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리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유진 님의 글입니다.
정은(유다인)은 7년간 근무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요구받는다. 그는 우수사원 표창을 받을 만큼 업무 능력이 좋았고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강하다. 잘못이 있다면 회사의 처우를 납득할 수 있을 테지만 정은은 잘못한 것이 없다. 그는 사측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무실 구석의 책상에서 업무를 이어 나간다. 정은의 저항에 회사는 하청 업체로 파견을 가서 1년간 근무를 마치면 다시 원청으로 복귀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1년간의 파견을 마쳐야만 사무실 복귀가 가능하다는 제안이 억울하고 굴욕적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선택권이 없던 정은은 결국 회사의 일방적인 명령에 순응해 하청업체에서의 근무를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출발점이다.
시작은 단순 파견근무보다는 좌천에 가까운 부당한 발령이었지만, 정은은 1년을 잘 버텨내고 싶다. 회사의 부당한 해고 명령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정은이 마주한 새로운 근무 환경은 7년간 일해 왔던 사무실과 전혀 다르다. 그는 자신이 현장 관리업무를 맡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청 업체는 이미 관리소장을 두고 있다. 관리소장은 정은을 그저 골칫거리로 여기며 직원으로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새 일터에는 그가 어떤 사연을 겪고 여기에 왔는지 아는 사람도,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다. 권고사직 요구부터 파견근무 발령까지의 싸움을 겪는 동안 이미 직업적 정체성을 충분히 상실했는데, 좌천된 자리에서도 정은은 불안하게 마구 흔들리기만 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365일이라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 파견근무를 무사히 마치는 게 회사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어쩔 수 없다. 하청업체에 관리직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현장직은 일손이 부족하다. 정은은 결국 현장직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복을 입고 송전탑 수리 보수 일을 시작한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송전탑을 담아내는 방식에 차이를 둔다. 영화의 초반, 카메라는 고소공포증에 더해 심한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겹쳐진 정은이 송전탑만 보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굳는 심리를 따라간다. 차갑고 무거운 철골 구조물이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앵글로 정은의 불안과 공포를 표현한다. 정은의 시선을 대변하는 카메라는 그가 두려워하는 동안 송전탑 위에 올라 작업을 시작하며 한심하다는 듯 정은을 내려다보는 동료들을 아주 잠깐 비춘다. 이렇게 정은이 정체성을 잃고 불안에 떨 때 카메라는 현장의 사람들보다는 송전탑 구조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그의 정서를 전달한다. 그러나 중반부부터 막내(오정세)가 정은의 곁에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줌으로써 카메라는 점점 구조물보다 사람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정은이 송전탑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극도로 높은 불안감이 점점 완화되는 과정은 대사 대신 앵글과 이미지로 전달된다. 송전탑 수리 현장에서 카메라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지에 주목하면 보다 풍부한 관람이 가능할 것이다.
자신은 죽는 것보다 해고당하는 것이 더 무섭다는 막내에게 정은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나 해고나 뭐가 다르냐고. 이 영화는 각자 다른 결의 삶을 살지만 결과적으로는 해고당하지 않겠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묵묵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고용불안, 원청의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 직장 내 성차별, 직장 갑질, 부당해고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병폐를 지적하는 이 작품은 사회고발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다. 한국의 켄 로치라는 평을 듣고 있는 이태겸 감독의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힘겹고 외로운 싸움에서 나 스스로의 존엄을 끝까지 지키고자 노력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에서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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