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퀴어 마이 프렌즈〉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8. 12(토) 오후 6시 30분 상영 후
참석 서아현 감독, 주인공 송강원, 〈너에게 가는 길〉 주인공 나비, 비비안
진행 강사라 프로듀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다연 님의 기록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어떤 친구는 그 피도 뛰어 넘는다. 어떤 친구는 스스로보다도 소중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친구들의 7년을 잠시나마 들여다 보았다.
강사라 프로듀서(이하 강사라): 〈퀴어 마이 프렌즈〉 프로듀서 강사라라고 합니다. 오늘 극장을 찾아주신 여러분 너무 감사드립니다. 먼저 영화의 주인공과 감독님이신 송강원 님과 서아현 감독님, 더불어 오늘 자리를 빛내주신 나비 님, 비비안 님 자리로 모셔보겠습니다.
주인공 송강원(이하 송강원): 안녕하세요. 송강원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나비: 안녕하세요. 저는 성소수자부모모임의 나비입니다.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비비안: 안녕하세요. 마이크를 오랜만에 쥐니까 굉장히 기분이 좋네요. 저는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의 주연 비비안입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함께 와주신 분들 너무 감사하고, 너무 좋은 영화 만들어주셔서 저희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반갑습니다.
서아현 감독(이하 서아현): 안녕하세요. 〈퀴어 마이 프렌즈〉 감독이자 7년간 강원님을 죽자 살자 쫓아다닌, 친구 서아현입니다.
강사라: 아현 감독님이 편집하시다가 너무 힘들 때쯤, 〈너에게 가는 길〉이 영화제에서 상영을 해서 보러 갔었어요. 그리고 반성을 많이 했다고 이야기 하셨었어요. 그래서 두 분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나비: 우리나라의 군대 제도가 달랐더라면 강원 님이 친구와 가까이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공간이 떨어져 있음에도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면서 저런 엘라이 친구가 퀴어와 비퀴어의 세계의 중요한 다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도 자식이 퀴어이지만 소통에 대한 궁금함이 항상 있거든요. 내가 느끼는 것과 별개로 자녀는 부모와 얼마나 소통하고 있다고 느낄지 항상 궁금해해요. 그런데 오래도록 함께 비를 맞아주며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있으면 정말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비안: 저는 인디토크를 하려고 미리 한 번 봤고 오늘이 두 번째 관람이에요. 역시 큰 화면으로 보니까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부러움에 눈물이 났어요. (웃음)
서아현: 어떤 부러움일까요?
비비안: 우리 아들도 감독님 같은 친구가 있다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에 좀 울었고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아현 감독님께서 친구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더 알려고 노력을 엄청나게 하시잖아요. 그 노력이 고스란히 저에게 전해졌던 것 같아요. 우리 아들도 이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많이 났어요.
강사라: 아무래도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셨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비비안: 제가 마이크를 들면 감정이 증폭되는 스타일이에요. 영화를 보면서도 마음이 따뜻하고 부러웠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점점 더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또 강원 님이 저희 아이하고 비슷한 군대 문제를 겪으셨거든요. 저희 아들도 처음 커밍아웃 할 때 군대가 엄청 큰 과제였어요. 군대 때문에 본인은 외국 가서 살겠다고도 말했었어요. 심지어 한국 군대를 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해서 해외 병사들을 모집하는 프로그램을 찾아봤었어요.
송강원: 저도 그 프로그램으로 갔었어요. 영화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마브니(MAVNI)’라는 프로그램으로 미군에 입대하면서 저에게 없었던 선택지가 생겼었어요.
비비안: 맞아요, 그 프로그램이에요. 정말 케이스가 똑같네요. 자기는 한국 군대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니까 미국에 가서 입대를 하고 시민권을 얻어서 미국에서 살아야겠다.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감정 이입이 더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너무 울었네요.
