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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증발〉: 사건을 기억하기, 사건 이후를 바라보기

by indiespace_한솔 2020. 11. 25.



 〈증발〉  리뷰:  사건을 기억하기, 사건 이후를 바라보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보라 님의 글입니다.


 

증발을 볼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첫째로는 장기 실종아동이라는 소재만으로도 갑갑하고 힘들 것이 쉽게 예상되어서, 둘째로는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매체의 특성상 현실과의 거리감이 더욱 좁혀질 것에 겁이 나서, 셋째로는 그로 인해 영화가 카메라의 힘을 빌려 사건의 전말과 중심인물들에게 무람없이 다가서고 이야기를 펼쳐내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서, 넷째로는 특정한 아군과 적군을 상정한 채 이쪽의 절절함을 호소함으로써 도리어 진짜로 발견되어야 할 문제들이 어쩌면 흐지부지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라고 간략히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만한 이유들이었다. 소재를 차치한다면 증발은 사실상 앞서 정리한 목록에 전혀 들지 않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일이 더욱 망설여졌다증발의 대부분은 사라진 최준원 양의 아버지 용진 씨와 동행한다. 용진 씨는 여전히 한 맺힌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오열로 관심을 읍소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얼굴은 아니다. 200044일 이후 걸려오는 전화마다 발신번호와 시각, 통화내용 등을 노트에 빼곡하게 메모해온 그의 간절함은 눈물 흘리는 아버지보다는 이성적이고 침착한 형사반장의 그것에 가까워 보인다(감히 짐작하자면, 17년의 시간이 그만큼 그를 단단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사건 내부자들에게 아주 근접해 있으면서도 차라리 견고하고 우직한 사건 추적기에 더 걸맞아 보인다.

 



그러니 증발SBS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특정 사건의 세부를 면밀히 묘사하고 앞뒤 정황을 검토하는 식의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김성민 감독은 해당 방송의 제작진처럼 앞장서서 달리거나 불가피하게 지닌 카메라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그 날의 충격으로 인해 서로에게 무관심과 생채기를 반복하다 와해된 식구들의 면면을 건조하게 비춘다. 특히 아버지와 소원해진 첫째 딸 준선 씨의 마음을 듣는 데 집중한다. 용진 씨는 준원 양의 실종기록을 전심으로 쫓느라 도리어 다른 식구들에게 소홀해졌고, 그런 아버지에게 준선 씨는 섭섭함과 불편함을 감추기 힘들다. 물론 영화는 이 안타까운 사연이 누군가의 잘못인지도 부연하지 않는다. 다만 무고한 자들이 지난한 세월을 견딜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인, 서로를 향한 질책과 불일치하는 의견들을 넌지시 일러준다.





이에 관해 마음에 조금 걸렸던 지점이 있었음을 말해두고 싶다증발에서 아버지 준용 씨가 사건 추적의 주도자가 된다면, 준선 씨는 현재의 심경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전자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후자에게도 많은 장면을 할애한다. 문제는 준선 씨가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몇몇 장면들의 고독함이다. 이 장면들은, 어떤 관객에게는 오히려 영화가 다루고 있는 특정 사건보다 더욱 크고 깊게 다가갈 것이다. 이렇게 준선 씨의 무거운 마음이 손쉽게 노출되고 있는데, 이후 이 장면들에 대한 어떠한 마름질도 없이 영화가 막을 내릴 때 관객으로서 나는 그의 현재가 궁금하면서도 걱정되어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증발은 한 가족 안에 오고가는 복잡한 감정들 사이에서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내기 보다는 도리어 양쪽의 상황을 나란히 지켜보는 데 집중하는 다큐멘터리라는 사실 또한 떠올려본다증발은 아버지 용진 씨의 추적과 첫째 딸 준선 씨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기억하는 일과 사건 이후를 바라보는 일은 양자택일의 옵션이 아니며, 도리어 양손에 모두 들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용진 씨가 수사에 몰두하는 만큼, 남은 식구들의 마음도 그 못지않게 성급하고 절박할 것이다(설령 그러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그대로 귀 기울여봐야 할 일이다). 증발은 엄청난 사건의 여파는 공동체 안에 속절없이 비난과 유감이 끼어들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쪽 모두를 지키는 일이다. 깊은 한숨을 섞은 채, 그러나 체념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직한 다큐멘터리 앞에서, 관객인 우리도 그 양쪽의 걸음에 모두 동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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