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의 시간에서 벗어나 영화적 감각으로 짜여진 세계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꿈의 제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1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조현훈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꿈의 제인>의 시간은 불친절하게 흘러간다사라져버린 사람이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극 중 인물들의 관계가 뒤엉키기도 한다하지만 시간의 선형적 질서에서 벗어나 시청각적으로 표현된 영화적 언어를 받아들인다면 치밀하게 짜여진 <꿈의 제인>의 세계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많은 궁금증과 단서들이 오갔던 지난 밤의 기록이 나름의 이해와 해석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진행): 감독님과 GV 시작 전에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요기분이 센티멘탈해지셨대요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요.

 

조현훈 감독 (이하 감독): 아마 오늘이 마지막 <꿈의 제인> GV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진행: 저는 마지막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요인디스페이스에서 조만간 또 기회가 있을 거라 믿어요사실 지금쯤이면 감독님이 <꿈의 제인>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근데 말씀을 들으니 아직까지는 감정적으로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했나봐요.

 

감독사실 전까지는 감사한 마음이 구체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감사한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시기고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저번 주부터는 무엇이 감사한지에 대한 일기도 쓰고 있고요.

 

진행: 어떤 점이 감사한지 조금 공개를 해줄 수 있나요?

 

감독: 요즘 독립영화가 참 관객이 없어요우리 영화는 운 좋게도 많은 분들께서 봐주셨지만요관객 분들이 개봉 시기에 챙겨봐주셨다는 점과 지금까지도 꾸준히 지지를 보내주신다는 점이 정말 감사해요최근에는 또 스태프 분들이 생각나더라고요촬영감독님과 PD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떠올랐어요분위기가 약간 눈물의 GV로 흘러가는 것 같네요.

 


진행: 오늘 오신 관객 분들께 이따가 말씀을 또 드리겠지만어떤 마음으로 오셨는지가 궁금해요영화를 한 번 더 극장에서 보자는 취지도 있을 것 같고아직 감독님께 궁금한 점들도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요. 개봉 이후에 우연히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저는 이번 GV를 준비하면서 <꿈의 제인>을 또 봤는데정말 고심을 많이 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영화가 주는 매혹이라던가 압박감에 눌려있었는데그 감정에서 벗어나니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를 보게 됐어요. <꿈의 제인>은 굉장히 많은 사건들로 짜여진 복잡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복잡한 구조 안에서 컷 하나까지도 촘촘하게 설계된 영화예요감독님이 어떤 태도로 이 영화를 대했는지가 궁금해요.

 

감독: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과거를 추측하게 돼요작업을 하는 방식과 연결시켜 보자면 저는 스스로 먼저 꺼낼 수 없는 이야기나 믿지 않는 주제들로는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꿈의 제인>을 만들 때는 ‘아이들에게 스스로가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이 제 마음속에 남아있었어요그 점이 가장 중요했고요지금도 여전히 작업을 하기 위해서 고민할 때는 적어도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작업에 담으려고 해요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거예요때문에 다음 작업이 좀 오래 걸리겠구나 생각도 들고요.

 

진행: 감독님은 어미 하나까지 언어를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지고 어투가 주는 뉘앙스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그래서 '소현'의 내레이션이 풍부한 울림을 가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요좀 느닷없는 질문이긴 한데감독님은 일기를 어떤 투로 쓰는지가 궁금해졌어요본인만의 글은 어떤 형식으로 쓰나요?

 

감독일단 반말로 쓰고요, 반성문처럼 써요주로 뭘 잘못하고 있고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사실은 거의 맨날 같은 말만 써요누가 만약 제 일기를 주워서 읽는다면 '이 사람은 왜 매일 똑같은 말만 하지?' 생각 할 정도로요똑같은 일상을 보내기 때문에 특별한 내용을 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진행: 영화를 본 분들 각자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이 다 다르더라고요보편적으로 처음에는 '제인'을 위주로 많이 보는 것 같고반복 관람하는 분들은 주변 아이들을 하나씩 보는 것 같아요저는 개인적으로 소현에게 이입을 많이 했고 감독님 또한 소현에게 가장 마음을 주면서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실제로는 어땠나요?

 

감독: '병욱'에게 시선이 가기도 하고 또 '대포'에게 마음이 가기도 해요캐릭터 하나 하나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극중에서 주장 혹은 토론할 수 있도록 신경 썼는데소현이 기본적으로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아이였지만 병욱이나 대포 같은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그런 면이 있어요반면에 유독 제가 감정을 주지 않았던 인물은 '정호'였어요정호만 멀찍이 떨어져서 봤던 것 같아요정호한테까지 이입을 해서 왜곡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그래서인지 영화는 정호 이야기를 유독 아껴서 보여주고 있어요불필요한 이야기들은 최대한 덜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정호의 컷들도 궁금합니다.

 

감독: 소현과 제인의 입장에서 정호에 대한 낭만적인 기억들 혹은 향수 같은 것들이 시나리오 상에는 담겨있었어요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들어내야 된다고 판단했던 거죠왜나면 제가 정호 얘기를 하는 것이 창작자의 나르시즘 같다고 느꼈어요아름답게 포장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부정적인 쪽이라고 판단했거든요정호라는 인물을 냉정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또 대변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진행감독님이 어떤 면에서는 결벽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태도를 중시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정말 빈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요그래서 이 영화가 어떤 분들에게는 굉장히 무섭고 차갑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하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행복이나 희망에 대한 견해그리고 세상의 절망을 바라보는 시선이 저에게는 한없이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어요지금도 여전히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혹은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감독영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어요순전히 제 생각인데사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이 영화를 봤을 거라 믿거든요비슷한 사람들끼리 생각을 공유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어요그렇다고 해서 제 생활이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런 조금의 차이들이 제가 앞으로 만들 영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했고요


진행: 감독님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관객이 비단 저만은 아닌 것 같아요물론 이른 애기일 수도 있겠지만 감독님이 방금 차기작에 대한 단서를 던졌잖아요염치 불구하고 여쭤보겠습니다차기작 계획이 있나요?

 

감독: 일단 장편 시나리오는 계속 쓰고 있는 상태고요,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중요하게 잡아둔 부분은 있어요이 또한 가족의 관계 같은 것인데장편과 함께 그 내용과 연계된 단편을 촬영할 것 같아요. 각각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이런 방식을 프리퀄이나 스핀오프라 하나요아무튼 단편은 전사(前史)를 드러내는 정도로 작업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진행: 이렇게까지 주인공의 안 좋고 감추고 싶은 부분을 막 드러내는 작가는 드물거든요소현의 비겁하고 치사한 부분주인공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도 인물과 거리를 유지해버리는 카메라의 태도가 인상 깊어요그래서 저는 감독님이 소현에게 가장 이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거고요새로운 주인공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는 어떨까 궁금해졌어요지금 쓰고 있신 주인공에게는 조금 덜 가혹한가요?

 

감독: <꿈의 제인>을 쓰던 당시에 저의 세계관이라 해야 할까요? 그땐 결국 희망이나 긍정적인 상황은 없다는 전제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지금 쓰는 시나리오도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가 될 것 같은데말씀하신 것처럼 <꿈의 제인>보다는 따뜻한 면들이 있겠죠

 

진행: 편집하며 컷을 붙이거나 넘어갈 때 가장 고심했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감독: 현장에서 촬영한 분량은 다 사용했어요여력이 안되고 시간도 부족해서 촬영 단계에서 편집을 하면서 찍어가야 했거든요. 찍은 건 다 썼지만, 찍을 때 없앤 부분이 있어요. 때마다 고심했던 부분은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 했던 고민들과 굉장히 유사했어요. '소현에게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시하는가?'라는 부분이에요. 가령 삭제된 장면 중 하나인데제인이 아이들 사이에서 소현이를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 얘기하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있었어요그런 장면이 저에게는 좀 불편했던 것 같아요환상 혹은 판타지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인데굳이 이 장면들까지 넣어서 이 아이의 낙차를 크게 하려는 연출자의 의도가 무엇인가,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삭제했던 것 같아요.

