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버린 인연을 모퉁이에서 다시 만난다면
〈모퉁이〉 인디토크 기록
일시 8월 11일(목) 오후 7시 상영 후
진행 공민정 배우
참석 신선 감독┃이택근, 하성국, 박봉준, 백수희 배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소정 님의 글입니다.
공민정 배우(이하 공민정):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영화 〈모퉁이〉 인디토크 진행을 맡은 공민정입니다. 〈모퉁이〉의 신선 감독, 이택근, 하성국, 박봉준, 백수희 배우를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에게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에요. 저랑 너무 가까이 있는 영화거든요. 말씀드리면 저희 건대 동문이에요. 후배 분도 있고 새로운 얼굴도 있지만 대부분 저랑 동기고, 특히나 제가 감독님과 동기이기 때문에 감독님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어서 더 와닿는 지점이 있었어요. 십몇년을 봤기봤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정말 오빠 같은 영화가 나왔구나, 이 사람과 정말 닮아 있는 영화가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영화가 좋든 안 좋든, 좋은 마음으로 응원해 주고 싶고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봤는데 영화가 정말 너무 좋은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이 됐고 눈을 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대사 하나하나가 허투루 쓰인 게 없고 어떻게 이렇게 리얼리티를 연출할 수 있는지 감탄했어요. 연출도 그렇고 연기는 또 본인이 많이 드러나는 연기, 어떤 사람인지가 보이는 연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캐릭터들이 다 그렇게 드러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를 너무너무 잘 봤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줘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제가 질문을 한 후에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을게요. 오늘은 좀 편하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동문처럼 편하게 질문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기본적으로 일단 감독님께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셨고 언제 이 영화를 계획하게 됐는지,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는지 전반적인 계기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신선 감독(이하 신선): 여기 있는 공민정 배우도 평상시에 저한테 영화 언제 찍냐 물어보고, 저도 찍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요. 사실 영화 제작지원 같은 것들이 좀 잘 안 되고 제가 준비하던 시나리오들이 진행이 잘 안 됐어요. 꽤 오래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저희끼리는 항상 뭔가를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사실 성원이라는 인물이 저와 닮은 점이 있다면 약간 그런 부분 같은데, '사람들이 도와줄까?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고. 그러는 와중에 저희 가족들의 지원이 있었고 거의 저와 되게 오래 봤던 사람들에게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하니까 모두 다 좋다고 해줘서 하자고 한 뒤로는 되게 빨리 진행이 됐던 것 같아요.
공민정: 네, 되게 뭉클했어요. 어떻게 보면 기억의 조각들이 뭉쳐진 영화 같은 느낌이 있는데, 저는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실제와 맞닿아 있는지 궁금했어요. 저는 굉장히 많이 닮았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문득 주인공 성원이 같은 모습을 마주할 때 답답할 때도 있었고 응원해 주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저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고, 서로 힘들 때 함께 좋은 날을 꿈꿨던 것 같아요. 그 힘들었던 시기의 감독 본인이 굉장히 많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본인의 이야기와 몇 퍼센트 정도 닮아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신선: 제가 저를 닮은 영화를 찍으려고 했으면 성원의 어려움이나 당시의 어려움 이런 것들이 되게 자세히 나왔을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그런 부분들은 배제를 했고. 사실 저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친구들도 다 되게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 이유는 다 각자 다른데, 그런 개개인의 사정보다는 불안을 대처하고 있는 그 자세, 불안을 느끼는 그 표정들, 이런 것들이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퍼센트로 치면, 사실 영화 속 일들 중 저에게 일어난 일은 없어요. 개미집은 저희가 실제로 자주 가는 단골집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고 한 10% 정도 닮아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민정: 너무나 있을 법한 얘기잖아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개미집은 제가 한 10년 정도 다닌 단골집인데 건대에 있어요. 너무너무 맛있으니까 한번 가보세요. 저희 때는 1호점밖에 없었는데 지금 보니까 3호점까지 만들어진 거예요? 대단하네.(웃음) 이제 배우분들 얘기를 좀 들어볼게요. 어떻게 캐스팅이 되셨는지, 이 역할을 맡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연기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사실 저는 배우 분들의 아는 얼굴이 있잖아요. 제가 봤을 때는 항상 취해 있고 조금 시끄럽고 그런 느낌이었는데(웃음) 내면의 다른 모습들을 많이 보여준 것 같아서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는지 궁금해요.
