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위로하기 위하여
〈그날의 딸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04월 15일(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고훈 감독, 김석목 대표(스튜디오 설 / 〈그날의 딸들〉 공동제작)
진행 김구철 영화기자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기록입니다.
“양경인 작가님은 그런 일을 겪은 사람에게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하는지를 잘 알고 계신 분 같았어요.”
- 파치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정확히 아는 자만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 한국의 양경인 작가와 르완다의 파치스는 ‘그날’에 살아남은 생존자의 딸이다. ‘그날’의 흔적을 따라 이어지는 두 사람의 여정은 서로를 향한 위로에서 세상을 향한 용서와 연대의 목소리로 이어진다. 가벼이 소비되는 무책임한 위로 사이, 그들의 목소리는 묵직하고도 선명하게 들려온다. 귀 기울여 ‘그날’의 이야기를 듣는다.
김구철 영화 기자(이하 김구철):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GV 진행 맡은 영화 기자 김구철입니다. 이쪽은 〈그날의 딸들〉 연출자이신 고훈 감독님, 그리고 공동 제작자이신 김석목 대표님입니다.
고훈 감독(이하 고훈): 안녕하세요.
김석목 대표(이하 김석목): 안녕하세요. 공동 제작 맡은 김석목입니다.
김구철: 좀 먹먹하기도 하고 그렇죠. 저는 약간 울컥하기도 한데, 감독님과 김 대표님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 나누면서 풍성하게 알아가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여러분들은 4.3이나 르완다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 대학살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셨나요? 이미 사전 지식을 갖고 영화를 보셨는지도 궁금하고요.
저는 이 영화를 처음 접할 때, 약간 좀 부담스러웠어요. 물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이지만, 한 사건도 참 버거운데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두 사건을 함께 풀어낸 다큐를 내가 볼 수 있을까?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보고 나니까 참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막 강요하듯이 뭘 가르치고 주입하는 영화가 아니고 우리에게 설명해 주면서, 치유와 연대를 말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꼭 4.3이나 르완다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다 보면 가족이나 지인들, 친구와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에 동참하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위로라는 게 감독님도 아시겠지만, 절대 위로가 안 되는 게 그거라고 하더라고요. 힘든 사람 옆에서 "힘내라. 너 힘내라, 파이팅."이거 하고 그다음에 "나는 더 해. 나는 더 힘들었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이게 제일 위로가 안 된대요. 그냥 이렇게 끄덕여주고 같이 눈물 글썽여주고 이런 건데. 그런 치유법에 있어,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가족에게도, 옆에 있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저렇게 다가가야겠구나’ 하는 느낌을 분명히 받았거든요.
4.3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극 영화도 있고요. 다큐도 많이 나왔고 소설도 있지요. 그러니까 이제 '속솜하라'라고 그러죠. 말하지 말라. 이렇게 가슴안에 꾹꾹 눌러 담았던 오랜 시간이 있었고, 6월 항쟁 이후에 이게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저도 영화 기자를 오래 하면서 여러 편의 4.3 관련 영화를 봐왔는데, 이렇게 르완다 제노사이드랑 연결시키는 건 처음이란 말이에요. 이게 제가 알기로는 처음입니다. 어떤 기획이셨는지, 처음에 르완다 대학살과 제주 4.3을 연결시킨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훈: 일단, 제 아이디어는 아니었어요. 르완다 제노사이드를 다룬 〈무라호 르완다〉라는 짧은 다큐가 있습니다. 거기서 화해의 마을, 그러니까 실제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마을에 살고 있어요. 그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짧은 다큐가 있는데, 그 다큐를 제작하신 대표님이 저한테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 대표님도 제주도 분이신데, 저한테 우리 4.3과 이 르완다의 어떤 학살에 관해서 좀 이야기를 같이 나눠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었고,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풀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와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다큐를 기획하게 된 거죠.
김구철: 그러면, 4.3과 르완다 대학살을 연결시키겠다는 그 기획이 먼저였군요.
고훈: 네, 그렇죠.
김구철: 그러면 생존자들. 그러니까 살아남은 희생자 가족의 딸들. 양경인 작가랑 파치스를 어떻게 연결하게 된 건가요?
