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십개월을 위한 십개월의 미래
〈십개월의 미래〉 인디토크 기록
일시 12월 5일(일) 오후 1시 30분
참석 남궁선 감독│배우 최성은, 유이든, 백현진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연 님의 글입니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의 끝은 ‘미래의 십개월’의 시작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거야” 당찬 포부를 가진 미래에게는 미래가 존재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 카오스처럼 등장한 임신 테스트기의 강렬한 두 줄. 카오스로부터 코스모스가, 어둠으로부터 빛이, 비합리적 세계로부터 합리적 이해가 가능한 세계가 태어난다지만, 미래에게 카오스는 코스모스로 돌아갈 수 없는 카오스 그 자체다. 카오스는 미래에게 생각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차곡차곡 10개월의 시간은 흘러만 가고 마침내 미래는 카오스를 마주한다. 갑작스럽게 카오스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할 수 있기는 한가? 영화는 카오스를 안고 복잡미묘한 감정에 흠뻑 젖은 미래의 얼굴을 보여준다. 카오스와 함께 할 미래의 미래가 카오스일지 코스모스일지 모르겠다. 다만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미래의 십개월을 마주할 이들을 위해.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이하 진명현): 영화 〈십개월의 미래〉 감독님과 배우분들을 모셨습니다. 한 분씩 인사 부탁드립니다.
남궁선 감독(이하 남궁선): 안녕하세요, 남궁선입니다.
배우 백현진(이하 백현진): 마포구 사는 백현진입니다. 와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배우 유이든(이하 유이든): 〈십개월의 미래〉에서 미래 친구 김김 역을 맡은 유이든입니다.
배우 최성은(이하 최성은): 안녕하세요. 저는 〈십개월의 미래〉에서 미래 역을 연기한 최성은이라고 합니다. 와 주셔서 반갑습니다.
진명현: 최성은 배우님이 관객과의 대화에 처음 참석하시는 거라고 들었어요. 촬영 일정 때문에 아쉽게도 관객분들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관객분들이 너무 기다리셨을 것 같고 최성은 배우님도 기쁜 시간일 거 같습니다. 이렇게 처음 관객분들을 뵙게 된 소감 여쭤봐도 될까요?
최성은: 제가 주연배우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홍보 활동에 임했어야 하는데, 부득이하게 촬영 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오늘이라도 같이 참여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진명현: 남궁선 감독님의 첫 아기 같은 영화입니다. 출산의 인고 과정을 마치시고 열심히 홍보 활동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미래가 겨울에 아기를 낳잖아요. 비슷한 시기에 관객분들과 마주하면서 첫 장편 행보를 마무리하는 일정일 텐데, 시작부터 끝까지 열심히 달려오신 산모의 마음은 어떠신지 여쭤보고 싶어요.
남궁선: 저희 영화가 끝날 때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제 시작해보자’라는 생각이 들고요. 〈십개월의 미래〉 촬영도 10월에 했고 개봉도 10월에 했고. 개봉할 때는 여름 같았는데 이렇게 또 끝날 때는 겨울이라는 게 영화에서 흘러가는 계절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고요. 저 또한 최미래처럼 수많은 회의와 감정들을 겪으면서 시작해서 여차저차 관객들도 만나고 끝이 나고 있잖아요. ‘이 시국에 어떻게 만 오천 명의 관객분들이 극장을 찾아 주셨나’ 싶습니다. 뿌듯하고 힘차게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진명현: 저도 여름 즈음에 이 영화를 봤고요. 오늘 다시 영화를 봤는데, 보자마자 이 뒤의 이야기가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까지 미래의 곁에 있었던 두 분도 함께 자리해주셔서 기쁜데요. 백현진 배우님과 유이든 배우님께도 참여하신 소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유이든: 저는 매번 감회가 새롭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주시고, 봐주시고, 또 관객과의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 모두에게 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올해 〈십개월의 미래〉를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백현진: 만 오천 명의 관객들을 일렬로 쭉 세워 놓으면 정말 길 거 같아요. 아까 남궁선 감독에게 너무 축하한다고 얘기하면서 했던 말이, 저는 분명히 죽을 때까지 앨범 한 장을 내서 만 오천 장을 팔 수 없다는 사실을 알거든요. 어마어마한 숫자인 거 같아요. 만 오천 명이 돈을 내고 어떤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인 거 같습니다. 재밌습니다.
