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난반사 하는 불빛들
〈흩어진 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1년 6월 25일(금) 오후 7시
참석 김솔, 이지형 감독
진행 정성일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연 님의 글입니다.
어둠에 잠식된 시멘트 축대를 오랫동안 응시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애타게 찾는 손전등 불빛이 축대에 어른거린다. 어린 수민은 가족들이 흩어질 경우의 수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어느 경우의 수를 따져봐도 가족이 다 같이 살 수는 없다. 엄마와 살지, 아빠와 살지, 오빠와는 함께 살지 못하는 건지… 수민에게는 답 없는 선택지가 놓여있다. 방황하는 손전등 불빛이 난반사 한다. 가족들의 마음은 흩어진다. “서로 아낀다고 꼭 같이 살아야 하는 건 아니야. 서로 싫어한다고 따로 떨어져 지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어둠 속 흔들리는 불빛의 끝, 흩어진 가족들은 각자 삶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 삶의 자리가 구성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정성일 평론가(이하 정성일): 안녕하십니까? 이지형 감독과 김솔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영화 〈흩어진 밤〉 GV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이상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라도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기는 매우 까다로운 영화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별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성격 차이로만 설명하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끝까지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린 남매 진호와 수민은 이 결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남매는 부모의 결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자신들이 누구와 살게 될 것인가, 아빠와 살게 될 것인가, 엄마와 살게 될 것인가가 그들의 가장 큰 근심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내내 아빠에게서 어떤 큰 결함을 보는 것도 아니고, 엄마에게서 어떤 문제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두 사람의 이 별거가 마치 일상생활인 것처럼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어린 남매들의 어떤 저항의 행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어떤 드라마도 개입할 수 없다는 듯이, 어떤 결정적인 단서 혹은 화해 혹은 결단, 마치 그런 것들과는 상황 없다는 듯이 예정된 일인 것처럼 영화가 진행되어 나갑니다. 영화를 진행하면서, 김솔, 이지형 두 연출자는 어떤 유머도 구사하지 않고 어린 두 남매에게 어떤 기회도 베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흩어진 밤〉은 건조한 영화입니다. 종종 아이들이 나오면 관객들이 방심합니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나온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되는 영화입니다. 이 건조함이 대사 속에 묻어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가 담담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이 대사들은 어린 남매에게는 매우 가혹합니다. 〈흩어진 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대사의 순간에서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가’, ‘누가 누구의 시선을 피하는가’, 그 대사를 하긴 하는데, 그 대사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누가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 그대로 영화가 내내 바라보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린 수민의 시선에서, 수민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이 집에 이사 왔습니다. 그러니까 수민은 이 집에서 태어났고 이날 이때까지 내내 이 집에서 살았습니다. 말하자면,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란, 이 집은 이 아이의 유일한 세계의 중심일 것입니다. 이 중심이 갑자기 무너져 내릴 겁니다. 이 집을 보기 위해 방문한, 어쩌면 새로운 입주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영화가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영화는 차근차근 열 이튿날을 진행한 다음, 열 이튿날 밤에 우연히 잃어버린 드론 때문에 가출한 것처럼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수민을 찾으러 부모와 그 오빠 진호가 돌아다니다가, 진호마저 수민에게 합류하고 영화는 끝납니다. 열 세번째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영화는 그저 무심하게 쌓아 올린 시멘트 축대를 그냥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끝납니다. 영화 〈흩어진 밤〉은 아마 이 마지막 씬의 밤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무심하면서도 건조하고 불투명한 연출. 이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자꾸 궁금증이 생겨나고 이 영화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주변에 이 가정, 부서져 가는, 흩어져 가는 이 가정의 일상생활에 관한 이 시선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김솔, 이지형 감독 두 분을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이지형 감독(이하 이지형): 안녕하세요, 〈흩어진 밤〉을 감독, 연출한 이지형이라고 합니다.
김솔 감독(이하 김솔): 안녕하세요, 이지형 감독과 〈흩어진 밤〉을 같이 연출한 김솔입니다.
정성일: 아무래도 이번에는 연출자가 두 분이니까 이렇게 질문을 시작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김솔, 이지형 감독 두 분은 어떤 계기로 함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주관적인 작업이고, 많은 연출자들이 자기의 주관적인 관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연출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떤 계기가 있지 않고서 그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지형: 같은 학교 동기이고요. 처음에는 각자 발전시키는 시나리오가 있었고, 제 시나리오는 건조했죠. 학교 제작 지원에서 〈흩어진 밤〉의 수정 전 작품이 선발되었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실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주변이 별로 없는 편이라 이 이야기를 해 나가는 팀워크 자체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졸업 작품이라서 주어진 시간 내에 완성을 해야 하는 책무가 있었어요. 그래서 시작은 책무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복기해보면.
