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반짝다큐페스티발 2024 포럼 기록: ‘참사의 서사’는 어떻게 확장하는가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과의 대담〉

by indiespace_가람 2024. 4. 18.

우리에겐 더 많은 서사가 필요하다. 

반짝다큐페스티발 2024 포럼 기록

 

 

주제

- ‘참사의 서사’는 어떻게 확장하는가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과의 대담
일시

- 2024. 3. 31(일) 오후 4시
참석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 활동가 새훈, 시원, 오연, 빼갈
진행

- 허철녕 반짝다큐페스티발 운영위원
통역

- 수어통역: 수어통역협동조합

- 문자통역: 반짝다큐페스티발 자원활동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기록입니다.

 


올해의 4월 16일이 지났다. 4월 3일도 지났다. 10월 29일이 찾아온다. 5월 17일도 찾아오고, 10월 21일도 찾아온다. 더 많은 날들이 찾아올 것이다. 기억해야 할 더 많은 사람이 있다. 우리에겐 여전히 더 많은 서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사 바깥에, 호명되어야 하는 더 많은 기억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현장의 자리를 지키며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전한다.

 

사진 출처: 반짝다큐페스티발 https://blog.naver.com/twinkledocu

 


허철녕: 반짝다큐페스티발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정신을 잇는 영화제입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언제나 사회적 참사, 재난, 국가폭력의 문제에 대해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다양한 포럼 혹은 프로그램, 혹은 연대 작품 상영을 통해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반짝다큐페스티발도 이를 이어나가려 합니다. 작년에는 ‘장애인 이동권 연대 특별 초청전을 마련했고, 올해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과 대담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포럼의 주제는 “‘참사의 서사’는 어떻게 확장하는가” 입니다. 거대한 주제 같은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희도 잘 모릅니다. 오늘 대담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서로의 모름과 고민 안에서 빈틈과 균열, 회색 지대를 찾아보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이 틈을 통해 재난과 참사에 대한 다른 서사를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 분들을 모시겠습니다. 자기소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새훈: 안녕하세요. 새훈입니다. 저는 주로 대안에 끌립니다. 제가 반응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거기에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쫓아다니며 작업하고 공부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대안이라는 말보다는 대항이라는 말로 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태원 참사에 반응하게 되어서 계속 주위를 맴돌며, 촬영하고, 기록하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미디어팀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시원: 미디어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원입니다. 저는 미디어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고 계시거나,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으신 관객분들을 뵐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함께 재미있게 포럼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연: 안녕하세요. 권오연입니다. 작년 1년 동안 미디어팀으로 활동하며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 〈별은 알고 있다〉(2023)이라는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통해 상영과 GV 자리를 가져왔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 다큐멘터리 창작자로서,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는 저의 이야기를 꺼낼 기회는 적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자리에 대한 기대가 크고, 이태원 현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현장에 계시는 감독님들, 활동가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면서 참석하게 됐습니다. 포럼 함께 참여해 주시고, 질문도 많이 주셨으면 좋겠어요.

