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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상실 다음 삶의 현장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살아남은 아이>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8. 2. 27.




상실 다음 삶의 현장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살아남은 아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9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신동석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생명에게 있어 살아남다라는 동사는 시간적으로 유한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살아남다라는 말에는 죽음을 모면하여 남아 있게 된다는 뜻이 있는데, 생명은 언젠가 기어코 온몸으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남는다는 표현은 오묘하다. 우리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한편 찰나의 안도를 선사한다. 그것이 죽음 바로 옆에서 숨 쉴 때 더욱 그렇다.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의 죽음 이후, 아들이 죽어가며 살려낸 아이와 설명하기 힘든 관계를 맺게 된 부부의 이야기다. 관계가 나고 자라는 동안 영화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까지 세 사람이 각각 상실을 마주하는 서로 다른 태도에 주목하여 인물 간의 간극을 때로는 분명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조절해나간다. 차이가 분명할 때엔 타인과 같을 수 없다는 허무를, 희미할 때엔 고통을 함께 녹일 수 있다는 위안을 준다. 관객은 그 과정에서 세 인물을 차례로 통과하게 된다. 그렇게 위로와 애도의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여운이 남은 자리,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와 신동석 감독이 함께 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김현민) :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부터 가볍게 들어보고 싶어요.

 

신동석 감독 (이하 신동석) : 주변에서 이른 나이부터 죽음을 경험하는 경우를 봐왔어요. 그래서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어요. 가족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몇 차례 썼어요. 그 이야기들이 다 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 쓴 <살아남은 아이>는 괜찮다 싶었습니다. 이건 영화로 꼭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살아남은 아이>가 맘에 들었던 이유는 뭘까요?

 

신동석: 힘든 이야기를 할 때, 나도 쓰면서 아프기 싫으니까 아픔을 이상한 방식으로 돌려서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제게 불만이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이나 정서를 잘 녹여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김현민: 돌려서 표현하게 됐다는 게 이해가 되는 게,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나 하는 고민도 했을 것 같아요.

 

신동석: 그런 고민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영화를 볼 때 불편할 때가 있거든요. 조금 더 진중하게 아픔을 안아주면 좋을 텐데, 너무 가학적으로 그린다거나 냉정하게 바라보는 영화를 볼 때요. 그래서 이야기를 빠르게 만들었지만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에서 영화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스태프들에게도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김현민: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세 인물에게 차례로 이입을 하게 됐어요. 남편 '성철', 소년 '기현', 아내 '미숙' 순으로 제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게 되더라고요. 감독님이 관객에게 세 인물을 동일한 거리를 두고 경험하게 한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두 번째 봤을 때는 자칫하면 이런 구도가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 배우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신동석: 초고를 쓰고 나서 캐스팅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일순위 배우들이 그 세 명이었습니다. 제가 원했던 대로 캐스팅이 돼서 좋은데, 이 세 사람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성철, 기현, 미숙의 캐릭터가 있으니 그에 대입해서 뽑은 건데, 세 사람의 앙상블이 괜찮겠다고 짐작만 했지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거든요. 제가 기대한 것 보다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김현민: 특히 최무성 배우의 무감한 표정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거든요. 성유빈 배우는 경력이 길지 않고 나이도 어리지만, 큰 표정 없이도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스크린에 어울리는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여진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감독님의 기대보다 좋았다고 했는데, 특히 배우 분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해낸 장면은 무엇이 있을까요?

 

신동석: 최무성 배우가 생각보다 장난기가 많아요. 현장에서 재미있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요. 처음에는 그런 장난기가 성철의 캐릭터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점들이 오히려 세 명의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좋게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성철의 약간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세 사람을 유사 가족처럼 보이게 하는데 크게 한 몫 했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저도 놀라웠던 장면은 기현이 미숙에게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과 이후에 미숙이 기현의 원룸에 다시 찾아갔을 때의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이 연기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모니터를 보면서 한동안 컷을 못 했습니다. 배우들의 아우라에 압도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김현민: 영화에서 유독 눈길이 갔던 부분은 도배를 하는 밝은 대낮 장면이에요.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잖아요. 원룸에서의 장면도 밝고요. 이런 지점이 조금은 의외인 느낌을 줬습니다. 어두울 수 있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밝기 때문에 인물들이 더 숨을 곳이 없다는 적나라한 느낌까지 줬고요.