 

진행: 저에게 <꿈의 제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잔상이 또렷해지는 영화예요심리적이고 시각적인 모티브를 통해서 마음속에 깊게 들어가는 체험을 선사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거실에서 제인이 소현에게 휘파람을 불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그 장면의 공간이나 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처음에 제인이 휘파람을 불러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 공간에는 그 둘만 존재하는 것 같잖아요하지만 카메라가 뒤로 빠지고 프레임이 점차 커지니까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있어요저는 그 순간 아이들이 유령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어요미동조차 하지 않고 어떤 의식처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는데소현의 깊은 고독이나 감정들이 한 순간 너무나 크게 다가왔어요작년 6월 GV에서 이 장면에 대해 감독님은 소현이 마치 숲에 둘러싸여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했어요다음 장면은 제인이 투신해서 떨어져 있는 장면이죠. 그 다음은 다시 어두워진 가운데 미러볼이 돌아가고 침대에 누워있는 제인을 소현이 지켜보고 그 후경에 아이들이 미동 없이 앉아있는 장면이에요이 장면에 대한 감독님의 의도도 들어보고 싶어요.

 

감독: 일단 언급하신 장면들은 같은 방식으로 연출하진 않았어요휘파람을 부는 장면은 리허설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갔는데그 때 당시의 분위기가 우리가 보는 장면과 흡사했어요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소리를 듣고 있는가에 집중했고 그 감정들이 담겨야 된다는 것이 최우선이었어요유령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결국엔 초현실적으로 보여야 했고 그 공간이 이질적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아요그런 장면들이 영화 내에서 힌트나 열쇠가 돼야 하잖아요마치 숲 속에서 한 사람이 동물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듯한 이미지에서 시작을 했어요제인의 시신을 보고 있는 소현과 아이들 장면에서 명백하게 의도를 뒀던 지점은 죄책감이나 죄의식이었어요그 장면에서 '지수'는 드러나지 않거든요. '왜 지수를 숨기고 있는가? 제인의 죽음이 결국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나름의 원칙을 갖고 촬영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고요.

 

진행: 대포가 지수인 척 하고 나온 소현과 터널에서 대면할 때검정 비닐봉지를 씌우기 직전에 카메라가 한 번 터널 밖으로 빠졌다가 다시 들어가는 순간이 있어요터널 속의 대사처리는 사운드로만 들리고요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중간에 넣은 의도는 뭘까요?

 

감독: 어떤 의도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저 역시도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이 부분에서 감정적으로 동요가 많이 됐거든요소현의 말이 대포에게 전달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대포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애당초 소현의 말을 거의 듣고 있지 않았던 거죠사람들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대포는 조금 다른 아이인 것 같아요대포를 연기한 박강섭 배우가 제 학교 후배인데, 박강섭 배우는 정말 단순한 친구고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에요본인도 스스로가 의리 있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친구인데그런 면들이 저는 단순하다고 느꼈고 배우의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 반영됐어요. 대포의 행동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섬세하진 못 한거죠그 장면은 대포의 사고방식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해요.

 






관객: 영화 속 각각의 캐릭터들이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모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어요캐릭터에 대한 감독님의 감상을 들어보고 싶어요.

 

감독: 이제 겨우 한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고, 영화 작업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제 나름대로 인물에게 양면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어요. 창작론은 아니고 제가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중 하나인 것 같아요실제로 더욱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요인간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방식이 내 세계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고민을 해요일부러 원칙들을 신경 쓰면서 이야기를 구상하진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자연스레 담긴 것 같아요.

 

진행: 아무래도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의 등장인물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캐릭터의 풍부성이 곧 감독님의 태도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요? 함부로 단정짓지 않는 조심스러운 태도와 거리를 두려는 자세가 보여서 좋았어요. 

 


관객영화를 보는 내내 꿈을 꾸는 것처럼 기억들이 조각나 있다고 느꼈어요그렇게 느낀 이유 중 하나가 뒤죽박죽인 순서 때문인데이야기가 순서대로 정렬된 건지 궁금해요소현의 내레이션이 반복되는데, 영화 전후의 이야기를 분리해서 봐야 하는지아니면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서로 연관시켜서 봐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또 딸기케이크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케이크가 가진 상징적인 의미도 궁금합니다.

 

감독: 첫 번째 질문이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에요항상 하는 대답은 있는데요즘 생각과 연결시켜 답하자면, 제가 단편영화를 찍는 꿈을 계속 꿔요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고통스러워 하면서 준비도 안 되어있는데 뛰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꿈에 나와요걱정하는 것들 혹은 희망하는 것들이 꿈에 반영된다고 생각해요긍정적인 관점에서 소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또 이 친구가 가장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영화적으로 표현해야 했어요. 소현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무엇을 이루지 못했는지어떤 것을 가장 후회하는지에 집중할 수 있게끔 순서를 구상한 것 같아요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엉키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반복되는 편집, 내레이션, 공간들은 나름대로 이야기를 풀어갈 열쇠나 힌트를 드리고 싶었던 것이고 케이크 또한 같은 의미를 가진 소품이죠많이 못 보시는 장면인데, 처음에 소현이 편지를 쓰는 모텔 방에서 천천히 카메라가 들어갈 때 먹다 남은 케이크가 보여요이 장면은 사실상 이후에 나오는 소현이 딸기 하나를 케이크에서 떼 먹는 장면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어요실제 시간이라기보다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원칙이나 방식을 제시한 것이고그런 것들을 단서로 삼아 본인 방식으로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영화를 통해서 권유한 거였어요.

 

진행: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정말 기대하고 있었어요개봉 당시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 방식으로 하거나 안 하려고 피했거든요저는 이 영화에 나름의 엄청난 원칙들이 있다고 생각해요굉장히 첨예하게 만들어 놓은 연결고리들이 있어요크게는 음악빛의 활용이 있죠소품 하나 대사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계산돼 있어요때문에 저는 영화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는 순간이 많았어요.

 


관객: 제인이 미러볼이나 공 같이 둥그스름한 것에 집착해요그 소품들에 담긴 의도가 궁금합니다.

 

감독미러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이 말을 하는 게 민망한데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밝아진다는 주제의식을 반영하는 소품이에요소품의 특징을 제인과 연결시킴으로써 제인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고요미러볼과 공처럼 둥그스름한 것이 제인 그 자체다, 라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진행: 구교환 배우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일 년 전쯤에 이런 답변을 했어요그 때 굉장히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동그라면 좋지 않냐고 하면서 동그랗기 때문에 모서리도모난 부분도 없이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제인과 닮았다고 이야기했어요.

 






관객: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제인의 매력에 빠졌는데그 다음에 볼 때는 모든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어요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 저의 모습과 많이 겹쳐 보였어요때문에 감독님이 각각의 캐릭터를 단정짓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가 좋게 와 닿았고요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갔는지누구를 먼저 만들어냈는지 궁금해요.

 

감독아무래도 소현이란 인물이 제일 중요했고 그 다음으로 지수란 인물도 중요했죠원래 단편이 시초였는데단편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였어요지수가 팸의 가장이라는 설정이었고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는 내용이었어요그런 이야기를 쓰다가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로 가는 것 같아서 조금씩 수정해나갔어요인물들을 만들 때는 제인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며 쓰지는 않았어요. 제인이라는 인물 한 명만 방향성을 잡고 만들어 낸 캐릭터예요. 제인은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면서 약간 촌스럽기도 해요이런 부분이 분명히 필요한 특징이라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넣었어요.

 


관객: 영화에 트랜스젠더나 청소년들이 많이 등장해요하지만 대중들은 성적소수자나 소외계층의 삶을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쉽게 관심을 주지도 않잖아요이런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감독: 결국 영화를 왜 만들고, 어떻게 만드는가로 생각이 이르는 것 같아요저는 홀로 남겨진 사람의 마음에 이입을 해요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해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에요그런 마음들이 이야기를 만들게 해요그렇게 시작을 하다 보니 인물의 곁에 두고 싶은 인물들이 하나 둘씩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죠그래서 제인을 만들어냈고 가출팸 아이들도 만나게 됐죠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소현 같은 인물이에요.

