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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각형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그리고 〈파수꾼〉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점과 점끼리 모두 연결해 면을 만들어 보자. 2개의 점은 선분에 그친다. 4개부터는 전부 연결하자니 가로지르는 선이 생겨 복잡한 꼴이다. 여러모로 3개의 점이 딱이다. 간단한 삼각형만으로 모든 점이 연결된다.
단순함은 연약함을 내포한다. ‘너’도 ‘나’도 ‘걔’도 한 명씩이다. 유일한 ‘걔’로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공포. ‘걔’만 없으면 독점적인 ‘너와 나’가 될 거라는 기대. ‘걔’가 없으면 ‘우리들’이 주는 유대감도 무너질 거라는 우려. 여러 겹의 고민으로 불안정하다. 결국 삼각형은, ‘우리들’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이기에 각자의 감정이 더욱 선연히 드러나는 관계 구조인 셈이다.
〈프랑켄슈타인 아버지〉의 시작은 외딴 점 하나. 내과의사 ‘치성’은 하나의 점으로서 고고하게, 하나의 오점 없이 꼿꼿하게 살아간다. 완전무결한 그 삶을 영재가 들이받는다. 스무 살에 팔아넘긴 치성의 정자로 태어난 영재는 자신의 하자에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황당한 요구에 겨우 적응하려는 찰나, 또 하나의 점이 불쑥 끼어든다. 영재를 기른 아버지 ‘동석’이다.
3명이 모였다. 누가 ‘걔’가 될 것인가. 치성은 17년 동안 아버지와 아들로 지내온 [영재-동석]의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 동석은 생물학적으로 연속되는 [치성-영재]의 유전을 끊어낼 수 없다. 각자의 열등감을 업은 두 아버지는 ‘걔’가 되기 싫은 나머지 영재를 ‘너’에서 ‘나’로 개조하기 시작한다. 영재에게 자신의 결핍을 투영한 채로 영재를, 그 속의 자신을 껴안으려 한다.
양쪽 점이 영재의 팔 하나씩을 잡고 각자의 위치로 끌어당긴다. 그 끈적끈적한 접합이 버거워, 영재는 삼각형을 찢고 달려 나간다. 기꺼이 ‘걔’가 되길 선택한다. 그 순간 삼각형은 해산되지만 동시에 인물은 각각의 점으로 해방된다. 손을 맞잡는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놓아주지 못하는 건 폭력적인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양면성 덕에, 헤어짐만이 주는 홀가분함도 가능하다. 헤어짐 앞에 ‘드디어’가 제법 잘 붙는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분리되면서 파괴되는 관계도 있다. 〈파수꾼〉의 ‘희준’은 자신을 낮은 위치로 점 찍는 ‘기태’가 불편해 [기태-희준-동윤]의 삼각형에서 탈출하려 한다. 하지만 기태는 외롭기 싫은 사람. 희준을 억지로 잡아당겨 ‘우리들’을 지키려 하지만 엇갈리는 마음에 삼각형은 더욱 거친 단면으로 찢어질 뿐이다. 희준이 떠나가면서 별안간 면에서 선이 되어버린 ‘동윤’은 기태가 밉다. 하나 남은 점 동윤과의 선조차 끊어진 기태에게는 더 버려질 기회도, 더 살아갈 이유도 없다. 면에서 선으로, 선에서 점으로 분리되는 과정은 누군가에겐 자유보다 추락에 가깝다.
너와 나 우리들을 찢어야 할까, 지켜야 할까. 삼각형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단절과 단결을 두고 부단히도 고민한다. 잘 헤어지고 잘 만나는 것이 전부일지 모르는 우리네 인생.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삼각형이 모여 사각형이, 육각형이 되다가 어느새 삶의 모양새다. 삼과 삶의 발음이 비슷한 건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어느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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