진명현: 저는 만 오천 장 이상 파실 거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너무 확언하지 마시고.
백현진: 제가 음악을 20년 했습니다. 나름 데이터가 있습니다. 안 팔립니다.(웃음)
진명현: 오픈채팅방으로 여러분들의 질문 다 받고 있어요. 올려주시면 제가 최대한 잘 전달해드리도록 할게요. 지금 열자마자 “감독님 하와이국제영화제 잘 다녀오셨나요?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말씀 주셨고요. 하와이 관객분들은 한국 관객분들과 어떤 다른 반응이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하십니다.
남궁선: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미국에서 영화가 상영될 때 생각보다 감상 자체는 한국과 같은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질문들이 있다면 ‘한국의 중절법의 상황이 어떠하냐?’, ‘왜 치킨집을 차린다는데 주인공이 안 좋아하냐? 이해가 안 된다.’ 이런 것들인데요. 제가 한국의 상황을 말씀드렸어요. 임신중단에 있어서 한국은 영화가 제작될 당시에는 전면 불법이었다가, 중간에 헌법 소원으로 위헌 판결은 났으나 아직 그 자리에 들어갈 새로운 법은 없다. 이 정도 질문들을 많이 해 주시고요. 저희와 똑같은 걸 느끼는 것 같아요. 특히 해외의 여성분들도 굉장히 이입하기 쉬운 인물, 정말 리얼한 인물이라고 얘기를 많이 해 주시고요. 저희 최성은 배우가 연기한 최미래에 대해서 배우와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도 많이 해 주십니다.
진명현: 그 얘기를 최성은 배우님께 이어서 들어보면 좋을 거 같아요. 오늘 다시 보면서 느낀 게, 최성은 배우가 이 역할을 안 했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십개월 동안 애를 많이 쓰셨을 텐데요. 어떻게 미래를 처음 만나셨고 〈십개월의 미래〉와 어떻게 지내셨는지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최성은: 몇 년 전에 찍은 영화인데, 독립영화 현장이 낯설 때 처음으로 마주한 장편영화였어요.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감독님의 전작을 보았는데 ‘엄청 독특하면서 굉장히 매력 있는 단편들을 많이 찍으신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같이 하고 싶었어요. 촬영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합류하여 급하게 촬영 준비를 시작하고 정신없이 촬영을 끝냈어요. 미래도 갑작스러운 임신을 하게 된 것처럼, 저 또한 갑작스럽게 이 촬영을 맞이하게 되면서 소용돌이 안에 있는 느낌? ‘정신없이 왔더니 끝이네?’ 약간 이런 감각이 당시에는 컸던 거 같아요. 매 순간 닥치는 문제들을 열심히 해결해보려 하고, 안 되면 주저앉기도 하고 다시 달리면서 했는데, 그런 부분이 저라는 사람과 미래라는 캐릭터가 〈십개월의 미래〉라는 작품을 통해서 이어지는 접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진명현: 정말 좋은 영화들은 여러 가지 장르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임신과 출산과 관련된 얘기인 동시에 훌륭한 가족 영화이기도 하고 여성 영화이기도 하고 성장담이기도 하고 청춘 영화이기도 해요. 그리고 또 남궁선 감독님 특유의 결이 잘 살아 있는 흥미로운 음악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질문을 조금 더 소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낙태죄’가 위헌인 2021년에 미래가 임신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생각을 해 보신 적 있는지 질문 주셨습니다.
