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리뷰: 준비가 되었다면 언제든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01. 영화로의 초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다음의 두 조건을 시작점에 두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첫째, 열여덟이 되면 반드시 시초지인 지구로 순례를 떠나야 한다.
둘째, 순례자 중 일부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처럼 영화의 배경은 지구가 아니다. 나쁜 감정을 느끼는 기관은 퇴화되어 사라지고, 오직 맑고 좋은 것으로만 채워진 유토피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긴다. ‘정말 왜 순례자는 돌아오지 않았을까?’ 영화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주인공 소피는 열여섯 살로 돌아온 순례자를 맞이하는 자리에 서는 인물이다. 앳된 얼굴과 언젠가 떠날 순례길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그리고 문득 순례자에게 전달할 꽃다발이 남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돌아오지 않은 순례자’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02. 대비의 의미
소피의 의문은 사실 진실이다. 유토피아인에 의해 기억이 지워졌을 뿐. 앞서 말한 두 번째 조건인 ‘순례자 중 일부가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에는 약간의 부정성이 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한 거취 결정 혹은 자의적인 귀환 거부 등의 가능성을 가진 순례자가 존재하고, 유토피아는 이 부정 사실을 은폐한다. 작은 의심 하나 살 수 없는 곳이라는 것, 이러한 세상으로 유지되는 데에 필요한 조치일 수 있겠다 싶지만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로부터 피어난 의문을 붙잡는 사람도 등장한다. 소피의 동갑내기 친구 데이지다. 데이지 또한 기억에서 사라진 존재 중 하나다. 가선 안될 나이에 모든 것을 어겨가며 지구에 있으니 응당 기억에서 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데이지를 통해 지구의 삶을 엿볼 수 있는데, 이타사라는 도시와 비 개발 지역, 결함 없이 태어난 사람들과 저마다 다른 모양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곳. 유토피아의 관점에서 지구는 가장 혼란스러운 형태의 디스토피아로 존재한다. 그러니까 지구로 순례길을 떠나는 데에는 ‘시초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넘어 유토피아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자신이 속한 세계의 우월함을 확인하는 절차로써 작용하게 되어있다.

03. 그들이 사는 세상
만일 데이지가 순종적인 인물이었다면? 애초에 지구로 향하지 않았을 수도, 그곳에서 받는 차별도 훨씬 덜 했을 수도 있다. 데이지가 지구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필연적인 조건 하나가 따라붙는다. ‘열성인자’, 다시 말해 결점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유토피아에서 데이지와 같은 사람은 등장하지 않고, 그것으로 데이지가 특별해진다.
다시 돌아가 지구에 도착한 순례자에게 어떤 일이 생겼다는 점에 집중해 보자. 디스토피아에서 살아가며 모진 생활을 견뎠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양한 가능성 중에 최악은 죽는다는 것인데 영화는 그렇게 절망의 바닥까지 끌어앉진 않는다. 대신, 가장 명징한 사건 하나를 심는다. 사랑이다.
내가 모르는 나를 알아봐 주고, 사이를 좁히다가 어떠한 기별도 없이 사라지는 것. 이별이라 부르는 모든 헤어짐에 우리는 공허함을 느낀다. 살아는 있는지, 유토피아로 돌아오지 않을 것인지. 영화는 데이지와 소피를 통해 자신 안에 걱정과 슬픔, 그리움과 같은 감정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을 향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가 답하는 ‘사랑이 유토피아의 전제를 무너뜨린다’는 생각보다 더 간단하다. 이렇다 할 관계의 서사나 SF 다운 놀라운 상상력이 첨가되진 않았다. 하지만 만사를 제쳐두고 떠나는 그 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그 힘. 유토피아인이 관성적으로 순례자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지만 그 힘의 크기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처럼, 사랑이 하는 일은 어떠한 경계도 가볍게 넘어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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