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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딸에 대하여〉: 딸 없는 '딸에 대하여'

by indiespace_가람 2024. 9. 20.

〈딸에 대하여〉리뷰: 딸 없는 '딸에 대하여'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님의 글입니다.

 


7년 만에 경제적 이유로 집에 들어온 딸. 혼자일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언급한다. 처음 보는 여성,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는 남편도, 며느리도, 딸의 친구도 아니다. 딸은 그 여성을 자신의 연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결혼도 할 수 없고, 아이도 낳을 수 없는 같은 성별의 사람이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여유가 없다. 애초에 여유가 있었다면, 딸과 그 사람을 집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요양 병원에서 받는 처우는 경제적 상황뿐만 아니라 정신적 여유마저 앗아가고 있다. 나는 하청 업체 소속으로 파견되어 사람들의 마지막을 보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이윤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병원은 단호하다. 사용한 기저귀에 신문지를 깔아 재사용을 강요하고, 상태가 악화될 것이 뻔한 선택을 밀어붙인다. 한때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이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노인 제희를 돌보며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나는 제희에게 자꾸만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영화 〈딸에 대하여〉 스틸컷


영화 〈딸에 대하여〉는 제목과 달리 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는 철저히 딸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내 딸이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충격과, 정석적인 삶의 경로를 따르지 않는 것에서 오는 우울함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성적 지향과 이에 따른 가족 구성권 침해에 대해 사려 깊게 담아내지만, 영화가 그려내는 주된 감정은 레즈비언의 우울함보다는 비주류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의 벅참에 가깝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기존 질서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된다면,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딸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했고,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인생의 중반에서 이런 일을 겪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지는 점에서 대한민국 중년 여성의 일반적 정서와 유사하다고 느껴진다.

주제 의식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은 대부분 '나'의 계몽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나는 제희의 존재를 통해 혈연관계가 아닌 타인에게 가족 수준의 사랑과 돌봄 욕구를 느끼게 된다. 이는 성애적 감정과는 다르지만, 시민 의식으로 포괄하기에는 더 나아간다. 사회가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요양 보호사와 돌봄 대상자 사이의 직업적 거리보다 훨씬 가까운 제희와 '나'의 관계는 미묘하다. 나는 이러한 궤도를 벗어난 감정을 체험하면서 딸이 연인에게 느끼는 사랑을 일부 이해하게 되고, 이를 통해 가족의 확장을 경험한다.

딸과 딸의 연인, 아니 그린과 레인의 시위 과정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린과 레인이 가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친구, 동료, 또는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로서 서로를 이해한다. 나는 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직시한다. 물론 대한민국 현대사와 '나'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가장 주도적으로 사회 변혁을 이끌었던 현재 50대가 이런 구호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친밀감을 정말 낯설게 느낄지 의문이 들지만.

 

영화 〈딸에 대하여〉 스틸컷


희극도 비극도 아니지만 따스하게 마무리되는 영화 스크린을 바라보며 조바심이 든다.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동성 파트너가 인정된 대법원 판례은 몇 달 전 일이 됐다. 동성연애 프로그램 방영을 비롯해, 최근에는 동성 부부 사이에서 출산이 화제다. 비-이성애를 받아들이는 데서 더 나아가, 비주류성을 제도 내 포괄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진정으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반문해야할 시점에 ‘나’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를 가질지 물음표가 떠오른다. 제희와 나의 관계는 그린과 레인의 관계와 절대 같을 수 없음에도 레즈비언의 사랑을 이성애자의 사랑과 다르게 인식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딸이 아닌 엄마에 초점을 맞췄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딸’을 가진 엄마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정석적으로 다름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다. 설사 그 방식이 자기중심적이거나 편견에 따른데도 나는 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이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례를 찾았을 뿐이다. 이 영화는 딸을 얘기하는 엄마의 이야기지만, 다시 말해 딸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기도 하다. 딸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말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말할 곳이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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