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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상상력
〈딸에 대하여〉와 〈너에게 가는 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글입니다.
보편성은 공감의 한 주축이다. 이는 특정 정체성을 공유하는 데서 올 수도 있고 한 생애를 살아내는 같은 인간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을 일상에서 지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경계 (보통 혈연으로 이루어진) 내의 존재들에게만 감정의 손길을 뻗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의 미래와 나의 미래, 그의 현재와 나의 현재가 겹치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누군가를 나와 상관없는 존재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어떤 계기가 있을 수도, 또는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상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와 법으로 묶이지 않은 너와 내가 함께 했을 때 세상이, 우리가 더 나아지리라는 상상 말이다.
〈딸에 대하여〉는 한 아이의 엄마(오민애)가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한쪽에는 ‘엄마’(그의 이름이 제대로 불리는 일은 없다)가 요양원에서 한 어르신을 돌보면서 일어나는 일이 있다. 어르신, 제희 여사(허진)는 입양아들을 후원하며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헌신한 사람이다. 도덕적인 삶을 살았으나 혈연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노년은 삭막하기만 하다. 그의 병증이 깊어질수록 그를 버릴 궁리만 하는 사람들을 보며 엄마는 딸의 미래를 겹쳐 본다. 엄마의 딸 그린(임세미)은 대학교 시간 강사로 동성 연인과 7년째 연애를 하며 동거 중이다. 딸이 보증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애인과 함께 엄마의 집에 들어오게 되면서 엄마는 불편한 현실을 마주한다.
한쪽의 이야기가 다른 쪽의 갈등을 얼핏 공고히 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린이 부당 해임당한 동료 교수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투쟁하는 것처럼 엄마 역시 점차 비슷한 인식을 깨닫는다. 제희 여사의 핍박받는 삶이 반면교사가 아니라 자신이 겪을 수 있는 아픔이 되는 순간, 어떤 대가도 의무도 없지만 이렇게 둬서는 세상이 잘못될 것 같기에 손을 내밀려는 마음을 가진다. 그 마음은 결국 피와 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연결된 가족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커밍아웃한 자식을 둔 두 엄마 ‘나비’와 ‘비비안’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두 사람은 자식의 비밀을 받아들이기까지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이제는 부모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퀴어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다. 자식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의 투쟁이 작중 ‘엄마’의 미래 같기도 하다. 너의 일은 곧 나의 일, 그래서 너에게 도달하기 위해 부단히 걷는 걸음.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희망을 상상하는 서로의 힘을 굳건히 믿어줬으면 좋겠다.
* 작품 보러 가기: 〈너에게 가는 길〉(변규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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