김솔: 지형 언니 시나리오가 제작 지원 작품으로 선정이 되었고, 제 시나리오는 떨어졌어요. 길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6개월 동안 준비했던 작품을 못하게 되었고, 새로운 작품을 써내야 해서 잘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때 학교 근처 카페에서 우연히 언니를 만났어요.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같이 이야기하다가 ‘같이 연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제작 지원 선정이 되기 전에, 저희가 팀을 꾸려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시나리오 회의를 했는데, 〈흩어진 밤〉의 초고였던 시나리오가 되게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그게 출발이 되어서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습니다. 물론 아까 평론가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연출이라는 게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자기 뜻을 펼치는 작업이니까 저도 조심스럽고 언니도 고민이 많이 되었을 거 같은데, 숙고의 시간을 거친 뒤에 함께 하기로 같이 결정했습니다.
정성일: 공동 연출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하나는 코엔 형제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다르덴 형제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코엔 형제의 경우에는 철저하게 역할 분담을 해서, 말하자면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리기는 하지만, 한쪽의 작업은 프로듀서에 가깝고 또 한쪽은 연출에 집중해서 서로에게 거의 간섭하지 않고 진행하는 방식이죠. 또 다르덴 형제처럼 영화를 만들면서 모든 장면을 의논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쪽에 가까우셨나요
이지형: 제가 생각하기에는 다르덴 형제의 모델에 가까웠던 거 같습니다.
김솔: 제가 생각했을 때에도 연출과 시나리오를 쓸 때에는 혼자 쓰지만, 그 외에 캐스팅이나 로케이션 같은 경우는 같이 다니면서 했기 때문에, 굳이 제작과 연출을 구분하지 않고 다르덴 형제에 가까웠던 거 같습니다.
정성일: 이건 시나리오를 쓰신 이지형 감독께 질문을 드릴 수밖에 없는데, 이 이야기의 출발이 궁금해졌습니다. 작업 과정을 길게 설명해주시기는 했는데,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선택한 다음에 ‘나는 이 문제를 이러이러하게 해결해 나가겠다.’고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있고 ‘아이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한 번 찍어보고 싶다’ 혹은 ‘아이들이 있는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 그래서 거기에 맞는 이야기를 거꾸로 찾아 나가는 다양한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지형: ‘아이들의 영화를 하겠다!’ 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요. 처음에는 그냥 ‘가족에 대한 무언가를 한 번 써 봐야겠다.’는 넓은 그림이었습니다. 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써보자. 제가 가족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에 민감한 편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쪽으로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뭔가 나올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성인 여자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반대로 흩어진 가족을 모아보려는 입장의 여성 이야기였는데 수정을 거치면서 어쩔 수 없이 저의 개인적인 가족 생활을 복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한 열 살 좀 넘었을 때, 저에게 각인이 되었던 장면이 있는데요. 그 장면이 계속 연결고리처럼 저에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족관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 개인적인 욕구로 그때의 감정을 알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 이 시나리오를 보고 김솔 감독이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지점은 어디였었나요? ‘아, 이거는 내가 함께 작업할 수 있겠다!’라고 판단을 내리게 된 대목들이 있을 거 같은데.
김솔: 판단 보다는, 제가 이 이야기 자체에 흥미가 있었던 거 같아요. 초고 버전에선 마지막에 부모님이 주인공에게 ‘너 누구랑 살래?’ 이렇게 끝나는 장면이 있었어요. 제가 원래 결말이 뚜렷한 영화보다는 생각할 지점이 있는, 한동안 마음에 남는 영화를 좋아해요. 이 작품이 마음에 계속 남았어요.
정성일: 김솔 감독이 합류하면서 원래 시나리오로부터 가장 바뀐 대목은 어디인가요? 공동 연출을 하면서 토론이 시작되었을 것인데, 틀림없이 김솔 감독의 생각이 다른 대목들이 있을 것이고, 혼자 찍으려고 했던 시나리오로부터 공동 연출로 옮겨오면서 바뀐 대목들이 있을 거 같은데요.
