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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희수〉: 내일도 같이 퇴근하자

by indiespace_한솔 2023. 1. 6.

 

 〈희수  리뷰: 내일도 같이 퇴근하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민정 님의 글입니다.

 

 

영화의 목적이 사회운동은 아니지만, 한 사람을 자세히 응시하다 보면 그가 살아온 사회가 거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거대해진 사회는 의도하지 않아도 영화에 담긴다. 희수는 아주 일상적이고 연약한 개인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영화다. 이 영화에 사회가 담겨있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희수의 카메라는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섣불리 다가가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오래 응시한다. 하나를 말이다. 그리고 좀처럼 따라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카메라 속 인물들은 자주 프레임 아웃되고, 조각난다.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어둡고 희미한 일부의 조각들인 셈이다. 하지만 이 부동의 앵글로 인해 조각난 것들이 바로 희수.

 

 

희수는 문을 열고 들어설 때 잡히는 발의 일부로, 새벽 출근길 차창 밖을 내다보는 서늘한 눈매로, 기계를 가동하는 분주한 손마디로 조각난다. 그렇다면 희수는 왜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고 조각나 있을까. 희수의 이야기는 어째서 불명확할까. 영화가 조각낸 그를 앞세워 하는 일은 캄캄한 어둠을 마주하는 일이다. 여기에 그의 목소리는 없다. 희수를 보다 보면 이 영화에 유난히 대사가 적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하지만 희수의 일터인 공장과 시장은 각종 소음들로 가득하다. 그는 말하지 않거나, 소음에 파묻힌 채 말한다. 영화는 이 소음들이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침범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리하여 인물들이 일하고 있을 때, 그들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는다. 카메라는 여전히 멀찍이 서서 바라볼 뿐이다. 그들의 대화는 기계음과 생활 소음, 바람 소리, 심지어 생선을 토막 내는 소리로 대체된다. 대화는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고 소음에 휘발된다. 물론 그저 일상의 대화일 것이다. 오늘도 힘들었다거나, 어제 아프다고 말했던 손목이 여전히 아프냐고 묻거나, 휴가 때 여행지를 어디로 갈 것인가 같은 것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일상의 대화마저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하므로, 관객은 희수의 숨 막히는 삶을 깨닫게 된다. 영화가 특별한 산재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삶을 갉아먹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균열은 모서리부터 일어난다.

 

 

말소리, 표정, 결국엔 존재까지 거세당한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노동자는 자주 가려진다. 노동을 향유하는 것은 기꺼이 전시되지만 정작 노동의 순간은 쉽게 지워지는 것이다. 청소노동자의 노동이 출근 시간 전에 끝나는 것처럼, 고급 호텔과 백화점에서 직원은 고객과 마주치지 않는 것처럼. 감춰지는 것이 당연해질 때 우리는 노동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가려지는 것은 위험하다.

 

감춰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고 말하기 위해, 영화는 거대한 기계 뒤에 가려진 희수를 보여준다. 기계에 매달린 하얀 천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그 뒤에는 희수가 서 있다. 우리는 불안을 예감한다. 곧 카메라가 암전된다. 동시에 공장의 비상벨이 울린다. 아마도 희수의 끝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 같을 것이다.

 

 

희수는 분명한 연인의 이야기지만, 정작 희수와 학선이 함께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둘은 결국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희수가 갔던 곳을 학선은 뒤늦게 서성인다. 하지만 오히려 이 어긋남이 사랑을 깊숙하게 만든다면 믿겠는가. 이 영화는 분리된 하나의 이야기다. 맞춰지지 않은 짝의 이야기다. 희수에게 여전히 사랑은 유일하고 거대한 위로다. 그리하여 희수는 이 말로 끝맺을 수 있겠다. 내일은 같이 퇴근하자. 우리 함께 걸어서 집에 가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이토록 무겁게 표현해내는 공민정 배우의 연기가 신비롭다. 불어오는 스크린 너머의 바람까지 시린 이 영화를 꼭 이 계절에 극장에서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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