남궁선: 2021년, 지금은 낙태죄가 폐지되었다고 할 순 있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법이 없잖아요. 미래가 이 사건을 겪었을 당시에도 사실은 중절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미래라는 인물이 많은 고민을 겪었죠. 2021년에도 그 문제는 똑같은 거고요. 허용되는 법이 지금도 없으니까요. 미래라는 캐릭터 자체가 중간의 인물로 설정이 되어 있어요. 애매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최미래의 성격상 똑같은 일들이 벌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미국에서도 반대로 흘러가는 추세예요. 이미 존재하던 임신중절의 권리를 다시 빼앗아가려는 쪽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거든요. 어떤 기준이 옳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 사이에 끼인 사람들이 겪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데, 2021년에도 똑같이 그러지 않았을까요?
최성은: 저 또한 똑같은 우여곡절을 겪고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명현: 다시 생각해봐도 이 영화는 굉장히 교육적인 영화인 동시에 그런 부분들을 오락적으로 재미있게 보여주는 영화예요. 영화를 보는 내내 재미있게 보다가도 끝나고 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거든요. 다양한 이야기가 논의될 수 있는 장소인 거 같습니다. “애드리브로?”라고 질문이 올라왔는데, 아마 이거에 대해서는 백현진 배우님이 답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도 훌륭한 명연기를 보여주셨는데, 혹시 애드리브 구간이 있으셨나요?
백현진: 저는 배우로서 작업할 때 감독과 프로듀서, 그리고 작가에게 시나리오 그대로는 못 한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들이 알겠다고 하면 함께 하거든요. 그래서 디폴트가 시나리오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 말 저 말합니다.
진명현: 기본적으로 애드리브가 깔려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최성은 배우님께도 여쭤보고 싶어요. 출산에 관한 장면들은 처음 해보신 것 아닌가요? 굉장히 생생한 연기였는데, 어떠셨어요?
최성은: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어서 다큐나 실제 영상들을 많이 찾아봤고요. 실제로 어떤 모습이고 어떤 자세인지 많이 봤던 거 같아요. 그게 도움이 굉장히 많이 되었던 거 같고요.
진명현: 감독님 디렉션이 크게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 감독님은 연출하실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셨는지?
남궁선: 배우에게 가장 집중해야 하는 씬이기도 하잖아요. 아마 전 세계 최연소 아기가 함께 한 촬영이었을 거예요. 그 아기의 안전을 위해 예민하게 현장이 돌아갔던 거 같아요. 성은이가 연기를 한 것은 정말 성은이가 한 거예요. 본인이 느끼는 대로 표현을 했다고 했고. 그런 디렉션은 있었던 거 같아요. 아기의 존재 자체가 굉장히 강렬해서 사람이 맑아지는데, 그보다는 우리가 지나온 여정을 생각하고 어떤 준비의 상태를 찾아가도록 노력을 해보자. 요정도 얘기를 한 게 다였던 거 같아요.
진명현: 굉장히 극적인 장면이네요. 그럼 실제로 출산을 할 때 맞춰서 촬영이 진행된 건가요?
남궁선: 그렇죠. 아기 위주로 일정을 짜 놓고 저희 미술팀이 최대한 빠르게 진행했고, 전후로 어려운 장면들이 있어서 상당히 어려웠던, 전투적이었던 장면으로 기억해요. 저희 영화의 어떤 특징이, 큰 감정씬마다 아기가 등장해서 어떻게 보면 배우들이 더 외롭게 느껴졌을 거 같은? 강미가 아이를 안고 있는 장면도 그렇고, 미래가 아이를 안는 장면도 그렇고 좀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게 실제로 아기를 안고 있는 느낌과 굉장히 비슷하거든요. 너무 정신없고 힘든데 이 핏덩이를 내가 들고 있어야 하고.
최성은: 그때 저도 참 많은 부담감을 가졌던 거 같아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여러 가지 감정이 들더라고요. 이 아이는 대체 어디서 와서 여기 이렇게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너무나 투명하고 팔딱팔딱 뛰고 있는 조그마한 아기를 보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감정이 자연스럽게 들어서 저도 신기하고 좋았던, 기억에 남는 순간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진명현: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의 마지막 점을 찍어주는 훌륭한 연기였다는 생각이 들고요. 저는 특히나 “나는 죽고 너는 살 거야.” 같은 대사들이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혹시 대사를 쓰면서 영감을 받은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이나 작품 같은 것들이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해주셨어요.