강사라: 비비안님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퀴어 마이 프렌즈〉는 퀴어 당사자가 아니라 엘라이의 관점에서 영화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너에게 가는 길〉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현 감독님은 〈너에게 가는 길〉을 어떻게 보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또한 〈너에게 가는 길〉을 보셨던 게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 있어서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서아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할 때 봤었는데 편집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저는 강원을 지지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지만 제가 당사자가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에게 가는 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부모님들께서 ‘누구 엄마입니다’, ‘누구 아빠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부모는 당사자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제가 친구로서 이해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이 세계를 온전히 자기화하기 위한 발버둥이 있었을거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우리 영화도 누군가한테 이런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사라: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강원 님의 커밍아웃을 들은 아현 감독님이 세계관의 지진을 경험하면서 시작하게 되는데요. 어머니의 입장에서 자녀 분들의 커밍아웃을 듣고 나서 어떠셨는지, 또한 영화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비: 부모나 가족은 가장 강력한 엘라이가 되기도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당사자성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점 때문에 가장 잘 먹히는 도구가 되기도 하죠. 이를테면 퀴어 축제에 반대 세력들이 와서 ‘너네는 부모가 아냐’고 말하면 화가 나잖아요. 그럴 때 저희가 ‘부모 여기 있다’ 하면서 나타나는 게 되게 통쾌해요. 그 사람들을 다 설득시킬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마음이 통쾌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저희가 잘 쓰이고 있는데, 저희가 그만큼 가깝고 강력한 엘라이라 하더라도 당사자의 깊은 부분을 다 알 순 없어요.
영화의 마지막에 강원 님의 눈물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친구가 신경 써주는 게 고맙지만 다 보여줄 수 없는 마음이 느껴지더라거요. 어떻게 해도 당사자만큼 공감하고 다가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도 영화에서는 좋은 엄마처럼 나오지만 예전에는 숱하게 차별적인 발언을 했었어요. 저는 잘 모르니까 그렇게 말했다고 하지만, 모른다고 쉽게 뱉은 말에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굉장히 미안하거든요. 이제는 말할 때 더더욱 신경을 쓰지만 그래도 당사자는 힘들 수 밖에 없어요. 해결을 해보려 이런 저런 방안을 마련해보지만 막상 그렇게 해도 힘들 때가 많으니까요. 영화에 담지는 못했지만 좌절을 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강사라: 어쩌면 아현 감독님도 강원 님을 다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사실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냈던 것 같아요.
저희가 작년에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홍보를 하러 갔었는데 그 때 프리허그도 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찍었어요.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보면 두 분이 〈퀴어 마이 프렌즈〉의 엄청난 엘라이가 되어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에게 힘든 순간에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비안: 엘라이라고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아이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충격이나 힘듦이 컸죠. 하지만 내가 이 정도로 힘든데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이 바로 움직였어요. 저희 아이는 7년 동안 스스로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시간을 겪었는데 어린 나이에 그 시간을 혼자 힘들어했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제가 받은 충격이나 어려움은 별 게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금방 괜찮아졌어요. 물론 그 후에 군대를 가야하고 한국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슬픔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그래서 영화도 만들게 된 거죠. 왜냐하면 많이 보여줘야 하고 이렇게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으니 함부로 그들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요. 사실 목소리를 내는 데 영화보다 더 큰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영화를 만들어 주셨는데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의 친구들이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친구의 마음과 어려움을 알아주려는 주변인들이 많아질수록 당사자들은 힘을 더 많이 얻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100% 다 알 수는 없죠. 그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100% 이해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노력하면 사회를 굉장히 빨리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영화 많이 보시고 아현 감독님 같은 분들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강사라: 저희가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아현 감독님은 부모님께 영화를 보여드렸어요. 근데 아직 강원 님은 부모님께 영화를 못 보여드렸어요. 커밍아웃은 했지만 당시에 힘들었던 모습을 보여드리는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그래서 어머니들께 한번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강원 님은 마음이 어떠신가요?
송강원: 저는 오늘 나비 님이랑 비비안 님이랑 같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어요. 〈너에게 가는 길〉을 저도 너무 감동적으로 봤거든요. 퀴어 영화의 특성상 당사자를 소비하거나 힘든 모습이 가장 앞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무지개를 든 어머니 두 분이 최전방에 나와 있는 듯한 포스터를 보고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제가 영화에서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저도 보면서 예전에 내가 저런 말을 했네, 하면서 보거든요.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을 때 엄마는 나름대로 당황했지만 쿨한 태도를 유지하셨고, 아빠는 솔직하게 충격 받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한테는 그게 상처로 남지 않았어요. 그래도 ‘우리 여기 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우리는 너의 부모고, 우리는 어디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그게 안정감이 엄청나더라고요. 모든 부모님이 그렇게 해주시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너에게 가는 길〉을 보면서 채워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존재감 자체가 감사했던 영화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곧 부산에 내려가요. 부산에 부모님이 계신데 2주 뒤에 부모님께 영화를 보여드리게 됐어요. 저는 영화를 찍는 과정을 아는 한 상세하게 이야기 해드리고 기사도 드리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부분은 있어요. 저희가 홍보 차 팟캐스트에서 2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었는데 저는 녹음 하면서 재밌었어서 잘 들었냐고 여쭤봤더니 너무 슬펐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음 쓰이실 걸 예상은 했지만 부모님께서 직접 아팠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너무 슬퍼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어요.
