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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허밍〉: 슬픔이 남겨진 자리, 또렷이 기억될 허밍

by indiespace_가람 2026. 2. 20.

〈허밍〉리뷰: 슬픔이 남겨진 자리, 또렷이 기억될 허밍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미 님의 글입니다.

 

 

〈허밍〉은 소리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음향 기사 성현은 1년 전 작업했던 영화 〈국사봉과 신림, 그 사이〉의 감독으로부터 후시 녹음을 부탁받는다. 애드리브가 많았던 주연 배우 미정의 몇몇 사운드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 부재하는 건 미정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복원하기 위해, 사라진 목소리를 지녔던 인물 미정의 이미지를 소환한다.


미정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인물은 성우 전공의 배우 민영이다. 민영은 단순히 미정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과 몸짓, 어딘가 덜렁대는 모습까지 미정과 닮아간다. 미정의 대사를 알기 위해서는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인물 역시 민영이다. 성현과 민영은 미정이 거닐던 장소들을 함께 걷는다. 성현과 함께하는 민영은 과거 미정의 모습과 자연스레 포개진다. 대체되거나 재현되는 방식이 아니라, 몸에서 몸으로 삶과 삶이 이어진다.

 

영화 〈허밍〉 스틸컷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미정의 죽음에 서글픈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허밍〉은 그 여정을 슬픔에만 잠식시키지 않는다. 아이처럼 아이스크림과 젤리를 한 아름 고르는 미정과 민영의 순수함은 성현과 관객들이 피식 웃음이 터지게 만들고, 성현의 하우스 음악에 맞춰 추던 미정의 춤은 몽환적 이미지로 남는다. 상실의 무게를 과도하게 강조하기보다, 허밍처럼 은은한 리듬을 유지하며 인물의 시간을 따라간다. 그리고 끝내 눈물을 흘리던 미정의 얼굴 위에 다시 허밍을 얹으며, 말보다 진한 여운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극중극 〈국사봉과 신림, 그 사이〉는 〈허밍〉의 세계와 닮아 있다. 국사봉에 사는 성현과 신림에 사는 미정. 미정의 죽음이 영화 속에서 명확히 설명되지는 않지만, 신림 침수 사건을 거듭 언급하는 극중극은 현실의 상황과 겹쳐 보인다. ‘비가 오면 당신을 생각하겠다’ 〈국사봉과 신림, 그 사이〉의 대사처럼, 성현에게 비는 미정의 기억을 호출하는 버튼인 듯하다. 감독의 말처럼 성현은 영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로 한참을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영화 〈허밍〉 스틸컷


민영은 미정이 촬영 당시 자주 걷던 언덕 위에서 큰 소리로 미정을 부른다. 혹시나 미정이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봐 말이다. 성현은 이 길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으니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 미정은 이제 이곳에 없지만, 그녀 이외의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미정이 그때 했던 말은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미정의 허밍만큼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 멜로디는 다른 이의 입을 거쳐, 마침내 성현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성현은 이제 이 영화에서, 그 시간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만 같다. 비가 오는 날에 문득 미정을 떠올리는 날도 있겠지만, 그렇게 미정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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