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울타리의 교집합을 문지르며
인디쇼츠! 인디스페이스X연남가든 8월 상영
〈가짜뉴스: 책임 윤리의 민영화〉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8. 26(토)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트레이드〉김민주 감독, 〈금정굴 이야기〉전승일 감독, 〈창진이 마음〉궁유정 감독
진행 우정원 배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채운 님의 기록입니다.
인디쇼츠를 처음으로 관람하는 날이다. 서로 다른 영화들이 어떻게 한 몸이 될 수 있었을지를 궁금해하며 인디스페이스로 향했다. 토요일 점심, 쨍한 햇볕 아래 홍대입구는 예상대로 붐볐다. 덥고 북적이는 번화가를 빠져나가 도착한 상영관은 어느 때보다 시원했다. 쾌적한 공기에 편안해하던 중 영화가 시작했다. 첫 번째 영화 〈트레이드〉부터 〈금정굴 이야기〉 마지막 〈창진이 마음〉까지. 세 편의 영화는 마치 굵직한 사슬로 이어진 것처럼 그 이음매가 울퉁불퉁하게 느껴졌다. 내내 품고 있던 궁금증이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까다로운 질문의 벽 앞에 놓인 기분이 들어 잠깐 고심에 들었다.
하지만 감독님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해소되었다. ‘익숙했던 공간에 낯선 의문을 붙여보는’(김민주) 시선, ‘서로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전승일) 이야기, ‘영화는 정말 살아있는 것이라는’ (궁유정) 깨달음. 세 영화감독이 건네준 문장들은 각 영화 어디에 가져다 대보아도 어색함이 없다. 사소해보이는 원칙들을 성실히 지켜낸 영화들. 이들에 대한 호응일까. 이날 관객들은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으면서 가지각색인 질문들을 보내주었다. 형형색색의 이야기 보따리가 풀린 현장에 함께 가보자.
우정원: 관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제 GV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모더레이터를 맡은 배우 우정원입니다. 참여해 주신 감독님들 앞으로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레이드〉 김민주 감독, 〈금정굴 이야기〉 전승일 감독, 〈창진이 마음〉 궁유정 감독님입니다. '로맨틱 디스토피아'는 시대적 가치 혼란을 영화적 시선을 통해 재정의 해본다는 기획의도로 시작되었는데요. 오늘은 '가짜뉴스: 책임 윤리의 민영화'라는 제목을 가지고 세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감독님들 반갑습니다. 오늘 참여하신 소감 간단히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민주 감독(이하 김민주): 안녕하세요. 〈트레이드〉 감독 김민주라고 합니다. 같이 묶인 섹션들이 색깔이 서로 다르면서도 여타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책임 윤리의 민영화' 라는 재미있는 소재가 다른 작품 간에 서로 묶일 수 있다는 점이 되게 흥미로웠어요. 작품들 자체도 기대했던 작품들이라서 영화 재미있게 잘 보았구요. 오늘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전승일 감독(이하 전승일): 안녕하세요. 〈금정굴 이야기〉 감독 전승일입니다. 작년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제 작품들 모아서 특별 상영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금정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같은 장소에서 다시 이 영화 상영회를 하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우정원: 네 소감 감사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상영회를 통해 영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트레이드〉에서는 제가 익히 알고 있던 편의점에서의 사건, 사고가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전복되고 성별이 가지는 선입견에도 영화로서 뒷통수를 날리는 감탄을 하게 해 주셨고요. 〈금정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애니매이션 기법과 만나 입체적으로 정서를 전달해 주셔서 이 두 작품 모두 영화적 확장을 이루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트레이드〉 같은 경우, 감독님께서 영감을 받으셨던 경험이 있으셨는지 궁금하고, 〈금정굴 이야기〉는 어떻게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민주: 〈트레이드〉는 영감을 받았던 사건은 딱히 없구요. 제가 밤에 작업을 많이 하는데, 밤에 나갔다 그냥 들어오기는 심심해서 편의점에 많이 들러요.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재미있었던 건, 정말 불특정 다수가 어느 순간 들어올지 모른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들어가면서 실제로 이걸 느꼈는데요. 되게 묘한 공간이라는 걸 느끼고. 이렇게 개방된 공간에서 비밀을 나누는 두 사람들이 서로의 약점을 가지고 벌어지는 사건들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우정원: 감사합니다. 〈금정굴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을까요?
