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를 닮은 사랑의 반짝거림 여름방학 〈빛나는 순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1년 8월 7일(토) 오후 6시
참석 소준문 감독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유진 님의 글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있다. 영화 〈빛나는 순간〉은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짧게 피어난 해녀의 사랑을 그려낸 작품으로, 해녀 진옥을 연기한 고두심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아시안필름페스티벌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처음으로 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고두심 배우와 지현우 배우의 캐스팅 과정, 촬영 기법, 극중 삽입된 아이유의 “밤편지”, 작품의 결말 등 〈빛나는 순간〉의 후일담을 들어볼 수 있었던 인디토크의 기억을 공유한다.
소준문 감독(이하 소준문): 안녕하세요, 저는 〈빛나는 순간〉을 연출한 소준문 감독입니다. 오늘 이렇게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부득이하게 비대면 관객과의 대화를 하게 되어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자리 함께해 주시면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명현 대표(이하 진명현): 스크린을 통해 감독님과 대화 나누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질문 주시면 바로바로 대답 드릴 테니까요. 어려운 걸음 하신 만큼 시원한 극장에서 끝까지 이야기 들으시면 좋은 작품의 여운을 오래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늘 상영 전에 〈빛나는 순간〉을 극장에서 관람했는데요. 오늘 두 번째로 영화를 보니 처음 봤을 때는 안 보이던 장면들이 많이 보였어요. 처음 봤을 때는 고두심 배우님의 존재감이 워낙 강력해서 진옥 캐릭터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오늘 보니 다른 부분들도 많이 보이더라구요. 두 주인공인 진옥 역의 고두심 배우님, 경훈 역의 지현우 배우님이 굉장히 빛났던 영화였는데요. 어떻게 이 배우님들을 캐스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준문: 고두심 선생님은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분이라, 만약 선생님을 캐스팅하는 것에 실패했다면 이 영화는 완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영화의 0순위였기 때문에 선생님께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가갔어요.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벗어난, 이른바 파격적이라고 불릴 만한 부분들이 있어서요. 진옥 역할이 고두심 선생님께서 그간 보여주신 이미지와 상반되는 경향이 있을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그런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주셨어요. 오히려 니즈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더불어 선생님 고향이 제주도라 제주도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 주실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고두심 선생님께 캐스팅 제안을 드리게 됐어요. 지현우 배우는, 사실 경훈 캐릭터가 원래는 나이가 더 어린 설정이었거든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나이대를 올리게 되었는데, 저희 캐스팅 디렉터분이 수정된 캐릭터를 보시고 지현우 배우님을 추천해주셨어요. 지현우 배우를 만난 순간 이 분이 경훈을 맡아 주셔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현우씨에게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미 이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나서 감정 연습을 위해 제주도를 한 번 다녀오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참 고마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두심 선생님과 지현우씨의 조합이 좋아서 바로 캐스팅을 진행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특히 진옥 캐릭터는 해녀라는 캐릭터 특성상 수중 촬영이 많아서, 배우분들이 너무 고생하실까봐젊은 배우분들께 대역을 부탁드려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고두심 선생님께서는 이 영화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크셔서 수중 촬영도 마다하지 않으셨어요. 다이빙하는 장면도 굉장히 열심히 임하셨고요. 그런 노력으로 좋은 장면들이 많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진명현: 고두심 배우님이 아니었으면 감독님이 쓰셨던 감정선들이 완전히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고두심 배우님이 역할을 반려하셨다면 지금과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거나 아예 못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소준문: 저는 아예 못 나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두심 선생님을 꼭 캐스팅해야 한다고 PD님을 많이 괴롭혔죠. 