남궁선: 음, 영감이라. 주변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필요가 없는 감정인 거 같아요. 이 한 대사에 응축했지만, “넌 엄마잖아.”라는 표현은 사회 전체가 어머니들에게 던지고 있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사실은. 경험하면 느껴져요. 그 말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넌 이제 엄마니까.”라는 생각이. 그래서 어떠한 환경에서 아이가 생겼든 “아이를 가지면 어떠니?”라는 질문에 정답을 얘기해야 하는 상황. “너무 좋고 그 무엇과도 이 경험을 바꾸지 않을 거야.”라는 정답이 있는데, 그 답이 쉬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나는 죽고 너는 살 거야.”라는 대사도 정말 제가 그랬던 거 같아요. 아이가 생기는 순간에 ‘아, 나는 언젠가 죽는구나’라는 개념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 아이를 바라볼 때 ‘이 아이가 자랐을 때 이 아이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만 그런 건 또 아닌 거 같았어요. 때마침 어제인지 오늘인지 뉴욕타임즈의 칼럼을 읽었는데, 집안 모두가 너무나 독실한 종교인이어서 임신을 하면 아이를 무조건 낳아야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19살에 출산한 사람의 이야기예요. 근데 그 사람이 정확하게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것(출산)을 내가 선택해야 한다고 믿게 했던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이 경험이 무엇인지 알고 그렇게 한 건지 묻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아까 얘기한 것처럼 쉽사리 정답이 나오지 않는 거죠. “후회하진 않지?” 이렇게 얘기하면, “응, 당연히 후회하지 않지.” 이렇게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는 에세이를 봤어요. 상당히 보편적일 수도 있는 감정들을 대사에 표현해 본 겁니다.
진명현: 제목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언급을 해 주셨는데요. 원래 제목은 '십개월'이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개봉할 때 〈십개월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바뀌었어요. 영화제에서 보신 분들은 '십개월'이라는 제목으로 보셨을 텐데요. 그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남궁선: '십개월'이라는 제목도 처음부터 정해진 건 아니었고, 다양한 제목들이 있었어요. ‘옥시토신’이라든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든지 아이러니가 묻어난다고 생각한 제목들이 있었는데, 다 너무 센 거예요. 세다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그냥 변화의 시간인 '십개월'로 정했는데, 저도 상당히 무뚝뚝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쿨하게 붙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또 아닌 거 같아요. 차갑게 바라보기만 하는 영화는 아닌 것 같아서. 배급사에서 〈십개월의 미래〉라는 제목을 제안해주셨고, 영화 안의 희망을 바라보고 싶어서 그렇게 정했습니다. 미래를 향해 있는 인물만큼이나 저희 영화도 미래를 향해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리고 시작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제목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저희 주연배우 최성은이 맡은 최미래 역할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웃음)
진명현: 사실 '십개월'이라는 제목이었으면 조금 더 건조했을 것 같긴 해요. 지금 〈십개월의 미래〉라는 제목이 영화의 톤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고요. 배우님들은 영화 촬영할 때와 완성되고 나서 보실 때 느낌이 달랐을 거 같거든요. 완성된 작품을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는지 각각 여쭤보고 싶어요.
최성은: 촬영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봤던 거 같아요. 저는 아직까지 제 작품을 처음 보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내가 저기서 왜 저렇게 했지?’, ‘약간 아쉽네’ 이런 부분들이 많이 보였어요. 그리고 시나리오와는 다르게 편집된 부분들이 있어서 감독님이 정말 애를 많이 쓰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고심을 많이 하시고 이 영화를 출산해 내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시나리오와 달라진 편집의 변화가 더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이든: 저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성은 배우님 말씀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스스로 아쉬웠던 부분들이 당연히 보일 수밖에 없고. 또 하나 아쉬웠던 거는 김김과 미래의 관계가 드러나는 부분들이 편집되어서 조금 아쉬웠고요. 근데 전체적으로 영화를 봤을 때 감독님이 편집하시는 스타일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업 방식이 저랑 취향이 비슷해서 재미있게 봤던 거 같아요.