고훈: 그 부분은 제가 생각을 해놓은 부분이에요. 딸은 이제 다음 세대잖아요. 다음 세대가 겪었야 했던 아픔들이 있을 것 같았어요. 마침 영화의 주인공인 파치스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찾아갔죠. 양경인 작가님은 제가 계속 서치를 해서 부탁을 드렸어요. 딸과 딸로서 만나서 서로의 고통을 느껴보고 공감하는, 그런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기획을 시작하게 된 거죠.
김구철: 관객 입장에서 화면 안에 희생자들이 느낀 그때의 기억, 감정들이 계속 뿜어져 나왔으면 굉장히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을 텐데요. 양경인 작가님이랑 파치스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또 자기가 겪은 일들을 풀어내는 과정에 객석에서 같이 참여하는 느낌이 분명히 들더라고요.
고훈: 맞습니다. 그거를 원했어요. 어떤 사건들을 나열하고 그 아픔들을 인터뷰하여 듣는 것도 하나의 영화적인 방법일 수 있겠으나 제가 4.3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르완다를 직접 목격한 사람도 아니니까요.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제가 바라보는 시선이 관객의 시선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뭘 아니까 관객들한테 뭔가 가르치고 보여주겠어’ 라기보다는 제가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아는 건 아는 대로, 느끼는 건 느끼는 대로 관객분들이 같이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김구철: 지금 말씀하신 거에 대해서 여러분들도 충분히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좀 편하게 볼 수 있었구나. 이런 느낌이 드실 텐데요. 감독님은 제주 출신이시고 지금도 제주에 살고 계시는 거죠?
고훈: 예, 맞습니다.
김구철: 다들 이렇게 '속솜하라' 하다 보니까 제주에서 나고 자라도 잘 제대로 모르고 계실 수도 있잖아요. 혹시 4.3하고 연관된 일이 있으신가요? 언제 처음 4.3을 접했어요?
고훈: 4.3을 직접 접하지는 못했고 사실 들은 것도 거의 없어요. 말씀하신 '속솜하라'가 조용히 하라는 건데, 제가 살면서 느낀 건 그거를 말하는 분위기 자체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저처럼 그 이후에, 한참 지난 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솔직히 4.3이라는 단어는 들어봤지만 이게 어떤 사건인지 잘 모르거나 무슨 사건인지 말했다가는 뭔가 당할 것 같은 느낌, 뭔가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을 계속 주는 그런 거였죠.
김구철: 제주에서 특히 그런 말을 꺼내기 어려웠겠군요.
고훈: 특히 그랬고, 그건 5.18도 솔직히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5.18을 대학교 가서, 도서관에서 책으로 보면서 정말 충격을 받았었거든요. 약간 분노하기도 하고 교육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분노했던 기억이 있어요.
김구철: 교육도 그렇지만, 언론도 큰 역할을 했어요. 저도 물론 영화 기자이지만,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했잖아요. 국민들이 제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동안 잘 몰랐어요. 광주는 그나마 빨리 알게 되고 그랬는데 제주는 더 늦었죠.여러분들도 그게 궁금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70년이 지난 일을 이렇게 모를 수가 있나.’ 해방 후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미국과 소련과의 권력 다툼 문제, 여러 가지 복잡하게 얽힌 문제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다음 정권에서 빨리 이걸 알리고 치유하고 이렇게 해야 했었는데, 꾹 눌러 담았죠. 그게 군사독재 정권이 이어지면서 계속 눌려왔던 거죠. 빨리 끊어야 했는데 애매하게 끊지도 못한 거죠.
고훈: 아예 그냥 아예 그 얘기를 하지 못했어요. 못했어요. 진짜로.
김구철: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 때 처음 특별법 제정되고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추모제에 참석했죠. 그때까지 계속 눌려 있었잖아요.
고훈: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할 때까지도 긴가민가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특별법을 만들었잖아요. 그때까지도 '이거 진짜인가. 이거 하다가 또다시 엎어지는 거 아니야. 괜히 또 그사이에 목소리 높였다가 나중에 해코지당하는 거 아닌가. 정권 바뀌면 또 우리 집안이 또 이렇게 해코지당하고 망하는 거 아닌가?' 이런 두려움을 항상 갖고 있는 거예요.
