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발렌타인〉리뷰: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문학, 음악, 영화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진 님의 글입니다.
초콜릿을 떠올리면 특유의 녹진한 달콤함이 떠오른다. 하지만 혀끝에 녹아드는 맛을 가만히 느끼다 보면 어느새 쌉싸름한 맛과 향이 퍼지며 초콜릿의 진짜 맛을 알게 된다. 여기,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던 2004년의 밸런타인데이가 있다. 현대중공업의 하청노동자 박일수는 불합리한 현실을 마주하며 공장에서 분신을 택했다. 자신이 경험하고 또 다른 하정노동자들이 경험했을 현장의 불평등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자본주의의 달콤함 뒤에는 노동자의 쓴 현실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이 쓰디쓴 밸런타인데이의 현실을 더 큰 세계로 끌어오는 두 사람도 있었다.

〈오, 발렌타인〉은 민중가수 우창수와 시인 조성웅의 시선으로 박일수 열사의 분신을 되짚는다. 또한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당시의 세상과 현실, 지금의 세상을 함께 살핀다. 박일수 열사의 분신과 현재 사이에 약 20년의 격차가 있음에도 이 세상에는 변치 않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세상은 온통 자본주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편승한 사람, 자본주의를 이용하는 사람, 자본주의와 타협한 사람 등 자본주의와 맺는 관계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모두가 자본주의 안에 있다는 점에서 그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정규직 노동조합마저 자본주의와 손을 맞잡는 가운데에도 우창수와 조성웅, 박일수 열사는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관료화 되어버린 운동의 현장에서 비협조적인 그들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그렇게 그들의 투쟁은 실패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실패에서 태어난 기록이다. 실패했음에도 한 발짝 나아갔으며, 그 실패로 인해 세상을 다시 사유하게 된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는 영화다. 이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그려내는 방식보다는 그들의 경험과 사유의 확장을 병치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영화 속에서는 수많은 요소가 결합하고 충돌하며 저마다의 역동성을 드러낸다. 심지어는 우창수와 조성웅의 증언조차 어떠한 음악적 효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충돌 가운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2분할의 이미지다. 운동 현장의 영상과 사진, 스톡 이미지, 현재의 영상, 증언이 담긴 인터뷰 등의 이미지가 양측에 대립하며 제시되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은 어느 한 가지에 매몰되지 않고 계속해서 판단을 이어가게 된다. 무엇을 응시하고,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지에 관한 선택을 영화가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사유가 단순히 화면 안에 제시되는 것을 넘어 관객의 세상 속에서 재탄생되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거듭되는 사유 끝에 우창수와 조성웅이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문학과 음악이었다. 자연으로, 생태로 돌아간 그들이 여전히 믿는 것이 문학과 음악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본과 불화하고 기성의 것을 전복시키며 타도하는 것이 혁명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말한다. 이 혁명은 단순한 노동운동을 넘어 우리 시대의 평등과 자유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시와 노래를 통해 여성과 자연을 담아내기로 한다.

이러한 사유는 비단 문학과 음악만의 소유가 아니다. ‘산업’으로 불리며 자본과 매우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영화이지만, 동시에 서사를 담고 선율을 담아 문학이자 음악이 되는 것이 영화이지 않은가. 이들은 충분히 확장 가능한 관계다. 그리고 홍진훤 감독은 〈오, 발렌타인〉을 통해 이와 같은 영화적 혁명의 가능성을 증명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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