백현진: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가 배우나 음악가로서 참여한 작품을 공공연하게 적극 응원한다고 표명한 적이 드문데, 〈십개월의 미래〉는 여전히 응원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진명현: 윤호 이야기도 있어요. 지금 자리에 참석은 못하셨지만, 윤호를 채식주의자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는지 질문이 있거든요.
남궁선: 윤호 역의 서영주 배우도 연극과 영화를 동시에 준비하느라 오늘 오지 못했는데, 윤호의 채식주의는 그냥 윤호라는 사람 그 자체인 거 같아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소신이나 자기가 바라보고 있던 미래가 있는 인물이거든요. 예산 문제로 촬영에서 빠진 부분이 있는데, LED로 식물을 키워서 팔겠다는 사업 구상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어요. 저는 그게 윤호 입장에서 자신이 자라온 구조 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념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해요. 안타깝게도 새로운 생명이 왔을 때 소신을 접고 내 손에 피를 묻혀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죠.
진명현: 영화의 톤이 시종일관 밝은 편이지만 군데군데 공포영화를 연상케 하는 무서운 장면들이 있잖아요. 특히 미래 입장에서는 꽤 많은 순간이 공포스러웠을 텐데. 저는 돼지우리에 들어갔을 때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리고 윤호와 밭에서 싸울 때에도 옛날 ‘2프로 부족할 때’ CF 같긴 한데 너무 무서웠고. 최성은 배우님은 연기하시면서 미래가 정말 무서웠겠다는 생각이 든 적 있으신가요? 미래에게 닥치는 공포.
최성은: 사실 매 장면이 무서우면서도 화가 나고 울고 싶었죠. 저는 어머님이 앞치마를 매어줄 때. 남자친구면 뭐라고 할 수는 있는데. 벤치에 앉아 중학생을 만났을 때나 회사 상사와 있을 때나 산부인과 의사를 만났을 때는 뭔가 대적은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시어머니가 될 사람이 웃으면서 나에게 앞치마를 걸어 줄 때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저는 그 순간이 가장 두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명현: 처음에는 임부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게 앞치마인 걸 아는 순간 정말 무서워지는데, 그걸 되게 꼼꼼하게 묶어 주신 것도 되게 무섭고. 그렇다면 윤호와 미래는 정말 끝난 걸까요? 그것도 궁금해지기는 해요.
최성은: 어, 네! 끝이죠.
진명현: 그럼 윤호는 그렇게 집에서?
최성은: 윤호는 어디 가서 본인의 삶을 살고 있겠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제가 응원하는 미래는 윤호와 더 이상 관계를 잇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진명현: 남궁선 감독님은 생각은 어떤가요?
남궁선: 어휴, 안 되죠. 최성은 배우가 신중할 때는 되게 신중하거든요. 그런데 “끝이죠!” 바로 얘기가 나오잖아요. 둘의 관계는 저도 끝이라고 생각을 하고, 다만 윤호가 돼지농장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 같아요. 윤호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풀릴 것 같고, 애기 보러는 가끔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것도 싫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백현진: 그러면 시즌2에서 남자배우는 아웃? 저 같은 경우에는 둘째를 가져야 출연이 가능하네요. 그러면 미래가 둘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진명현: 백현진 배우님이 2편에 야망이 있으시네요.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굉장히 핫한 배우를 잡으셨어요. 또 관객분들 의견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영화와는 관련이 없는 질문 같은데, “네 분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보신 영화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라고 하셨어요. 12월이니까 올해 인상 깊게 보신 영화가 있다면 어떤 건지 여쭤볼게요.
남궁선: 저는 올해 〈십개월의 미래〉 개봉한다고 영화를 거의 못 봤습니다.
진명현: 인상 깊게 본 영화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그렇게 할까요?
진명현: 네, 알겠습니다. 백현진 배우님 얘기도 들어볼게요.
백현진: 최근에 〈아네트〉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아름답다! 너 잘났다. 너무 좋았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 이 감독 작품 〈나쁜 피〉,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봤으니까 30년도 더 됐는데 ‘아직도 이렇게 죽이는 걸 만든다고?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궁선: 레오 까락스 감독님이 저희 영화 티셔츠에 사인으로 ‘행운’이라고 써 주셨습니다.
