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의 계절 인디돌잔치 〈윤희에게〉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11월 24일(화) 오후 7시
참석 임대형 감독|배우 나카무라 유코(화상연결)
통역 고경란 PD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유선 님의 글입니다.
〈윤희에게〉의 계절이 돌아왔다. 인물에게서 인물에게로 겹쳐 보이는 대사를 타고 사랑이 흘러가면서 계절이 녹아, 겨울 가고 새봄도 지났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코끝이 맵싸해지는 사랑의 계절.
개봉 1주년 인디돌잔치로 찾아온 〈윤희에게〉의 시간에는 ‘기시감’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나왔다. 같은 계절에 같은 영화를 본다는 자체도, 나카무라 유코 배우가 화상으로 GV에 참석하고 고경란 프로듀서가 통역을 하며 낯선 연결을 체감하는 상황도 그랬지만, 이 기시감에는 그 이상이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나 느꼈던, 관객이 영화를 집단으로 본다는 행위의 행복감. 그래서 더 꿈결처럼 기억되는 시간이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의 진행으로 임대형 감독, 나카무라 유코 배우, 통역을 맡은 고경란 프로듀서, 그리고 1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영화의 안부를 묻는 〈윤희에게〉 팬덤, ‘만월단’이 함께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김현민):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이 일본에서 화상연결을 통해 인사하는 시간을 갖게 됐는데, 저도 너무 떨려요. 오늘 이 자리를 기대하고 왔거든요. 일단 임대형 감독님과 오늘 통역을 맡아주실, 또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신 고경란 프로듀서님 모시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감독님, 우리가 올해 7월에 이 자리에서 오랜만에 〈윤희에게〉 인디토크를 했었죠. 그리고 이제는 1주년 첫 돌을 맞이해 또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관객 분들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임대형 감독(이하 임대형): 안녕하세요. 저는 〈윤희에게〉 연출한 임대형입니다. 〈윤희에게〉가 개봉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는데요. 여전히 저희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는 것들 보고 있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GV 하면서 화상연결은 처음 해보는데 오늘 귀한 시간 편안하게 대화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고경란 PD(이하 고경란): 안녕하세요. 〈윤희에게〉의 프로듀서 고경란이라고 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이런 자리를 갖게 돼서 되게 긴장하고 있는데요. 전문 통역사는 아니지만 여러분께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현민: 그러면 많이들 보고 싶으실 테니까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을 불러볼게요. 유코 배우님, 나와주세요. 안녕하세요.
나카무라 유코 배우(이하 나카무라 유코, 통역 고경란): (한국어로) 여러분, 안녕하세요! 진짜 보고 싶었어요. 잘 지냈어요? 감독님.
임대형: (일본어로) 오랜만입니다.(관객 웃음)
김현민: 유코 배우님께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이렇게 관객들을 만나고 GV하시는 건 처음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오늘 이 자리에 대한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나카무라 유코: 대단히 반갑습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화면으로 얼굴이 작게 보이지만 만나 뵈어 정말 반갑습니다.
김현민: 한국도 지금 코로나 때문에 영화 보고 모여서 GV하는 게 힘든 상황인데, 오늘 정말 많은 분들이 유코 배우님 보고 싶어서 자리를 채워주셨다고 유코 배우님께 꼭 전해주세요.
나카무라 유코: 정말 고맙습니다. 극장에 발걸음해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현민: 감독님께서는 유코 배우님을 얼마만에 보신 거예요?
임대형: 저도 부산국제영화제 이후로 처음 뵀습니다. 그래서 저도 너무 반갑고 보고 싶었어요.
나카무라 유코: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웃음)
김현민: 네, 서로 보고 싶었다고 애틋하게 말씀 나누고 계십니다. 그 느낌이 화면 바깥으로까지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번에 일본에서 일어 자막으로 이 영화가 상영되었어요. 온라인 상영도 있었고 오사카에서는 스크린 상영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감독님께서 “직접 가서 스태프들 만나 다 같이 시사회 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고 하신 걸 봤어요. 감독님 어떠셨는지 소감 들어보고 싶어요.