이택근 배우(이하 이택근): 〈모퉁이〉가 단편이었을 때부터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보여줬고 그때부터 같이 하자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힘들었죠. 속앓이만 하는 게 저 이택근으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감독님이랑 많이 얘기를 했어요. 나는 이 상황이라면 화를 더 낼 것 같다는 얘기 같은 것들을 했죠. 대사와 감정에 대한 얘기들을 감독님하고 많이 만나면서 나눴어요. 감독님이 많이 믿음을 줬어요. 제 안에 성원이가 있다고 말해줘서 그 믿음을 갖고 했습니다.
하성국 배우(이하 하성국): 저는 감독님 시나리오나 글을 자주 공유받고 술 한 잔하고 커피 마시면서 영화 얘기를 많이 했던 동료라서 이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참여를 하게 됐고, 중순 캐릭터 같은 경우, 저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관계를 왜 이렇게까지 붙잡고 있는지 의아했어요. 저라면 그런 관계는 끊어내거나 화를 내거나 다른 방향으로 풀어냈을 것 같은데 이 시나리오에서는 화를 내는 사람이 잘 없잖아요. 다들 참고 절제하는, 그런 것들을 중점적으로 봤던 것 같습니다.
박봉준 배우(이하 박봉준): 저는 하성국 배우와 고등학교 친구인데 공연을 하다가 영화 쪽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을 소개받았어요. 앞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같이 술 마시다가 시나리오 한 번 읽어볼 수 있냐는 제안을 받고 읽어봤어요. 글이 너무 좋아서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병수를 연기할 때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대사가 너무 좋아서 이 대사를 어떻게 잘 전달할까 하는 생각을 가장 중점에 두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병수가 감정적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 줄 것인가, 단편적이지 않게 바라봐주기를 바라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백수희 배우(이하 백수희): 저는 건대 출신은 아닌데 어떻게 인연이 되어가지고 똑같이 술 마시고 놀다가,(웃음)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감독님께서 너무 좋은 기회를 주셔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저는 은유라는 캐릭터가 이 세 명의 주연들이랑 완전히 상반된 모습을 가졌다고 느꼈고 그래서 더 생기 있고 살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공민정: 잘 들었습니다. 영화가 굉장히 문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죽음이라는 테마를 사용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 영향받은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지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죽음과 불안, 우연과 필연 그 모든 것들이 모퉁이를 두고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퉁이는 많은 우연과 필연이 일어나는 곳인데 그런 식으로 바라보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선: 제가 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닌데 동생이 많이 읽어서 저도 동생이 산 책을 읽게 되는 편이에요. 제가 가족들이랑 포르투갈에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그 도시에 유명한 작가가 누가 있을까 찾아보니까 페르난도 페소아가 리스본에서 살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책을 가져가서 낮에는 관광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어떤 짧은 글귀가 있었어요. 지금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노인이 모퉁이를 돌아나가는 것을 창밖에서 보고 있는 그런 부분이 있었고 자주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이 이와 비슷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게 아예 모르는 타인이 아니라 조금 친하게 지냈던 지인들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을 했던 것 같습니다.
죽음의 모티프는, 저는 살아 있는 삶을 영화로 만드는 거잖아요. 삶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은 저는 죽음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죽었고 무엇 때문에 죽었고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이런 것들은 영화에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걸 보여주지 않고 병수가 죽은 뒤에 두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중점을 둔 것 같습니다.
공민정: 어떻게 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사실 오늘 다시 보면서 병수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다른 죽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미집 아주머니가 남편이 죽었다고 했는데 결국 안 죽었잖아요. 그리고 영화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죽음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존재가 죽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중의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그럼 제가 이제 채팅창에서 질문을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솔한 이야기 나누면서 소주 마시고 싶었습니다.”라는 말도 있고요. “친구 4명 중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 인물은 어떤 의도로 넣은 건지 궁금해요.”라는 질문도 주셨네요. 저도 궁금해요. 왜 안 나오나요?
신선: 자주 들어오는 질문인데 아까 말씀드린 모퉁이 개념이랑 똑같은 것 같아요. 규정이라는 인물은 분명히 살아있고 또 만남을 기약하는 그런 사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잖아요. 병수라는 인물도 10년 동안은 성원과 중순에게 죽어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애초부터 규정을 보여줄 생각이 없었고 계속 언급만 하는 인물이었어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버전에서는 규정의 얼굴이 마지막에 나오는데 영화제 다녀온 뒤 바로 다시 편집을 했어요. 규정을 아예 보여주지 말자, 그러는 게 오히려 모퉁이의 이미지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공민정: 규정 씨는 혹시 누구였나요?