유이든: 저도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러 다니진 않아서 이번 〈십개월의 미래〉 재미있게 봤고요. 〈아네트〉 인상 깊게 봤습니다.
진명현: 최성은 배우님도 바쁘셔서 ‘답정너’로, 〈십개월의 미래〉인가요?
최성은: 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제일 좋아서 기억에 남았다기보다는, 〈아담〉이라는 영화를 쉴 때 혼자 보러 갔는데, 그 영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한 장면 때문이에요. 여자 주인공이 갓난아기를 키우는데, 젖을 물리면서 아기를 죽이려고 하다가 그 마음을 포기하게 되는 장면이 있어요. 배우로서도, 여성으로서도 훅 몰입이 되었던 장면인 거 같아요. 영화 자체는 전반적으로 아쉬운 면도 있었는데, 그 장면이 강렬하게 남아서 자극을 주는 영화인 거 같아요. 그 영화도 시간이 되면 한 번쯤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명현: 소개하지 못한 질문 중 “70년대 음악들이 삽입곡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특별히 옛날 곡으로 고르게 된 이유가 있나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남궁선: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없습니다. 특별하게 옛날 곡을 선택한 건 아니고요. 저희 영화가 계속 거리두기를 하는 영화이거든요.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에 시대적으로도 거리감이 있으면서 가사에 아이러니가 있는 곡들을 찾다 보니까 그렇게 질감이 좋은 70년대 노래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옛날 곡을 쓰려고 한 건 아니고, 그 장면 특유의 거리감과 웃긴 듯하지만 진지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곡들을 선택했습니다.
진명현: 사실 장편을 발표하기 전부터 남궁선 감독님은 독립영화계에서 ‘힙’을 담당하고 계셨는데요. 영화가 특이하게 챕터와 키워드로 나누어져 있고 챕터가 전환될 때마다 계절감과 거리감이 느껴져요. 말씀해주신 음악 속의 가사들도 긴밀하게 영화의 이야기와 같이 흘러가고 있거든요. 만약에 다시 보시게 된다면 이 부분을 주의 깊게 보시면 더 재미있으실 겁니다. 백현진 배우님께도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미래에게 의사 선생님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반대로 의사 선생님은 시종일관 침착하고 의연한 태도인데 미래를 볼 때 어떤 감정이었을지 궁금합니다.”라고 하셨어요.
백현진: 미래를 볼 때요. ‘손님이 왔구나.’ 그리고 그다음에 질문이?
진명현: “미래에게 의사 선생님은 어떤 존재였을까요?”라고요.
백현진: 그건 미래에게 물어봐야죠.
진명현: 의사 선생님은 미래를 단순히 손님으로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섭섭하지 않으신지? 우리 미래님.
최성은: 아니요. 미래도 그냥 의사 선생님으로 봤겠죠?
백현진: 전문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다 손님처럼 보여요.
최성은: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면 의사 선생님께 의지를 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뭔가 답을 내려주고 안정을 줬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을 품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다른 방식의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순간 미래도 그걸 알게 되지 않았을까?
남궁선: 참고로 아까 애드리브 말씀하셨잖아요. 미래가 처음 찾아오는 장면에서 의사 선생님이 미래가 방을 나가자마자 하신 애드리브가 “또라이구만”이었어요.
진명현: 의사 선생님이 인생에 중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 그건 미래에게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저는 의사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미래가 너무 외로웠을 거 같아요. 〈십개월의 미래〉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무엇인지 여쭤보셨거든요. 짧게 한 장면씩 말씀해주시겠어요?
남궁선: 저는 엔딩입니다. 엔딩을 위해서 존재하는 영화인데, 그 엔딩이 제가 상상하던 것만큼 강렬해서 촬영하는 순간부터 알았어요. 내가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하겠구나.
진명현: 아까 이런 질문이 있었는데, 혹시 어머니 보여드린 적 있으세요?
남궁선: 네, 많이 보셨죠.