빼갈: 안녕하세요. 저는 빼갈이라고 합니다.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으로 함께해 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49제 때 희생자분들의 이름과 사진을 담은 영상을 만들며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별은 알고 있다〉의 프로듀서로도 함께 했습니다. 사실 저희는 이 자리에서 미디어팀의 팀원을 늘려보겠다는 흑심을 품고 왔습니다. 혹시나 저희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끌리신다면 언제든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철녕: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한국에 여러 가지 재난과 참사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님들, 혹은 활동가분들이 다양한 영상물과 영상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매번 ‘이 영상을 만들고 계시는 분들은 어디서 뭘 하시던 분들이실까?’ 궁금했습니다. 미디어팀에 합류하시기 전에 어떤 것들에 관심을 두고 활동이나 작업을 해오셨는지 궁금하고, 어떻게 미디어팀에 합류하기로 결심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빼갈: 저는 연분홍치마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미디어팀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연분홍치마는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정권 퇴진 행동 등에서 미디어팀으로 활동했던 단체고요. 저는 ‘퀴어 고민 신속 해결, 퀴서비스’라는 웹예능에 참여하며 연분홍치마와 함께하게 되었고, 퀴어댄스팀 큐캔디에 대한 다큐멘터리 〈무브@8PM〉(정가원, 2022)을 제작하며 더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는 프리랜서 드라마 기획 PD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연: 저는 이태원 참사 이전에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고, 연분홍치마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다큐멘터리 조연출을 맡기도 했어요. 무슨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할지 생각했을 때 늘 꽂히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막연하게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태원 참사 이후로 참사가 계속 떠오르고,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 더 고민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이 참사에 대해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여기에 대해 말을 얹어도 되는 거냐는 죄책감이 늘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다가 “우리가 이태원 참사에 대해 뭔가를 하려고 하는 시도를 죄책감 갖지 말고 시작해 보자. 그렇게라도 해야 이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대화를 나눴어요. 그 이후로 이 참사에 대해 사회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죄책감을 덜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조금 더 공적인 영역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미디어팀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시원: 저는 재작년까지 TV 탐사보도 방송에서 취재를 전담하는 PD로 일했어요. 그런데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말해야 하는 것,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는 답답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퇴사 이후로 영상을 계속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방송은 아니지만 영상은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굳혀지더라고요. 창작자이자 미디어 활동가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미디어팀에서 활동을 같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훈: 다들 분명한 이유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 사실 저는 분명한 이유가 없어요. 평소 제 관심 주제를 몇 가지 키워드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넓게 말하자면 규범화라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공부하고, 작업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 와중에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계속 신경이 쓰이고, 내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것들을 주변에 말하고 다니고, 이태원도 계속 가보고, 그러다 보니 이태원 참사 미디어팀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함께 참여할 생각이 있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어요. 계속 이 안에서 고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디어팀에 함께하게 됐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허철녕: 제가 사전에 “2010년대 이후에 재난이나 참사나 국가폭력이나 사회적 비극이 참 많았었고, 그에 대해 많은 것들이 조직됐었잖아요?”라고 질문을 드렸을 때, “안 그런 것 같은데요. 이전 선배 세대보다 우리 세대가 더 많은 활동을 조직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라는 답을 들었었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니, 실제로 조직된 활동이 충분하지 못했음에도, 2010년대 이후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서 재난이나 참사를 다룬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2010년대 이후 세대가 사회적 사건에 더욱 적극적으로 응답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관련해서 여쭙고 싶은 것은, 이태원 참사 이전 각자에게 영향을 끼친 참사나 비극적인 사건들이 있을 것 같고, 각자마다도 다를 것 같아요. 각자가 영향을 받게 된 사건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시원: 영향을 크고 작음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참사는 세월호 참사인 것 같아요. 제가 단원고 희생자들과 나이가 같아요. 그런데 저는 빠른 생일이어서 고등학교 3학년이었거든요. 그때 책상에 앉아 공부하며 미안함, 그리고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그것이 알고 싶다〉의 팬이었는데, 세월호 관련 보도를 하려다 제작 중단 외압을 받는 일이 있기도 했어요. 공중파 방송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었던 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꼭 탐사 보도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오연: 참사라고 명명할 수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그리고 이후에 이어졌던 미투 및 페미니즘 운동이 저에게 가장 인상 깊은 사회적 사건으로 남아있어요. 저는 그때 20대 초반이었고, 통학길이 강남역이라 매일매일 그 길을 늦은 밤 중에 지나다녔었거든요. 사실 묻지마 살인 사건 또는 여성 살해 사건은 그때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지만, 강남역 살인사건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계기가 됐잖아요. 그게 저에게 인상 깊었어요. 수많은 포스트잇이 10번 출구 앞에 붙었었는데,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많은 포스트잇이 붙여지는 것을 보면서, 이것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어요. 어떤 사건이 내 일인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 사회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에 너무 중요한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강남역 살인사건을 명백하게 해석했던 것에 비해, 이태원 참사는 ‘이것은 어떤 사건이다’라고 명명하기가 어렵다고 느껴졌어요. 그런 작업을 함께 해나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미디어팀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빼갈: 2016년에 한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어요. 드라마 업계 노동 환경의 부조리함을 알리며 세상을 떠났는데, 그 친구의 죽음 이후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게 됐어요. 친구가 남긴 카카오톡 기록이나, 마지막 녹음 파일이라든가, 사진첩, 카페 기록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며 어떤 죽음의 진실을 알기에는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진실을 누군가는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 또한 진실을 알아내야 하는 159명의 죽음이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힘을 보태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새훈: 저는 사실 사회적 참사라고 명명된 사건들에 이렇게까지 반응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왜 내가 이태원 참사에 반응했을까’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런데 나에게 영향을 준 사건이나 작업에 대한 질문을 보고 갑자기 떠오른 것은 〈벌새〉(김보라, 2018)였어요. 지금 저의 관심사가 ‘왜 반응하게 됐는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참사에 대한 원인이나 참사가 가진 영향이라든지, 더 말해야 하는 이야기가 당연히 많겠지만, 참사가 어떤 개인에게 어떻게 경유 되고 있는지가 제가 관심이 가는 부분이더라고요. 오늘의 주제가 ‘서사의 확장’인 만큼…. 모든 개인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잖아요. 복잡한 서사를 갖고,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각 개인에게 이태원 참사는 어떻게 경유 되고 있는가가 저의 관심사이고, 이를 서사의 관점으로 다시 말해보자면, ‘어떤 서사가 개인에게 발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허철녕: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새훈 감독님이 먼저 해주신 것 같은데요. 참사, 재난, 국가 폭력에 대한 다양한 작품 중 특별한 영향을 받으신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원: 며칠 전 〈바람의 세월〉(문종택, 김환태, 2024)이라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어요. 당장으로는 그 영화가 먼저 떠올라요. 희생자의 아버님께서 제작진으로 참여하시기도 한 영화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에게 크게 남아있는 참사이기에, 영화가 다루는 타임라인을 쭉 따라가면서 끓어오르는 슬픔을 느꼈던 것 같아요. 창작자로서도 생각할 지점이 많은 영화였고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시선들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어떤 관객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무척 고민하신 것 같았어요. 저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영화지만, 꼭 홍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께서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허철녕: 다가오는 4월이 세월호 참사 10주기인데요. 〈바람의 세월〉말고도 〈세월: 라이프 고즈 온〉(장민경, 2024)이라는 작품도 개봉하고, 또 연분홍치마에서 옴니버스 작품을 만들기도 했죠. 제목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오연: 〈세 가지 안부〉(오지수, 한영희, 주현숙, 2024)라는 세 작품이 묶여있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입니다. 저도 질문을 받았을 때, 세월호 참사 10주기라서 그런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방금 이야기 해주신 〈세 가지 안부〉, 〈바람의 세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세 가지 작품이 떠올랐는데, 저는 미디어 운동을 하고 있기에 더 와닿게 된 것 같아요. 이전에 봤으면 세월호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들이라고만 생각했을 것 같은데, 미디어 운동을 하다 보니까 작품이 만들어진 위치나, 다루고 있는 대상들이 먼저 보이더라고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10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기록해 온 풋티지들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참사를 자기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경험해 온 언론인, 유가족, 희생자의 친구, 같은 또래 세대로 이 참사를 경험했던 이들,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을 10년이 지난 이제는 드러낼 수 있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참사가 더 오래 기억하고 함께 애도할 수 있는 참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또한 함께 시간을 견디며 오래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빼갈: 저는 〈공동정범〉(김일란, 이혁상, 2016)이라는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가장 많이 생각납니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참사 이후 투쟁 과정에서의 많은 갈등, 진상규정을 해 나가는 잔혹하고도 지난한 과정이 굉장히 기억에 남았고, 이것이 참사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식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허철녕: 네 분들이 어떤 시대를 경유했고, 어떤 사건들에 영향을 받게 되었고, 한곳으로 모이게 된 과정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미디어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들어보고 싶어요. 운영되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기록할 주제를 어떻게 정해나가는지, 그 과정에서 유가족분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지, 한 달에 몇 회 정도 촬영하는지, 그 과정에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계신지 전반적인 운영 방식을 말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연: 올해는 제가 팀장을 맡게 되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저희 미디어팀은 2022년 12월에 꾸려져서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자주 못 만날 때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주 2회 만나는 걸로 되어 있어요. 보통은 투쟁의 타임라인에 맞춰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요. 특별법 제정 문제가 급박하게 흘러가는 시기에는 행진과 농성을 함께 하면서 기록하는 일을 위주로 활동했었고, 작년 1주기에는 1년간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제작하기도 했었는데요. 무엇보다 시민단체 연합으로 만들어져 있는 이태원 참사 상황실에 소속되어 있는 팀이다 보니, 투쟁의 과정에서 미디어가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역할을 만드는 것이 미디어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는 어떤 행위를 위주로 활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유가족협의회나 상황실에서 촬영이나 편집에 대한 비용을 주시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들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이나 활동 보조금을 신청해서 활동비를 만듭니다. 유동적으로 운영되는 것 같아요.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가 팀으로 운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 비용,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미디어팀을 조금 더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 오늘 포럼을 제안하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하고 있는 활동들을 더 많은 분과 같이 확장하여 크게 판을 벌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별은 알고 있다〉 스틸컷