전승일: 저는 지금은 파주에 살고 있는데요. 고양시에서 꽤 오래 살았습니다. 8년 이상. 고양시에 사는 동안은 잘 몰랐는데, 2~3년 정도 지나서, 어느 해 였는지 그 연도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고양시에서 금정굴 위령제를 엽니다. 그 위령제 전날 금정굴 유족분들과 시민단체 분들을 한 분 한 분 알게 되었어요. 그 이후 촬영된 영상과 사진들, 자료들이 차근차근 축적이 되었고 그것들을 기록을 해오다가 그 즈음해서 영화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우정원: 궁유정 감독님의〈창진이 마음〉 정말 잘 봤습니다. 예전에 저희가 학생 인권에 대해 많이 이야기 했었잖아요. 그런데 요즘 교사의 인권에 대한 사건이 많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제 마음을 한쪽에 두기 어렵게 해 주시고 각자의 입장을 생각하게 해 주시고 영화적 확장을 통해 해 주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감독님 영화 오늘 상영회 참여하시게 된 소감을 간단히 부탁드려도 될까요?
궁유정: 오늘 영화 상영회를 빌어서 장선 배우님 비롯한 배우님들이 와주셨어요. 그래서 저한테 더 기쁜 자리이구요. 황금같은 주말에,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와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여기 시원하니까 (다 같이 웃음) 끝까지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정원: 네 이어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영화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다루고 있는데, 영감을 받은 경험이 있으실까요?
궁유정: 이걸 쓸 땐 없었구요. 저는 사실 선생님도 안 좋아하고 애들도 안 좋아해요. 그래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아무도 감히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명현이는 여러가지로 겉보기에 멀쩡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명현이에게도 있는 이상한 구석을 발견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일어난 상황을 보면서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영화를 만들 당시의 저는 창진이 편에 기울었었는데, 요즘엔 명현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서 영화라는 것이 정말 살아있구나, 시대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정원: 이제 관객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감상도 괜찮습니다.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들, 손 부탁드릴게요.
관객: 감사합니다. 〈창진이 마음〉 재밌게 봤습니다. 중간에 담임 선생님이 편의점에 들어가서 생긴 헤프닝에는 어떤 연출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궁유정: 원래 제가 이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옴니버스 장면이었어요. 그 때엔 지금처럼 5만원이 아니라 7만원이었어요. 명현이가 얼떨결에 7만원을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지불하게 되고 다른 곳에서 그걸 얻어오면 자기는 결국 0이 되는 거잖아요. 마이너스 7이었다가. 이후 편의점 아저씨는 명현이한테 7만원을 뺏기고 다른 곳에서 7만원을 얻으면서 생기는 고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누구도 잃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이 이야기를 따로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질 못해서 명현이가 편의점 가는 장면에서 이 이야기를 넣어보았습니다.
우정원: 네. 생각 외의 답변인 것 같습니다. 너무 재밌네요. 감독님 그 장면에도 출연하셨잖아요. 어떻게 등장하신 건가요?
궁유정: 아 특별한 건 없고 히치콕처럼 저도 제 영화에 잠깐 등장하고 싶었어요. 굉장히 배우님이 우려를 많이 하셨었는데. (다 같이 웃음)
우정원: 배우의 걱정을 사는 (다 같이 웃음). 네 연기 잘 봤습니다. 또 다른 관객 분 계실까요?
관객: 〈창진이 마음〉에서 궁유정 감독님이 나오셨을 때 염색을 하셨었을 때 일부러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왜 7만원에서 5만원이 된 건지도 궁금합니다.
궁유정: 아 그런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었어요. 진짜 편의점 알바생처럼 보이려고 했냐고. 그 당시에 제가 지푸라기 머리를 하던 중이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5만원이 7만원보다 쉽게 내어줄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5만원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이런 자리가 소중한 것 같은데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의 우정원 배우님도 반갑구요. 우선 〈트레이드〉는 제가 정말 감명깊게 봤는데, 마지막에 두 배우가 카메라를 짠 하며 응시하는 시선도 굉장히 놀랍고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그 이후의 이야기도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전승일 감독님 작품을 처음으로 감상하게 되었는데, ‘제노사이드'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오더라구요. 감독님이 창작 배경을 말씀 해주셨는데 따로 오늘 전해주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처음으로 금정굴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는데, 제주4.3 사건과 마찬가지로 충격적이게 다가왔습니다.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감독님께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창진이 마음〉도 참 잘 보았는데요. 제가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군이다 보니까 더 마음이 와 닿은 것들이 많은데, 아이가 중간에 개미를 죽이는 장면이 있고 이 때 ‘어머니를 먼저 죽였다.’는 대사가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거든요. 감독님이 뜻하신 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늘 세 작품 모두 잘 감상했습니다.
