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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공간성
〈우리의 하루〉와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 관객기자단 [인디즈] 진연우 님의 글입니다.
홍상수의 영화 속 ‘우리’는 느슨하지만 참 촘촘하게도 엮여 있다고 생각했다. 상원과 의주의 투 트랙 서사는 각각이 다른 공간에서 진행되고 둘은 절대로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지만 영화는 어쩐지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를테면 상원이 라면에 고추장을 풀어 먹을 때 “너 말고 누가 라면에 고추장을 넣어 먹냐” 하는 핀잔 아닌 핀잔에 “있어, 그런 사람~”이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할 때. 뒤이어 라면에 고추장을 풀어 먹는 의주의 모습이 보여지고 나면 상원의 독특한 식성에 따라붙는 타자의 은근한 시선이나 그의 면전에서 민망하리만치 켁켁거리는 사람 따위는 순식간에 아무렇지도 않아지고 마는 일들이 그렇다. 말하자면 둘은 분리된 시공간에서 서로 무던히 마주 보려고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사이에 삶이 틈입하여 쓸쓸하여도 서로에게 내뻗는 손이 선명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내내 오묘한 마음으로 극장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극에서 상원은 그러한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다. 상원의 맥락을 독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원과 의주의 관계에 한 감독과 배우의 얼굴을 덧씌워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깬 상원이 고양이 우리를 차근히 쓰다듬을 때, 맞은편에서 상원을 비추고 있는 커다란 거울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 밖의 외화면을 상상하게 한다. 거울이라는 기표가 으레 그렇듯, 이중적이며 동시에 자기 반영적인 속성을 지닌 영화는 스스로를 실제와 픽션 사이에 위치시키고 아무것도 아닌 듯 시늉하며 관객에게 간접적으로 무언가를 상기시킨다. 한때 연기를 하다가 배우를 그만둔 여자가 “누구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자극을 줬다”고 말할 때, 최근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늙은 시인이 하필이면 딸 하나 있는 이혼한 남자일 때. 그러다가 ‘그 유명한 가위바위보’를 하며 하하하 한바탕 웃고 말 때. 전부 순진한 해석이고 이 영화는 그저 ‘상원’과 ‘의주’, 그리고 고양이 ‘우리’의 하루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 사이 연관 없는 연결고리가 치밀해서 떨어져 있어도 이토록 함께인 듯한 영화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 깊이를 부여하는 것은 분명 상원과 의주 그 자체는 아닌 듯했으니 말이다.
동시에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떠올렸다. 한 화면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 있는데 머릿수가 많을수록 더 외롭게만 느껴졌던 영화이다. 같은 시공간에 존재함에도 온정적인 교류를 거부하는 듯 철저하게 빗겨 있는 시선의 위치와 인물들을 고립시키는 단독 쇼트들이 한 가족을 외따로 둥둥 떠다니는 섬처럼 보이게 했다. 철새로 비유되는 가족들이 도래지인 엄마의 병실에 모여 잠시 앉았다 갈 때,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대화다운 대화 대신 모여 앉아 등을 맞대고 있는 것으로 그 의의를 충족하는 듯 보였다. 〈우리의 하루〉와 마찬가지로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또한 카메라 움직임이 극히 절제되어 있다. 오로지 쇼트의 변화와 계산된 인물 배치만으로 인물 사이의 거리를 뚝뚝 끊어 놓으며 사이사이에 서먹함을 채워 넣는다. 이렇듯 상대방의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의 차가운 배치들은 〈우리의 하루〉와는 다른 목적의 설계를 보여 준다. 두 영화 모두 쓸쓸함과 사이로 얼핏 감각되는 온기의 가닥을 지배 정서로 다루고 있지만 그 느낌이 묘하게 다르고,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속 혈연 공동체가 아무런 관계도 아닌 〈우리의 시간〉 속 상원과 의주보다 멀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어쩌면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속 어머니가 괴사한 발에 페디큐어를 바르는 장면으로 두 영화를 함께 묶어 볼 수도 있겠다. 어떤 마음일까, 썩어 잘라내야 할지도 모르는 발에 정성스럽게 패디큐어를 칠하는 마음은.
* 작품 보러 가기: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정승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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