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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잔칫날〉: 구체적인 장례

by indiespace_한솔 2020. 12. 15.



 〈잔칫날〉  리뷰:  구체적인 장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주혜님의 글입니다.



영화에서 장례는 어두운 색채, 처연한 기운, 상실의 감정 등으로 그려지는 추상이 아니다. <잔칫날> 사람의 죽음 이후에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경만(하준) 행사 원정을 다니는 무명 MC이다. 동생 경미(소주연) 휴학생이다. 경만과 경미는 오랜 시간 입원한 아버지를 교대로 돌본다. 남매는 부재한 어머니, 환자인 아버지를 대신해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인 상황에 능숙해 보인다. 경만이 일을 가기 위해 경미와 교대하던 TV 낚시 방송을 빤히 보던 아버지에게 다음에 함께 낚시를 가자고 제안한다. 죽음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같다. 다음을 기약해 것이 완수되지 못하도록. 

경만은 행사가 끝나고 전화로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부랴부랴 돌아온 경만의 앞에 순식간에 많은 선택지가 쌓여 있다. 영정 사진은 무엇을 고를지, 제단 장식은 어떻게 건지, 조문 음식에 육개장을 건지 소고깃국을 건지, 어떤 관을 선택할 건지, 화장인지 매장인지 같은 질문이 몰려든다. 그때 경만이 어떤 가장 저렴한 건지 되묻고, 그래서 육개장 대신 시래깃국이 결정될 , 그제야 장례의 구체성을 깨닫는다. 장례의 온갖 군데엔 비용이 따라붙는다. 고아가 청년을 보며좋은 거로 해주세요.’라는 말이 가히 특권임을 깨닫는다. 게다가 밀린 병원비와 아버지의 빚은 경만을 더욱 몰아붙이고,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 날에 돈을 벌기 위해 잔칫집으로 향하는 아이러니한 비극을 만든다.



 

이후 영화는 잔칫날에 경만을, 장례날에 경미를 세워둠으로써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 있는 인물의 교차 편집으로 진행된다. 이음새가 인상적인 이유는 잔칫날과 장례날이라는 극단적인 이벤트의 대비 때문도 있지만, 공간이 맞닿음으로써 기이한 시간차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경만과 경미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감각된다. 잔칫날에 경만에겐소동에 휘말렸다 표현할 있을 만큼 단시간에 아주 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춤을 추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쓰려져 돌아가시고, 잔치가 초상집이 된다. 경만은 받기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거기다 할머니의 자식들과 마을 사람들은 경만에게 탓이 있다며 몰아간다. 경만은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경찰서에 발이 묶인다. 정신없이 벌어지는 사건 때문에 경만의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흐르고 종종 아버지의 장례 중이라는 감각마저 잊혀지는 듯하다. 

감각을 일깨우는 경미로부터 전화벨 소리다. 경만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장례식장에선 여기저기서 경미야! 경미야!” 불러대는 통에 보는 이까지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다. 고모들은 경미에게 영정 사진이 저게 뭐냐 부터 시작해서 절할 곡소리를 내야 한다, 향이 꺼지면 된다, 무슨 장례식에 고기도 없냐, 하긴 네 알겠냐 등의 온갖 일침과 핍박을 늘어놓는다. 장례식장 직원은 입관 관련한 사항을 결정해야 하는데 경만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경미에게 피로와 짜증을 풀어놓는다. 경만을 기다리는 경미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흐른다. 

 




영화가 가지 속력을 통과한 덕분에 관객은 반쪽짜리가 아닌 양쪽의 온전한 진실을 목격하는데, 그로 인해 깨닫는 것은 인물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아주 비슷한 얼굴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경미가 비상계단에서 경만에게 전화하며 울음을 터뜨릴 , 그리고 경만이 경찰서에서 결국 무고함이 밝혀지며 울음을 터뜨릴   얼굴은 닮아 보인다. 영화도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보여주는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경미의 울음도, 경만의 울음도 역류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방을 향해 쏟아내는 감정이 아니라 여태 속에 쌓아왔던 감정이 이상 쌓이지 못하고 넘쳐흐르는 같다. 잔뜩 구겨지는 표정과 겨우 새어나오는 말소리가 그렇다. 그렇게 역류하는 울음에 많은 것들이 공통으로 담겨있을 테다. 없는 설움, 혼자서 해결할 없는 일에 대한 답답함, 저렴하게 장례를 치른다는 수치,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억울한 장례의 구체적인 면면들. 그리고 닮은 얼굴을 가진 인물이 재회할 거라는 결말은 너무나 당연하게 예측 가능해진다.  





경만이 장례식장에 돌아오고, 더불어 장례를 종결하는 다른 인상적인 얼굴이 있다. 입관식에서 경만은 얼굴을 닦아드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본다. 눈을 감은 거꾸로 놓인 아버지의 얼굴, 그다음에 이어지는 경만과 경미의 얼굴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장례식보다도 장례식 같다. 입관이 끝나고 경미는 말한다. 사실 아버지 얼굴 보려고 했는데, 봤으면 후회했을 같다고. <잔칫날> 부유하는 죽음의 기운을 현실로 끌어내려 아주 구체적인 장례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장례엔 비용과 절차가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장례의 외연이다. 영화는 비용과 절차라는 장례의 외연을 경유하여 내연에 있는 죽은 자와 애도하는 자에 당도한다. 피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는 응시의 태도로 건강한 애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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