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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정순〉: 정순은 정순으로 살기로 했다.

by indiespace_가람 2024. 4. 27.

〈정순〉리뷰: 정순은 정순으로 살기로 했다.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글입니다.

 


진동은 정순이 ‘디지털 성범죄’를 겪으며 시작되었다. 정순과 정순을 둘러싼 인물들은 이에 대해 분노하기도 억울해하기도 불안해하기도 하며 각자의 주파수로 소리친다. 인물들이 파동친다. 인물의 감정, 관계, 성격은 하나의 파동을 만들어내고 여러 개의 파동이 겹치고 또 변화한다. 정순의 안과 밖으로 온갖 파동이 부딪힌다. 정순은 파동치는 존재들 사이,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파동을 찾아간다. 

 

 

영화 〈정순〉 스틸컷

 


우리는 정순을 알지 못한다

정순은 ‘이해하기 쉬운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정순의 말과 행동은 주변 인물에게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여겨지곤 한다. 그들은 정순이 도무지 어떤 생각을 하는건지 모르겠다고 소리치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해답’을 정순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정순은 그들에게 소리친다. “근데, 이건 내 일이잖아!” 정순은 사회가 피해자에게 기대하는 법적 절차를 통한 ‘정의 구현’을 선택하지 않는다. 딸 유진은 정순이 ‘끝까지 가보기를’ 바랬지만, 정순은 이만하면 되었다고 말하며 사건을 마무리하고 영수와의 합의를 선택한다. 이후, 정순은 자신의 방식대로 가해자들에게 복수한다. 공장을 찾아가, 가해자 영수와 도윤을 비롯한 공장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이 ‘정순이 절대 다시 오지 못할 공간’이라 생각한 곳에서 그녀는 가해자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반문한다. “왜?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냐?” 관객 또한 정순의 바깥에 놓인 존재이다. 우리는 정순의 말과 행동을 온전히 예측할 수 없으며,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정순과 주변 인물 사이, 정순과 관객 사이의 간격이 정순을 정순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정순은 자신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복수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회복한다. 

 

 

영화 〈정순〉 스틸컷

 


정순의 노래

정순의 노래는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정순이 영수와 함께 있을 때 부른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행복의 노래였을 것이다. 영상이 전파되었고 여러 사람이 이를 ‘소비’하고 있음을 알고 난 뒤에는 그녀를 떨게 만드는 존재이자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끔찍한 소음이었을 것이다. 공장에 다시 찾아가 가해자들 앞에서 재현한 그날의 노래는 분노의 표출이자 해소를 향한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순의 노래는 정순이 겪은 고통의 시간이자, 회복으로 나아가기까지의 분투이다. 영화는 정순의 고통과 회복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피해자의 비극적 결말을 그린다거나, 가해자를 응징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정순을 따라가며 정순의 변화를 기록하는 편에 가깝다. 정순의 변화와 회복은 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해 사실을 인지한 이후, 정순의 시간은 멈추었다. 그녀는 집 안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세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그랬던 정순이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하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는 그녀에게 순간순간 공포와 불안이 찾아온다. 면허 시험 도중 마주친 공장 사람들은 정순을 순식간에 과거의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렇지만, 정순은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길 포기하지 않는다. 우연히 마주친 영수를 쫓아 과거, 영수와 묵었던 모텔까지 가보기도 하고, 공장에 찾아가 못다 한 복수를 이어가기도 한다. 공장에서 자신의 복수를 끝마친 그녀는 해방감과 허탈함이 공존하는 얼굴로 딸에게 전화한다. “나 좀 데리러 와주라.”

 

 

영화 〈정순〉 스틸컷

 


엄마와 딸

정순과 유진은 사건의 해결을 두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유진은 엄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했지만, 정순은 유진에게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다. 정순에게는 자신의 속도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건 이후, 자신의 복수를 끝낸 정순은 그제야 딸에게 부탁한다. “나 좀 데리러 와주라.”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유진은 정순에게 운전을 알려준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도로를 달리는 두 사람은 그제서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가 끝났는데, 다시금 정순의 노래가 들려온다. 정순의 마음이 자꾸만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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