이지형: 제가 생각했을 때 제일 중요한 부분은, 제가 쓴 글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한 개 한 개 되게 소중한 게 많은데, 아무래도 또다른 눈이 생기니까 어느 정도 체계가 생겼던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책 꺼내는 장면이 있잖아요. 원래 그 전 장면에는 남매가 책 상자를 들어서 집으로 배달하는, 여백 같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김솔 감독 입장에서는 간결하게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런 부분들이 압축되면서 임팩트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성일: 이지형 감독께서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입니까? 아니면 어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입니까? 아무래도 그것을 알면 우리가 이 영화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이지형: 처음 영화를 보는 입장이 아니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을 때에는, 감독님 성함을 대자면, 다르덴 형제, 이창동, 아쉬가르 파라디. 그쪽 방면의 감독님들을 선망하면서 들어왔던 거 같아요. 이 작품을 만들 때에도 어느 정도 롤모델이 되었고, 지금도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성일: 김솔 감독은 어떤 감독을 좋아하는 분입니까?
김솔: 저도 처음에 영화를 시작했을 때에는 지금 영화와는 다르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되게 좋아했어요. 학교에 와서 다양한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취향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이라는 작품을 저는 되게 좋거든요.
정성일: 취향이 어떤 점에서는 겹칠 것 같기도 하고 안 겹칠 거 같기도 하고…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지점에서는 거리감이 있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김솔 감독께서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었던 장면은 무엇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김솔: 관객들이 처음 마주하는 첫 번째 장면이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가 기억하는 것은 아파트에서 엄마가 아이들 밥을 차려주는 장면이었어요. 일반적인 식사가 아니라 엄마가 가위로 듬성듬성 잘라주는 그런 장면이었어요.
정성일: 시나리오를 쓰신 이지형 감독께서는 어느 장면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이지형: 처음에는 마지막 가족 회의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지금 현재의 엔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정성일: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이지형: 원래는 뒤에 내용이 조금 더 있었거든요. 쓰는 입장에서 아무래도 그림을 그려가면서 쓸 수밖에 없는데, 마지막에 아이들을 찾는 애타는 부모와 숨어 있는 아이들, 그리고 랜턴 불빛이 유영하는 장면을 향해 영화가 달려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부분이 너무 강해서 뒷부분을 과감하게 없애게 되었습니다.
정성일: 영화 중간에 타인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흩어진 밤〉은 아빠, 엄마, 진호, 수민 네 사람만으로 진행하는 미니멈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가족이 흩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먼저 이들이 가족이라는 느낌, 가족의 분위기를 이 배우들 스스로가 갖고 시작했을 때에 영화가 흩어지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상태의 감정을 가지기 위해서 배우들이 가졌던 시간이 있는지, 아니면 그런 감정들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연출자로서 이 네 명의 배우에게 특별한 연출 방법을 사용한 적이 있으신가요?
이지형: 사실 준비 인원과 물리적 횟수가 많지 않았어요. 전체적으로 드라이한 리딩을 몇 번 했었고, 남매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매들만 따로 불러서 각 장면마다 설명을 해줬어요. 저희들의 입장에서 말하는 거죠, 사실. 이런 장면이고 지금 이 아이들이 엄마, 아빠, 할머니와 이러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고,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어. 그런 식으로 되게 드라이하게 애기를 해줬어요. 그런데 전체 리딩을 하고 보니까 특별하게 모난 구석이 없어 보였어요. 지금 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그대로 활용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물리적인 동선이나 시간을 조절하고 감정을 알려주는 방식은 되게 교과서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정성일: 가족 네 명의 앙상블이 서로에게 되게 잘 맞아 들어갔던 거 같은데요. 이야기에서 자녀를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으로 설정했습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장점은 물론 서로 대화를 나누도록 해서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 두 남매, 진호와 수민은 각별하게 사이가 좋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단점은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자녀를 두 명으로 설정한 이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거기에 더해 오빠와 여동생이라는 설정인데, 누나와 남동생으로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경우에 따라 이야기의 감정 톤이 완전히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설정의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지형: 처음에는 오빠와 여동생이 아니었어요. 주인공이 아이로 결정되었을 때는 남자 형제였어요. 왜냐하면, 이건 어떻게 보면 저의 편견에 근거한 것인데, 부모로 인해 겪는 고난의 상황을 여자 아이의 시선으로 보면 너무 불쌍해 보이지 않을까 했어요. 그래서 말씀하신 누나, 남동생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형제로 시작을 했다가 쓰면 쓸수록 캐릭터와 정서 부분에서 어쩔 수 없이 자전적인 게 들어오더라고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린 시절 예민했던 감수성이 떠오르고 만나게 되면서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로 교체가 되고 남매 설정이 되었습니다.