김구철: 그러면 이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르완다 대학살과 연결시키고, 또 양경인 작가와 파치스를 통해서 희생자의 딸들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 걸음 떨어져서 우리가 객석에서 스크린을 보듯이 여기까지는 됐단 말이에요. 근데, 영화에는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여러분께 조금 자세히 설명을 드리자면, 극 영화에는 시나리오가 있고 거기에 캐릭터도 나오고 어느 캐릭터에는 어떤 배우가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캐스팅을 해요. 그래서 만들어진 이야기를 찍는 게 극 영화잖아요. 근데 다큐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죠. 그러니까 ‘양경인 작가랑 파치스, 한국과 르완다의 딸들이 치유와 연대를 이어가는 얘기를 하자.’ 여기까지만 있는거죠. 다큐는 촬영하고 촬영한 분량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갈 수도 있거든요. 편집 과정에서 처음에 생각하셨던 방향이 많이 바뀌었는지, 어떻게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게 됐는지가 굉장히 궁금하네요.
고훈: 구조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중심을 잡는 게 조금 힘들었어요. 계속 저를 흔들었던 거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4.3이나 르완다의 어떤 아픔만 보여주기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였죠. 항상 마음속에 막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어떤 비판이냐 하면, 우리나라 못하고 있다. 르완다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뭐 하는 거야? 를 말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못하는 거지? 왜 그러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했고 찍었어요. 다 찍었는데 다 덜어냈어요. 우리나라에도 4.3 관련하여 용서를 하는 과정도 좀 있었고요. 가해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고요.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에서 너무너무 나간 거기 때문에, 너무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지점들을 편집하면서 많이 갈등이 있었죠.
김구철: 그럼에도 여러분들 느끼셨을 거예요. 북을 치면서 르완다 장면이 시작되잖아요. 제주도는 약간 아직도 눌려 있는 느낌. 특별법도 제정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4.3에 대해서 말하지만, 양경인 작가가 말씀하셨듯이 영화 속에서 전국을 다니면서 학생들한테 강의도 하고 이렇지만요. 북을 치면서 시작된 르완다 장면을 보니까 앞에서 본 제주는 아직도 뭔가 눌려 있는 느낌이 분명히 들었어요. 또 저는 그 마리아라는 분 케이스. 남편을 낫 같은 걸로 목을 쳐서 죽인 그 사람을 지금은 다 용서하고 가족처럼 지내고 있잖아요. 사실 마리아는 용서라고 하는데, ‘저게 진짜 용서일까? 저렇게 같이 앉아 있는 게 지금도 불편하지 않을까?’해서 제가 다 불안하더라고요. 분명히 감독님은 다 드러내셨는데도 분명히 그 대비가 느껴지더라고요. 근데 한쪽은 완벽하게 화해가 되었고 용서를 했고 이렇게는 느껴지지 않았어요. 지금 얘기했듯이 ‘저게 진짜일까?’ 이런 약간의 의문이 들더라고요.
고훈: 맞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더 연구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긴 하겠는데요. 어쨌든 실제는 맞아요. 그게 거짓이라거나 사람을 세워서 다른 국가에서 촬영오면 보여준다거나 이런 식은 아닙니다. 확실히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는 감옥을 살다 왔고 그 이후에 그 마을에서 살려면 용서를 구해야 했고, 피해자가 용서를 해야만 같이 살 수 있는 시스템이었어요.
김구철: 정부가 그걸 나서서 하는 거죠?
고훈: 네, 정부가 나서서요. 그렇지만, 영화에도 얘기가 나오는데, 강압을 한 건 아니예요. 강압을 한 건 아니고 개인들한테 그걸 넘겼어요. '용서하고 싶으면 용서해라. 하지만 용서하는 것이 이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걸 계속 교육을 하는 거죠. 솔직히, 계속 의구심은 들었어요. 이거 진짜 가능한 거야? 내가 누구한테 맞았는데,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거든요. 지금도 약간 의문이긴 합니다만, 그건 또 다른 주제로 다룰만한 소재인 것 같아요.
김구철: 제가 앞부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처음에 간단하게 4.3이 뭔지 자막이 나오죠. 1948년 4월 3일에 제주도라는 섬 자체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해 민간인들을 학살한 말도 안 되는 사건이죠. 거기 이덕구 사령관 그리고 약 300명 정도가 제주도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었고 그들이 갖고 있는 무기가 구식 소총밖에 없었대요. 근데 그걸 때려잡으려고 온 섬에 있는 민간인들을 학살한 거죠. 르완다 대학살은 더 복잡해요. 벨기에가 식민 통치하던 시기, 소수 민족이었던 후투족을 지배하기 위해 민족 갈등을 유발했어요. 벨기에의 장난으로 시작됐고 그 갈등이 실은 지금가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어요. 지금도 난민들이 있고 내전 상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저는 이 영화를 보고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적당히 궁금하게 만들어주시니까 제가 영화를 본 다음에 하루 종일 르완다하고 4.3을 검색하고 있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아마 그런 느낌 분명히 드셨을 거예요. 극장을 나간 뒤에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봐야겠다 하고요.