임대형: 부산국제영화제 때 기회가 있긴 했지만 그땐 일본 배우 분들, 스태프 분들과 극장 상영을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저도 이번에 일본에 가서 스태프, 배우 분들께 인사 드리고 영화 시사도 함께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가지 못했거든요. 일본에서도 상영 기회를 더 갖고 싶었는데, 이번에 상영을 하게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김현민: 유코 배우님께서도 부산에서 영화를 보셨지만 그때는 영어 자막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일본어 자막으로는 이번에 처음 보셨을 것 같고, 영화 자체도 오랜만에 보셨을 것 같은데 소감을 듣고 싶어요.
나카무라 유코: 부산국제영화제 때는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게 처음이기도 했고, 아직 마음이 많이 들떠 있어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관객의 마음으로 고요하게 보았던 것 같고요. 촬영했을 때의 상황이나 같이 있었던 스태프들, 배우들 얼굴이나 목소리가 떠올라서 그립고 애틋한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김현민: 지금 유코 배우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영화 속 내레이션을 듣는 듯이 마음이 차분해지고 너무 좋아요. 감독님께서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을 처음 만나셨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궁금해요.
임대형: 처음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을 뵈었을 때 PD님도 같이 계셨던 것 같은데, 그 자리에서 『82년생 김지영』 소설을 일본 서점에서 사서 읽으셨다고 이야기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저도 진작부터 배우님의 팬이었고,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 뵙게 되어 너무 기쁘고 설레고 긴장되고 그랬습니다.
나카무라 유코: (『82년생 김지영』 책을 보여주며) 두 번이나 읽었습니다.
김현민: 여기 관객 분께서 “아직도 김희애님 사진을 간직하고 계실지 궁금하네요.”라고 물어보셨어요. (*나카무라 유코 배우는 촬영에 앞서 휴대폰으로 김희애 배우의 고교 시절 사진을 전달받아, 매일매일 들여다보며 촬영을 준비했다.)
나카무라 유코: 물론입니다. 삭제할 수 없죠.
김현민: 연기하실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어보신 분도 계셨는데, 저도 유코 배우님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장면 많았거든요. 유코 배우님의 명장면이 참 많잖아요. 마사코 고모와 끌어안는 장면이나, 최근에 윤희가 꿈에 자주 나온다면서 꿈 이야기를 덤덤하게 한다든가, 료코 씨와 이야기하는 장면이라든가… 정말 많은 장면이 섬세하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배우님께는 어떤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나카무라 유코: 역시 윤희와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김현민: 왜 그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나카무라 유코: 쥰으로서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장면이기도 하고요, 배우로서는 김희애 배우님과 합을 맞춰보는 순간이라 기대하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선명하고 강렬한 순간이었고, 김희애 배우님과 합을 맞추면서 놀라울 만큼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일본의 전통 놀이 중에 아이들이 갖고 노는 팽이가 있는데요. 그 팽이가 엄청난 힘으로 돌아가서 멈출 수 없는 상태일 때에, 오히려 멈춘 것처럼 보이잖아요. 윤희를 연기한 김희애 배우님 앞에 섰을 때 딱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현민: 방금 배우님께서 말씀하신 장면은 관객의 욕망이기도 하잖아요. 윤희와 쥰이 만나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탁 터지는 장면이죠. 얘기 들으시면서 감독님은 그 날 촬영 생각이 나실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생각하셨던 에너지나 공기를 이 두 배우 분의 연기를 통해 느끼셨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임대형: 일단 지금 고경란 PD님이 일본어로 말씀하시고,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 얼굴 뵙고 목소리가 들리니까 현장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에요. 기시감이 들고, 갑자기 감정이 확 밀려오네요. 물론 윤희와 쥰이 오타루 운하에서 만났을 때 현장도 상세하게 기억나는데요. 많이 추웠고 스태프들도 고생을 많이 한 촬영이었어요. 배우 분들이 집중하기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었을 텐데 정말 순식간에 윤희와 쥰이 되어서, "액션"을 하면 두 분의 표정과 눈빛, 바로 그 에너지가 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게 느껴졌어요. 참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어요. 이 두 배우님들이 아니면 이런 에너지가 나올까 싶었고. 저렇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김현민: 감독님께 굉장히 행복한 현장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전에 새봄이가 카페에서 만나서 내일 저녁을 같이 먹자고 이야기할 때, 쥰은 이 만남을 예상했을까요? 조금이라도 어떤 희망을 품고 있었을까요? 유코 배우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해요.