 

진행: 왜 그런지는 보는 사람들이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제가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영화에서 환지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환지증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감독: 두 가지 면을 생각했어요당사자가 아니라면 우리들이 판단할 수 없는 범위가 있어요그런 관점에서 편견이나 오해동정을 이야기하고 싶었고또 한편으로는 소현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소현이는 비뚤어진 시선들을 개의치 않아한다는 부분이물론 주제적으로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편견을 대하는 제 개인의 태도와 소현이의 태도가 많은 다른 사람들과도 닮아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환지증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진행: 지난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꿈의 제인>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동료 선후배 감독들이 준 상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클 것 같아요마찬가지로 저 또한 <꿈의 제인>이라는 영화가 영화계 안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값진 자극을 준 영화라고 생각해요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관객도 모으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또 독립영화가 독립영화답게 존재하는 것 조차 힘든 세상에서 몇 줄로 정리되지 않는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어요이 영화는 소리와 이미지가 하나의 덩어리로 운동하듯 다가왔고 영화적인 경험을 안겨준 좋은 영화였어요앞으로도 계속 이런 영화를 찍어주셨으면 좋겠어요감독님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감독: 긍정적인 희망이나 목표를 두고 영화 작업을 하진 않을 것 같아요하지만 분명 그런 시기도 있겠죠이 일은 공격적으로 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를 좀 오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산업이니까요그렇지만 정확하게 어떤 원칙을 갖고 이렇게 작업하겠다고 얘기할 순 없어요단지 고민이 많고, 조금은 침울한 상태로 작업에 임하고 싶다는 게 제 개인적인 목표예요못보고 지나치지 않도록또 놓치고 있는 것들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행: ‘침울한 상태로 있어야겠다라는 말이 굉장히 반갑네요무슨 의미인지 다 아실 거라 생각해요늦은 밤까지 자리해주신 관객 분들에게 마지막 인사 부탁드릴게요.

 

감독: 사실 오늘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고 그걸 목표로 이 자리에 왔어요개봉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에서 영화를 다시 보러 와주시고 또 늦은 시간까지 영화관에 남아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마법 같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이 영화를 택한 것 자체가 우연이라 할지라도요하지만 저에게 오늘은 절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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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직관의 시간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1일 오후 2시 30분 상영 후

참석 정재훈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실험 영화의 범주 안에 포함되는 영화들을 관객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영화를 보기 전, 미리 얻을 수 있는 정보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목부터 상영시간까지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만든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를 두고 어떤 이는 초저예산 SF 블록버스터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212분이 흐른 뒤, 출입구로 등장하는 감독의 얼굴이 그 어떤 관객과의 대화 때보다 반가웠다.





 

정지혜 평론가 (이하 정지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먼저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재훈 감독 (이하 정재훈): 휴가지에서 뒷산에 갔는데, 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 것 같았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이런 걸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1부는 2005년에 찍은 것들입니다. 2부는 찍다 보면서 쌓인 것들을 가지고 편집했습니다. 2부를 먼저 만들고 뭔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찍어둔 것들을 찾아봤는데, 영상들이 있기에 1부에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 두 개를 붙이니까 영화가 너무 길어서 휴식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 중간에 인터미션 영상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정지혜: 두 영상을 붙이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미션이 2부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키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재훈: 1부의 경우에는 산이라고 하는, 혹은 멈춰진 상태라고 하는 것에 대한 경험적인 축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호흡의 작업물이 나오게 된 것이고요.

 

정지혜: 감독님은 이 영화를 ‘4DX 어드벤쳐물로 생각하고 접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SF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2부로 넘어가기 전 인터미션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1부에서는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고 계속해서 흔들리거나 흐르는 것들을 찍었습니다. 시간이 변하고 있다는 걸 미세하게 보여주는 차원이었던 것 같은데요, 이런 장면들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정재훈: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했다기보다는 계속 변하는 것,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관객이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1부는 사운드가 통제되어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정재훈: 사운드를 넣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장면인 일출 장면을 예로 들면, 인위적인 조작은 없었지만 소리만 통제하는 방식으로 편집했습니다.




 

정지혜: 2부는 공간이 주는 소리가 극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정재훈인터미션에서 사운드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적극적으로 사운드를 넣었습니다.

 

정지혜: 전작을 봐도, 영화를 통해 촉감을 자극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 등장한 지글거리는 사운드도 그렇고요. 사운드의 울림이 커서 몸에 진동이 오기도 해요. 그래서 실제로 신체에 자극이 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 안에서 감각적인 자극을 주는 방식에 대하여 의도한 게 있나요?

 

정재훈: 2부에서 관객이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운드에 신경을 더 쓰는 편입니다. 영화를 상영할 때도 상영 기사 분들한테 사운드에 관해 부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지혜: 촬영 장비가 각각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영화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재훈: 유튜브를 많이 봅니다. 스트리밍 동영상을 보다 보면 인터넷 상황이 안 좋을 경우 화면이 문제가 뭉개질 때가 있는데, 이런 경험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크게 의미부여가 돼있는 건 아니었어요.

 

정지혜: 다른 상영회에서 감독님을 만났을 때, 감독님께 2부에 감독이 등장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감독님은 그때 맞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는데요.

 

정재훈: 사람이나 캐릭터는 영화를 만들 때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2부에서 사냥터와 조선소가 같이 나오는데, 사냥터에서 돌아다니는 개의 모습과 조선소에서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이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동자를 넣게 되었어요.

 

 



관객: 영화가 어려워서 생각이 이것저것 많이 듭니다. 찍는 과정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1부는 다 카메라가 고정되어있는데, 찍으면서 화면만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2부에서 사냥꾼들과 조선소, 개를 찍으면서 힘들었던 점과 이런 소재를 선택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정재훈: 1부는 별 생각 없이 찍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산이고 23일정도 찍었습니다. 사람이 등장하는 모습은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촬영할 때 딴 짓은 딱히 안 했습니다. 조선소의 경우 촬영이 원래 안 되는데, 일했던 곳이라서 슬금슬금 촬영했습니다. 별 문제는 없었고요, 이 영화를 통해서 조선소의 노동환경 같은 문제는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업은 여러 포맷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써서 작업하기도 하고, 배우와 함께 작업하기도 하고, 계기가 생겨서 특정한 장면만 찍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경우엔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자료들이 쌓일 때쯤, 이 자료들 사이에서 추상적으로나마 선을 그리면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어 붙이게 됐습니다. 편집은 4개월 정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지혜: ‘이 영화는 감정을 갖고 접근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전작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보였습니다. ‘말하지 않음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2부에서 사람이 등장할 때도 이름이 나오지 않고 대사도 없습니다

 

정재훈: 영화 안에 인간의 언어는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소리가 주는 질감을 언어체계화해서 전달하려고 시도해 봤습니다.

 

정지혜: 그래서 다른 사운드들이 감각적으로 전해지는 부분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2부에는 조선소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특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반부에 개의 모습을 확대해서 찍는 것도 역시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재훈조선소 노동자가 카메라를 쳐다보는 장면은 화질이 너무 낮아서 그렇게 되었어요. 쳐다봤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관객: 감독님의 전작 <서울연애>(2014) <상냥한 쪽으로>에서도 산이 등장하는데요, 감독님에게 한국의 산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정재훈사실 큰 감정은 품고 있지 않습니다. 면적의 높은 비율이 산이니까 자연스럽게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에서 찍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산밖에 없다라는 문구가 머릿속에 남아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지혜: 1부에서 카메라가 갑자기 고정된 숏에서 움직이는 때가 있었습니다.

 

정재훈: 뭔가 숲에서 움직였다거나 기척이 있어서 저절로 시선이 따라갔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한 건 아니고요, 시선에 감정이 깃들려고 하면 의도적으로 빠지고, 그런 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정지혜: 더 찍고 싶을 때가 있으면 어떻게 했나요?

 

정재훈: 나중에 편집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단 더 찍었습니다.


정지혜: 인터미션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정재훈: 이 영화는 제가 재미있자고 만든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미션이 제일 재미없는데, 영화 안에 더 동적인 걸 넣어보자고 생각해서 만들 게 됐습니다. ‘파이널 판타지의 엔딩곡이 좋아서 게임 음악을 인용하게 됐습니다. 게임 안에서 전투 중 아이템을 얻거나, 소환수를 부른다거나, 공격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소리와 날씨예보, 고승덕의 주식투자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붙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직관적인 작업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파장, 웨이브와 같은 단어들이 반복되는 것은 인상 깊습니다. 제목에 등장하는 난기류라는 단어도 그렇고요.

 

정재훈: 주식투자 프로그램에서 쌍봉, 파장이라는 단어로 상황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1부에서 나오는 기계적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카메라 워크에서 2부의 와이파이가 잘 터졌다 말았다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혹은 인위적인 형태지만 하나의 묶음으로 연결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212분이라는 시간이 만드는 입장에서 부담되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관객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정재훈: 주변에서 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많이 틀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습니다.