 


허철녕: 흔히 접하게 되는 TV라든지, 신문이라든지, 라디오와 같은 전통적인 매스미디어들이 이태원 참사에 관한 기사나 보도, 혹은 영상을 많이 만들어냈잖아요. 그와 다른 한 축에서 미디어팀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책에서 ‘레거시 미디어는 보이는 고통에 집착해서 기록한다’는 내용을 읽었던 기억이 나요. 어쩌면 그것의 반대가 미디어팀이 하고 있는 활동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모든 것이 그렇진 않겠지만, 그동안 꾸려졌던 미디어팀의 활동을 보면 보이는 고통보다 보이지 않는 고통을 찾아나가려는 경향을 봤던 것 같습니다. 미디어팀 분들이 생각하시기에 본인들은 주류 미디어와 어떤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빼갈: 독립 다큐멘터리와 레거시 미디어가 다른 부분도 있고 비슷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현재 독립 다큐멘터리가 많이 제작되는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잖아요. 그 상황에서 레거시 미디어가 다큐멘터리의 역할을 가져가고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1주기 때 KBS와 YTN의 다큐멘터리 팀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일이 있었는데, KBS 팀의 경우에는 생존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YTN 팀에서는 유가족들의 투쟁 과정을 따라가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저희가 챙기지 못하는 주제들을 이분들이 기록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뉴스타파의 경우에도 그런 일들을 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함께하는 동료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드는 반면, 방금 철녕님께서 말씀해 주셨듯이 어떤 이미지로서 유가족들을 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있어 저희와 조금 다른 결의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슬퍼하는 유족들도 있지만, 이 과정 안에서 농담을 건네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는 유족들을 그려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레거시 미디어의 사람들과 욕망의 차이는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함께 걸어가는 동료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오연: 속도와 현장에 머무르는 시간의 차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언론사들은 1주기, 그리고 500일, 혹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순간처럼 사건의 순간에 현장을 찾아오는 것 같아요. 미디어팀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을 기록해야 하는 의무가 있잖아요. 그래서 오랜 시간 현장을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오래 지켜나갈 것이라는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언론이 사실 전달에 비중을 둔 보도를 책임져준다면, 미디어팀은 당사자들과 관계를 맺고 논의와 협의를 거치며 우리가 이 참사로부터 어떤 것을 해석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서사까지도 만들어볼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확장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 같아요. 대담의 제목이 “’참사의 서사’는 어떻게 확장되는가”잖아요. 이 고민을 놓지 않고, 사회적으로 이 참사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당사자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빠른 시간 내의 단적인 보도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찾는 것이 우리의 태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허철녕: 그런 태도를 떠올리게 만든 순간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연: 저희가 〈별은 알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주목했었던 유가족분은 159번째 희생자였던 이재현 군의 어머니셨어요. 재현 군은 참사 이후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였는데 이에 대한 많은 보도가 있었어요. “이태원 참사 생존자였던 고등학생, 세상을 떠나다”, “안타까운 죽음” 이런 헤드라인으로 보도가 있었고, 2차 가해가 주는 충격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을 이유로 보도하는 기사가 많았는데, 물론 그것도 다 사실이지만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그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느꼈어요. 참사 이후에 친구를 잃은 상실감이라든가 고등학생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혼자 감당하고 있어야 했던 상황이라든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 맺었던 긴밀한 관계와 우정과 같은 것들이 이 사람의 죽음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중요하고, 우리가 알아야 하는 사실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정한 주제에 딱 맞지 않더라도 이 참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많은 사실들에 대해서 주목했었던 것 같고, 이런 사실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어요.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 미디어팀을 계속하게 되는 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시원: 저는 아직은 매스미디어와 미디어팀의 차이를 느껴가는 중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느낀 차이는 우리에게는 조금 더 고민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같고요. 매스미디어에서 일할 때는 아무래도 신속하게 보도하는 것, 다른 방송사에서 하지 않은 것, 시청률이 많이 나올 것 같은 특종에 초점을 맞췄다면, 미디어팀을 하면서는, 물론 비슷할 때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매스미디어에서는 방송 이후의 논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서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지니고자 노력한다면, 미디어팀 활동에 있어서는 이 영상을 통해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허철녕: 시원 님께서는 PD 생활을 하신 거잖아요. 어쩌면 변화를 일으키기에 조금 더 직설적이고 빠른 매스미디어의 힘이 더 크다고 생각되는 면도 있는데, PD로 활동하셨던 당사자 입장에서 반대의 말을 전해주셔서요. 이에 대해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시원: PD로 활동할 때는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생각보다는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많이 맞췄던 것 같고요. 어떤 매체가 더 많이 영향을 미치느냐는 여전히 많이 고민하는 점인데, 영역이 다르다고 느껴요. 매스미디어를 보고 정말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보도됨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알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변화를 미치고자 하는 범주와 깊이가 미디어팀과 다르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새훈: 레거시 미디어라는 말에 떠오르는 주체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 주체가 고정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레거시 미디어라고 칭해지는 주체들은 어떤 재현을 해내는가, 어떤 재현을 하는 것이 레거시 미디어인가 생각해 봤을 때, 미디어팀 또한 레거시 미디어의 영역에 닿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미디어팀뿐만이 아니고 독립 다큐멘터리라는 이름 아래 활동하시는 모든 분이 레거시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재현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도 현장을 가보면 방송국의 카메라, 유튜브의 카메라, 미디어팀의 카메라, 혹은 개인의 카메라가 다 함께 있을 때, 각각의 카메라의 기록과 내용이 바뀌고 있다면, 미디어팀 또한 그 변화에 응당 반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저희는 시민대책회의 소속이니까 미디어팀의 역할로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있죠. 하지만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계속 질문하면서 역할을 바꿔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저희가 다른 모습을 담으려고 할 때 그 다른 모습을 이미 정해둔 것은 아닐까, 슬퍼하는 모습의 다른 모습으로 어떤 모습들을 정해둔 채로 녹화 버튼을 누르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을 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시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사실 레거시 미디어의 시간보다 미디어팀의 시간이 더 짧을 때도 있어요.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영상들의 쓰임을 생각했을 때, 집회라든지, 사안들에 반응해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할 때 그 시간은 굉장히 짧다고 느낍니다. 미디어팀 내에 있는 저희에게 두 가지 이상의 정체성이 섞여 있다고 느끼는데, 활동가로서의 시간은 굉장히 짧은 것 같아요. 사안에 대해 무언가를 바로바로 해야 하죠. 그렇지만 창작자 혹은 독립의 시간성으로는 어떤 것을 빠르게 봉합하지 않고, 어떤 마주침을 기다리는 것, 뭘 볼진 모르지만 일단 옆에서 계속 기록하는 것, 그것이 미디어팀의 시간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반짝다큐페스티발 https://blog.naver.com/twinkledocu

