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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소설가 구보의 하루〉: 하루의 끝엔 내일이 있음을

by indiespace_한솔 2021. 12. 21.

 〈소설가 구보의 하루〉  리뷰: 하루의 끝엔 내일이 있음을

 

 

 

 

   *관객기자단 [인디즈] 유소은 님의 글입니다.

 

〈소설가 구보의 하루〉는 1934년 발표된 박태원 작가의 단편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구보(박종환)의 일상을 현대적으로 담아낸다. 일제강점기 시절 정치 체제에 의해 좌절했던 구보가 자본주의 안에서 순수문학을 추구하며 어려움을 겪는 현대사회의 구보로 재탄생했다. 집에서 글을 쓰던 무명 소설가 구보는 어느 날 외출을 한다. 그는 자신만의 시간에 이어 선배, 과거의 연인, 오랜 친구, 새로운 인연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하루를 보낸다.

 

 

영화의 영문 제목은 'Sisyphus's vacation', '시시포스의 휴가'.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영원히 산 정상으로 올려야 하는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 매일 글을 쓰는 소설 속 구보. 두 인물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반복되는 일을 견뎌낸다. 감독은 이러한 두 인물에게서 공통된 면을 본다. 익숙해지고 지쳐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느끼기 위해 외출한 구보의 하루는 마치 시시포스와 같은 모습을 내려놓은 휴가인 것이다.

 

휴가를 나온 시시포스, 구보는 변변치 못한 주머니 사정, 점점 빛이 바래는 듯한 꿈, 막막한 현실을 안은 채 서울을 배회한다. 지금은 폐간된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 구보는 소설 출간의 희망을 품고 출판사 선배 기영(김경익)을 만나지만, 구보의 상업성이 없는 순수문학에는 부정적 답변만이 돌아온다. 이후 이어지는 그의 하루는 여전히 꿈과 현실,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과 그 안에 섞이지 못하고 소외되는 자신의 처지 사이 괴리감이 감돈다.

 

 

흑백 화면은 구보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특별한 사건이나 직접적 표현 없이 정적으로 그려지는 구보의 모습에서 그의 권태로움부터 소외감, 자괴감, 무력감까지 복잡한 정동이 전달된다. 이에 구보를 연기한 박종환 배우와 김새벽, 기주봉 등 독립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생생한 인물들이 완성된다. 인물이 거니는 서울의 거리도 색채가 사라져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을지로, 종로, 대학로 등 이어지는 풍경은 공백을 머금은 화면 속에서 고즈넉하고 여유로우면서도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영화는 커다란 사건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상적인 흐름에 따른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저 우리의 사는 모습을 비추어 보일 뿐이다. 이에 현대인들이 수월하게 공감할 수 있는 번뇌와 방황을 담으면서도 비관적인 끝맺음을 하지는 않아 더 큰 울림을 준다. 하루가 끝날 무렵, 구보는 연극배우 지유(김새벽)를 만나고, 그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루의 끝엔 내일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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