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1950: 마을로 간 전쟁〉리뷰: 시대가 남긴, 목소리가 담긴.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감독 구자환은 2013년 〈레드 툼〉을 시작으로 2017년 〈해원〉, 2020년 〈태안〉에 이어 2025년 〈장흥:1950 마을로 간 전쟁〉까지 총 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네 편의 영화는 모두 민간인 학살사건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이번 〈장흥1950: 마을로 간 전쟁〉은 진실을 기록한 영화로서 마지막 온점을 찍는 영화이기도 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내막을 헤아릴 수 없는 사건을 영화화하여 관객에게 상영되는 작품으로 오기까지 그 과정과 결과에 찬사를 보낸다. 〈장흥1950: 마을로 간 전쟁〉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후로 전라남도 장흥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다. 대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의 출처는 대체로 미상에 그치지만, 이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는 사무치게도 너무나 명확한 시작점과 그 시작에 선 피해자들의 가슴에서 흘러나온다. 제대로 표현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사그라져버린 사람들의 자취를 유족과 당시 목격자의 목소리로 담아낸 이 이야기는 역사 기록이자 영화로 발화된다.
흔히 ‘구전’이라 하는 것은 글자라는 모양을 갖추지 않은 소리라 받아 적기엔 빠르고, 보여주기엔 그에 맞는 배경과 재료들이 필요해지기 마련이다. 누군가 실체화된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시간에 부옇게 흐려지는 일들을 현재까지 온전히 이어 오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소리의 형태를 만드는 것, 감독 구자환이 선택한 방법이 여기에 있다. 여전히 장흥에 자리를 지킨 목격자와 유족들의 말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사용해 전달한 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략적인 스토리텔링과 영화 미학적 장치를 덜어낸 담백한 다큐멘터리 장르로, 내레이션과 선택적 자막의 배치로 흐름을 이어나간다. 사실 친절한 영화이기보단 솔직한 영화다. 전남 방언 사용과 더불어 사람의 부정확한 발화에 때론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등장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 띄엄띄엄 내뱉는 한 문장에서 가슴에 와닿는 진실한 감정을 돋보이게 한다. 계속해서 영화는 증언들을 이어나가며 전개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람들의 말과 손이 가리키는 것은 군경에 의해, 정치 이해득실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의 마지막 발자취이다. 학살엔 이유도 많았고,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근거와 판단을 멋대로 휘두르는 탓에 ‘빨치산 협력자’ 혹은 ‘우익 인사’로 낙인찍혀 목숨을 잃은 이들의 억울함은 저 산은 알까? 이 땅은 알까? 이제는 그 잔흔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풀로, 흙으로 뒤덮인 그곳을 구석구석을 비추는 카메라에는 그저 이는 바람에 부는 잎사귀들의 평온과 고요가 담기지만 바로 그 자리가 피로 가득했던 학살의 현장이라는 것을 역설적 표현으로 현재와 대비시켜 사실적 충격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떤 역사는 잊힘을 강요당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이는 살기 위해 잊으려 한다.
이렇게 망각된 역사는 오랜 세월을 지나 왜곡되거나 지워졌다.”
〈장흥1950: 마을로 간 전쟁〉 中
장흥 주민들이 터를 지어 살아가는 마을에는 전쟁과 학살이 남긴 참혹함이 남아있지 않다. 시간에 휩쓸려 덮어지고, 흐려졌다. 그러나 그들이 보는 곳곳에는 여전히 아릿한 잔상이 남아있다. 국가의 국민으로서 보호 받지 못한 채 허망히 목숨을 잃고, 사망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한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찾고자 했던 이야기. 쓰라린 과거의 공간에서 여전히 삶을 이루고 치열하게 살아온 국민들의 이야기. 시대의 상처를 겪은 자들의 가슴 속 깊게 박혀있던 말들이 비로소 세상으로 흘러나와 전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장흥이 담은 상처와 아픔을 정확히 기록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이 이야기는 또다시 눈으로, 입으로, 글로 담겨 살아갈 날들에 방점을 찍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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