 


허철녕: 포럼을 제안받으며 나눴던 대화 중 오연 감독님의 표현이 떠오릅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가면 카메라가 너무 많대요. 카메라가 정말 많은데, 진짜 이태원 참사를 기록하는 카메라는 몇이나 될까 궁금했다고 말하시는 거예요. 너무나 많은 곳에서 이태원 참사를 주목하는데, 누구도 이태원 참사를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문제의식을 말하셨거든요. 미디어팀 분들께서 이태원 참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장에서 연대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장에서 카메라를 많이 접하실 것 같아요. 카메라에 대해 느낀 인상이나 문제의식이 궁금합니다.

빼갈: 싸움이 발생하는 순간이 가장 고민되는 것 같아요. 싸움이 발생하면 굉장히 분주하게 카메라들이 움직이는데 그 순간 저도 고민에 빠지죠. 싸움을 잘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집요함이 촬영 당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딜레마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유튜브에는 주관이 많잖아요. 레거시 미디어에는 주관이 없고. 그 사이에서 미디어팀의 카메라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새훈: “미디어팀의 카메라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와 비슷하게, ‘카메라는 뭐… 다 똑같은 거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거죠. 담아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1주기 때 이재명 대표가 현장을 찾으며 모든 카메라가 뒤에서부터 밀어닥치는데, ‘나도 일단 찍긴 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런 고민인 거죠. 미디어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묶여있고, 서로의 역할을 명시적으로 나눈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서로 상호 보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친구가 저기 있네? 나는 좀 뒤로 빠져야지’ 이런 식으로요. 오연 님의 진짜 이태원 참사 기록이 없는 것 같다는 표현은, ‘이태원 참사는 -하게 재현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없다’의 맥락이라기보단, 어떤 것이 계속 정답인 양 주어지고 있다는 맥락이라고 저는 이해해요. 참사라는 것이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되다 보니, 주어나 목적어를 바꾸면 다 작동할 수 있는 템플릿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것이 진짜인 양 엮어지다 보니, 그렇게 해야만 참사 재연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보게 됩니다. 무언가가 진짜다라고 말하는 것이아말로 사기꾼 같다고 느끼면서도, 우리는 어떻게 재현하고 기록할 것인가를 자주 질문하며 활동하고 작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허철녕: 책에서 “참사가 반복되고, 반복되는 참사가 미디어에 실리는 순간 참사는 재난이 아니라 풍경이 된다”는 표현을 읽었던 기억이 새훈 님의 답변을 듣고 떠올랐습니다. 

새훈: 그러니까, “풍경이 된다”, 그래서 잘못됐다는 것으로 이어지면 안 되는 것 같아요. ‘풍경이 됐으면 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네요.

허철녕: 맞습니다. 저도 비슷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나 용산 참사를 비롯한 여러 참사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반응하거나, 반응해서 만들어지는 영화, 영상, 활동들이 어떤 면에서는 관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사건 앞에서 미디어나 사회가 반응하는 방식들을 예상하고, 그의 결과물로 비슷한 결과물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았나, 재난이 풍경이 되었다고 했을 때, 그 풍경을 우리가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새훈 감독님이 말씀하신 다른 재현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미디어팀은 필연적으로 유족분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위치와 상황이잖아요. 보통은 미디어팀은 레거시 미디어와 비교해서 유족분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안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경향들을 보아왔던 것 같은데, 현재 이태원 참사 미디어팀은 그러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거든요. 지금 어떻게 관계가 설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어떤 고민이 오가는지 궁금합니다.