 




관객: 개도 많이 나옵니다. 마지막 눈 오는 장면에서도 그렇고요. 관객이 개의 시선을 공유하는 경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 뤽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2014)도 생각이 났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제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야기를 배제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미학인 것 같습니다. 무늬, 소리(기계음)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건지 궁금합니다.

 

정재훈: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영화도 준비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 경우엔 이야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소화를 잘 못 시키는 타입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야기를 철저히 배제하려고 애쓰진 않았습니다. 정보라는 걸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데, 이런 마음이 영화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정지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관심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게 있나요? 전작 <환호성>(2011)의 경우 지독하게 일만 하는 남자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서사로서의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재훈: 사랑과 우정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노동시간이 많아서 이야기를 가질 수 없는 게 지금 사회구조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환호성>에 넣었던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다같이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를 틀어놓고 보는데, 문득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있을 수 있고, 이야기가 없는 전제조건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지혜: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드립니다.

 

정재훈: 이 영화를 첫 상영을 한 지 1년 됐습니다. 그 동안 4번 정도 상영했는데, 항상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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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달려온 여배우의 오늘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0일 오후 5시 30분 상영 후

참석 문소리 감독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토요일 오후, 배우 문소리의 감독 데뷔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여배우는 오늘도>가 관객들과 다시 만났다. 상영이 끝난 후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의 인사말로 시작된 인디토크에는 첫 연출작에서 배우로도 활약한 감독 문소리가 함께했다. 바깥의 날씨와는 상반된 따뜻한 분위기에서 부지런히 달려온 그녀의 수많은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진행): 개봉 직후부터 동료 여배우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은 영화다. 여성들이 영화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된 게 멋지고 기쁜 풍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개적으로 나누었던 대화의 경험들은 어떻게 의미가 남았나?

 

문소리 감독(이하 감독): 많은 선배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아직까지도 그 내용들이 다이어리에 적혀있다. 다 갚지 못한 마음이다. 최근 영화계에 시끄러운 일들이 많지 않나. 미투 운동(#MeToo)도 있고. 나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배우들은 자주 모이지 않는다. 같이 작품을 하거나 미용실에서 오가면서 만나지만, 작품이 없으면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 영화를 도와주고자 많은 선배들이 와줘서 마음 안에 연결된 끈이 조금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행: 극중 문소리를 연기하는 배우 문소리를 보는 기쁨이 있었고 그것을 연출하는 감독 문소리를 보는 기쁨이 있었다. 그것이 보는 사람과 문소리라는 배우의 거리를 좁혀주는 느낌이 들었다. 또 이후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그 거리의 폭이 조금 더 줄어든 것 같다. 감독님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로 데뷔하고 임상수 감독님의 영화로 작품을 이어가면서 처음부터 친숙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었다.(웃음) 무겁고 힘든 작품들이 많았다. 시작이 그래서 그런지 좁혀지기가 어렵더라. 그런데 영화를 만들며 내가 나한테 거리를 두고 보았더니 그 거리만큼 관객들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과 더 많이 공감하게 된 것 같다.

 

진행: 독립영화계에 대해 구석구석 알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감독: 큰 영화로 데뷔를 했지만 단편영화나 저예산영화, 인권영화도 찍어서 개인적으로는 독립영화가 가까운 느낌이다. <박하사탕>(1999)<오아시스>(2002) 사이에 일곱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나한테는 그게 데뷔작만큼이나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 당시 함께 작업했던 분들이 다 독립영화인들이었고 그들에게 너무 많이 배웠다.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들이 내 인생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낯설지가 않다. 마음이 많이 있었고 계속 인연이 있던 곳이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배급을 하는 과정을 보며 독립영화의 배급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한국 영화 전체에서 배급의 독과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도 더 절실히 느끼게 된 것 같고 공부하는 지점도 많았다.





진행: 지금에서야 보이는 작품의 한계나 단점이 있다면?

 

감독: 처음부터 장편으로 개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 한편 한편의 단편으로 시작했고 문소리라는 사람의 삶으로 세 이야기가 엮여있다. 그렇게 시작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극장에 와서 보시는 관객들에게 부족한 점이 느껴질 수 있겠구나 싶다.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찍은 영화다. 학생들이 영화를 만드는 평균 제작비에 맞춰서 찍으려고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에 맞춰서. 장소도 많이 왔다 갔다 했다. 2막에서는 장소가 너무 많아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 그래서 3막에선 장소를 줄여도 보았다. 조명을 많이 못 썼던 것도 큰 화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진행: 다시 학생 문소리로 돌아간 경험이 어떤 용기, 혹은 자신감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공부했던 시간들이 지나보면 참 좋은 것 같다. 그때는 이 비싼 학비를 내고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에서 애는 울고 있는데.(웃음) 공부를 하는 것은 무언가를 회복하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시도였다. 어떠한 일로, 무엇이 무너져서 무엇을 회복하려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공부가 나한테 무언가를 줄 것 같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 당시엔 그냥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교정이나 강의실에 있던 그 순간들은 굉장히 평화로운 순간들이었다. 10여년 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 속에서 잘 쉬지 못했다. 하루 집에서 쉬라고 하면 꼭 가구를 옮기거나 김치 냉장고 안의 모든 것들을 꺼내보며 일을 만든다.(웃음) 잘 못 쉬는 사람인데, 그렇게 달려왔던 것들이 갑자기 조용해진 그 순간이 좋았다. 그리고 조금 자존감이 흔들렸던 시기였던 것도 같은데, 공부가 굉장히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교수님들이 좋은 가르침들을 많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해서 영화적으로 더 전문가가 되거나 더 아는 게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계속 공부를 하는 과정인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조금 더 친숙해진 것 같다. 이걸 조금 더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경험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영화가 아니어도 될 것 같다. 누구에게든 어떤 공부가 그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진행: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여배우라는 개념으로 축소시켜서 생각을 해보자면, 작품이 여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선언하고 있단 느낌을 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작업 이후엔 여배우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하고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새로 정립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조금 진지해 보이고 까다로운 여배우로 생각했다면, 영화 이후에는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이나 같은 동료로 더 많이 봐주는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보면 내가 여배우이기 때문에 갖는 마음들, 받는 시선들, 처해지는 상황들이 거의 죽는 날까지 여전할 것도 같다. 영화의 관계를 더 다양하게 평설하면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진행: 지금 이 시점에서 영화인 문소리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가?

 

감독: 영화하고 사는 거다, 그냥.(웃음) 가장 큰 숙제 같기도 하다. 매일 밤 고민하며 잠들고 고민을 시작하면서 눈을 뜰 정도로 그런 숙제들이 많다. 그런데 그 숙제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스스로 하겠다고 한 것들이다. 그만큼 영화를 애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빼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만, 굉장히 텅 빌 것 같다. 부부 사이도 멀어질 것 같고.(웃음) 학교에서 영화 연기를 가르치고 있기도 한데, 거기서 영화를 빼버리면 내가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영화를 안 하면 재미없어서도 못 살겠지만, 삶의 이유가 없어질 것만 같다.





관객: 1막에서 홍상수 감독 영화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감독: 여러 감독님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소주를 마시는 씬만 나오면 , 홍상수스러운 씬이었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1막 시나리오를 썼을 때, 여럿이 앉아 술을 마시는 씬이 나오니까 주변에서 홍상수스럽지 않을까하는 우려들을 했다. 그리고 촬영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찍었던 촬영감독이었다. 그 촬영감독에게 유일하게 주문한 것이 홍상수 영화 같지 않게 해줘였다.(웃음) 얼핏 보기에 술 마시는 분위기에서 홍상수 영화의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내 영화에서는 연애를 안 하지 않나.(웃음) 남자를 다시 만나 따로 2차를 가던가 해야 홍상수 감독 영화스러운 것이지 않겠나. 나는 딱 파하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집에 갔다.(웃음)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 세 가지 단편영화를 막()별로 배치했는데, 그 순서에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1막에서는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여배우의 삶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서 문소리라는 여배우를 보았다. 1막을 만들고 났더니 발만 살짝 담근 것 같단 기분이 들었다. ‘확 들어가서 다 젖으면 어때, 들어가서 어떤지 파헤치고 더 봐봐!’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2막에서는 그 사람의 삶으로 직접 더 들어가서 그녀가 겪는 직접적인 심경과 일들, 그리고 그녀의 가족을 담아보려고 했다. 3막으로 가니 이렇게 영화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이 사람이 결국 어디로 갈 것인가. 왜 이러고 사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장례식에 가 무언가를 보고, 겪고 나오는 이야기를 생각해낸 것 같다. 1막을 만들고 나서 2막을 만들고, 2막을 만들고 나서 3막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그때마다 생각의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다.