우정원: 감사합니다. 우선 〈금정굴 이야기〉에 대해서 전승일 감독님부터 답변 부탁드립니다.
전승일: 처음에 〈금정굴 이야기〉의 영문 제목을 고민하다가 'Story of 금정굴'이라고 하면 영어권 국가 관객들에겐 이 이야기가 전혀 전달이 안 될 것 같아서 제노사이드(genocide)를 사용하게 되었구요. 이 단어는 처음에 존재하지 않았었습니다. 폴란드의 법학자 라파엘 렘킨이 genos와 caedo를 합쳐 만들게 된 단어이구요. UN에서 제노사이드 방지 협약이 채택되고 제노사이드를 실행 뿐 아니라 교육, 협조, 방조한 자 모두를 처벌하도록 규정을 만든 바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한국 전쟁 전부터, 1948년부터 사실상 전국적으로 민간인 학살이 전개 되었기 때문에 우리 말로는 민간인 학살이라고 부르지만 국제적으로는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로 통용되기 때문에 그 용어로 지구촌의 다른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한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로 다루는 장르가 애니메이션인데, 제 이전 작품 중 〈오월상생〉이라는 애니메이션도 다큐멘터리 요소를 담고 있었구요. 초창기 작품들 중에도 그러한 것들이 많습니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융합하는 작업에 대해 오래 관심을 가져왔고 그렇게 해서 〈금정굴 이야기〉도 애니메이션 요소가 많은 다큐멘터리라고 보시면 될 것 같구요. 작년 작품인 〈운동화 비행기〉도 다큐멘터리 요소가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현재 만들고 있는 신경장애, 정신장애, 지체장애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애니메이션 요소가 있습니다. 시각적, 사유적 확장에 기여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요소를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우정원: 제노사이드에 대한 용어적 설명과 〈금정굴 이야기〉 영화적 기법에 대해 잘 들어봤구요. 그리고 〈창진이 마음〉에 대해서는 개미를 죽이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궁유정: 창진이가 엄마가 안 계실 것 같다는 것을 암시를 하고 싶었어요. 원래는 혼자 집에서 밥 먹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직접적인 것 같아서 뺐는데 개미 장면의 대사를 통해 혼자 지낼 것 같다는 내용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장르적인 요소라 할까요. 섬찟한 대사를 하나씩은 넣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정원: 〈트레이드〉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제가 두 주연 배우님의 굉장한 팬입니다. 심해인 배우님은 〈겨울 매미〉에서 너무나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청순하면서도 담백한 연기가 좋았어요. 송재룡 배우님은 10여년 전 제가 극단 '차이무'에서 올라온 공연을 보고 연기를 하기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이 두분을 캐스팅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민주: 〈트레이드〉는 학교 작품인데요. 심해인 배우는 학교에서 배역 오디션을 보고 뽑게 되었어요. ‘도경' 캐릭터를 파워가 있는 배우가 맡아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그런 배우가 학교에 있을까 생각했는데 당시 신입생이었던 심해인 배우가 오디션에서 보여준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송재룡 배우님은 그 동안 제가 봐 왔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바로 연락을 드렸어요. 감사히 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누추한 작품에 선배님께서 와 주셨습니다.
관객: 〈트레이드〉 김민주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송재룡 배우님이 연기하신 병태가 처음에는 말을 어눌하게 하다가 끝 무렵에 상황이 바뀌면서 그 어느때보다 또박또박하게 되잖아요. 인물이 저자세일 때는 일부러 어눌하게 말을 하고 자기가 우위에 점하면 강하게 몰아붙이는 인물로 의도를 하신건지 궁금했습니다.
김민주: 처음에 병태가 술에 취한 채 등장해서 어눌하게 말한다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병태는 사회 경쟁에서 뒤쳐진 채 어머니를 모셔야하는, 초라한 중년이잖아요. 그런 병태와 도경이 비록 세대는 다르지만 서로에게 느끼는 사회적 위치가 비슷할 거라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았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병태가 도경에게 우발적인 실수를 하고, 도경이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병태에게 혼내듯이 하대하고 막대하잖아요. 그러다 병태가 도경의 약점을 잡았을 때 총기가 바짝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정원: 〈금정굴 이야기〉에 대해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영화에 대해 찾아보다 보니 여러 영화제와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으셨어요. 헝가리, 인도 뭄바이, 체코, 미국, 서울 국제대안영상페스티벌에서 수상하셨는데, 19회 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출품작으로 EBS 방송불가 판정을 받으셨다고 하셨어요. 그 때 정황이 조금 궁금합니다.