미팅 당시 선생님을 처음 뵐 때, 어쩐지 저는 고두심 배우님 하면 국민 배우의 강한 아우라가 떠올랐는데 소박한 차림으로 나오셔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기 때문에 꼭 작업을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미팅 당시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선생님께서 제주도에서 살아왔던 본인의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셔서 자연스럽게 편안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무심코 선생님의 손을 봤는데,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손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진명현: 채팅방에 고두심 배우님과 지현우 배우님의 조합이 너무 좋았고, 2차 관람도 기대된다는 말씀을 해 주신 관객 분이 계십니다. 고두심 배우님은 〈빛나는 순간〉으로 아시안필름페스티벌 여우주연상이라는 큰 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잖아요. 그간 고두심 배우님을 TV로만 보셨던 관객분들에게는 이 작품이 선물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2차 관람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좋았던 부분이 촬영 기법이었거든요. 오늘 다시 보니 역시 아주 섬세한 촬영이 돋보이더라구요. 제주의 여러 순간들이 굉장히 아름답게 담긴 것 같아요. 다시 보며 제가 놀랐던 장면이 있어요. 경훈은 임시아파트에 커튼을 치고 생활하는데, 커튼이 쳐진 어두운 집 안은 마치 바닷속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경훈이 아플 때 진옥이 그 커튼을 열면 햇빛이 방 안으로 번져요. 그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소준문: 아, 우선 경훈의 아파트는 제가 실제로 시나리오를 쓰러 갔을 때 묵었던 숙소입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그 공간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배우가 그대로 연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가 묵었던 공간에서 촬영을 진행했구요. 경훈은 제주에 왔지만 여전히 물 안에 빠져있다는 트라우마 속에 있는 인물인데 진옥이 그를 찾아오고 커튼을 열어주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듯 트라우마에서 해방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인 동시에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화에 상징적 컬러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유채꽃의 노란색은 그리움의 색으로 등장하죠. 그리고 저희 영화에는 클로즈업이 많고 배우들에게 집중하는 부분들이 많아요. 촬영감독님과 논의 끝에 이 영화가 단순히 제주의 풍경을 보여주기보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는 작품이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죠. 예쁜 제주의 풍광보다도 좀 더 인물에 집중된 것은, 그들이 제주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자연 경관도 아름답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했어요.
진명현: 저는 이 작품이 촬영에 더불어 조명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아주 꼼꼼한 프로덕션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죠. 한 관객분께서 영화 감상하시며 박근영 감독의 〈정말 먼 곳〉이 떠오르셨다고 하는데, 〈빛나는 순간〉의 촬영감독님이 〈정말 먼 곳〉의 촬영감독님과 같은 분입니다!(웃음) 저도 영화를 보며 촬영감독님의 차기작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 없이 찍는 스타일이 아니라 굉장히 세심하게 배우의 연기나 감정선을 잘 포착해 주셨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갑자기 한 장면이 또 생각났는데, 진옥과 경훈이 곶자왈에 가서 숲길을 걷고 잎을 만지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테크니컬한 성격이 있어요. 짧은 장면이었는데도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도 좋은 영화라는 생각을 들게 했구요. 또 한 관객분께서 해녀분들이 ‘이어도사나’라는 노래를 부르시는데 이건 해녀들의 노동요인지 궁금하다고 하셨고, 이외에도 ‘밤편지’ 등 극중 등장한 노래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소준문: ‘이어도사나’는 제주도 민요예요. 제주도 해녀들이 바다로 나갈 때 특별한 이유 없이 부르는 노래예요. 특이한 점은 이 노래는 가사가 따로 없다는 거예요. 슬픈 기분 기쁜 기분 등등 기분에 따라 다르게요. 음은 같지만 가사가 매번 본인이 느끼는 본인의 감정들을 실어서 다르게 부르는 거라서, 저희도 이 영화에선 어떤 가사를 실어야 할까 고민했는데 결국에는 해녀 역할을 맡아주신 배우분 중 한 분이 가사를 지어 불러 주셨어요.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자면, ‘이어도사나’는 진옥이 평생 불렀던 노래인 반면 ‘밤편지’는 경훈이 찾아오고 난 뒤 불렀던 노래라는 점에서 다른 감정의 결을 가지고 있죠. 감사하게도 아이유님께서 고두심 배우님과 함께 작업을 하셨던 인연이 있어서 ‘밤편지’ 곡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저희 영화가 이런 면에서 참 운이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밤편지’도 시나리오에 써놓고 다른 곡으로 못 바꾼다고 강경하게 주장해서 PD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웃음)
진명현: PD님이랑은 잘 지내시죠? (웃음)
소준문: 네, 잘 지냅니다.(웃음) 다행히도 아이유 님께서 이 곡의 사용을 허락해 주셔서 쓰게 됐고,영화와 굉장히 잘 어울려서 좋았어요. 사실 이 노래는 젊은 층에게 주로 유명한 노래라 약간의 고민도 처음에는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양희은 선배님이 부르는 ‘밤편지’를 듣고 확신했어요. ‘이 노래는 세대와 상관없이 모두가 통할 수 있는, 그리움에 대한 노래구나.’ 하고요. 사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진옥이 경훈에게 ‘밤편지’를 불러줄 때 실제로 반딧불들이 찾아오는 장면이 있었어요. ‘밤편지’ 가사처럼요.