정성일: 〈흩어진 밤〉은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사건이 있어서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고 별거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언가 계속 쌓여 왔다가 여기에 이르렀을 겁니다. 이야기가 영화보다 먼저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서는 앞에서부터 진행되었던 이야기를 어디에서 끊어서 들어가느냐가 굉장히 큰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시나리오 회의를 같이 했다면, 저는 연출자에게 이 질문을 꼭 했을 거 같습니다. 첫 장면을 새로운 새입자들이 집을 보러 오는 데서 시작하지 말고 차라리 더 밀고 들어가서 아예 첫 장면을 아버지, 어머니, 진호, 수민 네 명이 소파에 앉아서 가족 회의하는 장면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김솔 감독이 이 영화는 첫 장면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신 것처럼, 이 집을 보러 온 사람들, 그걸 지켜보는 수민으로 시작하면서 나오는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첫 장면을 봤을 때에는 별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사 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첫 장면을 보자마자 별거하는 이야기라고 알게 되는 관객분들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이야기를 여기서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지형: 어린 아이, 그 또래의 아이들이 가진 불안감. 그걸 펼쳐서 생각해봤을 때, 태어나고 자란 공간에 다른 사람이 침입을 한다, 사실 저에게는 그게 중요했던 요소 같아요. 어렸을 때 타인이 집에 오는 그런 감각이 저에게 쌓여 있었어요. 영화 속 어머니가 과외 선생님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저희 어머니께서 그런 직업을 하셨어요. 그래서 집에 너무 많은 타인이 왔다갔다하는, 그래서 나는 왜 저 사람이 오면 문을 닫고 거리를 둬야 하지, 이 집은 누구의 집이지, 하는 감각들이 쌓여서 자랐던 거 같아요. 집에 타인이 들어오고 이 공간이, 구역이 나뉘고 옮겨가는 것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 첫 장면을 굉장히 이상한 장면으로 시작하지 않습니까? 뒤통수로 시작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경우인데…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수민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심지어 카메라는 수민의 키높이로 내려 앉아 있어서 프레임 인 하고 있는 어른들은 다 머리가 잘려 있는 상태입니다. 저는 첫 장면이 이상하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첫 장면이라 무슨 이야기인지 제가 알 수 없으니까요. 저는 이 첫 장면이 연출자로서는 회심의 장면이었을 것 같은데, 첫 장면을 그렇게 시작한 것에 관하여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솔: 사실 처음부터 뒷모습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앞모습이나 옆모습 정도로 상의를 했어요. 그때 촬영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뒷모습으로 시작을 해서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이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궁금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 설정했습니다. 아버지나 세입자들, 중개인이 프레임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수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컨셉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작은 선언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성일: 〈흩어진 밤〉을 보면서 사실은 굉장히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컷 포인트도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테면, 남매가 엄마가 있는 학원에 들어선 장면에서 남매가 회전문을 열고 학원으로 들어왔습니다. 남매는 화면 바깥으로 빠져나갔는데 영화는 그 입구 문을 그냥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습니다. 꼭 이 장면뿐만 아니라 인물이 빠져나가거나 대화가 이미 끝났는데도 그냥 다음 대사를 기다리듯이 숏이 지속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영화의 이상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흩어진 밤〉의 이러한 컷 포인트와 숏의 지속시간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들이 어떤 감정이 느끼기를 원하셨습니까?
이지형: 주로 수민이라는 인물의 시점으로 가잖아요. 이 아이가 에너지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에너지가 강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구역, 엄마의 구역 그러한 구역들을 침범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지켜보게 되고, 귀 기울이게 되는 포인트를 잡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수민과 진호 사이의 생각하는 시간을 찾아가면서 같이 편집을 하지 않았나요?
김솔: 지금 생각해보면 편집을 할 때에 일부러 이 정도 공간과 시간을 두고 컷을 하자, 이렇게 얘기하지는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시간을 두고 편집을 했던 거 같아요. 이 가족이 되게 건조하잖아요. 남매가 대화를 나눌 때, 아빠와 딸이 대화를 나눌 때, 엄마와 딸이 대화를 나눌 때, 대화 자체가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비극적인? ‘왜 좋았냐?’, ‘왜 같이 안 사냐?’와 같은 대화들이 이어지는데, 그런 분위기의 대사들이 이어지니까 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게 편집했던 거 같아요.
