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일방적인 마음일까?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22 〈Made for Each Other〉 김소현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염정인 님의 글입니다.
최근 MBTI 질문 내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뀐 MBTI를 자랑하거나 여전한 결과를 전시한다. 그렇게 ‘MBTI’란 또 다른 이름을 얻어 살아간다. 하지만 종종 의심하는 순간을 만난다. 이 영화는 그런 순간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전반적인 영화 그림이 너무 좋다. 일본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가 생각난다. 특히 여름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두고두고 생각날 작품이 될 것 같다. 소개 좀 해달라.
= 영화 소개를 부탁받을 때마다 ‘외로움에 대한 동화’라고 말한다. 주인공 관점에선 타인이 자신을 구원해 주길 기다리다가 종국엔 스스로를 구원하는 이야기가 되겠다.
구원이란 키워드가 와닿는다. 특별히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었나. 연출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도 궁금하다.
= 일단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있다. 영화 주제를 쌓아 올리는 데 많은 참고가 됐다. 연출적인 부분을 말하자면, 아기자기한 연출이 가슴 아픈 이야기랑은 상반되지 않나. 비주얼과 상반되는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란 퀴어 영화가 있다. 불편한 상황을 그릴 때 인물을 광각으로 잡는다. 미묘하게 불편한 연출을 시각적으로 굉장히 효과적으로 담아내더라. 이 작품도 많이 도움이 됐다.
“SCAM” 성격검사를 보면 MBTI가 생각난다. 의도한 부분일 것 같다. 요새는 MBTI를 불신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거 안 믿는 성격유형이 있다”라고 할 만큼 그 영향력이 강하다. 이런 풍경들을 어떻게 지켜봤나. 더불어 영화는 현실의 MBTI 문화와 어떤 식으로 관련됐나.
= 사실 이 영화가 졸업 작품이었다. 의무적으로 뭔가를 떠올려야 했다. 19년 말~20년 초 당시에 MBTI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검사를 해봤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이야길 하다 보면 나와 똑같은 MBTI인 친구 혹은 연인을 많이 찾더라. 나 역시 그랬다. 왜 자신과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원하는지 고민했다. 서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상대를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했다.
영화에 참고하기 위해 소개팅 앱 같은 것도 많이 찾아봤는데 이미 사람들은 자신을 MBTI로 소개하고 있더라. SNS 프로필에도 MBTI를 써놓기도 한다. 그런데 같은 MBTI라고 해서 무조건 잘 맞는 건 아니다. 물론 잘 맞는 부분이 있지만 같은 유형이라고 해서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했다.
조금 아이러니한 질문이지만 사실 감독님 MBTI도 궁금했다.
= INFP다.
역시 낯선 자리에서 MBTI란 화두를 던지면 사람들 사이에 활기가 돈다. 소울메이트를 찾는 인물들이 주로 SNS(‘트위터’)를 이용하더라. ‘소울메이트’라면 자연스러운 관계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들은 적극적으로 소울메이트를 찾아 나선다. 이런 모습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 ‘소울메이트가 실재한다’라는 세계관을 가정했을 때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생각했다. 현실에서 소울메이트를 찾는다면 그 존재가 바로 내 옆의 친구는 아닐 것 같았다. (원래 아는 사인데)‘오늘부터 우린 소울메이트야’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지 않겠나. 이미 서로 아는 사이기도 하고. 영화 내에서 소울메이트는 유니콘 같은 존재다. 잡히지 않으면서도 기대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와 닿아 있진 않지만, 세상 어디에 존재할 누군가를 찾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았다.
성격에 이어 ‘유전자 검사’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정해진 운명(계시된 관계)을 믿게 됐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사람들이 이 검사에 완전히 순응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본와 해나를 만나면서 사라는 거절하고 거절당하는 관계를 경험하지 않나.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은 외로운 사람들이 더 많았나 봅니다”란 주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영화에서 유전자 검사는 어떤 장치였나.
= 나만의 설정에선 유전자 검사는 랜덤이다. 사람들은 전문 지식이 없다면 진짠지 가짠지 판단할 수 없을 거다. 일반 사용자 관점에서 소울메이트론이 비이성적인 결정이라 느끼지 않도록 한 장치다. 객관적 증거 정도의 역할로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누가 나의 소울메이트일 것이냐’는 인물들 본인의 선택으로 남게 되는 부분이 있다.
또 박사님 이름이 ‘주사위’더라. 확률 게임에서 차용한 부분이 재밌었고, scam이란 영단어 역시 ‘사기를 치다’란 의미다. 의도했을 것 같다.
= 맞다. 처음부터 이건 거짓말이라는 걸 드러내며 시작했다.