나카무라 유코: 기대감이 살짝 스쳤을 거라고 생각해요. 새봄이 “엄마는 안 왔어요”라고 얘기했으니까…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거짓말은 아닐까’ 싶은 기대가 있었지 않을까요. 하지만 또 기대했다가 슬퍼질 수 있으니까, 정말 혹시나 하고 스치는 정도의 기대감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현민: “윤희니?”라고 물어봤던 그 장면의 얼굴에서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묻어나 너무 좋았습니다. 또 지금 한 관객 분께서 질문을 주셨어요. 호텔 바에서 료코 씨가 칵테일을 마실 때 쥰은 위스키를 마시잖아요. 감독님께 이 설정에 대해 질문 주셨습니다.
임대형: 저도 왜 그렇게 설정했는지 정확히 떠오르진 않는데요. 쥰은 위스키를 마실 것 같았어요, 담배 피우면서. 담배랑 위스키가 궁합이 좋기 때문에.(웃음) 료코가 마시고 있는 것은 블루 사파이어, 파란색 칵테일인데요. 저희 영화가 푸른 색감이 도는 영화라서 색을 고를 때 기본적으로 무조건 파란색을 떠올리며 골랐던 것 같습니다.
김현민: 감독님이 또 술에 일가견이 있으시잖아요.
임대형: …조금 줄이고 있습니다.(웃음) 기억에 남는 게, 오타루에 오타루 와인이 있어요. 아마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도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나카무라 유코: 맛있었어요.(웃음)
김현민: 화색이 도시네요.(관객 웃음)
임대형: 청포도 와인이에요. 엄청 달고… 편의점에서도 팔았는데, 제가 마셔본 와인 중 정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와인입니다. 그 와인이 제일 많이 생각나네요.
김현민: 이어서 유코 배우님께 여쭤보고 싶어요. 감독님께서 “왠지 쥰이라면 위스키를 마실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저에게 담배와 위스키는 어른의 술과 제스처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료코와 함께 있는 쥰이 보여주는 태도도 그랬어요. 성큼성큼 걷는 쥰의 걸음걸이나 말투 같은 것도 씩씩한 어른처럼 보였고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쥰이 쓸쓸해 보이는 순간이 저에게는 있었는데, 배우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쥰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구상하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나카무라 유코: 쥰은… 어른스럽다라… 정말 고독한 사람이죠. 윤희와의 사랑이 마무리 지어지지 못하고 도중에 어그러져서… 슬픈 결말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정쩡하게 끝났지요. 그 후로 늘 타인에게 마음의 벽을 쌓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끔은 차가운 면을 보이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작은 동물들을 상대로 하는 삶을 선택한 것을 보면 그토록 작은 존재들에게 자신을 겹치며 열심히 앞을 보고 살아온 인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김현민: 감독님께서도 쥰이라는 인물을 구상하실 때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쓸쓸함, 고독함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촬영하다 보면 배우님께서 감독님께서 생각하신, 상상하신 이상으로 표현해주실 때 ‘정말 쥰이 내 눈앞에 있다’ 싶은 순간이 있잖아요. 어떤 순간이었는지 기억 나신다면 들려주세요.