 

신동석: 몇몇 특정 장면들이 밝다는 건 생각을 못 했네요. 역광이기를 바랐던 장면은 있어요. 창가를 등지고 기현과 미숙이 이야기하는 장면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주변이 밝더라도 표정은 어두울 수 있고, 그런 부분이 진실이 뭔지 헷갈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이렇다 해서 일부러 어두운 환경을 설정하는 게 더 작위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김현민: 전체적으로 영화가 빛을 활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초반에 성철이 아내의 침실 문을 열자 침대에 앉아있던 아내가 약을 먹고 스탠드를 꺼 버려요. 이후 어둠 속에 성철이 우두커니 서있는 장면이 너무 좋았거든요.

 

신동석: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굉장히 현실적인 영화고 장르적인 설정을 넣기도 어려운 영환데, 자연스러운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영화적 변화들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거든요. 영화적으로 무언가를 구현해내는 데 있어서 제약도 있고 해서 조심스러웠던 와중에 그런 장면이 하나 정도 있었던 것 같네요.

 

김현민: 정말 초반이잖아요, 그 장면이. 영화가 성철로 시작하기 때문에 성철이 초반에 관객이 이입돼서 따라갈 수 있는 주체잖아요.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아내를 바라보는 컷에서 성철이 가진 무게감이 확 느껴졌어요. 거기서 관객은 그가 가진 상실감을 짐작하게 되는 거죠. 현재를 살아가보려고 노력하는 것까지 느낄 수 있고요. 상실에 대처하는 자세에 있어서 성철과 아내 미숙의 대비가 크게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신동석: 미숙은 현재를 살아나가기 보다는 죽음을 느끼고 죽음과 함께 하면서 고통을 품을 수 있는 현재를 찾는다면, 성철은 현재를 유지시키면서 헤쳐 나가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대비를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이야기의 굴곡도 좋았어요. 처음에는 원만하게 나아가다가 진실을 밝혔을 때 급 커브한 후 상승해나가는 이야기의 굴곡이 있습니다. 과정 과정에서의 인물들의 감정선이 이야기의 굴곡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설계할 때는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동석: 저는 이야기의 뼈대를 세워 놓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으니 기현이 언젠가 사실을 고백할 거라는 걸 알았겠죠? 그러다 보니 저한테는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간의 감정을 쌓아가다가 그것 때문에 기현이 자기가 알고 있는 진실을 고백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의 굴곡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순서처럼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었던 거죠. 영화제에서 몇 차례 틀고 보니 어떤 분들은 이 영화가 2부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고, 또 어떤 분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인물을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처음부터 죽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타인이 어떤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생긴 이야기라 그런지 주제가 애도와 윤리, 이런 식으로 이야기 구도가 전환되면서 쪼개지기 보다는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김현민: 저에게는 엄청나게 느껴졌던 장면이 성철, 기현, 미숙 세 사람이 소풍을 가는 장면입니다. 그 행복의 전시가 너무 인위적이고, 나아가 가증스러워 보였다고 할까요? 이 상황이 말이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소풍 이후 혼자 남은 기현이 갑자기 구토를 하잖아요. 그때 저는 기현의 감정에 이입하면서 기현이 두 부부의 자식인 '은찬' 덕분에 살게 된 아이인데 너무 큰 짐을 진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소풍 이전에 기현이 자격증을 따고 과일을 사서 오잖아요. 미숙이 주스를 주고 거실로 안내하는데, 그때가 처음으로 이 집에서의 밝은 씬입니다. 그때부터 소풍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졌어요. 그 시퀀스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신동석: 기현이 미숙에게 사실을 고백하기 전까지는 기현이 자격증을 따고 미숙에게 과일을 사서 찾아가는 장면이 기현을 위한 거의 유일한 시퀀스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부부를 담는 데 할애됐기 때문에 그 장면들은 어떻게 보면 기현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처럼 느껴져요. 물론 제가 고집스럽게 이 영화를 최대한 부부의 관점으로 끌고 나가려 했지만, 기현의 시퀀스가 없다면 관객이 기현에 대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니까 서사적으로 용납할 수밖에 없는 시퀀스기도 했어요. 그때 기현이 이 부부에게 어떤 식으로든 사랑 받고 싶지 않았을까,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사실을 어떻게든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들 탓에 소풍까지 함께 가는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현민: 세 배우 모두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슬픔 속에 들어가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니까요. 특히 기현은 다른 인물들이나 관객을 교란시키는 비밀을 가진 캐릭터잖아요. 성유빈 배우와는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눴나요?