오연: 한편으로 유가족이라고 표현되지만, 피해 당사자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유족분들이 모이는 데만 해도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가족분들이 서로를 찾고, 다른 활동가들을 만나며 진상규명 운동을 시작하게 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 이태원 참사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1주기 다큐를 만들며 가족분들 한 분 한 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고, 그 기회가 없었다면 아무리 미디어팀이라고 해도 가족분들에게 다가가거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선뜻 얘기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2022년 12월에 있었던 49재, 1월쯤에 있었던 100일 행진을 찍어놓은 영상들을 보면 카메라가 정말 멀리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거죠. 영정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봤을 때, 그 슬픔이 너무 직접적으로 와닿다 보니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던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가족분들께서 조금씩 편해지고 분향소에서 농담을 나누기도 하시고,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며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게 되신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행진할 때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기도 하시고, 그렇게 대화가 가능해질 때부터 가족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됐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니까, 결국 가까이에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희도 활동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 다수였기에, 유가족분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저희에게 어려운 일 중 하나였습니다. 저희는 20대, 30대로서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나 그 자리에 있었던 생존자들과 같은 세대로 느끼는 공감대가 컸었던 것인데, 활동을 하면서는 가족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 참사를 누구의 이야기로 써 내려갈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허철녕: 반면에 새훈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관계들을 맺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새훈 감독님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었거든요. 이야기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새훈: 관계를 가깝게 맺을 수도 있고, 멀리서 맺을 수도 있고,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답이 나오거나 규범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참사의 유족분들을 만나게 되면 조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상당히 많고, 그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히 맞아요. 유족분들을 위해서라는 이유는 분명히 타당하지만 그것에만 의존하는 거는 어쩌면 무책임한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어요. 유족분들 혹은 참사 당사자라는 이름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시도에만 모든 책임과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렇게만 우리의 시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유족분들과 거리를 두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소통할 일이 있으면 저는 굳이 나서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가깝거나, 멀거나 어떤 하나가 더 좋은 것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관계들이 미디어팀 안에 있어야 저희가 회의를 하면서도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당사자라고 딱 불리지는 않지만, 참사와 관계를 맺으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더 만나려고 하고 있고, 저 또한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위치에서, 참사와의 관계 속에서 당사자성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반짝다큐페스티발 https://blog.naver.com/twinkledocu

 


허철녕: 새훈 님이 말씀하시는 질문을 해석하자면, 활동가로서 기록하는 관점과 창작자로 기록하며 고민을 키워나가는 방식이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록한다는 행위는 똑같지만 그것이 갖는, 조금 이상한 표현일 수 있지만, 욕망이나 그것이 가닿는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창작자와 활동가라는 위치 사이에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에 대한 딜레마가 있으실 것 같아요. 

빼갈: 1주기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크게 딜레마를 겪었어요.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가라는 것이 딜레마의 내용이었는데, 저희가 소위 말해서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을 가진 인물만을 선택할 수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공평하지 않아 보일 수 있기에. 그래서 인터뷰를 하고 싶은 분들을 자원받았어요. 근데 이것이 가족분들의 마음을 살펴서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을 발굴하게 됐고, 이야기들을 발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거대한 강이라는 것이 건널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이에요. 저희는 사람들의 마음을 챙기기 위해 다양한 인물들을 만난 것이긴 한데, 아마 그냥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진 않았겠죠. 그런데 그 선택을 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창작자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는 면에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오연: 저도 비슷한 것 같은데요. 미디어팀에 합류할 때 저의 고민은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만들었을 때 느끼는 부담감이나 죄책감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나 큰 사회적 참사인데 이걸 내 이야기로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미디어팀에 들어오면서 나의 고민을 조금 더 언어화해서 사회적인 서사 속에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관점은 당연히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사회적 서사로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컸고, 그런 면에서 활동이 해야 하는 목표와 다큐멘터리가 해야 하는 목표가 사실 비슷했다고 느꼈어요. 참사의 재현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우리가 갖게 되는 피로도가 있잖아요.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많은 대중은 참사 이후에 벌어질 정부의 대응이라든지, 우리가 해야 할 싸움이라든지, 이를테면 기억 투쟁, 이런 것들이 반복된다고 느끼며 피로도와 부담감을 느낀 것 같거든요. 그걸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게 활동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중 하나의 수단이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1년 동안 활동하면서 이런 결심을 했지만, 막상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하면 또 갈등하게 될 것 같긴 합니다. 계속 조율하면서 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시원: 저는 활동가로도, 감독으로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두 개가 목표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분명 제가 활동가로서 현장에 갔을 때와 감독으로서 촬영하러 갔을 때 카메라를 어디에 두고 찍느냐는 다른 것 같아요. 미디어팀의 일원으로 갔을 때는 기록물의 필요성을 생각하며 카메라가 많이 몰려 있는 장소로 향하게 되는 것 같고, 개인 작업으로 현장을 찾았을 때는 내가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며 카메라가 몰리지 않는 곳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 같아요.