 


관객: 감독으로서 다른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하는 과정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가?

 

감독: 제일 주안점을 뒀던 것은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해줄까?’였다. 배우로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배우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지금 배우의 심경은 어떨까, 지금 배우는 뭘 해야 할까, 배우에게 뭐가 필요할까에 대한 답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거기에 맞춰주려 했다. 오랫동안 배우로 일해 왔기 때문에 연출을 할 때도 그렇게 머리가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관객: 세 개의 막에 모두 걸쳐 나오는 것이 불편한 사람과의 술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2차를 가자고 말한다. ‘2가 감독님에게 배우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감독: 누가 2차를 가거나 3차를 가자 그러면 잘 거절하지 못한다. 그런 원래의 내 성격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2라는 것이 영화 안에서는 술자리지만, 우리는 계속 다음 영화를 찍어야 하고 다음 막을 살아야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끝이 나지 않는다. 한 컷을 찍었으면 다음 컷을 찍어야 하지 않겠나.

 


관객: 자전적인 내용인데, 작품이 현실을 어느 정도까지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적당히 반영되어있다. 수많은 감독님들과 가졌던 술자리들이 있다. 그것이 다 모여서 하나의 씬으로 만들어진 거다. 실제로 영화 안에서와 똑같은 일이 있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전에 있었던 수많은 비슷한 일들이 조각조각 영향을 미치고 들어간 부분이 있다. 그래서 현실이 얼마나 반영되어있는지 수치로는 계산할 수가 없다. 굉장히 혼재되어 있다. 많은 것들을 섞어서 만들어놓은 것이긴 하지만, 만들어놓았다고 해서 허구라 생각하진 않는다. 기억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허구가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있지 않나, 확신을 못하겠는. 지금은 <여배우는 오늘도>를 많이 봐서 그 장면들을 내가 실제로 겪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살면서 팩트는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때의 느낌과 감정, 생각은 명확히 기억나지 않나. 그것들을 담아내려 했다.

 


관객: 영화감독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감독: 배우도 굉장히 창의적인 직업이라 생각하는데, 감독이 해내야 하는 창의적인 어떤 것은 정말 차원이 다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배우가 연기를 하며 느끼는 책임감과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감독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운 직업이고 힘든 직업이라고 많이 느꼈다. 감독만 한 게 아니라 배우까지 같이 해서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다. 무엇을 먼저해야 하는지 순서도 모르겠는 경우가 있었고, 어떤 태도로 하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했. 바로 오케이를 못 내리고 다시 모니터 앞으로 돌아와 확인을 해야 하니 시간이 걸리는 점도 어려웠다. 둘을 병행해서 어려웠던 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진행: 마지막으로 관객 여러분들께 끝인사 부탁드린다.

 

감독: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2018년도 힘차게 달리길 바란다. 작년에 너무 달려서 올해는 신발 끈 좀 묶고 재정비를 해야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좋은 영화로 또 찾아 뵙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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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긍정을 뒤덮는 혐오의 공기를 향한 분노와 근심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불온한 당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0일 오후 2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영 감독

진행 차한비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차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이름이 없었다고 해서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에 자신들의 삶을 꿋꿋이 지켜 왔던바지씨치마씨들이 혐오와 차별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지씨로 평생을 살아온 일흔 이묵 씨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불온한 당신> 인디토크에 차한비 한국독립영화 사무차장(이하 차한비)과 이영 감독(이하 이영) 함께 했다.

 

 

 




차한비 : 지난 2017년에 개봉해서 여름 내내 관객들과 뜨겁게 만난 작품이다. 개봉 끝나고 나서도 여러 자리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스크린 상영은 오랜만일 하다. 관련해서 소감을 여쭙고 싶다.

 

이영 : 올해 들어 상영이자 GV. 굉장히 오랜만이라 떨리기도 하고 기대도 되는데,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의견 많이 나눠주시면 좋겠다.

 

차한비 : 토요일 점심 상영인데도 많은 관객 분들이 와주셔서 기쁘다. 서두를 여는 이야기로 무겁겠지만 박근혜 정권이 기획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문화체육부, 영화진흥위원회, 국가정보원이 합심해서 문화예술인들을 조직적으로 검열한 사건인데 <불온한 당신>처럼 사회 참여적 성격을 가진 다큐멘터리가 국가 지원 제도에서 심사 탈락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 탄압 속에서도 <불온한 당신> 기획하고 만든 특별한 계기가 있나.

 

이영 : 영화를 처음 기획한 보수 정권 시기에는 공공연한 종북몰이가 있었고 ‘종북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성소수자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적대와 공포를 이용하는 증오의 정치가 판치는 상황이 위태롭다고 느꼈다. 이럴 수록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격이 먼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 촬영을 못하게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외에도 간단치만은 않은 과정들이 있었다. 상영을 하지 말라는 협박과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명이 자신을 혐오주의자처럼 보이게 편집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부 차원의 검열 또한 빼놓을 없다.

 

차한비 : 영화 구성에서부터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히 공을 들였던 부분은?

 

이영 : 영화는 결국 삶과 존재를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에 맞서 삶과 존재를 선언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삶을 반대하는 논리라고 생각했고, 존재를 지키고자 하는 존엄함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려고 했다. 이야기를 만들면서 구사한 전략 같은 것을 설명한다면, 이묵 선배와 나 이야기가 나온 성소수자들을 공격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의 폭력적인 이야기가 연결된다. 성소수자와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의 연출이다. 혐오 선동 세력은 샷과 군중샷을 위주로, 존재와 삶을 선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클로즈업을 위주로 풀어나갔다. 혐오 세력을 풀샷으로 주로 담은 것은 개개인의 책임 이전에 혐오의 논리와 구조를 봐주셨으면 하는 의미였다.







관객 : 이묵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 여러 바지씨들을 인터뷰하고 나서 이묵이라는 인물을 고른 건지, 아니면 이묵이라는 인물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찍은 것인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이묵이 면도를 하는 클로즈업샷에서 진짜 수염이 보인다. 여성들은 보통 면도를 매일 하지 않는데 면도를 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리고 영화에 나오지 않은 이묵의 이야기 흥미로운 있다면?

 

이영 : 전작이 10 레즈비언들의 커밍아웃을 다룬 <이반 검열>인데, 영화에 나왔던 10 친구들이 나 보고 30대도 레즈비언이 있냐고 물어 보더라. 생각이 선배들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거의 10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오십 명 넘는 선배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묵 선배님과의 만남은 2009 4월이었다.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성소수자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셨다. 칠십 평생을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같은) 언어도 명칭도 없는 상황 속에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이겨내며 살아 오신 분이다. 젠더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움과 매력에 감화되어 이야기에 담기로 했다면도와 관련해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연출할 그랬다는 생각을 한. 수염이 짧게 많이 나셔서 매일 면도를 하시는데,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중요했기에 영화를 위해 수염을 일부러 길러달라고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다. 퍼포먼스도 아니고 호르몬 치료와도 관련이 없다.

 


관객 : 영화를 보면서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서 많이 웃었다. 명이 손을 마주 잡고예수 만세라고 외치는 장면 등 웃으면 같은데 그냥 웃게 되는 장면이 많지 않았나. 웃기고 발랄한 느낌이 들도록 편집을 것인가?

 

이영 : 한국 사회가 변하는 것처럼 관객의 위치도 변하는 같다. 영화를 처음 완성했을 때는 처참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지었고 당시의 관객 분들도 고통스러워 했다. 사회적 혐오가 사회적 공기가 되어가는, 어떤 변화도 기대할 없는 참담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소가 나온다면 어떻게 저런 행동을 있는 지가 믿겨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광장에서 성소수자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폭력이 자행되는 상황이 과연 허용되는 것이 옳은 가에 대한 질문이 영화에 담겼고 혐오 세력들의 공격은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인권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일반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소수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인권 조례를 폐기시키고, 이제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혐오 선동 세력들에게 동조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결국 인권과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행위라는 말을 하고 싶다.

 






관객 : 선배라는 호칭을 붙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커뮤니티 내부에서 모두 서로를 선후배라고 부르는가? 그리고 퀴어 퍼레이드에 대해 궁금했던 하나가 사람들의 반감을 일으키는 선정적인 춤이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인 지에 대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혐오담론을 접하면서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데, 감독님은 혐오가 유발하는 공포나 두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는 지가 궁금하다.