진명현: 혹시 어떤 반응을 하셨나요?
남궁선: 저희 어머니 성격이 약간 최미래 같아요. 심플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잘 봤어.”. “마지막에 ‘엄마에게’ 봤어?”, “응, 봤어. 감동적이더라.” 이 정도 말씀하셨습니다.
진명현: 아, 알겠습니다. 백현진 배우님, 어떤 장면이 지금 기억이 나시나요?
백현진: 음, 저희 포스터에 나오는 장면 있잖아요. 뒤에 파란 나뭇잎들이 있는 병원 장면. 포스터 때문에 세뇌가 되어서 그런 건지 상쾌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유이든: 저는 미래가 강미 집에 찾아갔을 때, 강미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던 거 같아요.
진명현: 그 장면도 잊을 수 없죠. 놀라운 의상과 강렬한 아기의 존재감과.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최성은 배우님 혹시 한 장면만 지금 골라 주신다면?
최성은: 저도 엔딩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같이 누워 있는 장면도. 고난을 겪고 나서 집에 와서 “나 윤호랑 결혼 못 할 거 같아.” 이렇게 얘기하고 할아버지 옆에 누워 있는,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진명현: 지금 언급되지 않은 장면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올해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무서운 빌런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거대한 초등학생이 등장해서 미래에서 폭언을 하잖아요. 그 장면도 잊히지가 않는데, 최성은 배우님 그 장면 찍으면서 어떠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그 친구 정말 미동도 없이 표정도 안 변하고 사라지더라고요.
최성은: 그렇죠. 그 장면을 찍을 때는 대사가 길고 욕을 잘 살려야 한다는 배우로서의 책임감이 커서 생각이 많았던 거 같아요. 마지막에 “아줌마 애기는 나처럼 안 될 거 같아요?” 이 말이 어떤 말보다 제일 무섭게 다가왔던 거 같아요.
진명현: 두 배우가 앉아서 이야기하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영화가 생각날 정도로 무서웠는데, 그 장면은 왜 넣으신 거예요?
남궁선: 저에게 그런 말을 하고 간 초등학생이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심각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해놓고 가더라고요. 기분이 좋지 않았죠. ‘다음에 또 저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쟤네 엄마한테 일러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촬영하기 직전에 갑자기 그 에피소드가 떠오르더라고요. 미래가 면접에서 나와서 욕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있을 때 걔가 나타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넣게 되었습니다.
진명현: 네, 그 친구 꼭 호되게 한 번 당해 봤으면 좋겠어요.
남궁선: 그냥 영화를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
진명현: 그 배우님의 연기에는 깊은 감탄을 보냅니다. 아직 꺼내지 못한 얘기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마무리해야 될 시간이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 계신 배우님들과 감독님의 차기작이 너무 궁금해져요. 그전에 〈십개월의 미래〉 시즌2를 만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품고, 감독님 빨리 집필에 들어가셨으면 좋겠고요.
백현진: 개런티가 맞아야 해요.
진명현: 아, 그렇죠. 백현진 배우님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 1만 5천명 돌파 GV와 주신 관객분들, 그리고 배우님들과 감독님 너무 감사드리고요. 끝으로 네 분의 인사말을 듣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남궁선: 갑자기 또 허하네요. 아직 상영이 남아있다고 하니까 바이바이는 하지 않을게요.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저희 영화가 〈십개월의 미래〉 속 카오스처럼 자라서 이렇게 세상에 나와서 지금 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게 행복하네요. 인디스페이스도 곧 이 자리를 떠나게 되잖아요. 여러모로 감동적인 자리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현진: 이런 시국에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본다는 게 굉장히 희박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유이든: 한참 잠잠해지다가 또다시 어수선해지는 시국에 생각보다 많이 와 주셔서 깜짝 놀랐는데 한 분 한 분 모두 감사드리고요. 네,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감사합니다.
최성은: 저희 영화 GV 와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이 영화가 앞으로 각자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끔씩, 아니면 한 번이라도 떠올렸을 때 힘을 얻는 영화가 되면 좋겠고요. 다들 안전하게 돌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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