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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뱀의 길〉: 부수면서 짓는다

by indiespace_가람 2026. 7. 30.

〈뱀의 길〉: 부수면서 짓는다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지난 몇 달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들이 하나둘 재개봉했다. B급 공포영화로서의 장르. 그리고 예술영화로서의 작가성. 구로사와를 둘러싼 말들엔 언제나 두 키워드가 팽팽히 균형을 이룬다. 물론 구로사와는 자신이 “작가주의라거나 예술영화를 만든다는 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그는 언제나 기존 공포/스릴러 영화들이 고집해 온 틀을 깨뜨리면서 새로운 장르를 칠해왔다.

구로사와 본인의 말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정말로 자신만의 예술관엔 관심이 없다. 마저 인용해 보자면,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배우 등 다양한 사람의 재능이 조합돼 태어난다. 그래서 나(구로사와)는 예술인이 아닌 장인이 돼야 한다.” 즉, 구로사와가 기존의 문법을 깨는 건, 그만의 장르라는 성벽을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닌 듯하다. 그보단 하나의 영화마다 하나씩의 세계를 조물조물 빚어 나가기 위해서 같다. 감독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든 모두가 일원이 되는 그런 세계.

이 겸손함으로 영화 〈뱀의 길〉(1998)은 전작 〈큐어〉(1997)와 다를 수 있다.

영화 〈뱀의 길〉 스틸컷


잔혹한 범죄로 딸을 잃은 ‘미야시타’는 ‘니지마’라는 남자의 도움으로 복수의 길을 걷는다. 제목도 말하듯, 그 길은 꼬리를 문 뱀처럼 자신을 가두는 순환도로다. 선악의 경계를 뒤섞고 꼬아버린 채 〈뱀의 길〉은 〈큐어〉처럼 세기말 일본의 우울이 묻어나오는 뿌옇고 흐린 이미지로, 하지만 〈큐어〉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미지의 공포를 밀어붙인다.

그러다 〈큐어〉에는 없던 직접적인 반전이 제시되고, 괴로운 진실이 뒤통수를 치고, 미야시타를 응원할 수 없게 되고, 미야시타가 해답 없는 공식에 갇힌 채 영화가 끝나버릴 때, 우리는 〈뱀의 길〉이 완전히 무너져버리기로 택했음을 느낀다. 〈큐어〉와 유사한 주제 의식임에도, 오락영화의 옷으로 갈아입고 어두운 속내를 대놓고 보여주는 덕에 그 누구도 이 영화를 구로사와의 자가복제라 평하지 않는다. 구로사와에게 〈뱀의 길〉은 〈큐어〉를 잇는 자신의 필모그래피가 아니라, 독자적인 영화로서 동료들이 모여 사는 섬이자 그저 또 하나의 재미있는 시도인 듯하다. 구로사와를 아예 모르고 보아도 재밌을 수 있고 구로사와를 알고 보아도 새로울 수 있는 영화인 이유다.

그런데 〈뱀의 길〉이 재개봉한 이 시점에, 영화를 여기까지만 다루는 건 부족해 보인다. 어떤 감독의 영화를 아주 뒤늦게 본다는 건, 그 영화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과도 겹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 아닐까. 〈회로〉(2001)까지 보고 나서 생각했다. 구로사와가 장인인 이유는 따로 있다고.

영화 〈뱀의 길〉 스틸컷


‘예술인 정신’은 모호하지만 ‘장인정신’은 명확하다. 기꺼이 부수는 일까지 창작의 일부라고 본다는 것. 예술가는 완성해 내지만 장인은 자기 자신도 깬다. 구로사와를 (몇 개의 인터뷰로 미루어 보아 그는 분명 싫어하겠지만) 굳이 정의하자면 그런 일에 능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는 장인이다.

근거는 〈회로〉의 엔딩이다. 파국을 맞은 도쿄로부터 탈출하는 배 위에서 인물은 말한다. “가자, 갈 수 있는 데까지.” 이 한마디로 〈회로〉는 전작들을 부쉈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이 없는데, 정답도 확신도 없는데,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묻곤 끝나버리던 이전의 영화들에게, 〈회로〉는 기죽지 않고 대답한 셈이다.

영화 〈뱀의 길〉 스틸컷


〈큐어〉, 〈뱀의 길〉에서 〈회로〉로 이어지는 이 일련의 과정은 곧 구로사와는 물론 우리의 가능성이다. 〈큐어〉 바깥에 〈뱀의 길〉을 세우면서 ‘비슷한 절망을 전혀 다르게 보여줄 수 있다는’ 영화의 가능성을 지어 올리던 구로사와는 〈회로〉로 〈뱀의 길〉을 부수면서 ‘파멸 앞에서도 사람은 나아갈 수 있다는’ 인간의 가능성까지 지어 올리는 데 성공한다. 자아가 너무 큰 사람은 어느 순간 그 자아에 갇히지만 자아 너머 주변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더 넓은 세계를 항해할 수 있다.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굳히려 하지 않아서 구로사와는 〈뱀의 길〉을 깨고 〈회로〉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정성일 평론가는 구로사와가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2000)를 보고 〈회로〉의 작은 희망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말했다. 〈유레카〉의 공도 있겠지만, 구로사와가 전작들에서 여러 번 세상을 무너뜨려 봤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비관을 지어본 자만큼 잘 허물 수 있는 자도 없기에.

〈뱀의 길〉이 〈큐어〉와 〈회로〉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덕에 우리는 구로사와가 서로 다른 작품을 지을 뿐만 아니라, 오늘을 짓기 위해 어제를 완전히 부술 줄도 아는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다. 비록 그가 다음 작품에서 다시 좌절로 돌아갈지라도, 그것이 허무한 철거가 아니라 그저 또 다른 세계를 일구기 위한 기초공사라는 것도.


*인터뷰 출처: 이혜운, “현대 사회 인간의 삶 궁금하면 이 남자의 작품을 보라”, 조선일보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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