새훈: 누가 저에게 활동가냐고 물어보면, 저는 언젠가부터 활동가라고 말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면 어떤 단체 소속이에요? 라는 질문이 따라붙을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단체에 소속되어야만 활동가냐는 의문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더욱 활동가라는 말을 쓰곤 했어요. 그런데 이곳에 소속되면서 다른 의미로 활동가가 되다 보니, 창작자와 활동가의 경계를 더 뚜렷하게 생각하고 작업과 활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를테면, 계속 반복하는 말 같은데, 미디어팀은 분명 시민대책회의 소속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 의무가 분명하게 있다고 느껴요. 어떤 사안과 운동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 개인으로 동의하든, 하지 않든 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당위에 의존하지 않는 것, 대답할 수 없는, 어쩌면 무책임할 수도 있는 질문들 속에서 방황하면서 뭔가를 밀어붙이는 것은 활동가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무언가를 작업할 때, 어떤 질문으로서, 어떤 서사로서 반응할 것인가, 쉽게 승인된 방식으로 봉합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질문하게 되는데, 이런 질문은 창작자의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허철녕: 네 분들께서는 전부 20~30대이십니다. 요즘 세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요즘 세대가 개인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되곤 하잖아요. 한 편으로는 어느 시점부터인가 우리가 재난이나 참사가 벌어졌을 때 그 사건들에 감정을 이입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려고 하는 것들이 쿨하지 않다, 멋있지 않다고 인식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내 고통이 아닌 문제들에 관심을 주는 것이 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태원 참사라고 하는 것들이 네 분께 직접적 관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사자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일지라도 참사에 공감하거나 참여하거나, 감정적으로든 실체적 물리적으로든 연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빼갈: 저는 이태원 참사가 당사자의 범위가 굉장히 넓은 참사라고 생각해요. 다른 참사와 달리 수많은 생존자와 목격자, 구조자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친구,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있어요. 당사자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고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당사자인가 떠올려 봤을 때,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에 공감한다고 해도, 그 당사자의 위치성을 제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태원에 함께 살았던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은 있지만 참사의 생존자이자 목격자가 겪었던 트라우마를 제가 겪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참사에 대해 공감하고,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관심이 가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과정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별은 알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가 “갔다 올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시퀀스는 “갔다 올게라는 그 평범한 말을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라는 말로 마무리 되는데요. 영화를 본 유족분께서, 유족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고 여쭤보시더라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당사자가 아니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것인가 생각해 봤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서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유족이어서가 아니라, 서사를 탐색하는 과정에 있어서 깊이 있게 공감했기 때문인 것 같고요. “갔다 올게”라는 문장은 주인공들을 주인공으로서의 위치로 만드는 과정에서 찾아낸 표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창작자로서 공감하고, 창작자로 당사자성을 갖게 된다는 것은 곧 서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연: 저도 덧붙여 이야기해 보자면, 당사자성이라는 것은 너무 상대적인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어떻게 내가 감히 당사자라고 말할 수 있지’라는 생각하기도 하고요. 다른 한 편으로 ‘내 일이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오래 곁을 지키며 활동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할 때면, 그건 아마 내가 들어갈 자리가 참사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고, 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떠올리게 돼요. 그렇게 계속 활동할 동력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참사에 반응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낯선 일, 좋은 일이라는 표현을 많이 듣거든요. “쟤네는 좋은 일 하는 애들이다.”. 그러니까 보편적인 사람들은 안 하는 일이라는 뜻이잖아요. 이유를 생각해 보게 돼요. 공감에 대한 사회적 자원이 모두가 나눠 가질 수 없을 만큼 조그만 파이가 됐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참사에 대해 말할 때, 참사에서 더 고통받은 사람의 지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고 싶어요. 어쩌면 더 많은 사람이 참사에 공감하고, 당사자라고 느끼고, 내 일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자원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회적 자원이 많아져야 더 많은 공감과 참여가 많아질 수 있다는 방식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참사를 자기 일이라고 느끼면, 아까 새훈이 이야기했던 〈벌새〉처럼 자신에게 참사가 어떤 경험이었는지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져야 우리 모두가 이 참사를 더 오래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진상 규명도 되고, 책임자 처벌도 되고,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시스템의 변화도 그때 더 잘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원: 저는 이태원 참사 미디어팀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당사자라고 일컬어지는 유가족분들 혹은 생존자분들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어요. 제 주변에는 이태원 참사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 또한 이태원 참사 이후에 저처럼 인파가 밀집된 곳을 무서워하는 거예요. 그럴 때 이 참사는 내 일일 수 있다고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몸이 현장에 있지 않으니, 생각이 점점 멀어지더라고요. 미디어팀 활동으로 주기적으로 현장에 가면서 스스로와 참사가 멀어지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사자의 범주를 어디까지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측면에서는 누구나 당사자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새훈: 지금은 참사 당사자라는 경계가 딱 정해져 있잖아요. 정책의 관점에서는 ‘어디까지 피해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경계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죠. 그런데 이 자리에서 서사, 혹은 참사와 관계 맺는 개인으로서의 이야기를 하자면, 당사자라는 의미를 ‘나는 어떤 위치 혹은 서사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인가’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운동이나 활동 등에 분명히 참여가 저조해 보이고 실제로 그런 것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우리가 운동이나 활동이라고 불러온 방식과 다른 것을 해내고 있지 않을까, 다만 그것을 운동이나 활동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보고 싶어요. 질문과 더불어 경험을 나누자면, 어떤 분은 “나 이태원 참사 관련 집회에 갔었어. 그거 윤석열 탄핵 집회던데”라고 자신의 이해를 말하시더라고요. 둘 간의 관계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우리가 활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참여가 저조하거나, 참여의 장벽이 높아진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기도 해요. 다른 의미에서 참여의 장벽을 말해보자면, ‘나는 무엇도 아닌데…’라는 감각. 저는 미디어팀으로 활동하거나, 이태원에 대한 작업을 한다고 말했을 때, 계속해서 관계성에 대한 제 나름의 변명을 해야 했어요. ‘나는 이태원을 언제부터 자주 다녔고…” “그날에는 일이 있어서 이태원에 가려다가 못 갔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나름 승인이 돼요. 이렇게 말하면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말하면서도, 저는 ‘사실 그것 때문이 아닌데…’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어느 순간 이유를 말하지 않기 시작했거든요. 어쩌면 이렇게 과정 속에서 연루되면서 참사와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이 대부분의 참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참사에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혹은 영화를 통해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아니면 이런 포럼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한 명의 사람으로서 참사에 대해 뭔가를 해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리해 보자면 누군가의 당사자성이 낫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각자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의 당사자성이 낫다고 말하다 보면 정작 당사자 사이에서도 위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허철녕: 당사자라는 말에 정확히 대응하는 영어가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어떤 이야기인가요?