편집도 굉장히 정교하게 하셨을 것 같은 게 ‘르완다에서 왜 학살이 일어났지?’라고 궁금해하고 있을 때 파치스를 통해 살짝살짝 정보를 주잖아요. 우리가 영화를 계속 볼 수 있는 정도의 안내만 해주면서 살짝 던져주면,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고 정말 정교한 편집인 것 같아요. 관객들이 여기서는 어떻게 반응할지, ‘여기 좀 지루하겠다. 이 정도만 알려줘야지’라는 예측을 하고 편집하신 건가요?
고훈: 그렇게 되면 제가 너무 천재적으로 느껴져서 그건 아니고요. (웃음) 편집을 하면서 제 느낌대로 간 거예요. 이 점에서는 이렇게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정말 말씀대로 ‘톤을 좀 잘 유지할 수 있을까’그걸 계속 고민하면서 편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김구철: 사실 이런 다큐는 톤 앤 매너가 굉장히 중요한 게 관객들을 갑자기 확 잡아끌거나 그러면 멀미가 날 수 있거든요. 그 톤 앤 매너를 계속 유지하는 게 탁월했어요.
김석목 대표님은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세요. 김석목 대표님도 영화 연출자신데, 이번 영화를 고 감독님과 함께 연출하면서 프로듀서 역할도 하고 촬영도 하고 번갈아 하신 거죠. 그러니까 두 분이 같이 만든 공동 작품인데, 고 감독님의 어떤 매력 때문에 같이 작업을 하시게 된 거예요?
김석목: 처음에 전화가 왔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의 시작은 〈무라호 르완다〉라는 다큐가 있는데, 거기에 파친스가 주인공이에요. 그 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감독님이 같이 할 사람을 찾으신거죠. 감독님께서 저한테 와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 같이 하고 싶다’라고 얘기해 주셨는데 고민이 됐죠. 다큐는 아무래도 1년 정도 에너지를 써야 되다보니. 근데 소재를 조금 찾아보고 하고 싶어졌어요. 감독님과 ‘우리는 무슨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냐’를 계속 이야기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의문점이 남았으면 좋겠다‘인 거고 저는 그 톤을 감독님한테 계속 들으면서 촬영을 준비했죠.
저희가 양경인 작가님을 좀 늦게 찾았어요. 원래는 다른 분을 할까하다가, 우리가 추구하는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해서 급하게 찾으러 다녔고 감독님이 양경인 작가님을 찾게 되면서 팀이 꾸려졌고 그렇게 영화의 흐름을 잡았죠.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양 작가님에게 고 감독님이 어느 정도 투영이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감독님이 저한테 '이게 맞을까? 용서가 됐을까?'하셨는데, 양 작가님도 그 고민을 30~40년을 숙명처럼, 사명감처럼 해오신 분이에요.
김구철: 어머니랑 거의 의절하면서까지요.
김석목: 네, 감독님이 르완다에서의 여정에서 느꼈을 만한 것을 작가님은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했어요. 작가님이 파친스를 만나러 간다는 흐름은 있지만 저희도 이제 찍으면서 그게 생각처럼 안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실은 촬영할 때, 르완다에서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것도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요. 촬영을 그쪽에서 마리아처럼 허락한 사람들이 좀 있어요. 많이 인터뷰해본 사람들이죠.
김구철: 감독님과 대표님, 이렇게 두 분이 안 만났으면 사실 이 영화가 탄생 못할 수도 있겠네요. 두 분은 굉장히 중요한 만남이었네요.
고훈: 네, 저는 우리 김 대표가 안 하겠다고 그러면 안 할 생각이었어요.
김구철: 굉장히 돈독한 사이네요. 전체 촬영 기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김석목: 제주도 첫 촬영 일주일, 르완다 촬영 2주, 다녀와서 제주도 촬영 일주일 정도요.
김구철: 다큐치고는 굉장히 짧게 끝냈네요. 편집은 얼마나 걸렸어요? 편집이 사실은 더 오래 걸렸을 것 같은데요.
