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새〉리뷰: 엉겨 붙은 눈길 사이로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작은 몸뚱이의 허리를 바짝 세워 깃털을 펼치자 화려한 문양이 눈길을 앗아간다. 표면을 지긋이 쳐다보면 밤하늘의 별마냥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눈’이 빼곡히 박혀 있다. 수컷의 공작새에게만 달린 화려한 깃은 구애의 행동이자 발정기의 과시다. 본인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강렬한지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로운 자태와, 당신을 유혹하겠다는 당찬 깃털의 파동. 나지막하게 움직이는 깃털 짓을 엿보다 보면, 어느 순간 단숨에 그 눈들이 신체를 벗겨 먹는 타자가 되고, 공작새의 아름다움을 눈길로 좇는 콜라주(collage) 작품으로 승화된다. 공작새가 향하는 곳을 따라 유유히 그 눈들이 옮겨붙는다.
영화 〈공작새〉의 주인공 신명(해준)은 한 마리의 공작새다. ‘흥겨운 신이나 멋’을 의미하는 신명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인물은 왁킹 댄서로 활동한다. 영화는 가장 극화된 음악과 소음이 섞여 드는 클럽 댄스 경연 장면으로 시작하여, 관객들을 무대의 끝 쪽에 함께 둔다. 마주한 두 선수의 열띤 경연, 그리고 무언가 조급해 보이는 신명의 눈빛. 결과는 ‘너만의 컬러가 없다’며 명에게 패배를 안겨준다. 경연대회에서 얻을 상금을 통해 성전환 수술을 받으려던 명의 계획은 어그러지고, 설상가상 연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된다.
‘추모 굿’을 올리면 모든 유산을 주겠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듣게 된 명은 급전이 필요했고, 내키지도 동시에 자신을 환영해 줄 리도 없으리라 확신하는 고향에 오로지 돈이 필요해 향하게 된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고향 ‘호창’.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을 입은 명이 유독 튀게 느껴질 정도로 점잖은 분위기다. 공동체의 규정과 압박이 고통스러워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명의 주관과 상반될 정도로, 옆집 이웃의 안부를 묻고 사는 화합과 공동체의 마을이다. 명 주변의 인물들은 그가 추모 굿을 올리는 것을 찬성/반대하는 사람들로 양분되고 명 조차 아버지의 추모식을 달가워하지 않는데, 아버지의 수제자이자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한 친구 우기(김우겸)는 굿을 그에게 맡긴 나름의 이유를 말하며, 왜 명이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설득한다. ‘굿에서 자기만의 것을 찾는 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거래.’
명은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며, 어릴 적 잡았던 소고를 다시 든다. 어떻게 춰야 하는지 물어보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그간 네가 해온 춤의 자락을 담아내면 된다고 답한다. 악기를 들어 장단을 맞춰가는 그들은 둥글게 모였다가 한 사람씩 서로 눈을 맞추며 교류한다. 당신이 어떤 음을 들려주며, 그 음을 내가 어떻게 받아낼 건지. 흥겨운 자락 속에서 서로의 다정한 눈빛이 그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방법을 공수받지 못한 그녀는 힐끔대며 어색하게나마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다, 어느새 흥겨운 리듬에 도취해 경연대회와는 여실히 다른 표정과 자태로 자신만의 무대를 꾸민다.
보이는 것이 익숙해야 하는 직종 덕에 그녀의 걸음마다 타인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춤 실력을 관객에게 처음 선보였던 경연대회에서는 평가라는 목적하에 개개인의 잣대로 한도 없는 선으로 그녀는 판단 당한다. 집중된 수만 가지의 눈에 억압된 채 그녀는 속박된 환경에서 춤을 춘다. 이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은 후 향한 장례식장에서는 아버지의 지인들이 그녀의 생경한 모습과 독특한 자태에 놀라 훔쳐본다. 성별을 규정하는 옷을 입게 된 명은 원치 않았음에도 사람들에게 논쟁거리로 화두에 오른다. 화려한 외양과 참지 않는 괄괄한 성격, 고향에 닿자 사람들은 곱지 않은 눈길로 그녀를 좇는다. 그리고 이 시선은 명이 자신과 같이 동성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 사촌 동생을 지키려 구설수에 휘말린 이후 증오와 혐오로 차오른다.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겸연쩍었던 명의 구실 잡았다는 듯, 사실을 먼저 묻기보다 그녀를 향한 질책을 앞세우고 끝내 그녀의 목걸이는 강 건너로 보내 버린다.
그렇게 명은 ‘추모 굿’을 올릴 자격을 박탈당하지만, 동생의 커밍아웃을 대신에 자신의 억울함을 밝힐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수수하게 그 자리를 떠나는 성숙한 자아의 모습을 보인다. 따가운 눈초리에도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논길을 달려 나가는 쇼트는 단조롭지만 결연하고 견고하다. 뛰어올라 산 정상에 오른 명은, 드디어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무대에 오른다. 시작된 그녀의 춤, 카메라는 이전처럼 그녀의 시선과 춤을 집요하게 잡던 태도를 벗어나 마치 산 위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된 듯 그녀의 여유로움에 한 발짝 물러나 있다. 한걸음 잘못 내딛다가 밑으로 떨어져 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절벽 위의 댄스는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 영화 속에서 인물에게 가장 큰 무대로 완성된다.
이후 사촌 동생의 눈물과 함께 명의 누명은 벗겨지고 ‘추모 굿’을 올릴 자격을 얻게 된다. 돈이 필요해 시작된 아버지의 유언과 계약은 우기의 실토로 거짓임이 밝혀졌으나, 고향에서 굿을 올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맞춰 나갔던 장단과 결심, 고향의 끝을 오갔던 몇 번의 뜀박질과 아버지와의 만남,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대상들을 향한 애정과 애증은 그 목적과 무관한 감정을 생성시킨다. 분노로 차올랐던 과거와, 결국 ‘함께’ 살아 나가는 것이 숙명인 인간의 세계. 스스로를 향한 규정보다 타인을 향한 인정을 이해하자, 명은 세계를 용서하고 눈앞에 있는 마을을 향한 평안을 바란다. 그렇게 자신만의 굿을 만들어 간다.
영화의 마지막 고모가 지어준 옷을 입고 자신만의 해석을 담은 춤을 담은 추모 굿을 올리는 명. 색을 찾은 듯 올곧은 눈을 가진 무용수만이 그 안에 서 있다. 국악과 왁킹이라는 장르가 물리적으로 융합된 상황처럼 그렇게 명도 공동체의 품 안에 쏙 들어간다. 그녀의 춤에서 허리 깃을 바짝 세운 공작새 한 마리가 튀어 오른다. 그 한도 없는 아름다움이 너무나도 강렬하여 시선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동경과 선망으로 가득 찬 시선, ‘신명’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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