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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리뷰: 생존을 신고해야 하는 시대에

by indiespace_가람 2023. 10. 2.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리뷰: 생존을 신고해야 하는 시대에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소정 님의 글입니다.

 

 

  듣보인간이라니,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내 주변의 수많은 듣보인간들이었다. 여기 나오는 듣보인간들과 비슷한 꿈을 갖고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뚜벅뚜벅 자신의 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 언제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왠지 슬펐다. 영화는 분명 이들의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를 담고 있었고 나도 그들의 패기에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군분투를 결국에는 하나의 영화라는 결과물로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현장에 나도 함께 있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영화는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한 가수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성덕’들의 이야기라는 소개문구로 홍보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실력을 인정받아 스타덤에 오른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진 과정을 담기 때문인지 실제로 개봉날 영화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대부분 이승윤의 팬들로 보였다. 영화를 찾은 팬들은 이승윤을 보러 온 것 같았지만 영화의 정수는 사실 이승윤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듣보인간 권하정, 구은하, 김아현에 관한 것이다. 감독들도 이건 이승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임을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었다. 영화의 제목이 이승윤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들에 대한 것임은 그래서 자명해보인다.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듣보인간’이란 ‘듣도 보도 못한 인간’의 줄임말로 어디서 본 적 없는 특출나고 놀라운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하찮거나 쓸모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에 등장하는 하정, 아현, 은하는 자조의 의미를 담아 본인들을 ‘듣보’라고 소개한다. 셋이 처음 만든 이승윤의 뮤직비디오가 ’무명성 지구인’이라는 곡인 것도 그래서일까. 이들은 영화과를 나왔지만 꿈을 포기하고 방황하다 자신들을 ‘듣보’라 부르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절망의 끝에 다다른 것 같았을 때, 자신들이 이 세상에 버젓이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해 쏟아부은 힘으로 바로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실제로 하정이 ‘저는 이 다큐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뻥 아니고 진짜 걸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지치고 싶지 않다, 성공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살고 싶다. 이 말들의 동의어는 지쳤다, 지금은 누가 봐도 실패한 삶이다,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일 것이다. 영화에서 이들이 외적으로 하는 말이 전자의 것이라면 내가 읽은 것은 뒤의 말이다. 다큐멘터리에는 이들의 간절함과 그간의 막막함이 너무 잘 녹아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고군분투 우당탕탕 뮤직비디오 제작기를 보며 이들을 응원하게도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 한켠이 쓸쓸해진 것도 같다. 영화의 듣보인간 셋과 내 주변의 듣보인간들이 너무 자신의 현실을 자조하지 않고 너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파헤치는 ‘덕질’이 삶의 모든 영역으로 적용되면서 단지 순수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좋아하기만 해서는 안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고 심지어는 생존까지 신고해야 하는 지금, 효용성 없는 사랑은 살아남기 어렵다. ‘덕질’과 ‘현생’이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만약 운이 좋아 ‘덕업일치’라도 된다면 행복한 삶이라고 인정받는다. 그래서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의 성취가 덕업일치의 성공사례로 기념할 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덕질의 현주소를 돌아보게도 하는 것 같다. 성공하지 못한 덕후는 결국 듣보인간이라는 말로 정의되는 걸까,라는 혼잣말을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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