고훈: 촬영 한 달, 편집 세 달 정도요.
김구철: 다큐는 의도한 대로 안 되거든요. 극영화는 감독이 컷하는 게가 능하니까 다시 시키면 되잖아요. 다큐는 물론 어느 정도 순서에 맞춰 찍지만, 감독님이나 김 대표님이 의도하던 대로 느낌이 안 날 수 있거든요. 또 예상 못한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장면도 있으니까. 그래서 다큐를 만들 때는 최소 1년, 2년 아니면 4계절을 담기도 하죠.
고훈: 르완다는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어요. 진짜 이걸 못 찍으면 예산 때문에 다시 할 수가 없었어요.
김석목: 르완다가 열흘이 좀 넘었는데 예를 들면, 한 이틀 차 찍었는데 말씀하신 돌발 상황이 나오면 그날 저녁에 얘기하면서, 4일차에는 이런 사람이 꼭 나와야 되거나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 했죠. 왜냐면 작가님이 누군가를 만났는데 울림이 없으면, 감정이 전달이 안 되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계속 대응하면서 매일매일 출연자를 찾고 그리고 어디서 찍을 것이냐도 정하는거죠. 저는 항상 아침에 타임 랩스를 찍는다든가 했죠.
김구철: 호수 장면 같은 것도 날씨 안 좋으면 또 안 되고 그렇죠.
고훈: 수녀님은 즉석에서 섭외했어요. 숙소가 성당에서 운영하는 숙소였는데, 숙소를 운영하시는 수녀님이 영화 속 수녀님이세요. 얼마나 많은 분이 그 사건의 유족이었으면 저희가 우연히 만난 분도 그려셨던거죠. 이 분이 본인의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럼 죄송하지만, 혹시 다큐에 출연해 주실 수 있으신지 물으니까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그림이 나온거죠.
김구철: 열흘 갖고 그 정도 분량이 나왔다는 게 대단하고요. 정말 피말리는 작업이었겠네요.
고훈: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김구철: 되게 아이러니한게요. 성당에서 많이들 죽었잖아요. 성가대하던 아버지도 죽었고 많은 가톨릭 사제들이 학살에 앞장서서 가담했어요. 성당을 믿고 갔는데, 거기서 죽은 거죠. 근데 아이러니하게 그 희생장의 가족이 수녀님이 돼 있잖아요. 로마 교황청이 요한 바오로 2세 때는요. 공식 인정 안 했어요. 그 사제들이 개인적인 활동이었지, 우리는 공식적으로 사과 안 하겠다. 그러니까, 4.3도 우리나라가 ‘속솜하라’ 그랬듯이, 교황청이 인정 안 하다가 프란치스코 교황 때, 2017년 돼서 비로소 공식 사과를 했어요. 이거는 영화에는 안 나오는데, 저는 ‘왜 자꾸 성당에서 이렇게 많이 죽었지?’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사람들은 급하니깐요. 위험하면 성당. 교회에 숨고 목사님들이 지켜주길 바라잖아요. 근데 그 사람들이 더 무서운 가해자들이었죠.
고훈: 성당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관객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굳이 성당 결혼식 장면을 넣은 이유가 있어요. 성당이라는 그 공간 때문이었어요. 어느 공간은 지금 죽음의 공간, 죽은 사람 옷을 쌓아놓고 있는 공간인데, 또 어떤 성당은 결혼을 하고 새로 출발하는 곳이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 장면을 빼지 않고 넣었던 거거든요. 관객분들이 한 번 더 보시면 여러 요소들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구철: 영화 속에 숨겨놓은 장치, 이스터 에그라고 그러는데,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장면 안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여러가지를 느끼게 하네요. 제가 말씀드렸듯이, 성당에 몸을 의지하러 갔는데 거기서 사제를 통해서 죽음을 당했고, 그렇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 다시 수녀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고. 이게 약간 치유의 사이클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아무래도 감독님은 극 영화도 여러 편 만드셨지만, 액션.코미디.휴먼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으시잖아요. 본인이 나고 자란 제주 관련해서 〈제주 어멍〉이라는 해녀 이야기도 있고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로 관객들을 만나셨는데, 이 다큐를 처음 만드시면서 기대한 관객의 반응이 있을까요?