 

이영 :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평등을 지향하기 때문에 나이를 앞세운 권위와 위계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선배님이 포함된 바지씨 커뮤니티 안에서는 나이 순으로 선배, 후배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레즈비언 같은 낯선 용어를 쓰기 보다는 선배님이 이해할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설명을 드리는 맞다고 생각했다. 선배님도 나를 "후배 왔는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맞아 주셨고, 삶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선배라는 호칭을 것이다.

퀴어 퍼레이드의 선정적인 춤이나 복장은 일종의 파티복 같은 개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들이 1년에 번씩 모여서우리가 사회에서 살고 있다 외치는 자리이자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동의하고 널리 퍼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걷는 자리다.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옷차림을 핑계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물총 축제 참가자들은 옷을 벗더라도 공격을 당하지 않는다. 다양한 가치를 외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관객 :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을 혐오하는 것도 다른 혐오 발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버이 연합과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생각을 하는 지는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혐오 표현이라는 개념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영 :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을,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느낀 감정은 혐오보다는 분노에 가깝다. 저런 일이 자행되는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분노인 셈이다. 혐오는 으레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는 감정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그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을 멸시하고 그들에게 모멸감을 안기는 행동으로 이해되어야 것이다. 열등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향한 공격, 그리고 기득권과 주류 가치관을 공격하는 것은 그래서 다르다. 혐오의 감정을 혼자 품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것을 글과 말을 빌어 외부로 표출할 때는 폭력이 된다. 성소수자를 향한 공격과 혐오가 허용되는 현실에 분노하는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함께 목소리를 높여주시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차한비 : 마무리를 해야 시간 같다. ‘여성영상집단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처럼 사회의 비가시화된 존재들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을 짧게 듣고 싶다.

 

이영 : <해고록>이라는 가제를 가진, 30년이 넘게 복직투쟁을 벌이는 여성 노동자 이야기에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연출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여성영상집단 움을 가능한 빨리 만나볼 있는 작품이다.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인디스페이스 같은 공간을 통해 많은 관객 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불온한 당신> 분노 너머에는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가 소수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자각하는 근심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사회의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는 혐오 발언이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뿌리째 흔드는 것을 경계하는 시선. 시선이 사각지대에서 소외 받는 사람들을 많이 향하는 만큼 우리 사회의 신뢰는 굳건해 지지 않을까. <불온한 당신> 많은 관객과 만나기를 바라는 이유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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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다음 삶의 현장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살아남은 아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9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신동석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생명에게 있어 살아남다라는 동사는 시간적으로 유한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살아남다라는 말에는 죽음을 모면하여 남아 있게 된다는 뜻이 있는데, 생명은 언젠가 기어코 온몸으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남는다는 표현은 오묘하다. 우리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한편 찰나의 안도를 선사한다. 그것이 죽음 바로 옆에서 숨 쉴 때 더욱 그렇다.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의 죽음 이후, 아들이 죽어가며 살려낸 아이와 설명하기 힘든 관계를 맺게 된 부부의 이야기다. 관계가 나고 자라는 동안 영화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까지 세 사람이 각각 상실을 마주하는 서로 다른 태도에 주목하여 인물 간의 간극을 때로는 분명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조절해나간다. 차이가 분명할 때엔 타인과 같을 수 없다는 허무를, 희미할 때엔 고통을 함께 녹일 수 있다는 위안을 준다. 관객은 그 과정에서 세 인물을 차례로 통과하게 된다. 그렇게 위로와 애도의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여운이 남은 자리,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와 신동석 감독이 함께 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김현민) :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부터 가볍게 들어보고 싶어요.

 

신동석 감독 (이하 신동석) : 주변에서 이른 나이부터 죽음을 경험하는 경우를 봐왔어요. 그래서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어요. 가족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몇 차례 썼어요. 그 이야기들이 다 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 쓴 <살아남은 아이>는 괜찮다 싶었습니다. 이건 영화로 꼭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살아남은 아이>가 맘에 들었던 이유는 뭘까요?

 

신동석: 힘든 이야기를 할 때, 나도 쓰면서 아프기 싫으니까 아픔을 이상한 방식으로 돌려서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제게 불만이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이나 정서를 잘 녹여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김현민: 돌려서 표현하게 됐다는 게 이해가 되는 게,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나 하는 고민도 했을 것 같아요.

 

신동석: 그런 고민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영화를 볼 때 불편할 때가 있거든요. 조금 더 진중하게 아픔을 안아주면 좋을 텐데, 너무 가학적으로 그린다거나 냉정하게 바라보는 영화를 볼 때요. 그래서 이야기를 빠르게 만들었지만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에서 영화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스태프들에게도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김현민: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세 인물에게 차례로 이입을 하게 됐어요. 남편 '성철', 소년 '기현', 아내 '미숙' 순으로 제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게 되더라고요. 감독님이 관객에게 세 인물을 동일한 거리를 두고 경험하게 한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두 번째 봤을 때는 자칫하면 이런 구도가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 배우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신동석: 초고를 쓰고 나서 캐스팅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일순위 배우들이 그 세 명이었습니다. 제가 원했던 대로 캐스팅이 돼서 좋은데, 이 세 사람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성철, 기현, 미숙의 캐릭터가 있으니 그에 대입해서 뽑은 건데, 세 사람의 앙상블이 괜찮겠다고 짐작만 했지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거든요. 제가 기대한 것 보다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김현민: 특히 최무성 배우의 무감한 표정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거든요. 성유빈 배우는 경력이 길지 않고 나이도 어리지만, 큰 표정 없이도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스크린에 어울리는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여진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감독님의 기대보다 좋았다고 했는데, 특히 배우 분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해낸 장면은 무엇이 있을까요?

 

신동석: 최무성 배우가 생각보다 장난기가 많아요. 현장에서 재미있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요. 처음에는 그런 장난기가 성철의 캐릭터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점들이 오히려 세 명의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좋게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성철의 약간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세 사람을 유사 가족처럼 보이게 하는데 크게 한 몫 했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저도 놀라웠던 장면은 기현이 미숙에게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과 이후에 미숙이 기현의 원룸에 다시 찾아갔을 때의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이 연기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모니터를 보면서 한동안 컷을 못 했습니다. 배우들의 아우라에 압도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김현민: 영화에서 유독 눈길이 갔던 부분은 도배를 하는 밝은 대낮 장면이에요.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잖아요. 원룸에서의 장면도 밝고요. 이런 지점이 조금은 의외인 느낌을 줬습니다. 어두울 수 있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밝기 때문에 인물들이 더 숨을 곳이 없다는 적나라한 느낌까지 줬고요.

 

신동석: 몇몇 특정 장면들이 밝다는 건 생각을 못 했네요. 역광이기를 바랐던 장면은 있어요. 창가를 등지고 기현과 미숙이 이야기하는 장면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주변이 밝더라도 표정은 어두울 수 있고, 그런 부분이 진실이 뭔지 헷갈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이렇다 해서 일부러 어두운 환경을 설정하는 게 더 작위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김현민: 전체적으로 영화가 빛을 활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초반에 성철이 아내의 침실 문을 열자 침대에 앉아있던 아내가 약을 먹고 스탠드를 꺼 버려요. 이후 어둠 속에 성철이 우두커니 서있는 장면이 너무 좋았거든요.

 

신동석: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굉장히 현실적인 영화고 장르적인 설정을 넣기도 어려운 영환데, 자연스러운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영화적 변화들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거든요. 영화적으로 무언가를 구현해내는 데 있어서 제약도 있고 해서 조심스러웠던 와중에 그런 장면이 하나 정도 있었던 것 같네요.

