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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내언니전지현과 나〉: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다행이야

by indiespace_한솔 2021. 1. 12.

 

 

 

 

 〈내언니전지현과 나〉  리뷰: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다행이야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유선 님의 글입니다.

 

 

얼마 전 이야, 90년대에도 사람이 태어났어?”라는 말을 들었다. 묘한 향수를 느꼈다.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내가 십여 년쯤 전에 가끔 듣던 말, 최근에는 좀처럼 들은 적 없는 말이었다. 시대 감수성에 잘 들어맞는 말도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도 90년대생들이 이제 그렇게 어리지 않다. 90년대생들은 추억할 과거도 있고, 어딘가에 향수도 품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물론 향수를 품은 추억이 꼭 오프라인에 있는 건 아니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넥슨에서 나온 게임 일랜시아유저들을 담았다. 그들은 일랜시아를 망겜이라고 부른다. 자조 섞인 말이지만 그렇게라도 이 게임을 언급하는 이들은 그들뿐이다. 일랜시아는 넥슨에서도 잊힌 존재다. 배경음악을 켜면 꺼져버리는 게임, 관리하는 운영진이 부재한 게임. 각종 매크로를 돌려야만 진행이 겨우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영화를 보기 전 막연히 일랜시아를 하고 싶어지려나 생각했는데, 재야의 무림 고수만이 도달할 수 있는 깊은 산 속 절 수준의 접근성이다.

  

 

이들은 왜 아직도 거기 있는 걸까. “일랜시아 왜 하세요?”라고 묻는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은 차분히 마음을 밝힌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하는 이야기는 다 비슷하다. 일랜시아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면서도 향수와 애정을 품고 있다는 점도, 문제 해결을 꿈꾸지만 매크로가 완전히 차단된 게임을 바라지는 않는 이중적인 마음도.

 

이들이 일랜시아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꼭 게임이 아니라 인생 이야기 같다는 느낌까지 든다. 유저들이 닦아놓은 매크로의 정석 루트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한국의 교육계 현실을 분석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게임의 자유도나 과금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 사회를 가만히 돌아보게 한다.

경쟁사회가 급속도로 치열해진, 그 이전과 이후를 모두 살아낸 동년배의 정서가 이 영화에는 있다. 나는 일랜시아라는 게임을 해보지 않았지만, 그 그래픽의 느낌은 익숙하다. 이들이 일랜시아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마음도 낯설지 않다. 심지어 이들이 MT에 가서 부르는 노래조차 익숙했다. (동방신기가 다섯 명이었던 시절의 노래였다.)

 

 

이들의 여정은 단순히 추억을 더듬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에 담고, 그러는 동안에도 시시각각 순조롭게 악화되어 가는 일랜시아를 살리기 위해 의견을 모은다. 추억이 가득한 게임을 떠날 수도, 그렇다고 넥슨의 관리를 받지도 못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린다.

 

세상은 최악으로 변해 가는데 그 안에서 버티고만 있는”, 그 수식어는 이 게임을 즐기는 동년배들에게 자주 붙던 말이다. 경쟁도 가장 치열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 세대에는 많은 걸 포기했다는 수식어가 유독 많이 붙었다. 그 안에서 개인의 노력을 비난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버리기란 얼마나 쉬운 일이었는지. 희뿌연 희망을 무책임하게 말하기는 또 얼마나 쉬웠는지.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그 중 어디에도 발목을 잡히지 않는다. “이게 뭐라고 재밌냐싶은 열기구를 타듯 가뿐하게 그 위로 날아간다. 좋아하는 마음을 오롯이 내세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좋아하는 마음, 그건 생각보다 힘이 세다.

 

 

올해는 유독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운 한 해였다. 영화관 다니기도 쉽지 않았고 개봉을 미루는 영화도 많았던 데다가 당연히 늘 거기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영화관의 존폐마저 이야기되는 걸 보며 착잡했다. 그런 한 해의 끝에 이 작품을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현실이 어떻든 좋아하는 마음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거라고,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한 다부지고 즐거운 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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