신선: 규정이는 저희 조감독 친동생, 음악 감독이에요.
공민정: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음악 듣다 울뻔했잖아요. 마지막에 사라진다고 하면서 언젠가 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말할 때 진짜 눈물 날 뻔했어요. 그럼 "개미집 아주머니는 왜 남편이 죽었다고 표현했는지 궁금합니다." 이것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이택근: 연기를 할 때는 '무슨 소리지?' 그냥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고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남편이 진짜 꼴 보기 싫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되게 꼴 보기 싫은 친구 있으면 "그 친구? 죽었어." 이런 식으로 표현하거든요. 제가 이상한 건가?(웃음) 아무튼 그런 식의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신선: 그것도 그냥 규정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살아있는데 왜 죽었다고 했을까. 병수의 죽음도 누군가한테 듣게 되잖아요.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장례식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죽었다고 듣잖아요. 사장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일단 영화에서는 다시 사장님이 나타나기 때문에 약간 당황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 말 그대로 오토바이 사고가 났는데 아내가 이제 식당 일을 도맡아야 되니까 꼴 보기 싫었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극적인 이유와 장치적인 이유도 둘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공민정: “보는 동안 참 외로웠는데 마지막은 외롭지 않았어요.”, “아름답게 느껴지면 위험한 거라는 대사 이해가 안 돼요. 아직 인생을 배우고 있어서.”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힘들다고 얘기하고 다닌 게 너무 후회된다, 근데 그 모든 시간들이 아름다웠던 것 같다. 그런데 아름답게 생각하는 건 위험한 건데’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말이 저도 아까 영화 보면서 계속 맴돌았어요. 어떤 의미일까요?
신선: 여기 나오는 모든 관계들이 엇갈리고 마음이 안 맞고 오해하고 이런 과정들을 거치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누군가의 바람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의 환상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어떤 조화로운 순간을 하나 넣어보고 싶었어요. 안 그러면 영화가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아서요. 근데 저는 그 장면이 좀 슬프거든요. 영화를 하고 이야기를 떠올릴 때는 안 좋았던 기억들도 뭔가 미화를 하게 되더라고요. 영화로 보여졌을 때, 현실이 아닐 때는 되게 영화적이잖아요. 실제로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영화를 통과했을 때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그런 부분이 실제 관계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많이 했었어요.
공민정: 맞아요, 저도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이제 배우분들께 질문을 드려볼게요. 성원은 그래서 결국 영화를 찍었을까요? 성원을 연기한 배우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택근: 모퉁이 길을 벗어나면서 영화가 끝이 나잖아요. 한 1, 2년 뒤에 모퉁이를 찍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공민정: 개미집 사장님이 여기서 영화 찍는다고 했는데 언제 찍을 거냐고 물어보시잖아요. 그 얘기를 진짜 직접 들으신 적 있나요?
신선: 직접 들은 적은 없고 제가 혹시 다음에 여기서 영화를 찍게 되면 장소를 빌려주실 수 있냐고 물었을 때는 사장님이 흔쾌히 와서 찍으라고 하셨어요.
공민정: 그렇군요. 혹시 영화 찍으면서 재밌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이택근: 저희가 촬영 중에 카메라 달리(dolly)를 가게 앞에다가 놓고 안쪽에서 촬영을 하다가 이제 찍으려고 하는데 없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난리가 나고 남은 촬영을 못했어요. 다음 날 아침에 주변 고물상을 다 뒤졌어요. 결국에는 찾았습니다.
공민정: 결국 찾아서 정말 다행이었네요. 술도 많이 먹고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찍으셨을 것 같아요. 배우분들이 느꼈을 때 시나리오랑 현장이랑 좀 달라진 것들이 있었나요?
이택근: 워낙 자주 만나서 리딩을 했어요. 그런데 촬영 일주일 전부터는 감독님이 금주령을 내렸어요. 하루에 2~3시간씩 역할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공민정: 사실 그런 시간들이 중요하잖아요.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너무 밀접한 영화이기 때문에요. 은유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은,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펜도 연결되고 콜라 캔도 연결되고 운동화도 연결되고. 인물과 인물 사이에 물건들이 이렇게 오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백수희: 보면 세 친구와 은유가 우연과 필연의 그 경계 속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마주치거든요. 계속 우연적인 만남이 있었죠. 사실 연기할 때 제 입장에서는 콜라 캔이나 볼펜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쿠폰이라는 게 저한테는 더 중요한 매개체였어요. 제가 성원과 병수한테 똑같이 ‘쿠폰 만들어 드릴까요’라는 질문을 해요. 그때 성원은 만든다고 하고 병수는 만들지 않겠다고 해요. 쿠폰이 삶의 지속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공민정: 비슷한 질문이 있어요. “병수가 카페에서 쿠폰을 안 받는 건 죽음을 암시했던 장치일까요?” 이 질문에 덧붙여서 쿠폰이 그런 역할을 하는 장치가 맞다면 병수가 펜은 왜 굳이 다시 찾으러 갔을까요?
