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선의〉리뷰:'최소한의 선의'가 만든 낙관의 자리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글입니다.
〈최소한의 선의〉는 화해할 수 없는 것들 사이의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교사 희연과 임신한 학생 유미 사이를 낱낱이 들여다보는 영화다. 유미는 임신을 이유로 퇴학 위기에 처한 학생이다. 희연은 유미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는 유미에게 다가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희연은 학교의 처분에 따라 유미에게 자퇴를 권할 뿐, 그 이상의 관계를 맺거나 정서적 공감을 시도하지 않는다. 희연과 유미 사이에는 투명한 창이 놓여 있는 것 같다. 희연은 유리창을 통해 유미를 바라볼 뿐 창을 넘어 다가가지는 않는다. 희연에게 선은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유미는 선을 넘어 희연에게 다가온다. 임신중절을 이유로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자퇴를 권하는 희연에 왜 자신을 배척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학교는 그런 유미를 ‘일탈’과 ‘반항아’라는 선 안으로 몰아넣는다. 임신 후의 유미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분명하게 선의 존재를 의식한다. 학교에서는 ‘일탈자’로 불리고 사귀었던 남자 친구는 진학을 핑계로 헤어져달라는 말을 꺼낸다. 일상의 공간이 파괴되고 자신의 편이 사라진 세계에서 유미는 생존을 위해 선을 넘는다.
희연은 시차를 두고 유미의 궤적을 따라간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유미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고 집을 나가 보호시설에 머무른다. 난임을 겪던 희연은 유미가 학교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에 성공한다. 〈최소한의 선의〉는 희연과 유미 사이의 거리를 최대로 벌려 놓은 뒤, 임신과 출산이라는 공통의 사건을 부여한다. 유미가 선행적으로 경험한 임신의 과정을 희연이 따른다. 난임을 겪던 희연에게 임신은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이지만, 학생 신분인 유미에게 임신은 너무 이르게 찾아온 소식이다. 각자가 마주한 임신의 의미는 다르지만, 임신의 경험으로 희연과 유미 사이의 선은 조금씩 흐려진다.
현재의 순간을 살아내기 바쁘던 희연에게 임신은 시야를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희연은 출산 이후의 삶을 생각하고 준비한다. 희연의 시간은 미래를 향하고 유미가 경험한 임신의 어려움과 출산의 두려움은 희연의 것으로 체화된다. 그렇게 희연의 미래는 유미의 과거 위로 겹친다. 겹겹이 포개어지는 시간을 따라 유미의 마음이 희연에게 스며든다. 희연의 집을 찾아온 유미가 갑작스럽게 아이를 낳은 순간, 오래전 희연이 그어둔 선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유리창을 통해 유미를 바라보던 희연은 선을 넘어 유미의 손을 잡는다. 괴로워하는 유미를 붙든 희연의 손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희연이 유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유미에게 세상은 여전히 차갑다. 유미의 재입학은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반려되고 유미는 육아도 학업도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다. 〈최소한의 선의〉는 비관을 지움으로써 낙관의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비관적인 세계에서 ‘최소한의 선의’를 다하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희연은 학교와 대립하면서까지 유미의 재입학을 제고해달라는 메일을 쓰고 반 친구들은 유미의 복귀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서명서를 제출한다. 희연의 이메일에, 친구들의 서명서에, 선을 넘어 내어본 ‘최소한의 선의’에 낙관의 자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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