중간중간 삽입된 앵커 진행도 새롭고 좋았다. 이런 구성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신 건지 궁금하다.
= 이 작품은 나의 졸업작품인데, 영화과가 아닌 미대에 속한 영상학과의 작품이다. 그렇다 보니까 처음엔 상영보단 전시 포맷을 생각했다. 실험영화처럼 만들고자 했고 2채널, 3채널 방식의 전시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인해 상황이 바뀌면서 지금 모습의 극영화가 됐다. 그래서 일반적인 극영화랑 다르게 시청자가 바로 앞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진행하는 뉴스 영상이 포함된 것 같다. 또 처음엔 사라가 뛰어가는 모습도 캠코더로 유튜브 영상처럼 보이게 담으려 했었다.
평소 우리가 관계에서 무얼 기대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다. 특히 ‘나와 같았으면 하는 마음’과 ‘나만의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떠오른다. 사실 이런 마음 자체는 당연한 구석도 있지 않나. 그런데 이본은 “나랑 같이 죽어줘”란 극단적인 선언으로 관계를 확인하려 한다. 왜 이런 부탁을 할 정도로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 건가. 더불어 사라와 이본이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설정하게 됐나.
= 캐릭터 간 관계 설정을 세세히 정하진 않았다. 인간관계에서 제일 이기적이고 극단적 요구가 뭘까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같이 죽어달라는 말일 것 같았다. 그 설정을 위해 이본을 만들었다. 이본은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요구를 사라에게 던짐으로써, 사라가 소울메이트를 찾고자 했던 동기 역시 이기적인 마음은 아닌지 바라보고 싶었다.
배우님께 드렸던 텍스트를 떠올려보면 그냥 이본은 민감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자잘한 일들도 이본에겐 크게 괴로운 일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만 살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는데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인 거다. 죽는 건 또 온전히 혼자니까 그 순간에 몰려올 고립감이 너무 두려운 캐릭터라고 말씀드렸다. 표면적으로는 “나 소울메이트 안 믿는다”면서 기회를 틈타 소울메이트처럼 좋은 사람을 찾아야겠단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와중 사라를 만나러 간 거다. 이본은 SNS 글을 보고 남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자기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로 사라를 만나러 간 거다. 반대로 사라는 그런 괴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그 안에 머물러 감정을 나누고 싶다기보단 앞으로 나아가 행복하고 싶은 사람인데, 이본은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을 공유하고 공감받고 싶은 사람이다. 서로 해결 방법이 다르다. 이본은 서로 같고자 하는 마음을 극단적으로 요구한 사람인 거라고 생각했다.
해나의 등장도 인상 깊다. 해나와 이본은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본은 자신과 보다 동일한 사람을 찾아 사라를 떠났지만, 앞서 사라에게 요구했던 관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해나와 등장한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 이본과 사라는 모두 본인이 가진 외로움을 해결하고 싶은데 방법이 다른 인물이다. 이본은 공감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데, 해나와는 번지 점프대에서 떨어지는 극적인 순간을 공유했다. 그 공감대로 해나와 소울메이트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애초에 해나를 등장시킨 것도 내가 이 사람과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서 거절을 했는데 나와 정말 똑같다고 생각한 사람이 ‘우린 너무 닮았어’라고 말한다면 사라의 마음이 되게 안 좋을 것 같아서였다.
소울메이트란 말 자체가 연인, 친구, 가족과 같은 범주는 아니다. 오히려 이걸 초월하는 듯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첫눈에 발견하긴 불가능해 보인다. 영화에서 소울메이트가 연인 혹은 친구 찾기로 대체되었으면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소울메이트란 관계는 무엇이 다르고 또 비슷한지 궁금하다.
= 영화 안에서 소울메이트는 ‘상대를 만나면 잘해줘야지’라기보단 ‘나를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구원해 줄 구원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에 가깝다. 그러한 바람이 들어간 이름이라 생각했다. 또 친구, 연인, 가족과 같은 관계에서도 이런 욕심이 들어가 있을 수 있지만 소울메이트처럼 현실에선 잘 쓰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라 생각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니얼굴〉 인디토크 기록 : ‘니얼굴’에 담긴 소리 없는 진심에 대해 (0) | 2022.07.29 |
---|---|
[인디즈 Review] 〈초록밤〉: 삶과 죽음을 품은 초록빛 (0) | 2022.07.26 |
[인디즈]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22’ 방효린 배우 인터뷰 (0) | 2022.07.19 |
[인디즈]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22’ 〈소금과 호수〉 조예슬 감독 인터뷰 (0) | 2022.07.19 |
[인디즈] 〈모어〉인디토크 기록: 털 난 물고기가 사는 곳 (0) | 2022.07.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