진명현: 마지막에 진옥이 바닷가에 서 있는 장면 위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의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라는 노래 가사가 겹쳐질 때 노래와 영화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PD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감독님 말씀 들어보니 배우도 이 분 아니면 안 되고, 노래도 이 곡 아니면 안 되는 등등 고통스러운 작업을 하셨잖아요.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웃음)
또, 한 관객분께서는 소준문 감독님은 그동안 퀴어 로맨스 작품을 주로 찍어 오셨는데, 이번 영화를 찍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 주셨습니다. 저는 감독님 전작들을 봤는데 사실 이 영화와 이전의 작품들이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 작품 역시 노년의 로맨스라는 소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누가 봐도 소준문 감독의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고 봐요.
소준문: 어떻게 보면 제가 일전에 찍었던 영화들에서 조금 더 확장된 형태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제가 첫 영화부터 지금까지 쭉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자의 모습인데요. 이 영화 역시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명현: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저는 이 영화가 좀 더 파격적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간 노년층의 성을 다룬 영화가 굉장히 드물었기 때문에.
소준문: 사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좀 더 수위가 있었어요. 폭풍처럼 감정이 휘몰아치는 묘사도 있었죠. 그런 부분에 있어 타협을 했다기보다는 그렇게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거죠. 사실 아쉬움은 있어요. 성적인 묘사가 부족해서 아쉬운 게 아니라, 좀 더 인간 대 인간으로 몸을 부딪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장면을 그려내고 싶었거든요. 시나리오에는 주름진 얼굴과 몸을 어루만져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열려 있으셨어요. 단순히 보여주기 식이 아닌, 몸을 통해 전하는 위로를 담아내려는 의도를 이해해주신 거죠.다만 저희가 시나리오를 수정하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수위를 낮췄던 것 같아요.
진명현: 사실 배우들의 연기가 충분히 자연스러웠고 풍부했기 때문에, 안 봐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동굴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뭔가 그들의 사랑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면서 안 보는 게 더 좋겠다는 마음이 들게 했어요.
소준문: 다음을 생각하는 건 관객들 몫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전에 했던 작업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제가 어떤 특정한 부분을 강요하기보다는 여지를 주면서 그 안에서 관객분들이 감정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쉼표를 넣었던 것 같아요. 제 주변 지인들도 영화를 흘러가듯이 감상하다 깜짝 놀랐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니 오히려 나의 생각들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고 말해주더라구요. 제가 만약 이런 감정들을 밀어붙였다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겠구나 싶었죠.
진명현: 연출자의 입장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을 지지하면서도 무례를 범하지는 않겠다는 태도가 좋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 장면은, 진옥이 먼저 키스를 하고 이어지는 섬세한 흐름이에요. 이런 조심스러운 전개가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단순히 ‘파격’이라고 부르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요. 한 관객 분이 경훈의 대사 중에 “뭘 좀 봤거든요”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뭔지 끝까지 몰라서 궁금하다고 질문 주셨네요. 통장 같은 게 있었나요? (웃음)
소준문: 사실 해답이 이전 시나리오에는 있어요. 그렇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모든 것들을 다 이야기하면 이 영화의 매력이 떨어질 것 같거든요. 결국 경훈이 뭘 봤는지는 관객분들이 각자 자신의 빛나는 순간에서 찾기를 바랐던 거예요. 어쩌면 미소를 흘렸을 수도 있고, 마음을 봤을 수도 있고. 우리 각자 사랑의 모습이 다들 다르기 때문에 명확한 답을 드리고 싶진 않았어요. 관객분들 각자 내가 사랑을 했을 때 봤던 것들에 대입을 해보시면 진옥과 경훈의 사랑이 결코 파격적인 모습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실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답을 찾기 위해 너무 애쓰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답이 아닌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처럼 사람들이 밀어내고,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죠. 그런 지점들에 대한 제 나름의 물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진명현: 결말 부분에서 왜 진옥과 경훈의 사랑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준문: 저는 제 스스로가 좀 낭만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랑이 완성되면 낭만성이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실 사랑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이 올 수도 있고. 그런 가능성에 대해 열어두고 싶어서 이런 결말을 생각한 것 같아요. 저는 사랑이라는 게 꼭 같이 있고 곁에 있어야만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둘의 결말이 또다른 사랑이라는 생각도 들고. 둘은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헤어졌지만 이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한 발짝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그게 해피엔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명현: 둘이 저렇게 끝난 게 아니라, 왔다갔다하면서 만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안 보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촬영하면서 제주도에 머문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소준문: 두 달 정도 머물렀습니다. 제주도는 갈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다음에는 사람들의 정서에 좀 더 매료되고. 영화에도 나오지만 상처를 이겨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그런 것들요. 살다 보면 살아진다. 이런 태도가 어쩌면 모두에게 필요한 메시지이고 힘이지 않을까 싶어요.