나비: 저도 영화를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마지막이 희망적일지라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어요. 남의 부모인 저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정말 당사자의 부모면 더 그렇겠죠. 본인이 별말 않고 괜찮다고 했어도 그 힘든 시기를 혼자 겪었을 거라는 게 부모 입장에서는 제일 아프거든요. 힘든 걸 혼자 겪게 하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제일 속상해요. 그래서 그 말씀이 부모님한테 큰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커밍아웃을 했을 때 부모님이 잘 받아들여줘서 든든한 뒷받침이 되었다,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는 이야기에 굉장히 큰 위로를 받으실 것 같아요.
비비안: 저도 그 말을 드리고 싶었어요. 강원 님이 ‘부모가 나의 든든한 지원군인데 두려울 게 뭐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저희 아들이 똑같은 말을 했거든요. 그래서 저희한테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오픈리 퀴어로 살아요. 엄마, 아빠가 잘 받아들였고 심지어 인권 활동을 하니까 기대한 것보다 너무 많은 힘을 받은거예요. 그래서 어딜 가나 오픈을 하고 살길래 전에는 저도 편견이 많은 사람이라 너무 드러내고 다니면 두렵지 않을까 걱정했었어요. 그랬더니 누가 본인을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발언을 해도 하나도 상처를 안 받는다고, 이미 부모가 준 갑옷이 있기 때문이라는거예요. 그래서 부모한테 커밍아웃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성소수자 분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차별과 혐오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부모의 지지가 있다면 ‘나는 갑옷을 입었으니까 괜찮아’ 하면서 용기 있게 자기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은 ‘우리는 괜찮은 부모다’ 생각하실 거예요. 그래서 결론은 굉장히 좋게 될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비: 성소수자를 어느 문화권에서든 최소 5%에서 10%를 잡는데, 5%만 잡아도 우리나라에서 250만 명이에요. 이게 얼마나 많은 숫자냐면 우리나라 공무원 다 합하면 120만 명, 현역 군인 다 합하면 60만 명이 안 돼요. 그걸 다 합친 숫자보다 더 많은거예요. 그런데도 지지해주는 부모님은 많지 않고 커밍아웃을 하는 사례가 20%가 안 된다고 해요. 어떻게 보면 강원 님은 부모님 운이 좋은 거죠. 영화를 보면서 한편으로 소외감을 느낄만큼 힘든 성소수자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하는 말이 있어요. 부모가 자신의 뿌리가 아니고, 자식의 세계로 초대하는 커밍아웃이라는 선물을 부모가 받지 않은거라고. 그 초대장을 부모가 잘 받으면 좋은데 잘 받지 않는다면, 먼저 부모를 버리라고 해요. (웃음) 그렇게 단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강사라: 성소수자부모모임이 퀴어 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분들의 대모의 역할을 해주고 계신 것 같아요. 아현 감독님도 만만치 않은 부모님을 가지고 계세요. ‘이렇게 먹고 살 거면 하지 말라’고 하시던데, 영화를 보여드렸을 때 반응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아현: 작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어머니가 먼저 보셨어요. 그게 한국에서는 첫 상영이어서 손님들이 너무 많이 오시는 바람에 인사를 하다 보니 어머니가 이미 가신거예요. 저희 어머니는 지금도 대형교회에서 새벽 성가대를 하시는 집사님이시라 이건 옳지 않다고 말씀하실까봐 너무 불안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처음 하셨던 말씀은, 아까 나비 님처럼, 혹시 강원의 부모님이 보셨냐는 말이었어요. 딸의 친구 이야기인데도 보면서 마음이 아프던데 부모님 보시면 마음이 아프실까 신경 쓰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네가 내 딸이라서 잘 아는데 네가 얼마나 집요하게 강원이 쫓아다녔겠냐, 강원이가 얼결에 한다고 해놓고 무르지도 못하고 불쌍하더라, 하시더라고요. (웃음) 솔직히 인정하는 바라 할 말은 없었습니다.