고훈: 네, 반응에 대한 기대를 하죠. 제가 시나리오 작가로 시작해서, 감독을 하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요 영화도 약간 극 영화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싶어요. 제가 다큐라는 어떤 전문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극영화의 연장선에서, ‘아주 리얼한 극영화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했죠.
김구철: 두 분이 촬영하면서 인터뷰만 계속하고 나레이션으로 무슨 일이 있었고, 그들은 지금도 용서하지 못하고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드라이한 다큐라면. 여기는 양경인과 파치스라는 배우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들이 계속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사실은 극영화처럼 느껴지는 거죠.
고훈: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명적인 건 정말 싫었어요. 설명을 해버리기 시작하면 이건 저랑 전혀 맞지 않는 영화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김구철: 조금 답답해하시는 분들 있을까요?
고훈: 그런 분도 많이 계셨어요. 다른 데 GV를 다니면, 그 질문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르완다는 어떤가요?” 근데, 저도 잘 몰라요. 제가 수업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거 틀어놓고 수업하는 선생님이 아니고, 저는 제 느낌을 영화로 만든 사람이기 때문에 관객분들이 공감해 줬으면 했어요. “저도 공부할 테니 우리 관객분들도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얘기를 하죠.
관객: 영화가 감독님 말씀하신 대로 서사적인 구조인 것 같아서, 하나의 모험을 따라가는 것처럼 잘 보았습니다. 인물의 변화도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고, 메시지도 되게 어려운 도전을 하셨는데, 잘 해내신 것 같아요. 분노와 복수는 우리가 상업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쉬운 건데, 화해에 대해서 얘기하기는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를 해내시는 것 같아서 되게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제가 궁금한 거는 촬영을 할 때, 촬영 감독님하고 어떤 얘기를 하셨는지. 저는 인물의 클로즈업을 좀 끈질기게 담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촬영적인 전략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석목: 네. 촬영은 일단 감독님한테 이제 공동 제작과 프로듀서 연락을 받으면서 스텝을 꾸렸어요. 저는 촬영 B감독을 맡았고 스텝을 꾸릴 때 신경 쓴 거는 이제 저보다 잘하는 친구를 데려와야 된다. 어차피 다큐는 스텝이 2명 아니면 3명이기 때문에, 촬영 감독을 하나 데려오는 게 제 목표였고 그 다음은 음악 감독이었어요. 촬영 감독과 음악 감독을 통해서 톤을 구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촬영을 하면서 감독님하고 얘기한 거는 계속 어떤 영화를 찍고 싶다라는 얘기였어요. “나는 이런 영화까지 찍고 싶어. 이런 감정을 담고 싶어.” 그러면 그 얘기를 듣고 저랑 촬영감독님이랑 그거를 이해하면서 찍고, 중간중간에 보여드렸어요. 그랬더니 “좋은데?” 그러셨고, 그래서 그 뒤로는 거의 저희가 촬영하는 것을 믿고 해주셨기 때문에. 어떤 걸 계속 찍고 싶다는 공유. 어차피 스텝이 3명밖에 없다 보니까 감독님이랑 제가 프로듀서 겸 촬영 B감독이었고 A감독 이렇게 세 명이 계속 얘기하는 게 촬영의 주된 내용이었어요.
고훈: 일단은 전반적인 촬영은 제가 많이 개입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촬영을 하면서, 극 영화처럼 “새로 말해주세요”라고는 안 했어요. 뭔가 만들어진 것을 하기 싫어서요. 그래서 아마 화면을 보면 좀 약간 어지럽다고 느낄 수 있어요. 이 이야기가 나와서 계속 듣고 싶은데, 안 찍고 있는 것도 있고 오디오는 있는데, 화면은 이쪽에 가 있고 이런 게 있는 거예요.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진짜 답답하다.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저는 그런 현장성이 되게 좋았거든요. 우리 김 대표님이랑 촬영 감독님에게 촬영하면서 클로즈 잡고 하는 거는 맡겼고, 제가 만약에 그 감정이 올라온다. 나도 감정이 욱한다. 그러면 한 번 더 들어가라고 툭 쳤어요. 이런 식으로 촬영을 했고요. 그리고 저는 극 영화 감독을 해서 그런지 인터뷰를 할 때는 좋은 장소를 찾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서 좋은 장소에서 촬영을 하고 싶다고 많이 얘기했어요. 선셋에서 두 분이 대화를 하는 장면 있잖아요. 포스터에도 나온 장면인데, 그런 것도 저희가 찾아서 갔죠. 그런 면에서만 제가 촬영적으로 얘기를 했지 나머지는 다 대부분 촬영 감독님이 알아서 촬영을 해주셨죠.
