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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지옥만세〉: 견뎌보는 삶

by indiespace_가람 2023. 9. 5.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지옥만세〉 스틸컷

 

견뎌보는 삶
〈지옥만세〉〈잠자리 구하기〉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글입니다.

 

 

〈지옥만세〉의 ‘효천선교회’ 안 아이들은 ‘낙원’에 가기 위해 패턴화된 단체생활 안에서 지도자의 말에 성실히 따른다. 낙원에 갈 수 있는 이는 봉사점수를 가장 많이 받은 한 명뿐이다. 어른들은 그곳에만 갈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말한다. 혜진을 낙원에 보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다 바치는, 심지어 채린에 비해 봉사 점수가 모자란 혜진에게 자신을 내려치고 회개 점수를 받으라 말하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효천선교회’는 우리네 학교와 다르지 않고, 아이들에 대한 착취와 어른들의 자발적 상납으로 유지되는 낙원의 이면은 학벌과 연고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 그래서 자녀를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한국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회가 제시한 정상생애주기를 잘 따르면 - 열심히 책상에 앉아,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후, 가정을 이루면 - 그제야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거짓된 약속은 영화 속 사이비 단체 ‘효천선교회’가 제시하는 ‘낙원’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믿음에 빠진 이들은 낙원의 존재를 믿을 수 없는 자들을 배척한다. 혜진이 열심히 딴 토마토 수확통을 누군가 엎었을 때, 상황과 시스템을 의심하는 것 자체로 그는 마귀로 몰린다. 영화 안에서 나미와 선우가 재학 중인 학교의 모습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곳이 아이들에게 학습시키는 질서는 ‘효천선교회’ 혹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영화 밖의 지배적인 질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우는 거짓말한 적이 없지만, 그의 말이 쉽게 믿어지는 것이 아녀서인지 ‘구라’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고, 자살을 시도하는 나미에게 그의 어머니는 ‘짓밟혔다고 쪼그라들래?’라며 오히려 나미를 나무란다. 채린의 말을 빌리자면,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학교로부터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틀릴 리 없는 무결한 구조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고, 거기에 맞지 않는 이들을 배제하는 법을 배운다. 바깥으로 밀려난 아이들이 이쪽에서 죽음에 대해 문자 나누고 있을 때, 저쪽에서 폭죽은 뽐내듯 터진다. 함께 폭죽을 즐거워하지 못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이상한 것이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나미와 선우가 느끼는 자살 충동은 학교폭력이라는 문제와 닿아있기도 하지만, 영화 속 누군가 말하듯 “세상이 날 왕따시키는 것 같다”는 기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지옥만세〉 스틸컷

 


우리가 교육받은 개개인의 가치가 봉사 점수로만 구별 지어질 때, 대학의 이름으로만 결정될 때, 혹은 싸움 실력이나 또래 집단 속 사회성으로만 평가받을 때, 한정되고 자그마한 정상성의 기준에서 평가받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다른 가치를 쉽게 발견하거나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배제되는 기분을 겪고, 때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 〈잠자리 구하기〉는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들의 삶과 그 이후를 가까운 거리에서 담는다. 인물들은 카메라 앞에서 입시제도와 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눈다. 운동부인 한 친구는 교사들에게서 유기당한 기분을 나누고, 다른 친구는 대학은 거쳐야 하는 관문일 뿐이고 자신은 한국에서는 얻기 힘든 행복을 찾기 위해 세계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말한다. 연출자는 수능을 앞두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이 교사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지 증언하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가 말하는 ‘좋은 학생’으로부터 한 틈씩 비켜나있다. 그리고 스스로도 ‘좋은 학생’이 될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 지배적인 가치로부터 목 졸려 간다. 부모와 사회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느끼는, 그리고 어쩌면 자신 또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느끼는 연출자는 재수생의 신분에 놓인다. 수험생은 지나가는 시기일 뿐이니, 모든 것에 단념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 앞에서 아이들의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그렇기에 때때로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연출자는 자신의 몸을 해친다. 

 

 

영화 〈잠자리 구하기〉 스틸컷

 


연출자는 1년의 세월을 더 보낸 뒤 자신과 부모 모두 인정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 모든 것이 제대로 시작될 것이라는 말을 잠시나마 믿어보지만, 그건 결코 사실이 될 수 없다. 삶을 채우던 불안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슬픈 일이 생기곤 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삶을 견디게 하는 자부심을 발견할 수 있을까. 〈지옥만세〉의 아이들은 지옥 같은 세상의 단면을 가진 ‘효천선교회’의 사건을 이겨내며 마땅한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자신을 위해 싸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그런 드라마틱한 일들은 벌어지지 않고, 우리를 옥죄는 구조는 몸을 숨기고 있다. 성장은 요원하고, 생존 또한 힘겹다. 그래도 우리는 〈잠자리 구하기〉의 연출자가 끝내 잠자리를 구해내듯, 〈지옥만세〉의 아이들이 “오키오키”의 태도로 내일을 맞이하듯, 결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를 바라보며 “죽고 싶지 않다”고, “꼭 건강하게 살자”고 결심을 갱신해나가며 내일을 견딜 수 있다면 좋겠다. 나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나비가 되지 못한 우리들, 약속받은 낙원으로의 초대권을 얻어내지 못한 우리들이 느끼는 불안과 자살충동은 더 많이 이야기 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나비와 낙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모두가 알게 되면 좋겠다. 그때까지 삶을 조금 더 견뎌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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