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들〉 리뷰: 1인분의 외로움이 덜어지는 순간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유진 님의 글입니다.
1.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하며 친절한 응대와 신속한 일처리로 동료들 중 실적이 가장 좋지만, 직장에서 말을 섞는 사람은 직속 선배뿐이고 이웃과도 교류가 없는 사람의 삶.
2.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TV를 틀어 두고, 출퇴근길에는 드라마를 보고, 점심시간에는 유튜브 브이로그를 틀어 둔 채 밥을 먹는 사람의 삶.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삶의 아주 일부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아마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첫 번째 사람은 두 번째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두 번째 사람 역시 첫 번째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첫 번째 사람은 타인과 섞여 지내길 싫어하는 사람, 두 번째 사람은 타인의 삶을 너무나도 궁금해하는 사람일 테니까.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납작하게 “혼자 사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양극의 스펙트럼으로 표현한다면 두 사람은 아마 끝과 끝에 놓여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이 같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콜센터 우수 상담원이지만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살아가는, 하지만 늘 손에 쥔 핸드폰에는 타인의 삶을 연출한 드라마 혹은 타인의 삶을 촬영한 브이로그가 재생되고 있는, 두 삶이 모두 한 사람의 것이라면.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진아(공승연)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혼자 살고 있지만 혼자 살지 못하는.
영화는 진아의 삶에 균열이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혼자 사는 사람들”을 조명하려 한다. 극 중 세상과의 단절을 원하는 진아를 뒤흔드는 인물은 셋이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웃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아버지(박정학), 회사 후임으로 들어온 사회초년생 수진(정다은), 그리고 포르노 잡지 더미에 깔려 죽은 옆집 남자(김모범).
17년 전 바람 나서 가족을 떠났던 진아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투병 생활을 시작할 때쯤 다시 돌아와 그녀의 임종을 지킨다. 이후 아버지는 진아에게 죽은 어머니의 번호로 문자를 보내고 꾸준히 전화를 거는 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어렸을 때 가족을 떠난 아버지에게 받았던 큰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어머니의 죽음 역시 아직 극복하지 못한 진아는 그런 아버지가 괴롭다. 설상가상으로 아직 혼란스러운 자신과 다르게 금방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에 진아는 더욱더 큰 상처를 받는다.
아버지로 인해 얻은 불안은 진아의 일상에 스몄다. 외로운 삶과 달리 친절한 고객 응대로 실적이 아주 좋은 진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입사원 교육 업무를 맡게 된다. 그녀의 후배로 입사한 신입사원 수진은 선배 몫의 커피를 사 오기도, 목에 좋다는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를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에 여분의 여유가 없는 진아는 그런 수진의 호의를 차가운 태도로 밀어낸다. 회사 사람들의 무관심 속, 잦은 실수와 서툰 고객응대 실력으로 괴로워하던 수진은 결국 말없이 회사를 그만둔다.
수진이 만났던 수화기 너머의 사람들 중, 그녀가 유일하게 '소통'했던 사람은 다른 상담원들이 곤란해하는 고객 – 2002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발명했는데, 지금 사용하는 카드를 들고 가면 과거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게 고민이라는 정신이상자 – 였다. 진아는 그간 그 고객의 전화를 받으면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인 답변을 건네고는 했다. 그러나 수진은 멍한 눈으로 고객에게 반문한다. 2002년으로는 왜 가시려는 건데요? 그러면, 자신의 시간여행에 관심을 가져 준 첫 상담원에 신난 고객은 답한다. 당연히 2002년 월드컵 때문이죠! 그 시절엔 다들 한 마음으로 부둥켜안고 노래 부르고, 함께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다들 일하느라 바쁘잖아요. 들뜬 고객의 목소리를 잠자코 듣던 수진은 상담원용 헤드셋에 대고 답한다.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하고. 진아는 그 모든 대화를 말리지 않고 가만히 응시한다.
가만히 응시하는 것. 남에게 곁을 주지 않고도 온전할 것이라는 방어기제를 가진 진아가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다. 옆집 남자 역시 그랬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그는 무너진 포르노 잡지 더미에 깔려 죽었다. 귀신이 되어 진아와 조우한 그는 넋의 형상으로 “담뱃불을 성냥으로 붙이면 연기가 다르대요.”라는 말을 건네어 사람의 온기를 느껴 보고자 하지만, 진아는 그 말에 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뒤 진아는 그와 다른 방식으로 재회하게 된다. 옆집 문 앞에 쳐진 폴리스 라인으로 말이다.
이후 진아는 한 번 더 그의 환영을 본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남자가 홀로 쓸쓸히 죽어간 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장례식에서다. 그녀는 저도 타임머신에 태워 달라 말했던 수진의 옆모습을 응시했던 것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의 넋을 기리는 생면부지의 타인들 앞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를 피우는 옆집 남자의 혼을 응시한다.
영화의 제목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진아도, 진아의 아버지도, 수진도, 옆집 남자도 모두 혼자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아 수진을 비롯한 타인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었던 진아, 그런 진아에게 또다시 상처 입은 수진, 사망한 지 일주일 뒤에야 겨우 발견된 옆집 남자. 옆집 남자의 죽음으로 인해 흔들린 진아의 세계는 다시 아버지에게로, 수진에게로 닿는다. 파장이 일듯 허물어지는 관계의 벽들 사이로 전해지는 각자 다른 결의 외로움들. “1인분의 외로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순간, 혼자 사는 사람 여럿은 비로소 혼자 사는 “사람들”로 묶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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