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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희망의 요소〉: 서로의 신발을 신다

by indiespace_한솔 2023. 1. 14.

 

 

 〈희망의 요소  리뷰: 서로의 신발을 신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다연 님의 글입니다.

 

 

 

대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한 집안. 평범해 보이는 집에는 부부의 대화 소리 대신 TV 소리만 들려온다. 그나마 있는 대화는 간신히 대화로만 기능할 뿐, 어떠한 애정이나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다. 가정 주부인 남편은 일을 나가는 아내를 위해 매일 밥을 정성껏 차리지만, 아내는 그러한 남편을 듣거나 보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아내는 그러한 남편에게 짜증을 숨기지 않는다. 그가 오로지 숨기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외도 사실 뿐이다. 이들의 대화는 따라서 불가능하다. 주변의 소음은 적나라 할 정도로 종종, 부부의 대화 사이를 비집고 침투해 온다.

 

 

아내의 외도 상대라고 아내와 원활한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 막무가내로 찾아오거나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상대는, 아내의 말처럼 어린아이와 같이 독단적인 면이 있다. 그런 상대를 어르고 달래며 연애를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남편과 있을 때보다는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긴 해도 딱히 진실되지는 못하다. 누군가 볼까 홀로 전전긍긍하는 아내의 모습은 이들로 하여금 진정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한다. 불안해하는 아내의 감정은 이해받지 못하고, 상대는 오히려 그러한 아내의 모습을 서운하게 여긴다. 따라서 이들의 대화 사이에도 다른 소음이 침투해온다. 이들의 대화를 가리는 공사장 소음은 말을 간신히 알아듣게 한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 속에서 이들의 손과 발만큼은 바쁘게 움직인다.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아내의 발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고, 남편의 손은 아내를 위한 밥을 만들며 쉬지 않는다. 이들의 노동은 각자 다른 장소에서 다른 형태로 행해진다. 편한 운동화나 슬리퍼를 꿰어신는 남편의 노동은 집 안에서, 구두를 신는 아내의 노동은 집 밖에서 행해진다. 둘의 노동은 둘 모두를 지탱하고 있는 근간이다. 두 인물을 굳건히 서있게 하는 발처럼, 이들의 노동은 이들의 집과 삶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좁은 프레임의 영화는 두 인물의 손과 발이 같은 공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이들의 소통의 부재와 맥락을 함께 한다. 이들은 서로를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 프레임에조차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손과 발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고 대화 사이에 더이상 소음이 끼어들지 않는 것은 남편이 떠난 뒤 이어지는 다소 긴 에필로그부터이다. 이전보다 넓어진 프레임은 두 사람의 발을 한 군데에 담는다. 이것은 달라진 이들의 관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간단한 대화조차 불가능했던 이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보인다. 남편은 자신이 집필해온 소설 「희망의 요소」를 아내에게 보여주었고, 아내는 자신과의 이야기를 다룬 남편의 자전적 소설을 읽고 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나레이션으로 읽혀지는 아내의 편지 사이에는 어떠한 소음도 끼어들지 않은, 적막 뿐이다. 이들의 대화는 오로지 서로의 공간 속에서, 서로만을 향한다.

 

 

영화의 마지막, 같은 프레임 안에 함께 하는 그들의 손과 발은 줄곧 영화에 등장했던 그들의 손발과는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구두를 신고 있던 아내는 깨끗한 운동화를 신었고, 구질한 운동화를 구겨신던 남편은 이제 공사장에서 일하기 위한 안전화를 신고 있으며, 서로의 손을 쳐내고 피하기 바쁘던 과거와 달리 두 인물의 손은 깍지를 끼고 마주 잡고 있다. 줄곧 서로를 위한 노동을 해왔던 두 인물의 손과 발이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던 그들은 그제서야 자신의 손과 발이 향하고 있던 지점을 알아차린 것이다. 남편이 신던 운동화를 신은 아내와, 아내가 구두를 신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을 위한 안전화를 신은 남편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 보고, 공감한다. 아내는 가사노동을, 남편은 바깥 노동을 하며 ‘타인의 신발을 신어 본’ 그들은, 각자가 서로를 위해 얼마나 기여하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향한 공감과, 그에 기반한 소통은 이들로 하여금 희망의 요소를 열어주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알아준다면, 희망의 요소는 언제든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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