제가 7년간 작업을 하면서 부모님께 뭘 하고 있는지 말씀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쟤가 뭐가 되려고 저러나 걱정이 많으셨을거예요. 그래서 저로서는 어머니께 영화를 보여드리는 게 일종의 커밍아웃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오랜 시간 동안 노력했던 것이 결실을 맺어서 너무 기쁘다고 말씀해 주셔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의 부모의 세계는 더 넓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버지는 얼마 전에 성소수자부모모임 연대 상영을 했을 때 맞춰서 초대 했어요. 아버지도 비주류가 되는 게 무엇인지 한번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서. (웃음) 다수 속에서 소수자 되어 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맞춰서 초대 했는데 어땠냐고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며칠 뒤 어머니와 같이 주차장에 앉아 있는데 동네 주민분께서 지나가다가 축하한다고 하시는거예요. 따님이 만든 영화가 개봉했다고 아버지가 단톡방에 올리셨다고. (웃음) 그렇게 해서 저도 부모님께 저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열어보이게 되었고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조금 더 넓힌 것 같아요.
관객: 강원 님은 지금 글렌과 어떻게 지내시나요?
강사라: 저희가 첫 상영을 했을 때 받았던 첫 질문과 똑같은 질문이 아니나 다를까 나왔는데요, (웃음) 오늘 글렌 님이 이 곳에 와계세요. 〈너에게 가는 길〉에도 비비안 님이 사위를 만나는 장면이 있잖아요. 글렌이 대사 하나 없이 묵묵한 남자친구 역할을 영화 속에서 맡고 있는데, 보시면서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아현: 글렌이 한국어를 못하는 줄 아시는 관객 분들 계시더라고요. 굉장히 말씀 잘 하세요.
비비안: 그러니까요. 표정을 보니까 다 알아들으세요. 그런데 말씀을 안 하셔가지고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일부로 못 하게 했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송강원: 영화에 담긴 묵묵한 남자친구 이미지를 굉장히 흡족해 하고 있어요. 대사 없는 모습이 본인은 너무 만족스럽다고. (웃음)
관객: 다른 친구들 혹은 서로의 연인이 두 사람의 관계를 질투한 적은 없나요?
강사라: 영화를 편집 감독님한테 보여드렸을 때 편집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왜 글렌 생일 파티를 하고 나서 아현이 강원의 집에 남는거냐고. (웃음)
송강원: 제가 아는 바로는 없었던 것 같아요. 있었다면 영화가 재밌긴 했겠죠. 그런데 이 영화가 저희 만날 쯔음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 두 번째 데이트부터 아현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거든요. 저희는 이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와 친구들 간의 관계가 지난 7년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질투를 생각하지 못했어요. 글렌 말을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서아현: 저는 좀 질투를 했던 것 같아요. 강원과 싸우는 장면에서 그렇게 대화를 시작을 하잖아요. 오빠 옆에 누가 있어야 할 것 같을 때 나는 오빠 마음에 안 드는 것 같고,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옆에 글렌만 있으면 다 괜찮냐고. 그런데 여기서까지 힘들 때 하나님한테 말해야 하냐, 남자친구한테 말해야 하냐고 하는데 제 얘기는 안 하는 거예요. 그런 섭섭함이 친구로서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저만 질투하는 사람으로 마무리되는 건가요? (웃음)
송강원: 저의 7년 전 속속들이를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엄청난 경험이잖아요. 그래서 보면서 새롭게 깨닫는 지점들이 많거든요. 그 중 하나가 이런 것이에요. 완전히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카메라도 의식하지 못하고 뱉은 말에 아현이 없는거예요. 그게 마음이 쓰여서 생각해 봤는데, 아현은 제가 뒤로 기대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때는 몰랐지만, 항상 카메라를 들고 저를 버티게 해준 친구이고 독일에서 가장 힘들 때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뱉어낸 편지를 보낼 사람이 아현밖에 없었어요. 아현이 놀라서 답장은 못 해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는 편지를 보낼 수밖에 없는 대상도 아현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아현: 편지를 받았던 것으로 위안을 삼겠습니다.
강사라: 나비 님과 비비안 님은 자녀 분이 파트너를 데려왔을 때 질투가 난 적은 없으셨나요? 가장 큰 방패막이었는데, 애인이 생기면 서운할수도 있을 것 같아요.