정성일: 수민과 진호 두 남매가 나오는데, 수민은 사생활이 있지만 진호의 사생활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공부만 하는 아이. 그런데 나이를 생각하면, 수민보다 진호 쪽이 나이가 더 많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을 사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세계가 더 넓을 텐데요. 그러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진호의 세계를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영화가 수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영화 첫 장면만 봐도 당연히 알겠습니다. 그러나 남매가 나오고 있는데 진호의 세계가 전혀 없는 것은 저에게 매우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별거 진호에게도 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남매 사이의 불균형은 의도된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불균형, 진호의 삶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면 이 영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지형: 수민이는 확고한 아이의 입장이라면, 진호는 학습을 통해서 엄마에게 붙으려는 욕구로만 생각하는 인물, 그리고 집에 붙어 있는 존재가 아닌 돌아다니는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이 친구가 파일럿이 되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이조차도 공부를 잘해서 기숙학교에 가고 파일럿이 되면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게 되니까요. 어머니에게 공손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실제의 욕망은 집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날아다니고 싶은 아이라고 설정했습니다.
정성일: 수민의 방 장면이 저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민의 방 장면은 딱 한 장면만 나오죠. 진호와 수민이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진호가 “수민아, 너 나랑 따로 살 생각에 싫어?”라고 물어보자 수민이 “싫지 그럼. 따로 살면 일주일에 딱 한 번 볼 텐데.”라고 답합니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건 진호와 수민을 계속 프레임 안에서 같이 찍다가 딱 이 대화를 할 때에만 진호를 프레임 바깥으로 내보냈습니다. 이 질문을 한 진호, 이 대답을 듣는 진호의 표정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진호의 마음이 담겨있는 그 표정을 영화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진호의 이 질문은 수민에게 매우 잔인합니다. 잔인한 질문을 하고 있는 진호의 표정을 보면 안 된다는 듯이 그 순간에 진호를 내보낼 때, 그 타이밍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훌륭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그 질문을 진호가 왜 갑자기 한 것인가? 왜 진호는 그때 화면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가? 이러한 연출의 의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지형: 다음 장면과 연관되는 거 같아요. 그 다음 장면이 아버지와 박물관에 가는 거잖아요. 어머니는 시험 감독 나간다고 빠지고 셋이서만 소풍을 가는데, 이 친구의 심리는 사실 엄마와 붙어 있고 싶은 거고, 이 친구는 어느 정도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거죠. 동생을 아끼는 따뜻한 순간들도 영화에 나타나지만, 이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려는 아이의 무서움을 계속 느끼면서 글을 쓴 거 같아요. 수민이에게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있기 때문에 따뜻한 면모만 보이고 있지만, 돌아선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캐릭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연출했습니다.
관객 질문: 영화 속에서 드론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러한 이유가 있을까요? 드론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솔: 처음에는 드론이 아니라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씬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스케이트보드는 흔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놀이가 없을까 하다가 드론이 생각났어요. 영화가 즐거운 내용이 아니다 보니까 어떤 한 장면만큼은 아이들의 해맑은, 아무 걱정 없는 자유로운 모습이 담겼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그 장면을 다른 장면과 다르게 연출하려고 했습니다.
관객 질문: 배경 음악이 전혀 없는 건 수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한 걸까요? 마지막 경쾌한 우쿨렐레 음악을 사용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지형: 사실 마지막 곡도 설정이 없었어요. 형식적으로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을 모델로 삼아서 음악 없이 갈 생각이었어요. 음악이 들어가는 순간을 전혀 계산하지 않았어요.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한 후에도 모먼트가 보이지 않았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만큼은 갑자기 끝난다는 느낌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한번 시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곡을 찾아보다가, 〈아무도 모른다〉에서 우쿨렐레 음악이 지속적으로 나오는데 그것이 좋다고 느꼈어요. 이 곡을 더 경쾌한데 단조 형식으로 바꿔서 입혀보자는 생각으로 편곡해보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질문: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굉장히 힘든 일도, 어려운 일도 많았을 거 같습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고마웠던 점도 많았을 거 같은데요.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고마웠던 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솔: 첫 장편이고, 단편보다는 버텨야하는 시간들이 있었는데요. 이옥섭, 구교환 감독님이 우스갯소리로 공동연출은 나 혼자 힘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서 그게 의지가 된다고 하셨다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어서 되게 고마웠어요.