 

김현민: 정말 초반이잖아요, 그 장면이. 영화가 성철로 시작하기 때문에 성철이 초반에 관객이 이입돼서 따라갈 수 있는 주체잖아요.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아내를 바라보는 컷에서 성철이 가진 무게감이 확 느껴졌어요. 거기서 관객은 그가 가진 상실감을 짐작하게 되는 거죠. 현재를 살아가보려고 노력하는 것까지 느낄 수 있고요. 상실에 대처하는 자세에 있어서 성철과 아내 미숙의 대비가 크게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신동석: 미숙은 현재를 살아나가기 보다는 죽음을 느끼고 죽음과 함께 하면서 고통을 품을 수 있는 현재를 찾는다면, 성철은 현재를 유지시키면서 헤쳐 나가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대비를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이야기의 굴곡도 좋았어요. 처음에는 원만하게 나아가다가 진실을 밝혔을 때 급 커브한 후 상승해나가는 이야기의 굴곡이 있습니다. 과정 과정에서의 인물들의 감정선이 이야기의 굴곡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설계할 때는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동석: 저는 이야기의 뼈대를 세워 놓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으니 기현이 언젠가 사실을 고백할 거라는 걸 알았겠죠? 그러다 보니 저한테는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간의 감정을 쌓아가다가 그것 때문에 기현이 자기가 알고 있는 진실을 고백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의 굴곡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순서처럼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었던 거죠. 영화제에서 몇 차례 틀고 보니 어떤 분들은 이 영화가 2부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고, 또 어떤 분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인물을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처음부터 죽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타인이 어떤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생긴 이야기라 그런지 주제가 애도와 윤리, 이런 식으로 이야기 구도가 전환되면서 쪼개지기 보다는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김현민: 저에게는 엄청나게 느껴졌던 장면이 성철, 기현, 미숙 세 사람이 소풍을 가는 장면입니다. 그 행복의 전시가 너무 인위적이고, 나아가 가증스러워 보였다고 할까요? 이 상황이 말이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소풍 이후 혼자 남은 기현이 갑자기 구토를 하잖아요. 그때 저는 기현의 감정에 이입하면서 기현이 두 부부의 자식인 '은찬' 덕분에 살게 된 아이인데 너무 큰 짐을 진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소풍 이전에 기현이 자격증을 따고 과일을 사서 오잖아요. 미숙이 주스를 주고 거실로 안내하는데, 그때가 처음으로 이 집에서의 밝은 씬입니다. 그때부터 소풍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졌어요. 그 시퀀스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신동석: 기현이 미숙에게 사실을 고백하기 전까지는 기현이 자격증을 따고 미숙에게 과일을 사서 찾아가는 장면이 기현을 위한 거의 유일한 시퀀스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부부를 담는 데 할애됐기 때문에 그 장면들은 어떻게 보면 기현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처럼 느껴져요. 물론 제가 고집스럽게 이 영화를 최대한 부부의 관점으로 끌고 나가려 했지만, 기현의 시퀀스가 없다면 관객이 기현에 대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니까 서사적으로 용납할 수밖에 없는 시퀀스기도 했어요. 그때 기현이 이 부부에게 어떤 식으로든 사랑 받고 싶지 않았을까,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사실을 어떻게든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들 탓에 소풍까지 함께 가는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현민: 세 배우 모두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슬픔 속에 들어가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니까요. 특히 기현은 다른 인물들이나 관객을 교란시키는 비밀을 가진 캐릭터잖아요. 성유빈 배우와는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눴나요?

 

신동석: 기현 역할 같은 경우에는 이 사건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설명이 안 돼요. 그래서 유빈 배우에게 기현의 전사 같은 걸 많이 얘기해줄 필요가 있었어요. 기현이라는 인물이 다섯 살, 일곱 살 때부터 이런 일을 겪었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열일곱 살이 됐고, 여덟 살에는 이런 경험, 열 살에는 이런 경험을 했을 거다, 이런 걸 쭉 얘기해준 적이 있어요. 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을 수도 있는, 제가 구상한 기현의 이야기를요. 그리고 시나리오의 이 부분까지는 네가 죄책감이 전혀 없는 거야. 여기서부터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라면서 감정이 분별되는 지점들을 확실히 정리해서 설명해줬고 유빈 배우는 그에 따라 준비를 해줬습니다.

 

김현민: 이 부분이 기현의 감정의 분별점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기현이 처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던 지점이 있습니다. 기현과 성철이 자격증 공부 이야기를 하다가 기현이 성철에게 자신이 자격증을 따면 가게에서 쫓아낼 거냐고 묻는 장면입니다. 이 아이의 감정 상태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신동석: 그 장면에 대해서도 어떤 감정이어야 하는지 얘기했던 것 같아요. 이때부터 기현이 성철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김현민: 성철은 인테리어 일을 하는데, 인물의 직업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신동석: 부부가 같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플롯 상 같이 일하면서 마주쳐야 하기 때문에요. 그런 직업에 대해서 알아보니까 인테리어 가게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무, 회계, 실측은 부부 중에 여성이 하고, 공사 같은 경우는 남성이 하는 운영 방식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자료 조사를 하면서 보게 된 도배 장면이 되게 정서적으로 다가왔어요. 벽지를 거칠게 잡아 뜯을 때도 있고 매끈하게 발라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 모습이 상처를 치유하거나 죄책감을 씻어내는 행위로 보였습니다. 그걸 살려서 인물들을 표현하는 데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김현민: 그래서인지 안간힘을 다해 벽지를 뜯어내는 성철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해요. 뜯어내고 바라보고 낡은 것들을 들어내고. 이런 장면들이 굉장히 은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기현이 하얀색 액체를 휘저을 때도요. 이 아이가 속죄하고 구원을 꿈꾸고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좋았던 것 같아요.

 

신동석: 아쉬운 장면 중 하나예요. 저는 노력했던 것들이 무위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뭔가 어설프게 나왔습니다. 풀죽이 원을 그리다 흩어지는 게 좀 더 선명하게 보였어야 했는데…….

 

김현민: 제가 그러면 감독님의 의도를 잘 캐치하지 못했네요. 클로즈업으로 찍었으면 더 좋았을까요?

 

신동석: 모르겠어요. 풀죽 양이 더 많았어야 했나? 점성이 더 좋았어야 했나?(웃음)


 


 



관객: 영화를 보면서 왜 과거의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커다란 사건 이후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대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조각조각이라도 회상하거나 관객에게만이라도 진실을 보여주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 영화가 끝난 지금도 기현이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한 의도가 있나요?

 

신동석: 부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다 보니 과거 장면을 넣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부는 은찬의 죽음을 상상해낼 수 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잖아요. 물론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회상 장면을 넣었다면 시각적으로 이해하기는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래도 부부의 관점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숙도 기현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혼란이 많았을 거라고 느껴요. 그 다음 날 저녁에야 성철에게 얘기를 하고 경찰서로 가잖아요. 그런 미숙의 감정과 동일하게 관객이 혼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영화를 본 분들에게 기현의 고백 내용이 사실 같은지 아닌지 물었을 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사실인 것 같긴 하다는 답이 많이 나왔고, 제가 원했던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인 것 같습니다.

 

김현민: 회상 장면이 있었다면 그냥 너무나 편해졌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진실과 사실의 폭로나 해명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애도하고 위로해야 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는 영화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관객: 후반부에 세 명이 차를 타고 산으로 소풍 가는 장면이 있는데, 맨 처음에 룸미러로 기현 얼굴 한 번 보여주고 성철의 얼굴을 옆에서 보여주고 미숙의 얼굴을 보여준 후에 기현의 손과 가슴의 핀을 보여줍니다. 기현 같은 경우는 거울에 투영된 모습인데 성철과 미숙은 실제의 모습이 나옵니다. 저는 이게 기현의 죄책감이 반영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카메라워킹에는 어떤 의도가 있나요?

 

신동석: 부부가 기현을 보려면 룸미러로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일종의 부부의 시점 샷입니다. 기현 그 자체보다는 부부가 바라보는 기현을 보여주고 싶었고 부부가 은밀하게 기현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정면으로 기현을 바라볼 수 없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기현을 바로 비춘다면 그 복잡 미묘함이 사라지고 단순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찍은 것 같습니다. 기현의 옷핀은 성철과 기현의 연결고리입니다. 성철이 일하던 현장에서 옷핀을 사용하는 걸 보고 따라 한 거고, 손을 비춘 건 거칠어 보이는 손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고요.

 

김현민: 옷핀은 실제로 현장에서 보고 인상적이었던 단면을 쓴 건가요?

 

신동석: 취재를 하다가 인테리어 일 하는 분들이 그렇게 작업하는 걸 보고 그대로 썼습니다.

 

김현민: 그게 유독 인상에 남았던 이유가 뭘까요?

 

신동석: 일단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작업복마다 옷핀이 달려있고, 옷핀이 달린 작업복만 입는 사장님이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성철이 무뚝뚝해도 귀여운 모습을 갖고 있다는 걸 그걸 통해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관객: 제목은 어떻게 정한 건지 궁금합니다. 혹시 후보 제목이 더 있었나요?

