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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숨〉: 소멸의 응시

by indiespace_가람 2025. 3. 28.

〈숨〉리뷰: 소멸의 응시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글입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언제까지 어려? 내년에도 어릴 거니?’ 젊음과도 교환할 수 없을 만한 재력을 과시하는 대사이지만 사적으로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탄탄하고 깨끗한 육체는 어느 한때의 일일 뿐이다. 인간의 육체는 냄새나고 땀과 피지로 지저분하다. 나이 들며 거죽은 주름이 잡히고 늙은 피부에는 버짐이 핀다. 그러나 늙음도 죽음도 당장의 일은 아니다. 우리는, 어린 우리는 밝고 화려하고 깔끔한 것에 둘러싸여 좋은 것만 내보이며 산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면 예전과 다른 내가 있는 것이다. 모두가 거부하고 혐오하는 것을 〈숨〉은 구태여 눈앞으로 가져온다. 지독할 정도로 날것의 육체성이 보여주는 끝은 지금과는 다른 것을 응시하게 한다.

 

영화 〈숨〉 스틸컷

 

〈숨〉의 인물들은 날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죽음, 혹은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그들은 삶의 의미를 되짚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문한다. 특히 장례지도사(유재철)와 유품정리사(김새별)가 그러한데, 죽은 육체와 그가 남긴 분비물을 매일 닦아내고 세상에 남은 그의 것들을 낱낱이 마주하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수행한다. 그들이 마주하는 죽음은 결국 그들 자신의 삶, 그리고 할머니(문인산)의 모습과 공명한다. 누구나 젊은 시절의 화려한 전성기 같은 기억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이 의미를 가지는가? 어깨는 삐걱대고 지지부진하고 고단한 일상이 우리를 기다린다. 사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 노화와 죽음이 기다리는 길 위에서 묵묵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카메라가 내려다본다.

 

영화 〈숨〉 스틸컷

 

〈숨〉이 가감 없이 드러내는 육체의 비루함은 유품정리사가 정리하는 집의 풍경에서 극대화되는데, 시신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방바닥을 적시고 초라한 냉장고 속 음식들과 젊은 날의 업적이 대비된다. 그것은 곧 연민으로 이어진다. 죽은 자에 대한 연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연민, 늙고 스러질 사람들의 가엾음을 생각하게 된다. 고독사의 사회적 대처는 잠시 제쳐두고, 어떻게 하면 보다 잘 떠날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유재철과 그의 부인(이종림)은 함께 밥을 먹고 길을 걸으며 자신들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햇빛을 충분히 보지 못한 것, 충분히 쉬어가지 못한 것. 후회를 뒤로 하고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써 내려가는 그들의 손에는 삶과 죽음의 냄새가 함께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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