비비안: 저는 질투를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저는 남편과 사이가 좋거든요. 저는 고부 갈등의 원인이 부부 사이가 안 좋아서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내 파트너랑 잘 사니까 너도 좀 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바람직한 시어머니인데 아직 며느리를 못 봤네요. 남자 며느리를.
관객: 춤 수업을 듣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수업이 끝날 때 선생님과 뜨거운 인사를 나누셨는데, 춤을 추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송강원: 춤에 관해서 질문해 주시는 관객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춤을 왜 저렇게 열심히 췄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그 때는 세 달 동안 수업을 90개를 들을만큼 열심이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 인터뷰 도중에 한 기자님께서 ‘자학처럼 느껴졌다’고 하시는거예요. 생각해보면 그런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 나를 마주할 수 밖에 없는데, 내가 내 편이 아닌 시기에 나를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더라고요. 스스로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언가를 태워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공연과 연극을 좋아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자체가 좋았다기보다는 저의 에너지를 태울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아현: 그 시기에 강원을 만나러 뉴욕에 갔는데, 태릉 선수촌에 온 줄 알았어요. 선수 마냥 브루클린에서 매일 1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수업을 듣고, 집에 오고. 정말 집과 수업을 오가는 삶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거예요. 저는 뉴욕에 처음 갔던거라 놀러도 가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누룽지 먹고 수업만 들으러 다녔어요. 그런 강원을 보면서 정말 몸부림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비: 저희 아들이 춤을 춰서 그럴수도 있지만 저는 강원 님이 춤을 추는 모습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어요. 강원 님이 ‘춤이 그 시기를 그나마 살게 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저는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춤을 출 때 행복하니까 그 마음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영화 끝에 다른 직업으로 취직하신 걸 보면서, 저 일을 할 때 저렇게 행복하고 좋은 모습인데 왜 저 일을 계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강사라: 그래서 강원 님 아직 춤 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어요.
송강원: 요즘에는 술 먹으면 가끔 추고요, 수업을 듣지는 않아요. 여전히 춤을 좋아하긴 하지만 춤에 대한 마음과 태도가 저 때와는 많이 달라졌어요. 여전히 기회가 있으면 수업도 듣고 춤도 추고 싶지만, 저 때는 뭔가 달랐던 것 같아요. 아현 감독님도 이야기 하셨는데, 커밍아웃도 하고 시민권 문제도 해결됐고, 이제 장밋빛 미래만 펼쳐질 것 같았던 사람이 왜 독일에서 무녀졌는지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도 못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상처가 나면 그 날 밤에는 잘 못 느끼잖아요. 자면서 욱신욱신하다가 다음 날 고통이 올라오는데, 그런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도 제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영화를 보면서 복기 해보니 그런 게 아니었나 싶어요. 춤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촬영을 할 때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뉴욕 촬영 때부터 너무 힘든 거예요. 아마 제가 몸부림치는 게 찍힌다는 감각이 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뒤로 불편했던 지점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강사라: 강원 님이 영화에서 ‘공동체’라는 말을 정말 많이 써요. 영화를 만들면서 강원 님이 공동체에 나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그 공동체가 자극을 받길 바라는 면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것을 보면서 커밍아웃이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에게 계속되는 작업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어요. 두 분도 자녀 분들의 커밍아웃을 지지하고 또 알리면서 공동체를 이루어나가고 계신데 지금 속해있는 공동체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송강원: 저도 영화를 보면서 ‘공동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는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쟤가 뭘 안다고 저렇게 큰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리지 싶었는데 (웃음) 제 생각에는 그게 필요하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공동체는 대단히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에요. 바로 옆의 아현과 저도 작은 공동체였고, 그리고 친구들 모두 이미 기대고 있는 공동체였는데 제 안의 문제에 너무 빠져 있어서 그 때는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영화를 통해서 공동체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것 같아요.
