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했을까?〉리뷰: 표현의 모양은 누구나 다르니까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까만 스크린에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물음을 띄운다. 제목이기도, 질문이기도 한 이 문장은 영화 전체를 꿰뚫지만 정답을 요구하진 않는다. 감독 후지노 토모아키는 처음부터 이 영화가 무엇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미리 밝힌다. 그저 조현병을 앓는 누나와 함께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일을 택한다. 극장에 앉은 제3자인 관객과 함께, 같은 자리에서.

자연스레 휘발되는 기억들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카메라는 언제나 좋은 친구가 된다. 거짓말도 쉽게 탄로 나는 매서운 면도 있지만. 후지노가 가족을 촬영하기 시작한 건 누나가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자그마치 10년 후인 2001년부터다. 여태껏 부모님은 누나의 상태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채 사실을 덮어왔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평범한 생활만을 위태롭게 유지하던 가족의 시간은 후지노의 영화를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가진다. 정지된 사진을 펼쳐 보이는 타임라인과 내레이션의 구성이 촬영하지 못한 시간들을 대신하되, 관객에게 빈칸을 넘겨주는 장치로서도 작동한다. 그럼으로 관객은 감독이 제시한 ‘이 영상은 누나가 조현병이 된 이유를 밝히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를 설명하려는 것도 아닙니다.’라는 기초를 자연스레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병명을 밝히는 데 초점을 붙들어 두지 않은 채 25년에 걸친 시간을 압축해 보여주면서, 영화가 바라보는 대상은 어느 한순간의 발병 시점에서 그 시간을 살아온 가족 전체로 서서히 옮겨간다. 무엇이 누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보다 달라진 누나를 가족은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왔는지를 묻게 되는 것이다.

‘생소한 정신 질환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절실히 아는 사람은 부모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취약한 딸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 역시 부모의 몫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그 방식이 거칠고 답답하게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그 사이에 가족이 아닌, 아는 의사가 아닌, 제3자에게 맡겨보자는 후지노의 말이 던져질 때 침잠된 생각들이 영화를 뚫고 깨어난다. 관객은 이유를 찾지 않기로 약속한 영화에서 누나에게 일어난 일의 책임을 가려내는 데 기꺼이 실패한다. 떠나가는 시간에 인사하고, 떠나간 사람에게 안녕을 고하는 것 이상으로 과거를 들춰내지 않기. 지금 이 순간 극장 안에서 함께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가족의 시간은 잠시 우리 앞에 머물고, 스크린이 어두워지는 순간 다시 그들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한 가족의 긴 시간이 멋진 한 편의 영화로 남기를 감히 바란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디즈 단평] 〈산양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0) | 2026.08.10 |
|---|---|
| [인디즈 단평] 〈지느러미〉: 시작의 시작 (0) | 2026.08.04 |
| [인디즈 소소대담] 2026. 7 안부를 묻기 적당한 이야기 (0) | 2026.08.03 |
| [인디즈 단평] 〈소영의 노력〉: 나만의 가장 솔직한 언어로 (0) | 2026.08.03 |
| [인디즈 Review] 〈지느러미〉: 여정의 방향 (1) | 2026.08.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