전승일: 작년이죠. EBS 다큐 영화제에 선정이 돼서 계약서를 쓰기로 했어요. 사실 영화제에서 계약서를 잘 안 쓰죠. EBS 같은 경우엔, 방송과 온라인 상영, 극장 상영 총 세 가지가 명기된 계약서를 작성하고 큰 문제 없이 극장 상영이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방영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영화제 측 담당자가 굉장히 당황한 톤으로 방송심의실에서 방송불가 판정이 나서 방송을 못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왔어요. 영화제 측 입장으로도 이해 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고 저도 강력히 제 입장을 밝혔어요. 그리고 당시에 구글 폼을 통해 연대 성명을 엄청나게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EBS 방송 심의실에서 이야기한 방송 불가 판정 이유가 너무나 추상적이었어요. 이런식이에요. '객관성과 공정성이 부족하다, 역사적 사실의 근거자료로 부족하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추상적인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이게 다 역사적 사실이에요. 숱한 역사학자들의 저서에 다 객관적으로 나와 있는 내용이고 심지어 보도연맹 사건만 하더라도 보도연맹 관련 희생자가 30만명이라 나와있는데 심지어 저는 그 수를 줄여 10만명 정도라 썼어요. 미군이 방조했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에요. '한국 전쟁 시기에, 이승만 정부 시기에 10만명 정도가 학살됐고 미군이 이를 묵인, 방조했다' 이 장면을 문제 삼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에 대해 감독인 제가 어떤 근거로 이러한 내용을 담았는지 그 출처를 자막으로 표기하겠다고 했어요. 이를 위해 아예 영상을 따로 새로 만들어 보냈는데도 결과적으로는 상영 불가가 됐어요. 그러다 상황이 종료된 후 가을에 국감에서 민주당 의원 두분이 EBS 사장께 집중적으로 추궁을 했어요. 그런데 사장님도 굉장히 두루뭉술하게 답했고요. 시민위원회로부터 보고를 받긴 했고 이미 처리 됐기 때문에 자기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답을 하니까 의원님들이 더 강력히 질의를 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심의를 더 꼼꼼히 보겠다. 이런식의 두루뭉술한 답만 하는 거에요. 방송에서 검열의 문제가 남아있다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이해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정원: 학술적, 국가적으로도 진실로 규명이 난 사건인데, 찾아보니까 MBC에서도 95년에..
전승일: MBC 〈PD 수첩〉에서도 금정굴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금정굴을 최초로 드러낸 게 MBC 〈PD 수첩〉 이에요. 그리고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 기구입니다. 국가의 예산으로 집행되고 법도 있는 국가기구예요. 그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금정굴 사건이 불법적인 학살이었다고 인정을 했어요. 국가적인 인정을 받은 사실이 있는데 방송사에서 불가 판정을 내린거죠. 이건 너무나 어이 없는 일이고 지금도 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현 정부에서 영화, 독립 영화, 영화제 등에 행하는 검열 등의 일들과 맥락이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정원: 〈창진이 마음〉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이 하나 있습니다. 중간에 창진이가 선생님을 기다리는 중에 드라마 '도깨비' OST를 부르더라구요. 그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특별히 있었을까요?
궁유정: 일단 노래를 하고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 혼자 있을 때 노래를 부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른이 왔는데도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을 넣고 싶었어요. 그래서 배우님께 자신있는 노래를 부탁했는데 그 노래를 선택하셔서 부르시더라고요.(웃음)
우정원: 배우님이 성숙한 취향을 가지셨군요. (웃음) 혹시 객석에서도 질문 있으실까요?
관객: 〈트레이드〉가 제가 느끼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주는게 아니라 본인이 더 힘든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돈을 뺏고 하는 걸 인상 깊게 봤어요. 그리고 〈창진이 마음〉에서 창진이가 5만원을 냈는가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이 싸우는 장면에서 5만원을 언뜻 본 것 같은데 그게 〈트레이드〉에서 5만원을 계속봐서 착각한건지 궁금하더라구요.