영화가 개봉하고 저희가 같이 다니고 있고, 좀 더 확장한다면 저희 이야기를 깊이 있게 봐주시고 본인의 이야기를 나눠주시는 이 모든 게 더 큰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비: 저도 직장이나 동호회 같은 많은 공동체가 있었는데 성소수자부모모임이라는 공동체가 제 삶에서 가장 강력한 것 같아요. 물론 자식 일이기도 하지만, 이게 아니라면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이렇게 많이 알 수도 없었을 것 같아요. 봉사활동이나 기부 같은 건 하겠죠. 그런데 그건 위치가 좀 다르잖아요. 여력이 돼서 조금 하는 정도인데, 성소수자부모모임은 어떻게 보면 소수자와 약자의 자리에 같이 서는 거거든요. 저는 소방공무원 노조 위원장도 하고 있어요. 노조 활동한다 그러면 주변에서 고생하신다고 그래요. 그런데 성소수자부모모임 한다 그러면 눈빛이 달라져요. 그만큼 아직은 목소리를 내기가 힘든 약자라는 것을 느끼는데 그래서 이 공동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도 이런 시선을 받는데 당사자들은 어떤 시선을 받을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거든요.
투쟁의 방식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인이나 노조 모두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 무언가를 멈추는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된 권리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해야만 봐주기 때문에 그게 방법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지하철이 좀 느려진다든지 하는 불편을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나게 욕하잖아요. 성소수자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에게 아무런 불편함을 끼치지 않는데도 존재 자체만으로 욕을 먹는 일이 많아요. 그게 말도 안 되게 부당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자식의 입장에서 같이 서고 퀴어 축제에 가서 같이 맞기도 하는거예요. 그럴 때 부모 모임이라는 공동체가 다른 누구보다도 그 고충을 잘 아니까 가장 의지하게 돼요. 몇 십 년 동안 알았던 친한 친구가 고생한다고 응원해주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거든요.
이제 자식들이 다 커서 잘 볼 수도 없고 우리가 뭐 하는지도 잘 몰라요. 그렇지만 여전히 부모들끼리 모여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소중하다고 느껴요. 자식 덕분에 좋은 사람도 만나고 좋은 공동체에 속하게 되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이 속에서 계속 성장하게 될거예요. 새로운 성소수자를 만나고, 어떤 퀴어 이슈가 있을 때 가장 먼저 공부할 수 밖에 없고, 정치인을 쫓아다니면서 항의도 해야 하니까요.
비비안: 저는 아이한테 커밍아웃을 받고 한 1년 정도 주변에 이야기를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커밍아웃을 받고 사실은 저도 소수자가 되어버린 거잖아요. 그전에는 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해서 못 느끼고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내 말을 듣고 공감해주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구나 싶었죠. 그때 아이의 마음에 더 공감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고요.
저희 영화가 한 2년 전에 개봉을 했고, 넷플릭스랑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가 있어요. 저는 아직 비행 근무를 하거든요. 그래서 매일 조가 달라져요. 그러면 큰 비행기에는 23명씩 타고, 보통 12~13명씩 타는데 매번 팬이 제작해준 영화 명함으로 홍보를 하면서 공동체를 넓혀가고 있어요. 저희 승무원이 한 3~4천 명 되는데 저로 인해서 그들의 세계가 넓어진 거라고도 생각해요.
아까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나의 세계로 초대해서 너의 세계가 넓어지게 한다고. 저는 그 말에 정말 공감해요.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영화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를 넓혀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객: 물리적 거리를 뛰어 넘어 친구와 연인 모두와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송강원: 1대 1로는 어려운 것 같아요. 아까 비비안 님과 나비 님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난 게 있어요. 저도 저희 부모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커밍아웃 이후에 해오고 있지만 부모라서 저한테는 못하는 이야기를 아현이한테는 하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나라고 왜 너 같은 예쁜 며느리 생각하지 않았겠니, 하는 이야기를 아현이한테는 하시더라고요.
서아현: 그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처음 어머니를 뵈러 간 자리였는데 강원이 커밍아웃 한 뒤였고, 부모님이 지지를 해주신다고 알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시다가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순간 강원의 눈치를 봤어요. 그런데 나오면서 엄마가 나한테는 말 못하는 걸 너를 통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송강원: 그때 진심으로 안도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공동체에 여러 명이 필요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랜 시간 군 복무 문제와 비자 문제 때문에 여기 저기 오가면서 글렌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데 있어서도 둘만의 관계였다면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친구들이 보완해주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모든 관계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데, 어려운 시절에 다른 방향으로 분출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사라: 그런 의미에서 퀴어 문화 축제에 가면 반대 세력들 때문에 더 똘똘 뭉치게 되는 것 같아요. 두 분이 기독교 대학을 나오셨는데, 학교 교수님이 반대 집회에 오신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맥락에서 두 분에게 대학은 어떤 곳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대학에서의 경험이 소수자와 공동체에 대한 두 분의 감각을 깨운 측면이 있을까요?
