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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말해지지 않은 고백들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벼꽃> 인디토크

by indiespace_한솔 2018. 2. 26.




말해지지 않은 고백들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벼꽃>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8일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오정훈 감독

진행 송윤혁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오정훈 감독의 <벼꽃>은 말이 없는 영화이다. 물론 서사적, 시각적 수사학을 들어내고 관조와 여백의 미학을 앞세운 결단 자체가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벼꽃>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하는 그 침묵의 부피가 마치 이 영화의 구조적 형식 자체를 이지러지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80분에 달하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채 열 마디가 들려오지 않는 화면 속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어떤 수사적 요설도 없이 사계절을 견뎌내는 벼라는 작물의 과묵한 생장기이다. 인간중심적인 서사는 물론 사람의 얼굴 자체가 화면 안으로 거의 틈입하지 않는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의 벽두를, 다른 어떤 이름도 아닌 가 장식하는 것은 어쩌면 자명한 귀결이다. 영화가 후반부에 이르면 카메라는 잠시 동안 농촌의 정경으로부터 눈을 돌려 농민집회가 벌어지고 있는 도심의 현장을 향하지만, 희부연한 화면 위로 희미하게 메아리 치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몇 마디를 들었다는 근거로 이 평화로운 영화의 정치적 전언에 감명받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평자 스스로의 도덕적 나르시시즘을 투영한 수상쩍은 자기기만의 진술일 테다.


벼의 말 없는 생장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것이 심오한 메시지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인간중심적인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운 영화 이미지의 자기완결적 순수를 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투명한 생장기가 진행되는 동안 극장은 마치 온갖 말들이 범람하는 이 소란스러운 속세의 시간이 잠시 동안 멈춘 것 같은 착각마저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관 바깥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작품의 외곽으로부터 찰나의 순간, 들려오던 농민들의 희미한 목소리를 흘려 들어서는 안될 듯하다. 영화는 끝났지만, 오정훈 감독에게는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있는 것 같다.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기획전의 일환으로 28일에 진행된 상영 이후의 대담은 그 말해지지 않은 고백을 들을 수 있는 현장일지도 모른다. 오정훈 감독, 송윤혁 감독이 참석했다.






 

송윤혁 감독(이하 송) : 영화가 좋아서 할 말이 많은 작품이 있고, 영화가 좋은데 할 말이 없는 작품이 있다는 말을 감독님께 한 적이 있는데 <벼꽃>은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를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처음 접했는데요, 심사위원 특별상과 관객상을 받으셨죠? 당시에 해맑았던 감독님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도시에서 계속 자라온 저로서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농사와 노동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제 몸의 일부가 되는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요. 먼저 이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정훈 감독(이하 오) : 저도 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해서 찍으려고 한 것도 있어요. 벼농사가 우리의 삶을 크게 차지하는데 아는 건 별로 없잖아요. <벼꽃> 벼의 성장을 느껴보려고 한 영화입니다. 농민들의 삶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보고 난 뒤 밥을 먹거나 시골을 지나갈 때 영화에서 본 장면이 기억이 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 농사꾼으로 나오던 이원경 씨는 어떻게 만났고, 그 지역은 어떻게 찾아갔는지 궁금합니다.

 

 : 농민 생산자들 공동체 측에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했고,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거예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혼자 일을 많이 하거나 기계랑 같이 일을 해요. 친환경 농사를 한다고 해도 석유 자원을 아예 활용하지 않는 농사는 거의 불가능하고, 시골 지역은 사람도 많이 없기 때문에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농사를 짓기 어렵더라고요. 애초에 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기도 했지만, 원경 씨가 말을 많이 하는 분이 아니어서 영화에 많이 안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

 

 :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런데 벼가 익어갈 때 나오는 음악들이 생명의 탄생과 같은 주제와는 무관하게 약간 차분하고 우울하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이런 음악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농사라는 게 하루 종일 들판을 질퍽질퍽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니 우울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노동뿐 아니라 수익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경기도에 친환경급식조례 같은 게 있어서 제도적으로 수익을 어느정도 보장해주기는 하지만 그것도 수익환경을 완전히 개선해주지는 못해요. 또 농사는 인간이 혼자 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병충해가 없다던가 태풍이 없어야 한다던가 자연과의 조화가 잘 맞아야 하는 부분도 있거든요. 볍씨 하나를 맺는 데 정말로 많은 노동이 드는데 어쩌면 그런 부분이 우울하게 표출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관객 :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게 좀 힘들었어요. 벼에 관해 설명이 많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제목을 왜 벼꽃이라고 지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먼저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벼꽃을 촬영하는 중간에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벼가 꽃을 피운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꽃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피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이런 인상 때문에 제목을 벼꽃이라고 지었습니다그리고 저는 평소에 영화를 친절하게 찍는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최근들어 더 친절하지 않은 영화를 많이 만들고, 그게 저에게 맞는다는 생각을 해요. 저분들은 1년 내내 저 지루한 일을 하는데 우리는 80분 남짓한 시간 동안만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도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관객 : 쌀이라는 매체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밥이라는 결과를 보지 그 과정을 많이 생각하지 못하는데 그 과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평소에 지루함을 경험할 일이 많이 없었기에 지루함 자체가 또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 아까 농사와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더 듣고 싶습니다.

 

 : 사실 8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어려웠고, 그렇게 하면 복잡할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농촌에는 이런 저런 제도적인 문제들이나 농협과 수협과 관련된 문제들, 도시와의 문화적인 격차와 같은 수많은 문제들이 있어요. 일단 벼만 관찰하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후반부에서는 짧은 시위장면을 넣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농사에 관한 관심이 생겨서 앞으로도 이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못다한 이야기는 거기에서 더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때는 덜 지루하게 만드는 것도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웃음) 농부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으로만 보는 관점이 있고 생태계를 유지시켜주는 핵심적인 공공재원의 하나로 보는 관점도 있는데요, 제가 만난 사람들은 후자의 가치를 많이 생각하는 분들인 것 같아요. 어떤 쪽이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농사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지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혹시 농사를 직접 지을 생각도 있나요?

 

 : 사실 제가 지금 충북 괴산에 살면서 작은 텃밭을 기르고 있기는 해요. 아직 농사라고 하기는 어려운 규모지만요. 주변에 농부들이 많이 있는데, 농사를 짓지 말고 그냥 영화를 계속 만들어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알리라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고, 반면에 농사를 많이 지으면서 농사에 대해 더 알아가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하더라고요.

 


관객 : 감독님과 이원경 농부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셨는지가 궁금합니다.

 

 : 원경 씨가 처음부터 신뢰를 많이 해주셨어요. 촬영을 한 시간이랑 농사를 한 시간이 거의 비슷할 정도로 농사를 돕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같이 일을 해야 하는 건지 그걸 찍어야 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더라고요. 왜냐면 그걸 찍고만 있으면 미안하거든요. 찍기도 하고 도와드리기도 하고 번갈아 가면서 했습니다.


 

 : 다음 작품에 관해 짧게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계획만 하고 있는데요, 아직 촬영 대상을 만나는 과정에 있습니다. 충북 괴산에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의 이야기를 찍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만들어진다면 이 영화와는 좀 다르게 유머가 있는 분위기로 만들려고요. 7인의 사무라이가 마을을 지키듯이 7명의 농부가 마을을 지킨다는 느낌의 발랄한 분위기를 생각하고 있는데요, 아직은 구상만 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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