 말이죠. 보통 모두 다 나서진 않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행동하실 수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최: 사실 그 일이 있기 전부터 명령에 불복종했던 것 같아요. 교대 졸업하고 처음으로 교사가 돼서 교단에 올랐는데, 교직 사회라는 게 너무 끔찍했어요. 2년 8개월 만에 해직을 당했고 그 동안 두 분의 교장선생님을 만났어요. 영화에서 나와요. 나는 교장선생님이 다 짐승인 줄 알았다고.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을 많이 겪었어요. 발령 난 지 얼마 안돼서 열정이 가득한 교사를 어떻게 하면 잘 다뤄서 말 잘 듣게 만들지만 집중을 했던 거죠. 그래서 이미 굉장히 여러 번 교장선생님과 부딪쳐왔었어요. 일제고사의 경우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일제고사 문제를 갖고 재미있게 수업을 했어요. 글도 쓰고 토론도 하고 신문 스크랩도 하고요. 자연스럽게 나온 답이 ‘체험학습을 간다’라는 거였던 거죠. 사실 저는 그것도 굉장히 타협했다고 생각했어요. 


고: 교직 사회든 그 밖에서든, 특별하다거나 약간 삐딱하게 보지 않던가요?


최: 해직기간 동안 너무 많은 투쟁을 했어요. 두물머리 가서 춤추고 놀고 두리반 철거싸움도 갔었고 강정마을도 내려갔었어요. 그때를 기점으로 반골로 돌아선 거죠. 왜냐면 내가 당장 쫓겨나보니까 이게 너무 얼마나 서러운지 알겠는 거에요. 모든 투쟁 현장을 다 갈순 없었지만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갔었어요. 훈장도 하나 달았는데 못할 게 없다, 라는 느낌이었어요. 저에게 있어서 이 싸움은 하나의 경험이자 자부심이 됐어요. 


김: 감독님 자녀는 이 영화를 보고 뭐라고 하나요?


서: 지루한데 감동적이래요. 아무래도 애들 이슈는 아니니까. 그래도 싸우고 이기고 하니까 감동은 받나 봐요.


김: 저희 <명령불복종 교사> 전국 9개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데요, 극장이 없고 친구들과 공동 상영하고 싶으신 분들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감독님의 차기작과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논의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게 홍보해주심 좋겠습니다.



7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의 교실의 모습이 세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교실 안에서는 자유롭게 교육하는 교사와 교육받는 학생의 모습,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을 위해 일상 속에서도 투쟁하고 있는 모든 교사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수 있는 인디토크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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