서아현: 저는 기독교 모태 신앙으로 자라서 기독교 대학을 갔어요. 그래서 모든 게 제가 익숙한 환경과 배경이었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항상 대학교 안에서는 제가 소수자라는 감정이 있었어요. 이번 영화도 그 학교에서 아싸였던 친구들끼리 모여서 만든거거든요. 그래서 학교 총동문회 페이지에도 영화 홍보를 올리지 않았는데 어떤 분이 올리셨더라고요. 그런데 ‘화나요’ 같은 반응이 찍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처럼 생활을 공유해야 되는 기숙 학교다 보니까 이전에 맺어 본 적 없는 친구 관계를 경험 했어요.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일상을 이만큼 공유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요.
송강원: 저는 신앙에 대한 고민을 미국에 가서 시작했어요. 미국에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대학에 들어갈 때는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학교 자체의 분위기와 홍보가 마음에 들어서 간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종교적인 배경이 없었어요. 당시 제 자신을 정체화하던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내면의 고민이 많던 시절이라 학교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없어요. 학교의 색을 떠나서 저는 그 학교에서 이 친구들을 만났거든요. 누군가는 머릿속이 꽃밭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지만 저는 되게 고마워요. 왜냐하면 이 친구들을 만난 곳이 그 학교였기 때문이에요.
관객: 촬영하시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또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서아현: 영화에서 강원이 구직은 어떻게 하고 있냐, 이제 그만두는 거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그런 생각 없다고 대답했잖아요. 그게 편집 초반이었고 그 뒤로 쭉 그만두고 싶었어요. 편집을 하면 할수록 이게 맞나, 이렇게 해서 영화가 되는 것일까,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촬영하는 것도 아니었고 영화 작업 자체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시작할 때는 강원의 커밍아웃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올바른 엘라이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 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고 촬영본을 보는 과정에서 제가 습관적으로 강원 옆에 있기는 하지만 결국 강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영화를 완성하기 전에 프리뷰를 하면서 영화를 통해 강원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럼에도 그 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이 작업한 사라 프로듀서 님이나 많은 사람들이 해준 말 때문이에요. ‘멋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너의 가장 힘든 부분을 솔직하게 보여줄 때 오히려 너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약한 모습을 보이는 연습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한 것 같아요.
비비안: 저희 영화도 4년을 찍었기 때문에 감독님의 고통이 너무 이해가요. 저희 감독님도 편집할 때 엄청 힘들어 하셨거든요. 몇 년치의 촬영본을 다 보면서 편집한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됐어요. 감독님께서 나중에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영화를 찍는 내내 한 번도 힘든 적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새로운 저를 찾았거든요. 제가 카메라를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 그 시간이 너무 즐거운 거예요. 나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질문에 대답하면서 스스로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4년에 걸쳐 대답하는 방식이 발전하는 것을 느끼면서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그 작업이 너무 즐거웠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편집할 때 촬영본이 많아서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강사라: 확실히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체질이신 것 같아요. 저희 감독님도 완전히 질문 살인마예요. 그래서 강원 님이 커밍아웃을 하시고 질문 폭격을 했는데 강원 님은 그 질문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비비안: (강원을 보며) 저랑 MBTI 똑같으시죠? ESFP 맞죠?
송강원: 아뇨, ENFJ예요. (웃음) 그냥 우리가 다큐 체질인걸로.
나비: 비비안 님은 인터뷰를 즐기시는 편이었고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힘든 적은 없었어요. 저는 저희 아이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는 몰랐거든요. 그래서 차별적인 발언을 많이 했고 아이가 상처 받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어요. 외국 사례를 보면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전문가와 의논을 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서 도와주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서 너무 아쉽더라고요. 저는 중학교 때 레즈비언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레즈비언인 것에 크게 충격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주변에 트렌스젠더 친구도 있었더라면 아이가 오랜 시간 힘들게 보내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맥락에서 영화를 통해 소수자를 가시화하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야한다고 느껴서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집이 지방이라 보통 감독님께서 먼저 인터뷰를 요청하시는 편이에요. 그런데 제가 유일하게 먼저 요청했던 때는 숙대 사건 이후였어요. 그때는 저희 아이가 정말 위태로웠거든요. 영화가 개봉할 때 아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자식에게는 못하는 얘기를 감독님께 했다는 말이 이해돼요. 꼭 하고 싶은 이야기지만 아이에게 직접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카메라 힘을 빌어서 말하고 싶어서 먼저 요청을 했었어요. 그 때 더 이상 이만큼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인터뷰에 임했어요.