임대형: 저희 영화 속 인물들이 윤희와 쥰도 그렇고 마사코도 그렇고, 제 생각에는 외로운 사람들 같았어요. 그런데 캐릭터는 제가 쓰지만, 사람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요, 배우 분들이 갖고 있는 평소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 가령 저는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을 만났을 때 지성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김희애 배우님도 상당한 지성인이시고, 또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시잖아요.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저희 영화의 배우 분들은 다 그런 분위기가 있는, 멋있는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영화 캐릭터에도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인 것 같고요. 현장에서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께서 연기하시는 모습을 떠올려 볼 때, 집 앞에 서 있다가 료코와 통화하면서 돌아나가는 장면이 있는데요. 당시 실제로 눈이 왔어요. 저희가 눈 CG 처리를 많이 했지만 이때는 진짜로 눈이 왔거든요. 뒷모습으로 서 있다가 걸어가는데, 마치 제가 꿈에서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들었어요. 그런 순간들이 현장에서 정말 많았어요. 제가 계속 그렸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을 많이 느꼈죠.
김현민: 지금 감독님께서 유코 배우님을 처음 보셨을 때 ‘지성적이다’, ‘자기만의 분위기가 있다’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배우님께서는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요. 또 임대형 감독님의 시선에서 그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런 것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나카무라 유코: 음…
임대형: 저 앞에 두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가요?(웃음)
김현민: 그럼 생각하실 시간이 필요하신 것 같으니 그 질문은 나중에 생각나신다면 듣기로 할게요.
*다음 날 나카무라 유코 배우가 찬찬히 생각한 끝에 보내왔다는 긴 답변이 김현민 저널리스트의 SNS에 올라왔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 늘 쥰이 곁에 있는 듯한, 내 안에 쥰이
녹아 있는 듯한 감각이 계속되어서… 내 안에 무엇이 처음부터 있었고,
어떤 부분이 새로 생겨났는지 순간적으로 생각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하룻밤 생각해 보니, 매우 중대한 발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여자를 사랑해본 적 없는 저는 촬영 전 쥰을 연기하려면 뭔가 특별한 힌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윤희를 생각하는 쥰에게 다가가면서 그런 일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단지 윤희를 좋아하고 좋아하며 그 마음을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뿐이었어요.
그 감정과 제 자신이 이성을 사랑했을 때의 감정의 차이를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발견인 것 같습니다. 어젯밤은 생각이 늦어져서 미안해요. 그럼 또 봐요.
추신. 어젯밤엔 행복한 시간을 보내서 잠드는 게 아쉬운 기분이었어요.
김현민: 관객 분의 질문인데요. “쥰은 언젠가 편지를 자기 손으로 부칠 수 있었을까요?” 지금은 고모가 대신 부쳐줬잖아요. 배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나카무라 유코: 그건 저도 생각해봤던 부분이에요. 그 때 쥰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죠. 아버지와 심적으로 가깝게 연결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자기 피의 반쪽을 잃어버린 거니까 그럴 때 자신의 토양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고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에도 편지를 보낼 수 없다면 다음 기회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를 놓쳤다면 아마 보낼 수 없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김현민: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대형: 저는 잠깐 다른 얘긴데, 지금 질문 받으시고 말씀하시기 전에 말을 고르면서 고민하시는 시간이 있잖아요. 그 모습이 제가 실제로 뵀을 때도 있었는데, 그게 또 제가 반한 포인트였고.(관객 웃음) 그리고 편지는 언젠가 결국엔 부치지 않았을까요. 또 이렇게 만나기도 했으니 좀더 수월해졌을 것 같아요.
