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는 시〉리뷰: 지속되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글입니다.
이스라지, 큰산꼬리풀, 개쑥부쟁이, 금매화. 당신은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의 이름을 아는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 시의 구절처럼 호명은 관계 맺는 일의 시작이다. 정영선 조경가는 식물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고 말을 붙인다. 스쳐 지나가는 꽃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자리를 만든다. 그에게 조경은 관계 속에서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다.
정영선 조경가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꽃을 보고도 감탄을 연발한다. 아이구 좋아라, 아이구 예뻐라 흥얼거리며 그는 설계도를 그린다. 그의 다정한 관찰력은 지금 가진 것을 잘 가꾸고 활용하자는 그의 철학과 연결된다. 그가 설계하는 풍경 속 식물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토종식물인데, 이는 학부 시절 미나리아재비를 보며 우리나라 식물 위주의 조경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그의 초심에서 비롯되었다. 제주 오설록티뮤지엄을 설계할 때도 제주 곶자왈을 재현하고자 화산석, 제주 토착 식물 등을 가져왔다. 그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들쭉날쭉한 것이다. 단일한 형태의 나무를 심는 대신 크고 작고, 넓고 좁은 다양한 식물들을 심는다. 그가 만들어낸 풍경은 줄이 맞지 않는 것이다. 개별적이고 사소한 것들에서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그의 시선에는 분명 시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미학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생태학과 인문학, 미학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가 생태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낸 건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조성 당시였다. 샛강을 허물고 주차장을 만들려는 관리소장 앞에서 그는 시 ‘풀’을 읊었다. 편의시설을 없애고 데크를 설치해 사람과 자연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그에게 조경은 시민 참여를 통해 자연 회복을 도모하는 촉진제이자 미래 세대에 더 나은 지구를 물려주고자 하는 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 조경가에게 시간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심은 식물들이 언제 피고 지는지, 사계절 동안 풍경이 어떻게 바뀌는지는 현재 자신이 만들어놓은 공간이 미래 세대에 어떻게 전승되는지를 반영한다. 따라서 영화는 사계절, 그리고 돌아오는 봄을 중심으로 흘러가며 각 공간의 모습을 비춘다. 겨울에 아름다워야 봄과 여름, 가을에 아름답다는 말은 먼 미래까지 지속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결심과 닿아 있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이가 공원을 뛰어다니는 장면, 그리고 정 조경가가 손자와 함께 식물을 심는 장면 역시 그가 조경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물린다.
그가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간과 사람이 맺는 관계이다. 그는 맥락에 맞게, 순리대로 환경과 사람 모두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아산병원에서의 조경이 환자에게 익명성과 생명력을 제공하고 모헌에서의 조경은 부러 시야를 가려 숲속에 있는 느낌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게 공간은 대화와 합일, 그리고 풍미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의 집이나 설계한 장소들을 살펴보면 항상 커다란 창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절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부르고 함께 꽃이 피는 것을 본다. 카메라 역시 때때로 대사나 내레이션을 제거한 채 조용히 풍경을 관망하는 시선을 보낸다. 계절마다 물이 흐르고 풀이 흔들리고 눈이 쌓인다. 관객 역시 스크린 속 풍경과 관계 맺으며 아름다운 모습을 풍미할 수 있다.
정 조경가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아름다움을 주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경가 네 명의 대화를 통해 그들은 관객에게 호소한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의 가치를 깨닫자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시민 참여와 행정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경춘선 숲길이 시민들이 조성한 텃밭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진 것처럼 우리가 조경을 단순히 미학적 관점을 벗어나 생태와 미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조경은 우리 주변을 가꾸고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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