궁유정: 창진이가 5만원을 냈는지 안냈는지 궁금하신거죠? 시나리오에만 있고 삭제된 장면인데, 명현이가 책상을 뒤지다 창진이가 말한 봉투를 봐요. 그런데 진짜로 5만원이 있을까봐 그걸 열어보지는 못해요. 그래서 그냥 버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뺐어요. 창진이가 돈을 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안 낸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돈을 냈든 안냈든 이 일은 벌어졌을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저는 냈다고 생각하고 쓰긴 했습니다.
관객: 저는 창진이가 아이스티를 되게 희한하게 먹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창진이가 단 걸 좋아하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자도 많이 먹는 모습이 보였는데, 아이스티 먹는 장면을 어떻게 구성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궁유정: 제가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러는데 옆에 배우님이 앉아 계신 것 같은데 직접 대답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다 같이 웃음) 어떻게 아이스티 먹는 방법을 그렇게 생각하게 되셨나요?
노강민: 안녕하세요 저는 〈창진이 마음〉에서 권창진 역을 맡은 노강민입니다. 처음에 스터디 카페 같은 곳에서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스티를 먹게 됐어요. 제가 어렸을 때 단 걸 너무 좋아했는데 엄마도 많이 안 사주시고 그래서 감독님이랑 있을 때 먹어야겠다 싶었어요. 아이스티 봉투를 털면 남게되는 가루가 아까웠어요. 그래서 남김없이 먹으려고 아예 봉투에다 물을 넣었는데, 감독님께서 그걸 보시더니 너무 좋다고 하셔서 그 장면이 탄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정원: 네 알뜰한 습관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다같이 웃음) 답변 잘 들었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할까 싶은데요.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실 때 반반 엽서를 티켓 구매하실 때나 로비에서 받으셨을텐데요. 주소를 넣고 스티커로 봉인해서 제출해주시면 다음 상영회 전에 받아보실 수 있도록 발송해 드립니다. 오늘 극장을 더 오래 기억하실 수 있도록 기획한 이벤트이고요. 다음 상영은 10월에 있습니다. '키오스크; 불가침 영역' 이라는 소제목으로 세 개의 성별, 소수자등 존재라는 차이를 다룬 작품들을 상영합니다. 모더레이터로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참여하신 카슨 앨런 배우님이 참여하십니다. 앞에 와 계시네요. (웃음) 10월 상영회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들 인사를 한 분 씩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민주: 무더운 여름 날 주말에 영화 보러 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트레이드〉 상영회는 굉장히 오랜만에 하고 이야기 나눌 게 많은 영화들과 함께 묶여서 이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이었어요. 〈트레이드〉 상영 기회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전승일: 네 저는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을 홍보하고 인사 드리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걸 설명하려면 제 개인적인 얘기를 짧게 해야할 것 같습니다. 대학 다닐 때 간첩 조작 사건에 휘말려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가서 고생을 많이하고 그랬습니다. 당시엔 잘 몰랐는데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로 진단도 받고 힘겨운 생활을 하고 약도 먹고 그랬습니다.제 자신이 말하자면 정신장애 당사자거든요. 그래서 항상 심리장애, 신경장애, 정신장애 이런 것들을 가지고 계신 분들의 에술활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반 고흐도 당시엔 정신 장애 병명이 없었지만 조현병으로 귀도 잘랐고요. 다만 저는 정신 장애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신경 장애라는 표현을 쓰긴 하는데요. 신경 장애와 지체 장애를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아마추어로 하시는 게 아니라 기성 예술가로 놀라울 정도로 진입하셔서 예술 활동을 하고 계시고 개개인의 예술가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로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많이 하는 이야기로, 그냥 좀 다르고 특별한, 그래서 서로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요. 인식 개선이라는, 보수적 용어가 아니라 인식을 개선 해서는 안됩니다. 그냥 같이 있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걸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궁유정: 일단, 우선 제가 오늘 느꼈는데, 제가 '일단'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는 걸 알았어요. (웃음) 함께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9월인데, 무더운 날씨라고 말하는 게 안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10월이 될텐데 아직 덥구나,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걸 피부로 와닿기 시작하는 거예요. 세상이 바뀌고 있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싶다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영화 만들자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배우님들과 함께 올해도 새로운 영화 - 무자비하고 과감한 영화 만들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정원: 감독님들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오늘 오랫동안 자리 지켜주신 관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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