이지형: 제가 생각했을 때에는, 혼자 찍었으면 영화가 더 무거워졌을 것 같아요. 여백이라고 느껴지는 장면들을 많이 잡아 주셔서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게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관객 질문: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화면에 손 떨림을 넣은 것인가요? 핸드헬드로 찍으신 장면이 많은 거 같은데, 손 떨림이 보이는 장면이 있었던 거 같아요. 의도적으로 연출하신 거라면, 그런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솔: 핸드헬드의 주된 특징으로 여겨지는 흔들림과 불안함을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한 것도 있고요. 흔들림을 저희가 따로 촬영 감독에게 부탁한 것은 아닌데, 렌즈가 망원 계열로 갈수록 조금만 흔들려도 더 흔들리는 느낌이 나다 보니까 그렇게 느끼신 것 같아요.
정성일: 마지막에 하셨던 대답이 사실 제가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인데요. 이 영화는 망원을 쓸 이유가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렌즈 선택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지형: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이 ‘거리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였어요. 어차피 흩어질 가족이지만, 친할 땐 친하고 아닐 땐 아닐 것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친밀한 듯 아닌 듯한 감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그런 방식으로 나타났죠. 첫 번째 가족 회의 장면에서 엄마, 아빠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죠. 네 가족이 전부가 끊어져 있고, 한 장면에 다 들어오는 것 없이 신체 일부가 잘려 있거나, 포커스 인, 아웃 되어 있거나, 프레임 인, 아웃 되는. 이들이 화합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선택했습니다.
정성일: 영화 전체가 얼핏 보면 사실주의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굉장히 형식적인 쇼트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여러분들도 다 기억하실 겁니다. 수민과 남자 친구의 하굣길을 굉장히 이상하게 찍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이 가까이에서 찍은 장면들이었는데, 굉장히 먼 부감에 롱 쇼트로, 아마 이 정도의 롱 쇼트는 이 영화에 유일하게 이 장면 같은데, 커트가 딱 바뀝니다. S자형 굴곡으로 된 길을 따라서 두 아이가 걸어오는데, 휘어진 길 때문에 남자 친구는 시각적으로 사라졌다 나타나지 않습니까? 물론 대사는 계속 들리니까 둘이 같이 걸어온다는 것은 알지만. S자로 휘어진 곳에서 남자 친구 아이를 완전히 공간적으로 비가시적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앞으로 들여놓으면서 앞까지 계속 걸어오게 찍은 장면들은 굉장히 스타일리쉬 합니다. 수민과 남자 친구의 하교길은 이렇게 찍은 이유가 있을까요?
이지형: 쉽지 않은 길들을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고지대’라고 길에 적혀 있거든요. 무덤가에서 찍은 것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시에 그런 생각으로 접근을 했던 거 같아요. 3년 전에 찍은 영화인데, 이 가정과 이 아이의 불안한 심리와 비슷한, 평탄하기보단 좀 이상하고, 충돌적인 공간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지대나 무덤, 다리 위 장면 이런 곳을 돌아다니면서 영화와 어울리겠다 싶은 장소를 찍어 두고 그랬습니다.
정성일: 제가 그러면 반격하듯이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 아이가 겪는 여러가지 감정적인 굴곡들이 장소에서 드러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러한 장소들을 구태여 찾았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것과 대조되어서 이상한 장면이 있는데, 수민이 아버지를 찾아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이 어느 정도 거리인지 영화에는 정보가 없습니다. 수민이 아버지의 집을 처음 찾아가는 것은 수민에게 여러가지로 의미심장했을 거 같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서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까지 가는 길은 이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복잡한 상태였을 텐데, 그 과정을 안 찍었습니다. 아버지 집에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저는 여러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 장면을 찍고 싶은 유혹이 틀림없이 있었을 터인데, 마치 그것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돌아가는 길 역시 찍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수민이가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도, 돌아오는 길도 찍지 않았을 때에 ‘그것을 보여주면 안 돼!’라는 결단은 이 아이의 감정을 느낄 시간을 주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출자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이지형: 유혹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찾아가는 장면이 원래는 있었거든요. 결국엔 여백과 연관되는 것 같아요. 정서를 줄 수 있는 틈바구니가 이 영화에는 많이 없죠. 인서트도 별로 없고. 그런 것들을 삭제하고 주로 낮 시간이 앞에 있고 밤 시간이 뒤에 있고. 어떻게 보면 십 며칠의 일과가 합쳐서 훅 지나간다는 그런 느낌을 주고 있어요.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냉혹한 느낌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정성일: 그런 다음에 이 영화는 이상한 순간의 연속입니다. 