 

신동석: 다른 후보를 고민해본 적이 있긴 합니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이 너무 딱딱하거나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국 더 좋은 제목을 못 찾았고요, 초고부터 썼던 제목이라 제가 그냥 계속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웃음) 영화의 설정을 알려주는 제목이기도 하고, 기현이 진정한 의미로 다시 살아남은 아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제목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되새김할 수 있는 제목이라고 자부하는데, 관객들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김현민: 영어 제목은 <Last Child>예요. 그 이유는 뭔가요?

 

신동석: <살아남은 아이>를 직역해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너무 서바이버(Survivor)’ 이런 식의 단어가 돼서 생존 경쟁에서 이겨낸 느낌이 들고 중의적인 느낌이 사라지더라고요. <Last Child>라고 하면 중의적인 설정을 좀 지킬 수가 있어요. 부부 곁은 지키는 아이라는 느낌도 있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이라는 느낌도 주고요.

 


관객: 부부가 기현에게 복수하려는 내용이 초고부터 있었나요?


신동석: 네, 있었습니다.

 

김현민: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단순히 목 조르는 것 대신 직업적 특성에 맞는 어떤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성철만의 방법이요.

 

신동석: 저도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철한테 그 행위가 계획적인 것인지 우발적인 것인지에 대해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적어도 그것에 대해서 성철도 불투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적으로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방식을 처음부터 고수했습니다.

 






김현민: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았는데요, 심정이 어떤가요?

 

신동석: 모르겠어요. 일단 너무 좋은 일이고요, 베를린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도 됩니다. 그런데 저는 좀 소박하게 기뻐하는 중이에요. 오늘처럼 이렇게 영화를 트는 것도 좋은 일이고 감사하거든요. 너무나 오랜만에 영화를 만든 거라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즐거웠어요. 게다가 여러 영화제에 가니 그것만으로도 즐거워요.

 

김현민: 오늘 끝까지 진지한 영화, 진지한 이야기와 함께 해준 관객 분들께 한 마디를 하면서 마무리 할까요?

 

신동석: 긴 영화, 긴 GV였는데 다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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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고백들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벼꽃>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8일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오정훈 감독

진행 송윤혁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오정훈 감독의 <벼꽃>은 말이 없는 영화이다. 물론 서사적, 시각적 수사학을 들어내고 관조와 여백의 미학을 앞세운 결단 자체가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벼꽃>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하는 그 침묵의 부피가 마치 이 영화의 구조적 형식 자체를 이지러지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80분에 달하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채 열 마디가 들려오지 않는 화면 속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어떤 수사적 요설도 없이 사계절을 견뎌내는 벼라는 작물의 과묵한 생장기이다. 인간중심적인 서사는 물론 사람의 얼굴 자체가 화면 안으로 거의 틈입하지 않는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의 벽두를, 다른 어떤 이름도 아닌 가 장식하는 것은 어쩌면 자명한 귀결이다. 영화가 후반부에 이르면 카메라는 잠시 동안 농촌의 정경으로부터 눈을 돌려 농민집회가 벌어지고 있는 도심의 현장을 향하지만, 희부연한 화면 위로 희미하게 메아리 치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몇 마디를 들었다는 근거로 이 평화로운 영화의 정치적 전언에 감명받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평자 스스로의 도덕적 나르시시즘을 투영한 수상쩍은 자기기만의 진술일 테다.


벼의 말 없는 생장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것이 심오한 메시지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인간중심적인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운 영화 이미지의 자기완결적 순수를 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투명한 생장기가 진행되는 동안 극장은 마치 온갖 말들이 범람하는 이 소란스러운 속세의 시간이 잠시 동안 멈춘 것 같은 착각마저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관 바깥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작품의 외곽으로부터 찰나의 순간, 들려오던 농민들의 희미한 목소리를 흘려 들어서는 안될 듯하다. 영화는 끝났지만, 오정훈 감독에게는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있는 것 같다.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기획전의 일환으로 28일에 진행된 상영 이후의 대담은 그 말해지지 않은 고백을 들을 수 있는 현장일지도 모른다. 오정훈 감독, 송윤혁 감독이 참석했다.






 

송윤혁 감독(이하 송) : 영화가 좋아서 할 말이 많은 작품이 있고, 영화가 좋은데 할 말이 없는 작품이 있다는 말을 감독님께 한 적이 있는데 <벼꽃>은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를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처음 접했는데요, 심사위원 특별상과 관객상을 받으셨죠? 당시에 해맑았던 감독님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도시에서 계속 자라온 저로서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농사와 노동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제 몸의 일부가 되는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요. 먼저 이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정훈 감독(이하 오) : 저도 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해서 찍으려고 한 것도 있어요. 벼농사가 우리의 삶을 크게 차지하는데 아는 건 별로 없잖아요. <벼꽃> 벼의 성장을 느껴보려고 한 영화입니다. 농민들의 삶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보고 난 뒤 밥을 먹거나 시골을 지나갈 때 영화에서 본 장면이 기억이 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 농사꾼으로 나오던 이원경 씨는 어떻게 만났고, 그 지역은 어떻게 찾아갔는지 궁금합니다.

 

 : 농민 생산자들 공동체 측에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했고,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거예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혼자 일을 많이 하거나 기계랑 같이 일을 해요. 친환경 농사를 한다고 해도 석유 자원을 아예 활용하지 않는 농사는 거의 불가능하고, 시골 지역은 사람도 많이 없기 때문에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농사를 짓기 어렵더라고요. 애초에 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기도 했지만, 원경 씨가 말을 많이 하는 분이 아니어서 영화에 많이 안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

 

 :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런데 벼가 익어갈 때 나오는 음악들이 생명의 탄생과 같은 주제와는 무관하게 약간 차분하고 우울하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이런 음악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농사라는 게 하루 종일 들판을 질퍽질퍽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니 우울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노동뿐 아니라 수익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경기도에 친환경급식조례 같은 게 있어서 제도적으로 수익을 어느정도 보장해주기는 하지만 그것도 수익환경을 완전히 개선해주지는 못해요. 또 농사는 인간이 혼자 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병충해가 없다던가 태풍이 없어야 한다던가 자연과의 조화가 잘 맞아야 하는 부분도 있거든요. 볍씨 하나를 맺는 데 정말로 많은 노동이 드는데 어쩌면 그런 부분이 우울하게 표출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관객 :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게 좀 힘들었어요. 벼에 관해 설명이 많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제목을 왜 벼꽃이라고 지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먼저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벼꽃을 촬영하는 중간에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벼가 꽃을 피운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꽃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피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이런 인상 때문에 제목을 벼꽃이라고 지었습니다그리고 저는 평소에 영화를 친절하게 찍는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최근들어 더 친절하지 않은 영화를 많이 만들고, 그게 저에게 맞는다는 생각을 해요. 저분들은 1년 내내 저 지루한 일을 하는데 우리는 80분 남짓한 시간 동안만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도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관객 : 쌀이라는 매체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밥이라는 결과를 보지 그 과정을 많이 생각하지 못하는데 그 과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평소에 지루함을 경험할 일이 많이 없었기에 지루함 자체가 또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 아까 농사와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더 듣고 싶습니다.

 

 : 사실 8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어려웠고, 그렇게 하면 복잡할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농촌에는 이런 저런 제도적인 문제들이나 농협과 수협과 관련된 문제들, 도시와의 문화적인 격차와 같은 수많은 문제들이 있어요. 일단 벼만 관찰하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후반부에서는 짧은 시위장면을 넣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농사에 관한 관심이 생겨서 앞으로도 이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못다한 이야기는 거기에서 더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때는 덜 지루하게 만드는 것도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웃음) 농부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으로만 보는 관점이 있고 생태계를 유지시켜주는 핵심적인 공공재원의 하나로 보는 관점도 있는데요, 제가 만난 사람들은 후자의 가치를 많이 생각하는 분들인 것 같아요. 어떤 쪽이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농사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지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혹시 농사를 직접 지을 생각도 있나요?

 

 : 사실 제가 지금 충북 괴산에 살면서 작은 텃밭을 기르고 있기는 해요. 아직 농사라고 하기는 어려운 규모지만요. 주변에 농부들이 많이 있는데, 농사를 짓지 말고 그냥 영화를 계속 만들어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알리라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고, 반면에 농사를 많이 지으면서 농사에 대해 더 알아가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