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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빛나는 순간〉: 사랑의 결말이 어떻든 빛나는 순간이 거기 있었음을

by indiespace_한솔 2021. 8. 10.

 

 〈빛나는 순간〉  리뷰 : 사랑의 결말이 어떻든 빛나는 순간이 거기 있었음을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아름다운 해변과 오름,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담아지는 미디어 속의 제주는 아마도 관광지로서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상징적인 공간으로서의 제주가 아닌, 제주가 가진 다양한 색을 담은 영화를 종종 마주치게 된다. 소준문 감독의 <빛나는 순간>이 바로 그러한 영화다. <빛나는 순간>은 그동안 흔히 봐온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대로 한 채, 그 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발굴하여 담아냈다.

 

영화는 관광지로서는 비교적 많은 이들이 찾지 않는 삼달리의 해녀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곳에서 일평생 해녀로 살아온 진옥(고두심)을 취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PD 경훈(지현우)은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다. 제주 바다를 떠나본 적 없는 진옥에게 경훈은 그저 외부인에 불과하며 방송을 위해 다가오는 방송쟁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경훈이 진옥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진심을 보이자 서서히 진옥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빛나는 순간>은 흔히 33살의 나이 차를 극복한 이른바, ‘파격적인 멜로를 담고 있다고 소개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흔한 말로 숫자에 불과한나이 차보다는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는 방식이 더욱 눈에 띈다. 초반부에서 진옥과 경훈이 각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깨닫는 순간. 먼저 경훈이 진옥에게서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겹쳐 본다. 진옥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파도가 일렁이고, 이를 기점으로 경훈은 진옥에게 한층 깊이 있게 다가간다. 진옥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경훈을 향한 마음에 눈을 뜬다. 경훈이 샤워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마주한 진옥은 아마도 평생 동안 느껴본 적 없었을 욕망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육체적인 감각으로서 먼저 사랑을 경험한다.

 

이는 진옥과 경훈이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초반과 비교해보면 더욱 재밌는 사랑의 시작점인데, 경훈이 다큐멘터리를 위해 진옥을 처음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섹슈얼한 긴장감이 없다. 경훈은 진옥을 인터뷰이로 섭외하기 위해 무작정 친근하게 굴며 덥석덥석 진옥의 손을 맞잡는 모습을 보인다. ‘억척스러운 70대 해녀 할머니 진옥을 비롯한 나이 든 여성을 성적 욕망이 없는 무성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에 뒤통수를 치듯 영화는 진옥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낄 기회를 선물하며 진옥이 사랑을 감각하는 방식을 표현한다.

 

 

이러한 사랑의 도입부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영화의 중반부는 경훈과 진옥이 과거로부터 지녀온 아픔에 보다 집중한다. <빛나는 순간>이 두 사람의 멜로를 경유하며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이야기는 사건 이후 남겨진 자의 삶에 관한 것이다. 진옥은 어린 시절 겪은 제주 4·3 사건 때 가족을 잃고 살아남았던 기억으로부터, 그리고 경훈은 세월호 사건으로 연인을 잃었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마치 바다가 깊은 수심으로 다리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두 사람은 살아남았기에 평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했던 응어리진 감정을 서로를 통해 비로소 보듬을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를 구조해주는 장면이 다양하게 등장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진옥이 방에서 혼자 앓고 있는 경훈을 찾아가 푸른 방 안의 분위기를 단숨에 열어젖히는 장면이다. 경훈의 공간을 둘러싼 심해와 같은 푸른 어둠에 햇빛이 스며드는 이 장면은 경훈과 진옥의 공유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설명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고 또 핵심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경훈의 슬픔이 푸른빛이었다면 진옥의 슬픔은 제주 4·3 사건 때 산과 동굴로 숨었던 기억 속 초록빛으로 은유된다. 경훈과 진옥이 숲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한 장면에서 절묘하게 빛이 두 사람을 향해 새어 들어와 무지개를 만들어내는데, 이 역시 앞서 말한 장면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연출로 다가왔다.

 

 

영화는 경훈과 진옥이 가진 국가적 사건으로 인한 아픔을 보듬으며 중반부를 지나, 결말부로 와서는 결국 다시 두 사람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집중한다. 서로를 향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주위의 시선에 두 사람의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결말로 다가가지만 결말이 더 이상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다. 두 사람은 사랑을 통해 서로를 구조했고 사랑을 말하지 않고도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움을 표현하는 노래 가사로, 상사화로, 숨비 소리로. 두 사람의 결말이 어떻든, 사랑을 말하며 빛났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면서 진옥과 경훈은 살아갈 것이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영화 속 대사가 영화가 끝난 후에는 슬픈 감정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빛나는 순간>의 결말을 해피 엔딩으로도, 새드 엔딩으로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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