김현민: 쥰은 스스로 편지에 “비겁하게 도망쳤다”고 썼고, 료코 씨가 쥰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할 때 불편해하는 느낌이거든요. 스스로 죄의식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편지도 부치지 못한 것 같고요. 거기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임대형: 쥰이라는 사람은 어쨌든 한일 혼혈이고, 클로짓 동성애자이고, 일본에서 소수자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에요. 오랫동안 스스로 옥죄면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윤희를 놓고 왔다는 죄책감도 있을 것 같고. 한국에 엄마가 있잖아요, 엄마를 놓고 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고통들을 안으로 누르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을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께서도 계속 인지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되게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김현민: 혹시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에 이어서 하시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나카무라 유코: 아까 한 위스키 이야기랑도 이어지는 것 같은데, 제가 쥰의 주요 정서로 삼은 것은 엄청난 고독이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크게 느껴본 적 없는 마음이라 쥰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았어요. 부모님이 계시지만 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20년 가량 한국에서 살았고, 어머니는 여전히 혼자 계시고, 그건 정말 엄청난 고독 속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쥰 혼자였다면 분명 무너지고 말았을 정도의 고독이었지만, 무너질 것 같을 때 마사코 고모가 햇살처럼 쥰의 심정을 살펴주고 옆에 있어주었기 때문에 마사코의 존재가 쥰의 고독을 흩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현민: 지금 여러분께서 “유코 배우님 정말 너무 귀여우시고 사랑합니다.”, “이렇게 화상으로나마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이런 말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우시겠지만 유코 상 너무 귀여워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다시 만나고 싶어요.” 같은 애정의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시고 계세요. 이 영화를 사랑해주시는 관객 분들의 질문과 감상도 사전에 이미 한 차례 번역하여 전달 드린 상태인데, 만월단의 존재를 이번에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만월단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나카무라 유코: 아~ 만월단!(웃음) 아, 정말 이렇게 감사할 일이 있나 싶어요. 이름도 어쩜 이렇게 멋진지 모릅니다. 정말 기쁘고 감사한 존재입니다.
김현민: 너무 아쉽죠.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한국에 직접 오셔서 그 열기와 사랑을 체감하셨을 텐데. 오늘 돌잔치니까 팬분들께서 되게 예쁜 무지개색 떡도 준비해주셨는데 맛보여드리지 못해 너무 아쉽네요. 아까 감독님께서도 감탄하셨던 부분이, 팬분들이 볼펜도 준비해주셨더라고요. 그런데 그 펜이 마지막에 윤희가 이력서를 쓸 때 사용했던 펜이라고요.
임대형: 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 볼펜인 것 같더라고요. 정말 대단하시다, 만든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이 영화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정말 영화를 여러 번 보아야지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 떡을 보여드릴까요?
나카무라 유코: 떡이에요? 너무 예뻐요.
김현민: 재미있는 풍경인 것 같아요. 이제 개봉 1주년이고, 또 겨울이고 하니까요. 유독 쓸쓸하고 감성적인 영화라서 그런지 편지를 쓰듯이 감상을 남겨주신 분들이 있어요. 감독님께서 이 메시지를 읽어주시겠어요?
임대형: “〈윤희에게〉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올 겨울도 〈윤희에게〉와 함께 시작할 수 있어서 기뻐요. 영화를 본 지 1년이 지났고 〈윤희에게〉의 시간도 1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면 인물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일상적인 물음들이 떠오릅니다. 윤희는 새 직장에서 잘 지내고 있을지, 새봄은 대학 생활 잘 하는지, 쥰과 윤희는 또 한 번 만났을지, 만났으면 어디서 만났을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뭘 같이 먹고 뭘 같이 봤을지. 이런 물음들은 그들이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생각나는 것이겠죠.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윤희에게〉 세계 속 인물들이 따뜻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 봅니다.”
김현민: 이런 내용을 써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있으시기에, 어디선가 이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 같아요. 감독님께는 직접 만드신 인물들이니 조금 낯간지러운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감독님도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임대형: 저도 물론 어느 날은 길 지나다가 비슷한 나이대에 비슷한 색의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새봄이 같다, 혹은 윤희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고요. 이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는… 되게 잘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요, 나름대로.
김현민: 저도 이들이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유코 배우님은 쥰이나 윤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해보신 적 있을까요?
나카무라 유코: 촬영을 마치고 완성본 영화를 보고 생각했던 건데요. 쥰이 한국에 계신 엄마를 뵈러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희와 재회한 덕분에 자기 인생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난 거죠. 그 한 걸음이 혹시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닐까 문득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또 애잔해지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이 자리에서 데뷔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도 인디돌잔치를 하셨고, 지금 또 〈윤희에게〉로 하고 계세요. 기분이 어떠세요? 그때와 차이가 있나요?