새훈: 분명 당사자라는 말은 번역되고 있지만, 어떤 번역자께서 그것을 하나의 정확한 단어로 번역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할지 논의를 나누며, 참여자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participant를 사용하셨다고 해요. 어쩌면 당사자라는 말의 의미보다도, 당사자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해내는가에 집중해서 participant로 번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반짝다큐페스티발 https://blog.naver.com/twinkledocu

 


관객: 경험을 짧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가 신촌에 있는데, 이태원 참사 유가족 시위를 보게 되었어요. 매번 고정된 시간에 회사 앞을 지나셨던 것 같고, 저희 회사는 6층에 있어서 그걸 내려다볼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회사 직원들끼리 다 같이 그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주목을 못 받는 인상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다 함께 걸을까?”라고 말했지만 업무가 있어 그러진 못했어요. 그러고는 다음 시위가 있었고, 그때는 혼자 목격했어요. 창문을 열고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 목 밖으로 안 나가더라고요. 평소 나에게 가능한 바운더리 안에서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곤 했는데, 왜 그때는 말이 안 나갔던 건지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어요. 그 일이 제 안에 어떤 침전물을 남겼어요. 후원을 하거나, 투표를 하거나, 이런 포럼에 참석하거나 관련된 영화를 유료로 보는 등의 방식으로 간접적인 참여를 하고 있는데,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이 침전물을 없애고 싶어요. 여러분들께서는 여러 가지 활동들로 침전물을 안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활동을 시작하기 이전, 경계에 서 계셨을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오연: 저는 활동을 하면서도 침전물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 이후에 포스트잇이 많이 붙었잖아요. 그걸 정리하고 기록하는 팀이 있어요. 거기에 제일 많이 있는 말은 “미안합니다”인 것 같아요. 그것이 우리가 오늘 이야기 나눴던 이태원 참사 서사의 빈틈이자 구멍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참사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선악이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누구의 탓을 찾아서 처벌하면 된다는 것이 명확하지 않고…. 옆에서 참사 이후를 옆에서 지켜보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도 질문이 남아요. ‘만약 진상규명이 되거나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우리가 이 참사로부터 치유될 수 있을까? 우리가 목격했던 그날 밤의 수많은 영상, 우리가 이 과정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이태원 참사가 저에게 주는 인상이거든요. 그걸 명확히 설명하거나 해소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별은 알고 있다〉 상영회를 다니면서 “이 참사에 어떻게 보탬이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영화를 봐주세요.”라고 연출자의 위치에서 대답을 하지만 사실은 그 일로 해소가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태원 참사를 말하는 새로운 공간, 서사, 무엇이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손에 잡히는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고민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허철녕: 죄책감을 덜기 위한 많은 행위 중 대표적인 것이 투표 같아요. 예를 들면,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정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부 여당을 투표로 심판하면 자신의 죄책감이 덜어질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게 투표를 하고 무언가를 해냈다며 뿌듯해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사실 그것은 해소가 아니고 변하는 것은 없거든요. 어쩌면 죄책감을 해소하는 것보다는 이태원 참사가 남긴 질문들을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의미화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채팅창을 통해 미디어 활동 중 현장이나 유가족분들과의 관계에서 배우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빼갈: 무엇을 배웠다기보다,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 있어요. 사소한 일인데, 한 어머님께서 오연에게 오셔서 “감독님, 10시에 분향소에 가면 아버지 한 명이 새들이랑 행진하는 모습을 찍으실 수 있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데 마음이 전달되더라고요. 어쩌면 대단한 게 아니잖아요. 한 아버지가 시청 분향소에서 새 모이를 주고, 그 새들이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광경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굉장히 열심히 알려주시더라고요. 그 마음이 너무 좋았고, 여기까지 관계를 쌓아가는 데에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관계를 쌓아간다는 것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이태원 유가족분들은 서로를 찾기까지 오래 걸렸고, 서로를 찾은 다음 해소하는 과정도 굉장히 오래 걸렸거든요. 이분들께서도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많이 질문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관계 맺기에 용기 내기를 가장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허철녕: 반대로 유가족분들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공감의 한계가 느껴진 순간이 있는지 여쭤보신 분도 계십니다.

빼갈: 저는 개인적으로 친구가 떠났을 때도 그렇고, 유족분들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고 표현하실 때 잘 공감이 안 돼요. 너무도 착하고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들이었다는 건 이해가 되거든요.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도 알겠어요. 그리고 제가 죽더라도 제 친구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것 같아요. 그렇게 재현될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어쩌면 그게 사람을 납작하게 보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훈이 말했었던 것이 있는데, 사회적 참사로 본인이 죽게 된다면 어떤 유서를 남길 것이냐는 질문에, 유서 첫 마디에 “저를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기억하지 말아주세요”를 쓴다는 거예요. (웃음) 이런 것들로부터 피해자는 어떻게 재현되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오연: 빼갈이 이야기한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보완해 보자면, 참사 초기에 가족분들께서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이 정말 크셨을 테고, 그래서인지 ‘정말 열심히 살다가 하루 놀러 간 아이’ 같은 말씀들을 많이 하셨어요. 그러니까 놀러 갔다 죽었다는 비난이 워낙 많다 보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성실했는지를 계속 설명하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셨을 것 같아요. 그걸 설명해야 하는 상황도 무척 답답하고 억울하셨을 텐데, 최근에는 대학생들을 만나 간담회를 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이렇게 싸우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홍대에 간다거나, 신촌에 간다거나, 친구들을 만나 놀고 싶을 때, 노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만들고 싶어서다. 우리 아이들은 떠났지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을 즐기셨으면 좋겠다.”. 활동을 하며 우리도 많이 변해가지만, 유가족분들도 지난 1년 동안 활동하면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프레임,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로가 상호 보완하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새훈: 어떤 개개인의 한계보다는, 제도적인 것을 말해보고 싶어요. ‘유족이 되기 위한 조건이 제도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나?’, ‘그래서 실제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유족이 되고 싶어도 못 되는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그런 질문들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철녕: 채팅방 질문입니다. 미디어팀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새훈: 원동력이라기보단, 무엇을 외면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인 것 같아요. 힘들고 귀찮을 때도 있죠. 그런데 그만두지 못하겠어요. 잘 해낼 동력보다도 그만둘 힘이 없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미디어팀 분들도 그러시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시원: 미디어팀 활동을 한다고 하면, “좋은 일 하네” 같은 말을 많이 듣거든요? 그런데 그런 마음은 전혀 아니었고요. 이태원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특히 1주기가 지나고, 시간이 흘러가니 관심 없는 주변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이야기를 안 하게 되고, 마음이 멀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이 시기에 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미디어팀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관객: 이태원 참사와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 같고, 저 역시도 일정 부분에서는 관심이 줄어들기도 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고민하게 되는 것은 대화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보다는,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주제를 어떻게 꺼내야 할 지인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점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훈: 질문을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밥 먹다가, 혹은 카페에서 대화하다가 어떻게 주제를 꺼낼 수 있을까, 어떻게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인 것 같은데요. 저는 그런 대화를 시도할 때, 이를테면 이태원이나 애도라는 단어를 안 써보려고 해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내가 죽었을 때, 그게 뉴스에 나오고, 누가 집회를 한다고 하면 거기 갈 거야?”라는 식으로 물어봐요. 조언이라기보다는 제가 지금 취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시원: 저는 그럴 때 영화가 편한 것 같아요. 영화가 아니어도 유튜브 링크를 하나 보낸다거나,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문화예술의 영역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게 아니면 당위만으로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더라고요.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는 것 같고요.