신선: 병수가 집에 가던 길에 두 사람을 우연히 만났잖아요. 10년 만에 마주치고 나서는 뭔가 쓸 게 생각났기 때문에 저는 다시 찾으러 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자세하게 보여주지는 않았고요. 캔 질문도 많이 주셨는데 콜라 캔이 돌고 돌아 다시 개미집 앞으로 딱 도착하잖아요. 원래 중순이 마시려던 콜라를 은유가 가지고 나가고 다시 어디선가 콜라 캔이 굴러 다니다가 학생들로 인해서 다시 성원에게 오게 한 것은 씬의 연결적인 문제도 있고 세대를 잇는 어떤 장치이기도 해요. 이런 별거 아닌 일들이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데 그걸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뜻도 있습니다.
공민정: 그렇군요. 아, 은유는 그 친구와 사귀는 건가요?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어요.(웃음)
백수희: 맞아요. 아주 좋아하지 않는 느낌으로 디렉팅 해주셨고 그렇게 연기를 했어요. 근데 저희 마지막 장면은 되게 꿈같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현실에서는 사귀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공민정: 개미집의 리뷰는 그럼 은유가 쓴 걸까요?
백수희: 저는 은유보다는 저한테 고백한 민성이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민성이가 컵에 물때가 묻었다고 얘기를 하는데 대본에서는 민성이라는 캐릭터의 지문이 친절하지만은 않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뒤에선 그렇게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민정: 리스본에서 태어난 성인의 장식품은 어떤 의미인가요? 성원은 왜 중순과 개미집에 그 장식품을 선물한 건지 궁금해요.
신선: 유럽엔 성당들이 많고 관광지가 대부분 대성당 위주로 조성이 돼 있는데 성원은 기념품처럼 사온 거죠. 안토니오 성인이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켜주고 여행자들이 물건을 잃어버리면 찾아주는 인물인데요. 사실 청동으로 만든 하나의 물건일 뿐인데 저희는 그런 것에 되게 의미를 많이 부여하고 살잖아요. 그래서 성원도 중순에게 준, 규정에게 주려고 했지만 주지 주지 못한 것을 병수의 장례식장에 향을 올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준 게 아닐까 싶어요. 애도하는 느낌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자기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도 있을 것 같고.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공민정: 네, 좋은 답변 잘 들었습니다. 이제 병수에 대한 질문을 좀 드려볼게요. 병수가 쓰고 있는 글은 어떤 글이었을까요?
박봉준: 그 글에 대해서 생각은 안 해봤는데 재밌는 점은 정해진 게 없다는 거였어요. 병수가 정말 죽었을지, 사장님이 정말 죽었을지. 이런 알 수 없는 것을 내가 스스로 의미화하면서 보면 재밌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어요. 모퉁이라는 작품이 병수가 쓴 거 아닐까, 병수가 쓰던 이야기들이고 그거 자체가 시나리오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고별을 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공민정: 성원을 베개로 칠 때 어떤 마음으로 친 건지도 궁금해요.
박봉준: 만약 병수가 죽었다면, 저는 병수가 죽음으로써 그 사람들 안에 살기로 결심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감정은 아니지만 늘 똑같은 모습으로 살던 병수에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죽으려고 하고 마지막으로 보려고 했던 거죠. 그 사람을 10년 동안 잊고 살았는데 정말 아름다웠던 사람이구나, 아름다운 건 기본적으로 위험한 걸 알고 있지만 아름답구나, 내가 이 사람을 사랑했구나. 그래서 죽으려고 했던 게 확 와닿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신선: 베개 싸움은 싸움이긴 싸움인데 해가 안 가는 장난, 그런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4명의 추억 속에 있었던 거죠. 그래서 시나리오에 넣었는데 실제로 찍을 때는 좀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되게 다양한 강도로 저희가 많은 시도를 했었거든요. 이렇게도 쳐보고 저렇게도 쳐보고. 그날 촬영 자체가 좀 어려웠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도 아직도 그게 어떤 감정인지 확신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되게 미워서 때리고 싶은데 해는 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해요.