김구철: 양경인 작가님이 르완다 가서 부족 춤 같이 추고 이런 장면은 거 본인이 자발적으로 추신 건가요? 물론 그분이 르완다 분들하고 동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조금 어색해 보이기도 해서요.
고훈: 맞습니다. 시켰습니다 (웃음). “전통 옷을 입고 같이 했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어쨌든 말씀하셨듯, 화합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이제 여기 비하인드지만 춤 장면에 파치스의 어머니가 나와요. 파치스 어머니께서 인터뷰는 안 하겠다 하셨지만 춤 추는 장면에 출연하셨죠. 이런 팁은 저랑 대화하신 분들만 알 수 있는 팁입니다.
김석목: 촬영하고 밥을 먹으러 갔는데, 어머니께서 춤을 좋아하시고 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런 인터뷰는 부담스러우신데 춤을 찍겠다고 했더니 그건 또 OK가 나서, ‘이거는 소스가 좀 되겠다’싶었죠.
관객: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저는 질문보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드리고 싶은데요. 〈지슬〉도 몇 년 전에 봤었고 제주도를 보면서 되게 먹먹한 느낌이 항상 있었어요. 언젠가 제가 밤에 아무도 없을 때, 시커먼 제주도 바다를 봤는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근데 이 섬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생각을 하니까 누가 올라와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칠흙같다고 생각했어요. 하다못해, 6.25처럼 분단 국가도 아닌, 한 나라라고 명칭한 데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고 거기다가 제주도 분들이 ‘속솜하라’라는 단어를 쓰면서까지 쉬쉬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팠어요. 영화에서 아버님이 어머님 말씀을 하면서 먹먹하게 말씀을 못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제주도 분들의 지금의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것들이 정말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요. 요즘 세대들은 더군다나 굉장히 바쁜 세상에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계속 전달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어떤 다큐의 주인공들이 아니라 그냥 제 친구, 저 아는 누나, 저 아는 사람의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그런 연출들이 너무 저는 좋았고 더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어떤 발자취들이 계속 좀 담겼으면 하는 마음에 너무 감사한 응원을 드립니다.
고훈: 너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구철: 감독님께 응원과 격려의 말씀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관객: 저는 우연히 지난 4월 3일날 평산책방에 갔다 왔거든요. 그때 현기영 선생님의 북토크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제가 4.3에 관련된 배경 지식이 전혀 없었는데, 거기서 많은 얘기를 듣고 이 영화도 사실은 어제 급하게 예매를 했는데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용서라는 거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게 됐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 캔 스피크〉가 많이 오버랩 되더라고요.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왜 가해자는 너무 뻔뻔하고 철면피같다는 느낌이 들고, 오히려 피해자들은 숨고 그러는지. 왜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왜 바뀌지 않는지 좀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답을 구하는 질문은 아니고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해 질문드렸습니다.
고훈: 제가 촬영을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거는 제주도에서도 그렇고 “가해자를 용서했다”라는 피해자분의 말씀이었어요. 가해자는 용서를 구하지 않았는데, 피해자는 용서를 했다. 근데 왜 그러시냐고 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살 수가 없대요. 죽을 것 같다고. 가해자랑 뻔히 살아가는 게 내 눈에 보이지만, 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죽고 내 아이들 못 키운다라는 거. 현실적인 얘기고, 그 얘기 들으면서 공감이 됐어요. 그런 게 어쨌든 근데 그게 누구의 승리일까라고 생각을 해보면, 저는 피해자분이 그분한테 이긴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꼭 가해자를 해코지하는 것만이 진정한 복수가 아니라, 스스로 용서하고 또 살아가는 것. 잘 살아가는 그 모습이 또 다른 복수고, 또 다른 방식의 어떤 삶이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김구철: 선생님께는 올해 4월이 유독 의미 있는 4월, 또 기억에 오래 남을 4월이 될 것 같네요. 현기영 작가님의 북토크와 이어서 〈그날의 딸들〉까지 이렇게 관람하시고 감독님과의 대화도 나누신 이 사월 오래 간직하시길 바라겠고요. 사실 용서라는 게, 저희가 그냥 운전하고 가다가 누가 확 끼어들면 욕 나올 뻔하다가 ‘그래 오죽하면 저러겠냐. 제가 먹고 살기 힘든가 보다. 그래 빨리 가라.’ 이 정도 용서는 우리가 할 수 있지만 이건 다른 일이잖아요. 마리아의 용서가 진짜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도 용서가 그만큼 힘든 일이란 거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제 주위에 있는 그냥 흔한 용서까지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거든요.