오연: 질문에 맞는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서트 장면이 필요해서 이태원 골목에 촬영 하러 갔던 적이 있어요. 행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활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일 오후에 조용히 다녀왔던 것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그 골목을 지나면서 한마디씩 하더라고요. “여기가 참사가 있었던 골목이래”, “그날 뭐 했는데”. 그렇게 자그만 말들이 계속 들렸어요. 이 골목에 오면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의 이야기를 하는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줬던 날이었어요.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태원 참사는 멀리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늘 지나다니는 골목에서 일어났잖아요. 골목을 지나가는 활동을 만들어봐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사진 출처: 반짝다큐페스티발 https://blog.naver.com/twinkledocu

 


관객: 독립 다큐멘터리나, 소수자 정체성을 띤 활동들이 소수의 영역으로 남아있고 싶어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권력에서 벗어나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려는 것이지만, 그런 과정에서 레거시 미디어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의 벽이 있는 것 같아요. 자본의 문제라든가, 목소리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고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오연: 돈이 많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요. 돈이 있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있고요. 저희끼리 독립은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제도 안에서 이야기되는 방식에 균열을 내고, 쉽게 봉합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로 고민을 이어나가는 것이 독립영화의 태도이지 않을까 이야기 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 활동은 많은 파급력을 가져야 되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활동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은 건데, 그게 소수의 사람만으로 이룰 수 있는 변화는 아니니까, 대중성과 확장성을 가진 활동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돈이나 환경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담론을 만드는 일은 어쩌면 돈이 많은 것 보다 더 어려운 일 같아요.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새훈: 독립이라는 것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그것으로 끌어내고 싶은 것은 규범으로부터의 독립인 것 같아요. 독립 다큐멘터리, 혹은 소수자 정체성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의 명칭은 고정되어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늘 바뀔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독립 다큐멘터리의 확장을 기대한다고 말한다면 양적 증가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건 결국 다양한 삶들의 다양한 문제들, 다양한 질문이 나오게끔 하기 위함이어야 하지 않나는 생각입니다. 

빼갈: 짧게 덧붙이자면, 사실 〈건국전쟁〉이 부럽냐고 묻는다면 부럽죠. 100만 명이 보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집회 때를 생각해 보면 5만 명이 한꺼번에 제 영상을 집중해서 봐주시거든요. 그만큼의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일은 또 없지 않나? (웃음) 얄팍한 생각이었습니다.

허철녕: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요. 미디어팀 분들께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오연: 1주기 때 이태원 골목의 풍경을 보면서, 이제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2주기, 3주기, 계속해서 미디어 활동을 함께 해나갈 분들을 모집하고자 합니다. 올해 뚜렷한 활동 계획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고민하며 채워나갈 팀원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허철녕: 오늘 포럼의 주제가 “‘참사의 서사’는 어떻게 확장하는가”였어요. 그래서 마지막 질문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서사의 틈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각자 창작자로서, 뭔가를 더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빈틈을 찾아보기 위해 질문하고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새훈: 사전에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모든 것이 다 말해질 수 있고, 말해지고 있다는 전제 자체가 굉장한 구멍을 만든다고 말했었어요. 그런데 이 자리에서 미디어팀으로서 말하고 싶은 것은 여러 시간이 삭제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참사 내에서 구체적으로 풀어 말할 수 있는 여러 단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참사라고 표현하면서,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시간에서 발생하고 끝나버린 것처럼 이야기되는데, 그 안에 여러 시간들이 있고, 이전과 이후에도 여러 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더 많이 이야기되면 좋겠습니다.

시원: 이태원 참사의 당사자라고 불리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이태원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이태원 참사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연: 그날의 많은 영상을 우리가 온라인에서 접했잖아요. 지금은 다 내려가거나 사라진 영상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게 우리가 참사를 마주했던 첫 번째 방식이었던 것 같고, 그게 문제적이다라거나 부적절했다는 윤리적인 논의는 있었지만, 그것이 이 참사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이야기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미디어팀으로써 해보고 싶습니다. 

빼갈: 공교롭게도 다들 다른 것이 흥미로운데요. 저는 죄책감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그때 거기 가면 재밌겠다고 이야기해서 미안해”라든가, “나만 살아남아서 미안해”라든가, “그날 못 가게 말리지 못해서 미안해”라든가 수많은 ‘미안해’ 들이 있는데, 일부의 ‘미안해’만 수면 위로 나온 것이 아닌지, 수많은 ‘미안해’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