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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와 시차 사이에서
〈노 어더 랜드〉 그리고 〈두 개의 문〉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할 말을 잃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내가 글을 쓸 정도로 영화가 다루는 사안을 알고 있는지, 설령 그렇다 해도 나의 표현으로 영화를 재단하는 것이 온당한지, 아니 애초에 ‘안다’라는 가정 자체가 부적절한 것은 아닌지에 관한 고민이 이어진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아예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건 더욱 비겁하게 느껴진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영화가 분명 필요하다는 사실 하나다. 끝없는 고민에 부닥치게 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을 엮어 보았다.

〈노 어더 랜드〉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도 여럿 소개된 팔레스타인 영화 중에서도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다. 영화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위치한 마을인 마사페르 야타를 배경으로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이스라엘 군의 강제 철거를 다룬다. 마사페르 야타에서 나고 자란 팔레스타인 활동가 바젤은 마을을 돕는 이스라엘 저널리스트 유발과 가까워지고 둘은 이스라엘 군의 만행을 카메라로 담아 세상에 알리려 한다. 바젤과 유발을 포함한 두 명의 팔레스타인 활동가와 두 명의 이스라엘 활동가가 영화의 공동 감독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촬영한 현재의 푸티지와 과거의 기록, 그리고 뉴스 클립이 스크린 위에서 교차한다. 카메라는 총과 둔기로 무장한 군인들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영화를 보면서 지울 수 없었던 생각이 있었다. 〈노 어더 랜드〉는 2019년부터 4년간 촬영한 푸티지를 합쳐 만들어진 작품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2023년 10월 7일의 월경 공격과 그에 대한 보복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에서의 제노사이드 이전 시간대를 다룬다. 이 영화는 너무 늦게 우리에게 도착한 것은 아닐까. 왜 영화는 항상 늦을 수밖에 없는가. 등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2019년의 바젤은 이스라엘의 만행을 찍어 서방 세계에 알리면 미국이 그들을 압박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2026년의 미국은 어떠한가. 필연적인 시차는 영화 속의 짧은 문장에도 씁쓸함을 더한다. 어쩌면 이런 시차가 고민의 새로운 층위를 열어주는 것은 아닐까. 영화 내내 바젤은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고, 자신의 활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결국 그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작은 희망에 다시 삶을 걸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바로 그 희망은 영화가 우리와 만나는 지금에도 시차를 넘어 전달된다.

철거를 다룬 영화가 하나 더 떠오른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은 2009년 용산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의 농성과 그에 대한 과잉 진압으로 일어난 참사를 재구성하려 한다. 강제철거에 의해 동굴에 들어간 마사페르 야타의 주민들처럼, 철거는 결국 생존권의 문제와 직결된다. 영화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공권력이 얼마나 쉽게 이를 짓밟고 은폐하는지 고발한다. 그리고 사건을 담은 그날의 푸티지를 조합해 진실을 밝혀내려 시도한다. 그러나 저화질의 영상 자체는 그리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영화와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만나는 순간이다. 용산역 앞의 고층 빌딩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섬찟하다. 영화가 남긴 지울 수 없는 화마의 이미지가 눈앞에 일렁인다.
* 영화 보러 가기: 〈두 개의 문〉(감독 김일란, 홍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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