고훈: 프랑코가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자기는 감옥에서 나오면 죄를 다 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자기가 용서를 받았을 때, 진정한 해방이 시작되었다고. 그런 면에서 프랑코는 운이 되게 좋은 거죠. 그게 가능했던 건, 진정으로 그 새벽에 가서 밭일을 해주고 정말 진정으로 용서를 구했잖아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진정한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김구철: 그 장면은 좀 공감이 가더라고요. 그 사람이 싫어할까 봐 새벽에 와서 대신 농사일을 해주고. 이 영화를 통해 그 어려운 화해, 용서 이런 분위기가 조금씩 우리 사회에 번져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감독님 소개를 좀 드리자면 다큐는 처음이시고 3월에 감독님 첫 코미디 영화 〈목스박〉을 공개하셨어요. 색다른 코미디 영화도 보실 수 있고 액션 영화들도 있었잖아요. 〈구마적〉이라는 영화가 있죠. 그리고 안성기 배우가 주연을 맡은 〈종이꽃〉이라는 휴먼 드라마도 있었죠. 장르를 넘나드는 그런 감독님이신데, 차기작 지금 구상해 놓으신 거 있나요?
고훈: 네, 다음 작품은 ott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것도 4.3 드라마입니다. 시나리오는 다 나온 상태인데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4.3이라는 배경 속에서 벌어지는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입니다.
김석목: 예를 들면, 5.18도 사실은 다큐가 먼저였잖아요. 다큐가 나오고 〈화려한 휴가〉가 나오고 최근에 〈오월의 청춘〉이라는 드라마가 나온 것처럼요. 아직도 제주는 무겁고, 르완다는 용서를 하지만 마체테가 집에 한 자루씩 있기도 합니다. 여전히 마체테가 침대에 붙여 있고 언제 또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지금이 군부독재인데 그게 이어지길 사실 바래요. 제주의 이야기가 다큐나 〈지슬〉과 같은 톤으로 많이 나왔다면, 그 사건 전에 평화롭던 시절 1950년부터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제주도는 45년에서 50년 사이에도 특수성이 좀 있었거든요. 해방 전에도 일본이랑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또 여러 특수성이 있는 상황이었죠.
김구철: 옛날에는 조선시대 때는 죄인들 보내는 유배지였죠.
김석목: 네, 그런 연속선상에서 4.3 이전부터 시작해 사랑과 우정 얘기를 다루면서, 시대극인 줄 알고 봤는데 4.3이야기로 이어지는 거죠. 전혀 모르고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야, 근데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네, 이런 식으로 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대물을 통해 대중에게 4.3을 알리는 느낌으로 기획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김구철: 기대됩니다. 감독님 시리즈물 나오면 여러분 많이 응원해 주시고요. 오늘 이렇게 이 공간에서 함께한 시간이 제게는 굉장히 의미 있었습니다. 오늘 관객분들 굉장히 수준도 높으시고요.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정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를 보신 관객들의 표정 그리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영화의 또 다른 연장선상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감독님, 김 대표님 어떠셨는지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고훈: 저는 항상 관객분들과 대화를 하면 힘을 얻고 갑니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 틀지 못하고, 그리고 틀었어도 많은 상영관에 상영하지 못할 때, 많이 좌절하고 힘들고 슬프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관객분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 나누고, 좋은 얘기 듣고 영화에 관련돼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또 힘이 생겨서 다음 작품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오늘 너무 감사하고 너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더 큰 힘 받고 갑니다. 더 좋은 작품 만들겠습니다.
김석목: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는 결국 보는 사람이 있어야 마지막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이 이야기를 좀 더 알아봐 주시고 궁금해 주실 것 같아서 영광이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구철: 오늘 늦게까지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 이 대표님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감독님들이 “영화는 스크린에 던져 놓은 건 50%까지이다. 관객들이 극장을 나설 때, 그제서야 영화는 완성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그날의 딸들〉 영화를 완성해 주신 여러분께, 감독님과 김 대표님과 함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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