그런 간절한 마음들이 영화에 나오고 그 덕분에 저희 아이가 힘든 시기를 잘 넘긴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서 마음이 전달이 됐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래서 어머님도 영화를 보시면 강원 님의 마음을, 친구의 마음을 느끼실거라고 생각해요.
송강원: 그런 순간을 담아주는 사람이 변규리 감독님이셨잖아요. 저한테는 아현이었거든요. 그래서 나를 판단 없이 궁금해하는 시선에서 그런 순간을 담아낼 수 있는 기록자로서 저한테 남아준 데에 표현하기 힘든 감사함이 있어요.
관객: 강원 님은 이제 아픔 없이 행복하신가요?
강사라: 관객 분들이 저희가 20-30대에 했던 고민과 찌질한 모습에 많이 공감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아직은 그 힘들고 불안한 과정을 지나가고 계신 분들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마지막으로 그런 분들께 보내는 응원의 메세지와 불안의 과정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송강원: 저부터 하자면, 아픔 없이 행복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그렇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아파도 괜찮더라고요. 그건 제가 다큐를 거쳐오면서 배웠던 큰 것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각자의 아픔이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희 영화가 다른 아픔에 어떻게 가닿을지는 모르겠어요. 영화가 불편하신 분도 계셨을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우리가 함께 이 모든 것을 거쳐가고 있다는 그 감각을 느끼고 덜 외로우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주변의 외로운 친구, 이 영화가 필요할 것 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한 번 손 내밀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비: 여기 성소수자 부모님들도 많이 와 계시거든요. 이 분들께, 혹은 엘라이 분들께, 당사자들께 이야기 하고 싶어요. 최근에 『범도』 라는 홍범도 장군에 대한 소설이 나왔는데 ‘이 싸움을 하는 것은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몰라서 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 때문에 한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희망적이지 않아도 아무도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기 때문에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고, 그런 것들이 곧 역사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중단하지 않고 꿋꿋하게 저희 부모 모임은 계속 싸워나갈 거예요.
저희가 〈너에게 가는 길〉을 찍고 GV만 130회 넘어가고 있어요. 처음에는 관객들이 잘 봐주시면 좋겠고 배급사나 제작사, 감독님이 정말 고생하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관객들과 대화를 하면서 저희도 깊어지고 영화가 새롭게 정립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에는 배우, 감독, 제작사도 있지만 완성은 관객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렇게 함께해 주신 관객 분들, 같이 영화를 만들어주셨다는 의미에서 정말 감사합니다.
비비안: 저희가 같이 다니면 항상 나비 님께서 멋있는 멘트로 마무리를 하시고 제가 좀 가볍게 웃겨드리는 포지션이거든요. 오늘도 어김없이 멋있게 마무리를 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내내 강원 님을 보면서 저희 아들이 자꾸 생각 났어요.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어릴 때 잘 웃던 것도 똑같더라고요. 그런 과거를 떠올리면서 내내 먹먹하고 감동적이었는데 인디토크도 마찬가지였어요. 함께 대화 나눌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고 영화가 더 잘 돼서 감독님과 강원 님이 더 윈윈하시는 관계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많은 엘라이 분들, 혹은 부모님들이 이 영화 보시면 가슴 따뜻해지실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이런 우정도 존재하는구나, 싶어서요. 좋은 영화 많은 관객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고, 오늘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아현: 20대 중반에서 30대로 가는 시기에 7년간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이게 끝나면 후련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를 완성한다고 제 삶이 급격히 행복해지거나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됐어요. 그래서 행복이라는 게 뭔가 성취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됐는데요. 인터넷에 그런 게 있더라고요. 쇼펜하우어가 말했다고 하는데 진짜인진 모르겠지만, ‘우울할수록 더 많이 자고 더 많이 먹으라’는 말이에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지금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더 많이 자고 더 맛있는 걸 드셨으면 좋겠고, 좋아하는 친구와 저희 영화를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사라: 〈너에게 가는 길〉을 아직 안 보신 분들은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에서 보시면 되고요, 〈퀴어 마이 프렌즈〉는 다음 주에도 계속 극장에 걸리니까 생각나시는 분들과 함께 와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오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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