 

신동석: 기현 역할 같은 경우에는 이 사건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설명이 안 돼요. 그래서 유빈 배우에게 기현의 전사 같은 걸 많이 얘기해줄 필요가 있었어요. 기현이라는 인물이 다섯 살, 일곱 살 때부터 이런 일을 겪었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열일곱 살이 됐고, 여덟 살에는 이런 경험, 열 살에는 이런 경험을 했을 거다, 이런 걸 쭉 얘기해준 적이 있어요. 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을 수도 있는, 제가 구상한 기현의 이야기를요. 그리고 시나리오의 이 부분까지는 네가 죄책감이 전혀 없는 거야. 여기서부터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라면서 감정이 분별되는 지점들을 확실히 정리해서 설명해줬고 유빈 배우는 그에 따라 준비를 해줬습니다.

 

김현민: 이 부분이 기현의 감정의 분별점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기현이 처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던 지점이 있습니다. 기현과 성철이 자격증 공부 이야기를 하다가 기현이 성철에게 자신이 자격증을 따면 가게에서 쫓아낼 거냐고 묻는 장면입니다. 이 아이의 감정 상태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신동석: 그 장면에 대해서도 어떤 감정이어야 하는지 얘기했던 것 같아요. 이때부터 기현이 성철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김현민: 성철은 인테리어 일을 하는데, 인물의 직업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신동석: 부부가 같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플롯 상 같이 일하면서 마주쳐야 하기 때문에요. 그런 직업에 대해서 알아보니까 인테리어 가게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무, 회계, 실측은 부부 중에 여성이 하고, 공사 같은 경우는 남성이 하는 운영 방식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자료 조사를 하면서 보게 된 도배 장면이 되게 정서적으로 다가왔어요. 벽지를 거칠게 잡아 뜯을 때도 있고 매끈하게 발라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 모습이 상처를 치유하거나 죄책감을 씻어내는 행위로 보였습니다. 그걸 살려서 인물들을 표현하는 데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김현민: 그래서인지 안간힘을 다해 벽지를 뜯어내는 성철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해요. 뜯어내고 바라보고 낡은 것들을 들어내고. 이런 장면들이 굉장히 은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기현이 하얀색 액체를 휘저을 때도요. 이 아이가 속죄하고 구원을 꿈꾸고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좋았던 것 같아요.

 

신동석: 아쉬운 장면 중 하나예요. 저는 노력했던 것들이 무위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뭔가 어설프게 나왔습니다. 풀죽이 원을 그리다 흩어지는 게 좀 더 선명하게 보였어야 했는데…….

 

김현민: 제가 그러면 감독님의 의도를 잘 캐치하지 못했네요. 클로즈업으로 찍었으면 더 좋았을까요?

 

신동석: 모르겠어요. 풀죽 양이 더 많았어야 했나? 점성이 더 좋았어야 했나?(웃음)


 


 



관객: 영화를 보면서 왜 과거의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커다란 사건 이후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대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조각조각이라도 회상하거나 관객에게만이라도 진실을 보여주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 영화가 끝난 지금도 기현이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한 의도가 있나요?

 

신동석: 부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다 보니 과거 장면을 넣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부는 은찬의 죽음을 상상해낼 수 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잖아요. 물론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회상 장면을 넣었다면 시각적으로 이해하기는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래도 부부의 관점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숙도 기현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혼란이 많았을 거라고 느껴요. 그 다음 날 저녁에야 성철에게 얘기를 하고 경찰서로 가잖아요. 그런 미숙의 감정과 동일하게 관객이 혼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영화를 본 분들에게 기현의 고백 내용이 사실 같은지 아닌지 물었을 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사실인 것 같긴 하다는 답이 많이 나왔고, 제가 원했던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인 것 같습니다.

