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리뷰: 부러진 손톱은 다시 자란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지 님의 글입니다.
손톱이 부러졌다. 갑작스레 드러난 살에 부딪히는 옷과 종이가 어색하다. 마치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그어진 경계 너머로 하얀 조각을 밀어낸다. 부러진 손톱은 다시 자란다. 그러나 본래의 형태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꽤 걸릴 테다. 시초를 향해 울퉁불퉁하게 빠져나오는 조각들. '수경'과 '이정'은 바로 이 단계에 서 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한 집에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다. 마트에 가다 보통날처럼 싸운 모녀는 자동차 사고를 겪는다. 엄마 수경은 한순간에 가해자가 된다. 오래된 자동차의 급발진을 주장하는 수경과 달리 딸 이정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급발진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보험사와의 대립구도는 곧 고의였는지 아닌지, 모녀 간의 대치로 번진다.
저를 항상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때도 변함없었을 거예요. 끊임없이 저를 죽여버리겠다고 했거든요. 딸의 진술은 담담하다.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매질하던 엄마에게 처음으로 반발한 이정은 미친 딸이 되었다. 엄마를 재판으로 내몰고 기꺼이 증인이 된 미친 애. 수경과 이정은 자동차 사고 이후로 급격하게 멀어진다.
수경은 39kg의 육신에서 배를 갈라 나온 4.38kg의 아이에, 이정은 매일 이어지는 매질을 버티던 아이에 머물러있다. 두 아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서로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타인에게 기대하지만, 그조차도 불완전하다. 사람에게 다치고, 또 위로 받는 매 순간들 사이에 수경과 이정은 여전히 같은 속옷을 입는다. 다른 사이즈를 가진 두 사람의 하체는 간헐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사라진다.
영화는 이제 태초로 돌아가 질문한다. 정전이 일어난 집. 보이는 것은 대략적인 실루엣뿐이다. 냉장고에서 녹아 흘러내린 물이 발을 적신다. 엄마는 나를 사랑해? 딸이라면, 한 번쯤 가졌을 법한 질문이다. 이에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수경. 너무나도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대답이었다.
수경과 이정. 엄마와 딸.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어디에나 있다.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손톱처럼, 그들은 쉴새없이 부러지고 돋아난다. 월경혈이 묻은 팬티에 생리대를 처음으로 붙여주고, 하얗게 샌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주듯. 모녀는 닮았고 또 닮아간다. 순환이 되어 서로를 낳고, 젖을 물리며 살아가는 두 존재는 낯익다. 그것이 영화를 보는 동안 숨이 막힐 만큼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던 이유다. 아이인 딸, 아이였던 엄마가 지내는 집의 현관문은 우리 집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같은 속옷을 입으며, 때때로 하나가 되었던 순간을 더욱 견고하게 다듬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깨진 손톱을 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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