진명현: 제주를 찍은 영화인데 놀라울 정도로 관광지가 안 나와요. 어떤 장면들은 세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제주와는 상당히 다르고 낯선 풍경이 펼쳐지는 것 같아요. 로케이션 과정에서 이런 곳들을 어떻게 발견하셨는지 궁금해지더라구요. 다시 한 번 PD님 고생하셨다는 말씀 드립니다.
소준문: (웃음) 제가 또 주문을 드렸죠. 절대 카페가 없는 동네였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그런 고민들을 많이 했어요. 지금 제주도는 관광지로서 많은 부분들이 변하고 있는데, 변하는 모습과 아직 변하지 않은 것들을 함께 담는 것이 좋을까 하는 고민이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현재 변한 제주보다는 예스러운 제주의 모습이 담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지역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요. 저희가 촬영을 진행했던 동네는 카페도 없고, 식당 몇 개만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어요. 그리고 해녀 작업장이 바다와 붙어있는 곳이 굉장히 드물거든요. 그래서 그 동네에서 작업을 진행했죠. 진옥의 집도 실제로 60대 해녀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집이에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사실 집주인 할머니 분이 저희가 영화 작업에 참고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셨던 분이에요. 저희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예쁜 집을 찾아서 주인 분을 만나러 갔는데 다큐멘터리에서 뵌 분이 계신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랐죠. 운명이란 게 진짜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 번 뵙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반가웠죠.
진명현: 우연과 운명과 PD님의 고통이 합쳐져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웃음) 감독님 차기작 계획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이 계시네요.
소준문: 차기작은 요즘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영화 작업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혼란을 느끼는 시기라서. 사실 고두심 배우님과 작업을 했던 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서 선생님과 다시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어요. 선생님께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감독들이 발견해주기를 기대하고 계셔서, 저는 그게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고두심 선생님이 긴 시간 쌓아온 이미지가 있잖아요. 저는 사실 이번 작업을 하며 아무도 그 틀을 변화시켜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선생님께서도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욕망이 분명히 있으신데. 이 영화를 통해 다른 감독분들도 고두심 선생님의 새로운 면면을 더욱 많이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시니어 배우분들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모습이 없는 게 아니라 변화의 시도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클 거예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고두심 배우님과 아이유 배우님의 범죄액션영화가 궁금하네요.
진명현: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영화여서, 차근차근 곱씹어 보면 더욱 사무치는 장면들이 많을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시는 동안 아름다운 영화에 대해 생각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빛나는 순간〉은 이제 안방에서도 보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네요. 그럼 소준문 감독님 끝인사 말씀 부탁드릴게요.
소준문: 요즘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니까요. 다들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저희 영화 〈빛나는 순간〉을 보러 극장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리뷰를 보다 보니까 이 영화를 어머님과 같이 보러 오시는 모녀 분들이 꽤 계시더라구요.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좀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를 보러 오라고 선뜻 말씀드리기 힘든 시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 독립영화 많이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진명현: 네, 그럼 고두심 배우님 사랑합니다 하고 끝낼까요?(웃음)
소준문: 저는 사랑한다는 말씀은 잘 못 드리는데 선생님께서 가끔 “이녁 소랑햄수다(‘당신을 사랑합니다’의 제주 방언)”라고 문자를 보내시더라구요. 저는 쑥쓰러움이 많아서요.(웃음)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할 때 “이녁 소랑햄수다”는 표현을 써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진명현: (웃음) 네. 그러면 저희는 이제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무사히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상사화 있잖아요. 저는 그 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같아요. 꽃이랑 잎이랑 그 둘이 만나는, 짧지만 빛나는 순간이 있겠다 싶더라구요. 그 누구도 모르는. 둘만이 간직한.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그래서 더 애틋하고.” 극중 경훈의 대사다. 〈빛나는 순간〉이 품은 이야기가 그렇다. 많은 노력과 우연, 운명이 합쳐져 만들어진 이 영화가 앞으로도 영롱하게 빛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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