 

김현민: 회상 장면이 있었다면 그냥 너무나 편해졌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진실과 사실의 폭로나 해명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애도하고 위로해야 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는 영화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관객: 후반부에 세 명이 차를 타고 산으로 소풍 가는 장면이 있는데, 맨 처음에 룸미러로 기현 얼굴 한 번 보여주고 성철의 얼굴을 옆에서 보여주고 미숙의 얼굴을 보여준 후에 기현의 손과 가슴의 핀을 보여줍니다. 기현 같은 경우는 거울에 투영된 모습인데 성철과 미숙은 실제의 모습이 나옵니다. 저는 이게 기현의 죄책감이 반영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카메라워킹에는 어떤 의도가 있나요?

 

신동석: 부부가 기현을 보려면 룸미러로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일종의 부부의 시점 샷입니다. 기현 그 자체보다는 부부가 바라보는 기현을 보여주고 싶었고 부부가 은밀하게 기현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정면으로 기현을 바라볼 수 없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기현을 바로 비춘다면 그 복잡 미묘함이 사라지고 단순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찍은 것 같습니다. 기현의 옷핀은 성철과 기현의 연결고리입니다. 성철이 일하던 현장에서 옷핀을 사용하는 걸 보고 따라 한 거고, 손을 비춘 건 거칠어 보이는 손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고요.

 

김현민: 옷핀은 실제로 현장에서 보고 인상적이었던 단면을 쓴 건가요?

 

신동석: 취재를 하다가 인테리어 일 하는 분들이 그렇게 작업하는 걸 보고 그대로 썼습니다.

 

김현민: 그게 유독 인상에 남았던 이유가 뭘까요?

 

신동석: 일단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작업복마다 옷핀이 달려있고, 옷핀이 달린 작업복만 입는 사장님이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성철이 무뚝뚝해도 귀여운 모습을 갖고 있다는 걸 그걸 통해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관객: 제목은 어떻게 정한 건지 궁금합니다. 혹시 후보 제목이 더 있었나요?

 

신동석: 다른 후보를 고민해본 적이 있긴 합니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이 너무 딱딱하거나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국 더 좋은 제목을 못 찾았고요, 초고부터 썼던 제목이라 제가 그냥 계속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웃음) 영화의 설정을 알려주는 제목이기도 하고, 기현이 진정한 의미로 다시 살아남은 아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제목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되새김할 수 있는 제목이라고 자부하는데, 관객들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김현민: 영어 제목은 <Last Child>예요. 그 이유는 뭔가요?

 

신동석: <살아남은 아이>를 직역해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너무 서바이버(Survivor)’ 이런 식의 단어가 돼서 생존 경쟁에서 이겨낸 느낌이 들고 중의적인 느낌이 사라지더라고요. <Last Child>라고 하면 중의적인 설정을 좀 지킬 수가 있어요. 부부 곁은 지키는 아이라는 느낌도 있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이라는 느낌도 주고요.

 


관객: 부부가 기현에게 복수하려는 내용이 초고부터 있었나요?


신동석: 네, 있었습니다.

 

김현민: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단순히 목 조르는 것 대신 직업적 특성에 맞는 어떤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성철만의 방법이요.

 

신동석: 저도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철한테 그 행위가 계획적인 것인지 우발적인 것인지에 대해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적어도 그것에 대해서 성철도 불투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적으로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방식을 처음부터 고수했습니다.

 






김현민: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았는데요, 심정이 어떤가요?

 

신동석: 모르겠어요. 일단 너무 좋은 일이고요, 베를린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도 됩니다. 그런데 저는 좀 소박하게 기뻐하는 중이에요. 오늘처럼 이렇게 영화를 트는 것도 좋은 일이고 감사하거든요. 너무나 오랜만에 영화를 만든 거라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즐거웠어요. 게다가 여러 영화제에 가니 그것만으로도 즐거워요.

 

김현민: 오늘 끝까지 진지한 영화, 진지한 이야기와 함께 해준 관객 분들께 한 마디를 하면서 마무리 할까요?

 

신동석: 긴 영화, 긴 GV였는데 다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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