〈흩어진 밤〉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매번 에피소드 다음에 그 에피소드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 에피소드 안에 의아한 이야기들이 꼭 들어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수민의 생일날, 느닷없이 진호가 어린시절 집에 도둑 든 이야기를 합니다. 생일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물론 도둑 든 이야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둑 든 이야기와 생일날 분위기의 부조화가 매우 기이하게 여겨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밀어 넣어서 생일날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어떤 효과를 원하고 있는 거 같은데, 영화를 보고 있는 저로서는 부조화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걸 조금 더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지형: 생일날 도둑 든 이야기는 부조화적인 느낌으로 넣은 것이 맞고요. 그날은 할머니가 오셨다는 것이, 그러니까 위 세대가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위 세대에게 지금 현 세대의 가족이 깨지는 것을 숨기고 있다, 그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단합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어떻게 보면 가족이라는 집단이 이어져 온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 세대에게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가족이 존재했던 것이고, 진호는 그것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 아이라서, 고춧가루 뿌리듯이 말을 던진다는 생각으로 그 대사를 집어넣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 그 다음 씬도 이상합니다. 외할머니와 엄청 불편한 자리가 끝나고 수민은 화가 나서 외할머니가 선물해준 인형을 때리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외할머니와의 불편한 자리를 피해서 아버지와 수민과 진호가 아파트 근처에 있는 사당에 앉아서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이 쇼트의 첫 대사가 “아휴, 이 영감님 유배 다니다가 볼 일 다 봤어.”입니다. 이 장면을 보고 막 웃었습니다. 유머라면 유머인 건데, 이 장면을 그 구도로 이 사당이 누구의 사당인지는 끝내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배를 계속 다녔던 이 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유배 다니다가 볼 일 다 본 조선시대 선비 사당 앞에서 아버지는 남매와 처음으로 말 다툼을 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흩어진 밤〉에서 가장 기이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사당, 이 사당 앞에서 씬을 시작하면서 “이 영감님은 유배 다니면서 볼 일 다 봤어.”하고 남매와 말싸움을 하는 씬을 만들어 낸 것은 재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떠올린다고 떠올려지는 장면이 아니라, 이 기이함은 전적으로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의도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 이 장면이 말하고 있는데, 연출자는 우리들에게 어떤 기분이 들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까?
이지형: 그 장면도 장소를 먼저 보고 이야기가 써진 거 같아요. 그 장소와 묘역비의 유배를 알고 나서 이야기를 이렇게 엮어보면 어떨까? 실제 그 스팟이 주는 무드가 있었거든요. 봤을 때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아파트와 옛날 무덤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뭔가 이상했어요. 그 모습이 이 가족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할머니가 왔을 때 가족들 모두가 숨기고 거짓말하는 모습, 충돌하는 느낌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준 이상함이 아니었을까요?
정성일: 그런데 이상한 씬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다음 장면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저는 이 세 개의 씬의 연속이 〈흩어진 밤〉의 백미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완전히 매혹되었습니다. 생일 잔치에서 도둑 얘기 꺼내고, 사당 앞에 데려가더니, 이제 저녁에 어둠이 내렸습니다. 그러고는 남매가 묘지에 앉아서 대화를 나눕니다. 그 산에 노루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루는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 노루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둠이 내린 저녁에 노루가 나온다는 산의 묘지에 앉아서 남매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때 묘지가 이 남매를 쫓아내듯이 벌레가 남매에게 달려듭니다. 세 번째 이상한 장면은 전래동화집 같은 분위기가 떠올랐다 할까요? 어떤 점에서는 초현실적인 느낌까지 주는 세 개의 연속되는 씬이 영화에서는 일상생활처럼 뚜벅뚜벅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에 사당은 죽은 사람을 모시는 곳이고, 그런 다음 묘지로 옮겨왔습니다. 그 묘지에 남매가 앉아서 대화를 하는 데서 세 번째 씬이 끝나는데, 기어이 묘지까지 끌고 와서 대화를 나누게 할 때에는, 노루가 나온다고 하는 데 노루는 보이지 않는 이곳까지 왔을 때, 연출자의 어떤 결단이 있었던 거 같은데요. 여기까지 한 번 밀고 가보자 하는 용기라 할까요?