이택근: 저는 병수가 성원한테 죄책감 갖지 말라고 때린 것 같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민정: 질문이 많네요. “슬픔이라는 감정이나 인연과의 작별을 더 잔잔하게 받아들이게 되는가 했는데 각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것 같아요. 옛날에 오해와 실수로 엇갈린 인연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현실에 더 많은 것 같네요.”라는 감상을 남겨주시기도 했습니다. 맞아요, 20대도 그렇고 30대도 그렇고 40대도 그렇고 엇갈리는 인연도 많고 후회되는 인연도 많고 그런 것 같아요.
다음은 홍상숙 님이 질문하셨어요.(웃음) “인물의 내면을 내레이션으로 표현한다는 점, 사물이나 상황이 맞물리면서 서사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홍상수 감독님의 각본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요. 학교 다니실 때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선: 이 질문이 어쩔 수 없이 저를 따라다니는데, 제가 군대를 전역하고 학교를 복학했을 때 홍상수 감독님이 저희 학교 교수님으로 오셨고 감독님 현장에 제가 단역도 나가고 제작부로 일하기도 해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 못 할 것 같아요. 감독님이 항상 '자기가 잘 아는 것을 해라, 그것을 좀 더 깊이 파고 내가 모르는 삶을 건드리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게 이 영화에 드러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근데 저희끼리는 전혀 홍상수 감독님의 느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관객들이 보시기에는 술 마시면서 남자들이 조금 찌질하면 홍상수 느낌이라고 느낄 수 있거든요. 여기 있는 인물을 보시기에 찌질하게 느끼실 수도 있어요. 보통 남자 친구들이 술을 마실 때 자신의 진심을 잘 얘기 안 하거든요. 부끄러워하고 미루고 오히려 센 척하고. 여기 있는 인물들은 조금 더 섬세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해요. 비교를 해보시면 다른 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부분을 찾으신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민정: 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홍상수 감독님 영화는 전혀 안 떠올랐고 요즘 보지 못한 새로운 이 사람만의 영화가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고 나니까 감독님이란 사람과 너무 닮아있는 영화여서 이건 신선만의 영화라는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거 궁금했어요. 영어 제목이 'No Surprise'인데 이 제목은 놀라지 않기를 바라는 병수의 마음인 건지 별거 아닌 일이라는 뜻인지 궁금합니다.
신선: 그 둘 다 있는 것 같고요. 영제를 빨리 정해야 되는데 단순히 직역을 하니까 한국어가 가진 의미를 영제가 못 담아내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새로운 제목으로 해야겠다 싶었어요. 저는 세 인물이 만나는 첫 순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병수는 이들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병수가 거기 있는 걸 몰랐잖아요. 그래서 이 둘에게는 놀랄 만한 일이고 병수에게는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를 담아서 영제를 정했던 것 같아요.
공민정: 영제도 좋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마무리 인사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실 건지, 차기작이 있으신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백수희: 멀리서 오신 분들도 있고 가까이에서 오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자리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저희 〈모퉁이〉 n차 관람할수록 더 생각할 것이 많아지고 많은 대화들을 나눌 수 있는 영화예요. 많은 관객들을 만날수록 더 살아있을 수 있는 영화니까 입소문 많이 내주시고, 리뷰도 좋게 남겨 주시면 너무 큰 힘이 되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박봉준: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변 분들께 많이 추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너무 사랑하거든요. 제가 찍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같이 보자고 하면 좋을 것 같은 영화예요.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성국: 〈모퉁이〉 오늘 개봉날에 관객분들과 얼굴 보면서 같이 이런 얘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 영화 재밌게 잘 봤다고 말씀 전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택근: 저도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저는 〈모퉁이〉가 사골처럼 오래 볼수록 재밌다고 생각해요. 대사들이 너무 좋아서.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연기하면서, 연기로 먹고살고 싶습니다. 저희 기억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신선: 개봉날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요즘에 저조차도 너무 볼 게 많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어떤 것을 보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조금씩 없어지는 것 같아요. 〈모퉁이〉는 개개인의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고요. 집에 돌아가시면서 한 번쯤 지나쳤던 인연들, 지금 가까이 있는 인연들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미 좋은 인연들이 많지만 새로운 인연들이 생겨서 너무 좋고 〈모퉁이〉가 여러분들께도 좋은 인연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민정: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모퉁이〉 많이 사랑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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