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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지구 최후의 여자〉: 멸망이 가까워질수록

by indiespace_가람 2026. 7. 27.

〈지구 최후의 여자〉리뷰: 멸망이 가까워질수록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주연 님의 글입니다.

 


지구에는 단 한 명의 여자만 남았고, 그녀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남자를 죽이려 한다. 영화는 한아가 구상한 영화 〈지구 최후의 여자〉의 한 장면으로 문을 연다. 현실과 동떨어진 SF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한아와 송철의 현실로 이어진다. 믿었던 멘토에게 시나리오를 빼앗긴 송철과, 유명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배우가 아닌 노출 장면으로만 기억되는 구한아. 이름까지 바꾼 채 살아가는 한아에게 영화는 자신을 잃어버린 공간에 가깝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안은 채 함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출발은 복수다. 자신들을 망가뜨린 사람을 향한 분노를 이야기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시나리오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영화를 완성해 가는 동안, 그들이 쓰는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상대를 향해 던졌던 이야기는 어느새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이해하려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향한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영화 속 영화’의 액자식 구성 역시 같은 흐름을 따른다. 허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창작자의 삶이다.

영화 〈지구 최후의 여자〉 스틸컷


이 과정에서 영화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처한 환경과 여성 배우가 겪는 부조리도 함께 담아낸다. 하지만 오래 바라보는 것은 부조리보다도, 그 시간을 견디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세상을 기록하는 일이면서, 끝내 외면하지 못한 자신의 시간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는 끊임없이 ‘멸망’을 상상한다. 모든 것이 끝난다면 무엇을 붙들고 있을 것인가. 반복되는 멸망의 이미지는 세계의 종말이 아니라, 놓지 못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한아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사람이 없는 극장에서 뮤지컬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슬퍼도 노래하고, 기뻐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는 영화. 영화는 그 말을 지나가는 대사로 남겨 두지 않는다. 한아와 송철이 품고 있던 상처와 분노는 뮤지컬 장면을 통해 비로소 밖으로 흘러나온다. 말로 다 닿지 못했던 마음이 음악을 만나 조금 더 솔직한 언어를 얻는다. 영화는 현실을 대신 살아 주지는 못하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드러내고 지나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영화 〈지구 최후의 여자〉 스틸컷


영화는 마침내 멸망의 순간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하나둘 촬영 현장을 떠나고, 모든 것이 끝나 가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카메라 앞에 남는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고, 과거 역시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촬영은 계속된다. 영화는 상처를 해결하지도,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지도 못한다. 다만 해결되지 않은 삶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오래 남는 것은 멸망의 풍경이 아니다. 끝이 예정된 순간에도 한 장면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카메라를 드는 일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일임을 마지막까지 조용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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