이지형: 무덤가가 나온 것은 그 무렵 치기 어린 생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당시 했던 생각이 그리고 죽은 사람이 묻혀진 무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운명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무덤이 주는 느낌과 맞닿아 있는 게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그 장소를 정했기 때문에, 용기라고 보기엔 너무 거대한 것 같고, 치기 어린 생각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성일: 오, 그런데 정말 훌륭했습니다. 셋 중에 하나만 있었으면 큰 감흥이 없었을 터인데, 세 개가 연달아 이어지면서 불러일으키는 감흥이 있달까요? 그런 다음에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엄마가 수민의 머리를 빗어줍니다. 저는 이 장면이 수민이 진호와 대화할 때 진호를 프레임 바깥으로 내보낸 장면만큼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쪽 방향을 바라보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장면의 핵심인 거 같습니다. 〈흩어진 밤〉은 많은 장면들을 투 샷으로 찍었는데 시선을 마주보지 않게 만드는 연출이 특별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투 샷으로 찍으면 마주볼 수밖에 없는데, 마주보게 하지 않게 하려고 끊임없이 이렇게 저렇게 앉혀보고 있다고 할까요? 이때 수민은 자신이 아빠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엄마는 그 질문을 받고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도 틀림없이 대화는 끝났는데, 영화는 끝난 대화 이후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그냥 거기 서 있었습니다. 수민과 엄마가 서로 마주보지 않고 하는 대화 장면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솔: 말씀해주신대로, 두 인물이 카메라를 향하고 있고 앞에 거울이 있는 설정이에요. 수민은 거울을 통해서 엄마를 보고 있지만, 엄마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 수민은 쳐다보지 못하고 바닥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곧 헤어질 가족들이고, 가족들 사이에 스킨십이 많이 없어요. 그런데 이 장면만큼은 엄마가 딸을 어루만져주는 그런 연출을 하고 싶어서 머리를 말려주는 씬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거울 앞에서 카메라 화면을 보도록 그렇게 연출했습니다.
정성일: 이 영화가 스타일의 영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피크닉 장면 같은 경우입니다. 진호는 시험을 핑계로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다. 피크닉을 간 아빠, 엄마, 수민이 앉아있습니다. 픽스 롱 테이크로 시작된 이 장면이 수민이 앨범에서 연애시절 아빠가 엄마에게 보낸 편지를 건네주자 갑자기 커트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요. 아니, 차라리 커트를 나눈다기보다는 난도질 하듯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수민이 아빠, 엄마 사이로 드론을 날리는 것으로 이 씬이 끝납니다. 이 씬의 구성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솔: 이 씬은 일부러 스타일리쉬하게끔 많이 보던 구도를 사용해보자 설정한 것이 맞고요. 처음에 풀 샷으로 세 사람이 나오고 수민이 편지를 엄마에게 건네 준 뒤 곧바로 수민의 얼굴로 들어가서 이 아이가 느끼는 것을 보여주자 설정을 했습니다. 수민이가 인형을 때리는 장면 같이 드론을 엄마, 아빠 사이로 날리는 장면도 저는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고요. 그걸 좀 더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많이 보던 만화 같은 구성으로 콘티를 짰었습니다.
정성일: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에 대해 질문 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축대를 오랫동안 보여주면서 끝납니다.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시멘트 벽, 절망적인 엔딩에서만 멈춰야 하는 것일까?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드론이 사라졌습니다. 아마 어딘가 떨어졌을 겁니다. 저는 왠지 두 남매가 축대 위에 올라가서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떨어진 두 남매를 이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나친 상상을 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축대를 바라보는, 아무것도 없는 이 장면을 오랫동안 찍었을 때, 거기서 우리가 무언가 원하기를 바라셨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지형: 글 쓰는 입장에는, 이거를 찍기 위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에필로그 장면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것부터 말씀드리자면, 어느 정도 계절이 지난 때에 엄마와 진호, 아빠와 수민, 이렇게 나뉘어서 살고 있는데, 남매가 어쩌다 만나요. 툭툭 무심하게 ‘너의 생활은 어떠니?’, ‘엄마 어때?’, ‘아빠 어때?’ 그렇게 인사를 교환하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은 무기력하지만 한편으로는 보호자인 엄마와 아빠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하는, 무력함과 다행스러움이 공존하는 느낌. 어둠 속에 빛의 느낌과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앤딩 장면을 통해서 에필로그에서 전하려고 했던 느낌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박아 놓고 시작했어요. 이 가족을 바라보는 통증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통증이 어떤 식이라고 재단하기는 어렵지만. 아프다고 생각하면 아픈 것이고, 시대의 흘러가는 모습이라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그 사이에서 만들어진 선택이 현재의 엔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성일: 긴 시간 자리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이야기 들려주신 두 분 감독님께 감사드리고, 좋은 질문을 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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