임대형: 항상 영화 만들고 보여드리고 관객 분들과 대화하는 자리는 긴장되는 것 같아요. 창작자로서 감독으로서 좀 더 성장하고 싶은데 아직 미숙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하고, 그래서 좀더 정진해서 다음 영화도 인디돌잔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김현민: 정진한다는 표현을 하셔서 제가 조금 웃은 게, 아까 여기 들어오기 전에 감독님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뭐하세요?” 했더니 감독님께서 “저는 쓰레기예요.” 하셨거든요.(관객 웃음) 다음 작품이 안 써진다 그러시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왔는데 정진하신다고 하시니까.(웃음)
임대형: 정진하겠습니다.(웃음)
김현민: 저도 다음 작품 기다려볼게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감독님께서 이 영화로 상을 3개나 받으셨잖아요. 그리고 부산영화평론가협회에서는 김소혜 배우님이 신인여자연기상을 받으셨거든요. 지금 청룡영화제에도 김소혜 배우님이 신인여우상 후보로 올라가 있는데, 다 같이 박수 한 번 칠까요? (관객 박수) 너무 기쁘셨겠어요.
임대형: 아무래도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 있는 것 같고, 그걸 많이 응원해주신 것 같아요. 큰 상을 처음 받아봐서 정말 감사했죠. 이렇게 큰 상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배우 분들과 스태프 분들 생각도 많이 나고요. 대표해서 받는 상이니까요. 감사했습니다.
김현민: 〈윤희에게〉 팬분들에게도 너무 즐겁고 기분 좋은 소식이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요즘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보니까 이런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면 축하하고 싶더라고요. 만난 김에 다 같이 박수도 치고요.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는데요, 유코 배우님께 〈윤희에게〉라는 영화가 배우님께는 어떤 작품으로 남아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나카무라 유코: 〈윤희에게〉는 저에게 너무나 소중한 작품이에요. 쥰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가 제 마음 안에 녹지 않는 눈으로 쌓인 기분입니다. 쥰으로 있으면서 마음이 새로워졌다고 할까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또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이 저에게도 큰 재산이고 저 자신도 그렇게 차분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 제 안에 언제나 보석처럼 남아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김현민: 감독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기분이 너무 좋으시면서도 어깨가 무거워지지 않을까 싶어요. 한 관객 분께서 미리 써주셨던 말씀 중에 “이 영화가 한 살을 먹는 동안 예상하지 못한 어려운 일이 많았다. 앞으로 영화가, 이 세상이 얼마나 더 어려워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겨울이 지나면 새봄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고 써주셨거든요. 감독님께서도 이런 시기에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에 많은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오늘 와주신 관객 분들께 마지막 인사를 겸해서 이야기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대형: 우선 저도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을 갖게 되어 너무 좋았고요. 모처럼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을 이렇게 화상으로라도 뵙고 인사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코로나 시대의 영화인들은 모두 다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고민이 많고, 저도 그런 고민을 당연히 하지만… 영화 만들기는 항상, 어떤 시대에든 어렵고 말도 안 되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크게 저는 생각 안 하려고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어떤 영화들, 또 어떤 영화에 참여한 배우 분들 스태프 분들, 모든 분들 덕분에 눈에 안 보이지만 아주 조금씩 세상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믿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통역하느라 고생 많이 하신 고경란 PD님께 박수 한 번 부탁 드릴게요. (관객 박수) 그리고 우리 쥰 역할의 나카무라 유코 배우님, 시간 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박수 한 번 쳐주세요.
김현민: 관객 분들께도!
임대형: 관객 분들께도 박수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다 함께 박수)
김현민: 유코 배우님 마지막 인사도 들어볼게요.
나카무라 유코: 이런 상황에서도 극장에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 감사한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항상 여러분 생각이 나고 오늘 생각이 날 것 같아요.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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